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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오바댜-01 에돔의 멸망(오바댜 1장 1-4절)
성경말씀은 오바댜 1장 1절에서 4절까지 봉독합니다.
[오바댜 1장]
1 오바댜의 묵시라 주 여호와께서 에돔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소식을 들었나니 곧 사자가 열국 중에 보내심을 받고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날지어다 우리가 일어나서 그로 더불어 싸우자 하는 것이니라
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를 열국 중에 미약하게 하였으므로 네가 크게 멸시를 받느니라
3 바위 틈에 거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중심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 너의 중심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4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오바댜서는 일반 기성교회에서 거의 설교를 잘 하지 않는 그런 책이고, 또 이것을 강해하는 분도 이런 책을 선택해서 강해하지 않는,
그래서 까딱하면 일평생 교회에 다니면서도 거의 무관심속에 묻혀 넘어가는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는 그런 책입니다.
책이라고 할것도 없고 편지 한장처럼 그렇죠?
그래도 여기 우리가 꼭 귀담을 듣고 눈여겨 보아야 될 만한 진리가 있기 때문에 성경으로 선택된 거예요.
구약시대에 기록된 이런 저런 문서가 많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다 성경으로 선택되지 않고 외경이나 혹은 신약에서는 위경으로 분류되는데, 이 짤막한 두 페이지밖에 안되는 이런 내용이 어떻게 무슨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이 책도 성경으로 분류되는가?
이런 것은 우리가 생각을 해봐야 되겠죠?
이 오바댜가 하나님 말씀을 전한 때를 알았으면 좋겠는데, 아쉽게도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는 어떤 근거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체로 남쪽 왕 누구때 북쪽 왕 누구때에 이런 말이 앞머리에 나오는 것이 상식인데, 오바댜서라든지 나훔이라든지 성경 몇권은 그런 내용이 없어요.
그래서 오랜 후에 우리 기독교 문학이 세계적으로 확산될 때 글을 쓰는 사람들은 반드시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라는 그런 원칙을 좀 가지고 써야 되겠다 하는게 성경 연구하다가 언제라는 말이 없으니까 참 힘들어든요.
그래서 살아가다가 이런 성경을 읽다가 많은 문학들이 문법들이 발전했지 않느냐? 그렇게 볼 수 있어요.
어떤 사람들이 이 성경을 두고 무슨 케케묵은 신화나 전설같은 이런 식으로 보는 사람들이 신학자들 중에도 상당히 많이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세익스피어라는 사람이 한 말을 오랫동안 머리속에 남아 있는데, 지금부터 3500년 전 내지 2000년 신약의 마지막책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때까지 근 1900년 넘었을테니까요..
2000년 전 시대에 이정도의 문장력과 문법에 맞는 이런 작품이 나왔다는 것은 그야말로 그 자체가 놀라운 거죠.
그래서 세익스피어가 하는 말이 만약에 이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쓴 것이 아니고 사람의 글재주나 말재주나 사람의 머리를 가지고 이런 책을 썼다면 나는 그 사람을 하나님으로 섬기겠다.
그런 얘기를 했다는 거예요.
오래전에 어떤 글귀를 읽었는데 성경을 연구해보면 연구해볼수록 또 읽어서 이해할수록 성경책의 위대한 문학성이 지금부터 3500년 전 내지 2000년 전 그런 시대 이 문학적인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대단한 문장의 규모가, 그 내용의 충실함이라든지 성실한 모습이라든지 그리고 아주 진솔한, 인간들의 타락한 그런 면들을 심리적으로 묘사가 글을 읽어보면 지금 읽어봐도 전혀 거리감이 없이 읽어지는, 그런 글들로 꽉 차 있습니다.
물론 그런 계시록이라든지 몇몇 책들이 우리가 조금 읽기에 난해한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만 대부분은 그저 성실하게 읽으면 다 이해되는 그런 내용들인데,
제가 가끔 외국 영화나 다큐멘터리 보고서나 이런 것을 더러 보면서 외국 서양 사람들이 성경의 어떤 부분을 이해하는 것을 보면 우리와 같거든요.
번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종과 문화의 간격이 상당한대로 불구하고 3500년 전에 기록된 것을 지금 동양이나 서양이나 별 거리감 없이 성실한 신앙을 갖고 있는 영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똑같이 공감하면서 읽고 이해한다는 거예요.
어떤 작품이 졸작이라면 몇차레 몇단계 번역에서 벅역으로 가버리면 아주 엉뚱하게 됩니다. 의미가..
