독일의 대표 르네상스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1472 ~ 1553)"의 1509년 작품 "비너스와 큐피드(Venus and Cupid)". 독일 중부 크라나흐에서 태어난 크라나흐는 독일 르네상스 화가이자 판화 및 판화 제작자로 그의 대부분의 경력은 작센 선거인단의 법원 화가였으며, 독일 왕자들과 개신교 개혁 지도자들의 초상화로 유명하다. 작가는 마르틴 루터의 절친한 친구로Cranach는 카톨릭 전통에서 처음으로 종교적 주제를 그렸고 나중에 예술에서 루터교의 종교적 관심사를 전달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신화와 종교에서 가져온 누드 피사체를 그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당대의 가장 성공적인 독일 예술가로 여겨져 왔다. 그의 아들 역시 화가로 활동하였다.
독일의 대표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의 1530년 작품 "홍해에서 침몰하는 파라오(Sinking Of The Pharaoh In The Red Sea)". 이 작품은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한 모세의 출애굽기의 한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독일의 대표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의 1535년 작품 "마르틴 루터 초상화(Diptych with the Portraits of Luther)". 크라나흐는 16세기 독일 예술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화가로 "마르틴 루터"와 친하게 지냈다. 1517년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사제였던 마르틴 루터는 비텐베르크 성 교회 정문에 라틴어로 된 "95개조의 의견서"를 붙이며 종교개혁의 바람을 일으킨다. 주 내용은 교황청의 면죄부(면벌부) 판매에 대한 비판이다. 이로써 루터는 교황청으로부터 파면당한다.
"루카스 크라나흐"의 1529년 작품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와 루터 아내의 초상화(Diptych with the Portraits of Luther and his Wife)".
"루카스 크라나흐"의 아들 "크라나흐(1515 ~ 1586)"의 작품 "루크레티아(Lucretia)". 루크레티아는 고대 로마 이야기속에 나오는 여주인공으로 그녀는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콜라티누스"라는 귀족의 아내로 아름답고 덕망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비극은 로마의 폭군 에트루리아 왕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의 아들인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에게 능욕당하면서 시작된다. 그녀는 아버지와 남편으로부터 타르퀴니우스 가문에게 복수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뒤 칼로 자살한다. 그러자 브루투스가 격노한 군중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타르퀴니우스 가문을 로마에서 몰아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로마 공화정이 세워지며 루크레티아의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서사시 "루크레티아의 능욕(The Rape of Lucretia)"에서 재조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