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
최용현(수필가)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 1962년)’는 미국의 여성작가 하퍼 리의 퓰리처상 수상작인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바탕으로 로버트 멀리건 감독이 연출한 흑백영화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알라바마에서 생긴 일’(1966년)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됐다가 ‘알라바마 이야기’로 바뀌었는데, 지금은 책제목인 ‘앵무새 죽이기’가 영화제목으로도 통용되고 있다.
아카데미 8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라 각색상과 남우주연상, 미술상을 수상하였다. 2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북미에서만 1,310만 달러를 벌어들여 흥행에도 성공했다. 1995년부터 미국 의회도서관 국립영화등기부의 영구보존영화가 되었으며, 1997년 미국영화연구소(AFI)에서 선정한 100대 영화에서 25위를 차지하였다.
대공황 직후인 1930년대, 인종차별이 심했던 미국 남부 앨라배마 주의 한 시골마을 이야기이다. 성인이 된 여주인공 스카우트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내레이션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막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꼬마 숙녀 스카우트(메리 배드햄 扮)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오빠 젬(필립 알포드 扮)과 변호사인 아버지 애티커스(그레고리 펙 扮)와 함께 살고 있다.
스카우트와 젬은 여름방학 때마다 이웃인 이모 집으로 오는 친구 딜과 함께 무서운 괴인(怪人)으로 소문난 부 래들리의 집을 몰래 염탐하다가 겁에 질려서 도망쳐 나오곤 한다. 애티커스는 농산물이나 장작으로 수수료를 내는 가난한 농부들이나 부당하게 차별대우를 받는 흑인들을 주로 변호하는 의협심이 강한 변호사이다.
그 여름, 괴팍한 성격의 술주정뱅이 밥 이웰의 딸인 백인처녀 마옐라가 흑인청년 톰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애티커스는 톰이 부당하게 인종차별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기꺼이 톰의 변호를 맡는다. 그 때문에 젬과 스카우트는 학교에서 백인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하기도 한다.
스카우트와 젬, 딜은 재판을 보기 위해 몰래 법정으로 들어간다. 방청석이 꽉 찬 가운데 재판이 열린다. 보안관은 마옐라의 목과 양팔에 멍 자국이 있었고, 머리 오른쪽과 눈두덩에도 심하게 맞은 상처가 있었다고 증언한다. 마옐라는 가구를 손봐달라고 톰을 방으로 불러들였는데, 그가 갑자기 얼굴을 때리고 목을 조르면서 자신을 강간했다고 진술한다.
그러나 톰은 그 집 앞을 지나갈 때 마옐라가 오라고 해서 갔더니 집안이 조용하더란다. 물어보니 아이스크림 사먹으라고 어린 동생들을 마을 가게로 보냈단다. 방의 가구를 손봐달라기에 마옐라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는데 갑자기 목을 끌어안으며 키스를 하더란다. 톰이 막 벗어나려고 하는데, 술에 취한 마옐라의 아버지가 나타나서 딸을 강간했다고 소리를 지르면서 마옐라를 마구 구타했다고 진술한다.
애티커스는 마옐라의 얼굴과 목의 상처를 분석해보면 왼손잡이한테 맞은 것인데, 톰은 12살 때 농기구 사고로 왼팔을 전혀 쓰지 못한다면서, 마옐라의 상처는 왼손잡이인 아버지에게 맞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의사의 진단서가 없기 때문에 강간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애티커스는 백인 일색으로 이루어진 배심원들에게 양심에 따라서 평결해달라고 호소하지만, 톰은 유죄판결을 받는다. 애티커스가 법정에서 나갈 때, 방청석의 흑인들은 존경의 뜻으로 모두 일어선다. 애티커스는 항소를 생각하는데, 보안관이 찾아와 톰이 호송 중에 탈출하다가 총살당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애티커스는 톰의 가족을 찾아가서 이 소식을 전하는데, 갑자기 밥 이웰이 찾아와 애티커스의 얼굴에 침을 뱉는다.
가을이 되고, 스카우트와 젬은 밤에 숲길을 따라 집으로 가다가 괴한의 공격을 받는다. 젬은 한 팔이 부러지면서 쓰러지는데, 이때 한발 떨어져 있던 스카우트는 갑자기 낯선 남자가 나타나 괴한을 칼로 찌르고 쓰러진 젬을 안고 집으로 뛰어가는 것을 본다. 집에 있던 애티커스는 즉시 의사와 보안관을 부른다. 스카우트가 현장상황을 설명하면서 ‘문 옆에 서있는 저 남자가 오빠를 구했다.’고 말한다. 애티커스는 그가 바로 부 래들리라고 말한다.
사건현장에서 밥 이웰이 식칼에 찔려 죽은 채 발견된다. 보안관은 부 래들리가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라며, 밥 이웰은 자신의 칼에 넘어져 죽은 것이라고 말한다. 애티커스는 부 래들리에게 ‘아이들을 구해줘서 고맙네.’ 하고 인사를 하고, 스카우트는 부 래들리의 손을 잡고 그의 집까지 바래다주면서 영화가 끝난다.
‘앵무새이야기’는 꼬마소녀 스카우트와 오빠 젬의 눈높이로 보는 성장영화이면서 가족영화이고 인권영화이다. 스카우트는 괴담으로만 듣고 무서워했던 옆집남자 부 래들리가 수줍음이 많은 내성적인 아저씨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 소외된 은둔자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따뜻한 심성을 보인다. 흐뭇한 장면이다.
이 영화는 탄탄한 원작을 바탕으로 한 세심한 각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그레고리 펙의 혼신을 다한 열연, 그리고 귀엽고 순진무구한 아역배우들의 빼어난 연기, 괴인으로 소문난 옆집남자 ‘부 래들리’를 연기한 데뷔시절의 로버트 듀발의 모습 등 재미난 요소들이 많이 있다.
‘앵무새 죽이기’라는 제목은 애티커스가 아이들에게 총을 주면서 ‘죄 없는 앵무새를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한 당부에서 인용한 것인데, 여기서 앵무새는 흑인처럼 인종차별을 받는 사람이거나, 부 래들리처럼 힘없고 소외된 사람을 가리키는 은유이다. 이 제목에서 주제와 메시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mockingbird는 다른 새의 울음소리를 잘 흉내 내는 북미에 사는 흉내지빠귀로, 앵무새와는 완전히 다른 종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앵무새라는 오역(誤譯)이 굳어져서 책제목도 계속 ‘앵무새 죽이기’로 번역되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