그러나 성경이라는 책이 대체로 우리가 히브리어 헬라어를 직역을 한게 아니고 영어나 한문 성경을 참고해서 번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하나님의 뜻을 담아낸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죠.
그래서 오바댜 이야기를 잠깐 살펴볼텐데, 오늘은 오바댜와 같은 내용으로 예언했던 몇몇 사람과 함께 살펴볼려고 합니다.
오바드야후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를 경배하는 자, 여호와를 공경하는 자라는 뜻인데,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들의 기본 특성은 하나님을 정말 신실히 믿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다 옳도록 믿고 이렇게 정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은 악이 승승장구할 때도 낙심하지 않고 의인들이 고난받을 때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게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의 기본 자세예요.
악이 형통하고 악이 창궐하고 악이 승리하는 것 같이 보일 때도 낙심하지 않고, 의인들이 고난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을 두고 정말 성도 신자 경건한 자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 이렇게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지금 이 오바댜가 이 예언자서 쓸 때는 악은 항상 승리하고 선한 항상 패배하고 불이익 당하고 손해보고 그런 때예요.
악한 에돔 자손들은 항상 떨어먹고 그래도 좀 착하게 살려고 하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은 맨 수탈당하고 약탈당하기만 하고 이런 때에 그래도 이 오바댜가 자기 믿음을 견실히 지켜 나갔다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의미가 있는 거죠.
그 이름과 함께 그의 신앙과 생활과 그의 사상이 악이 창궐하는 것을 보고 또 의로운 사람이 고난받는 것을 보고 포기하지 않고 한결같이 하나님을 공경했다. 그런 의미이거든요.
그래서 성경에 보면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아라. 그런 말이 있고, 악인의 형통하는 것도 오래가는 것이 아니고, 의인의 고난도 영원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악한 일시동안 잠시동안 형통하다가 네가 눈닦고 찾아봐도 찾지 못할 것이다.
의인의 일곱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는 거예요.
한번도 안 넘어지면 참 좋겠는데, 의인도 때로는 넘어지고 좌절하고 하지만 의인은 또 일어난다는 거예요. 믿음을 가지고..
그런 것을 그런 사람을 의인이라고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세상에 죄가 하나도 없는 의인 그런 의인은 하나님도 못 찾습니다.
그런 의인은 없고, 의인의 뭐냐? 일곱번 넘어져도 또 일어난다는 거예요. 믿음을 가지고..
[오바댜 1장]
1 오바댜의 묵시라 주 여호와께서 에돔에 대하여,
거기 줄을 그으세요. 에돔에 대하여, 에돔에 대하여 말씀을 하시는데, 오바댜가 에돔 사람을 찾아가서 회개하라는게 아니거든요.
회개하라는 말이 없어요. 여기..
그러니까 오바댜라는 예언자가 이 에돔에 대해서 글을 썼지만 에돔에 가서 읽어주지도 않고.. 제가 볼 때 그냥 써놓고 그냥 돌아가신 것 같애요.
그냥 써놓고 누가 읽으라하느냐 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읽으라는 거야.
그 악하고 강하고 약탈하고 이런 에돔 자손들은 얼마 안 가서 망한다 하는 얘기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남기고 세상을 떠난것 같이 이 사람이 에돔에 대하여 썼다 해서 이것을 가지고 에돔에 쫓아가서 에돔 사람들아 들어봐라 하고 외쳤겠는가?
그렇지 않았을 것 같애요.
그러니까 결국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읽어보고 자기처럼 하나님을 끝까지 경배하고 공경하고 낙심하지 말라 하는 의미가 있고, 또 이것을 기록으로 남겨서 성경에 포함시켜서 에서 자손에게 읽어주고 마는게 목적이 아니고, 이러한 말씀을 성경에 포함시켜서 오고 오고 세대 모든 성경 읽는 사람들이 오바댜처럼 진정으로 야훼 여호와를 경배하고 공경한다면, 악한 사람들이 형통할 때 의인이 고난받을 때 낙심하지 말아라 하는 것을 이스라엘 사람들과 오고 오는 세대 이 오바댜서를 읽는 사람들에게 향한 것이지,
잠시 잠깐후면 없어지고 사라질 민족에게 가서 읽어주면 뭐 하겠어요? 회개하라는 것도 아닌데..
그래서 이 책은 누구에게 쓴 것이냐 할 때 에서 자손들에게 가서 읽어줘서 회개를 촉구한 것도 아니고, 그 나라가 너희 이스라엘 백성들을 항상 약탈하고 그랬어도 그들은 여호와의 만국을 벌할 날이 되면 망할 나라들이야.
