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온금 비탈동네
요즘은 어디를 가든 골목에서 벽화를 만날 수 있다. 우리들의 누추를 가리기 위해서든, 아니면 예술의 여유이든 상관없다. 사람의 사람에 대한 신호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관광객 유치를 위한 싸구려 프로젝트와 젠트리피케이션과 문화갬성의 새 서식지가 뒤엉킨 골목을 걷는다. 더 이상 긴장하지 않는다. 도시도 진화와 변화와 쇠퇴를 반복하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목포의 골목에는 바람소리 파도소리가 들린다. 아침과 저녁의 빛이 그림자의 시침을 부지런히 돌리고, 태반이 빈 집들엔 이따금 고양이가 어슬렁거린다. 사람들은 그 흔적을 남기고,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목포의 서쪽 산비탈에 자리 잡은 서산동과 온금동은 일제 강점기 조선인들이 거주했던 산동네다. 갈매기들이 집을 짓듯 다닥다닥 붙어선 집들 사이로 골목길이 구불구불 흐르다가 콸콸 흐른다. 하지만 묘하게 대조적이다. 서산동이 시화골목마을로 새로운 모색을 하는 편이라면, 온금동은 속절없이 재개발을 기다리며 쇠락하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우선 서산동을 찾았다. 골목의 흐름에 매료되었다. 변화무쌍한 골목길 자체가 생명감 있다. 평지가 아닌 비탈이기에 더 역동적이다. 일출과 함께 목포항에서 제주로 떠나는 페리호를 모는 풍광은 아련하고 설랜다. 물론 폐가들 사이로 새롭게 비집고 들어간 카페, 점방, 작업장 등과, 화려하고 유머러스한 벽화, 그리고 지역의 시인과 할머니들의 작품들의 조우도 파도처럼 신선했다. 각진 집의 모퉁이들을 돌며 요리조리 올라가고 이어지고 막히고 흘러내리고, 그 사이사이 사람들의 작은 텃밭 화분밭 화분나무 화분꽃들은 삶의 미학을 절묘하게 선사한다. 벽과 턱에 놓여 삶을 응원한다. 벌써 비파나무의 꽃은 피었고, 메리골드 두 송이가 노랗게 피어있다. 푸릇한 쪽파와 완두콩은 게으른 도시인에게 봄을 선사하고 남았다. 가꾸는 것은 늘 아름답다.
조선내화라는 벽돌공장이 떠난 온금동은 서산동에 비해 더 적막하다. 텅 빈 집들은 많지만 서산동처럼 새롭게 날아온 이들은 없다. 골목의 바다 속 여기저기 섬처럼 아직 남은 사람들이 산다. 골목의 점방 처마에 매달린 북어가 한정 없이 딸그락거린다. 그리고 개가 있었다. 서산동에는 없었던 개가 짖고 있었다.
온금동은 물 사정이 더 좋지 않은지 골목 곳곳에 빗물을 수집하는 통이 있었고, 작은 텃밭에도 여지없이 커다란 고무물통이 놓여 있었다. 지붕에서 홈통을 타고 흘러내린 빗물을 모은 물통의 물이 한때는 온금동 사람들에게 절실했을 것이다. 마을 입구의 공동수도 장소와 중앙에 있는 큰샘(우물) 공덕비는 바닷가 마을에서 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실감케 하는 유적이었다.
온금동에서 나는 물의 귀함과 쓰임, 그리고 공공적 가치를 다시 확인하는 것이 새로웠다.
이곳에 모였던 사람들은 썰물처럼 모두 어디로 떠났을까? 이곳에는 이제 아파트단지가 들어설까? 얕은 능선을 사이에 두고 두 마을의 운명이 너무도 달라보였다. 두 개의 다른 젠트리피케이션으로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