그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것을 알게 하려고 한 것이고, 또 이것을 기록으로 해서 성경에 포함되어서 오고 오는 세대에 이 오바댜 서를 읽는 모든 성도들이 이것을 교훈을 삼자는 거죠.
.. 주 여호와께서 에돔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소식을 들었나니 곧 사자가 열국 중에 보내심을 받고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날지어다 우리가 일어나서 그로 더불어 싸우자 하는 것이니라
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를 열국 중에 미약하게 하였으므로 네가 크게 멸시를 받느니라
하나님께서 한번 미약하게 하겠다 그러면 그냥 약해져버립니다.
애굽을 미약하게 하사 하는 말이 한번 성경에 나오거든요. 그 날 이후로 애굽은 저렇게 미약한 나라가 되어버렸어요.
한 때는 세계에서 초강대국 아니었습니까? 메소포타미아 유브라데 강 가에 발달된 문화라든지 애굽 나일강가에서 일어난 문화가 고대 찬란한 문화이고 굉장히 강성했던 나라인데, 하나님께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애굽을 미약하게 하사’ 라는 말이 한번 나오더니 그 날 이후로 지금까지 애굽은 여전히 미약하고 앞으로도 별 수가 없어요.
놀랍지 않습니까?
지금도 이집트에 가보면 국민소득이 한 600-700달러에서 1000달라 미만일겁니다.
그런데 또 벤츠가 제일 많은 나라가 애굽이야.
그렇게 국민 전체가 못 사는데 부자들은 억세게 잘 살아요.
인도도 마찬가지이고, 애굽도 그렇고 후진국일수록 빈익빈 부익부가 극예 달해있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어요.
벤츠와 소달구지가 나란히 데이트 하는 곳이예요.
카이로 시내를 걸어가도 당나귀와 벤츠가 함께 간다니까.. 같이 가면 속도가 비슷해요.
그렇게 못 살아요.
그리고 애들이 상당히 많은 아이들은 학교에도 가지 않은것 같아요.
애굽이 그렇게 미약해진 것을 보면, 그 애굽은 큰 나라라도 그렇게 미약해지는데 에돔 자손은 큰 나라도 아니거든요.
이스라엘 보다는 늘 강하고 했지만 어떻든 하나님께서,
..미약하게 하였으므로 네가 크게 멸시를 받느니라
3 바위 틈에 거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거기 줄을 긋고, ‘요르단 남부 세일산(페트라)’ 하면 되겠죠.
요르단 남부에 있는 세일산 산맥에 있는 페트라라는 곳이 해발 800고지쯤 될 겁니다.
상당히 높은 곳에 살아요.
거기가 매우 더운 지역이어서 아마도 여름 날에 더울 때는 기온이, 해발 50m나 30m 해변가 바다쪽으로 내려오면 지표면 온도가 50도씩 올라가요.
그러니까 어떻든지 시원한 곳으로 올라갈려고 산으로 올라갑니다.
해발 800고지쯤 되면 좀 시원하죠. 바람도 불고 저녁되면 오히려 추울 정도로..
그런데 거기 페트라라고 하는 굉장히 유명한 요새가 있거든요.
바위틈 사이로 들어가서 바위틈이 이앞에 있는 책상 넓이 정도의 길이 바위틈새가 쭉 나가는데, 1.3km를 들어가요. 말 탄 사람이 둘이 피할만큼 그런 길인데, 물론 가다보면 더 넓은 데도 있지만 좁은 데는 좁습니다.
그 좁은 길목을 계속 들어가서 바위틈이 갈라져서 1.3km를 들어가는 거예요.
바위 절벽이 이쪽도 100m 저쪽도 100m되니까 그 입구 하나만 막아내면 아무도 침략할 수 없는, 그야말로 세계에서 단 한곳 밖에 없는 그런 난공불락의 요새라는 겁니다.
그런 곳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감히 누가 나를 여기에서 끌어내겠는가?
누가 우리 요새를 넘어다 보겠는가?
하고 요새 좋은 것 가지고 있다고 교만한 거예요.
3 바위 틈에 거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중심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 너의 중심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4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5 혹시 도적이 네게 이르렀으며 강도가 밤중에 네게 이르렀을지라도 그 마음에 만족하게 취하면 그치지 아니하였겠느냐 혹시 포도를 따는 자가 네게 이르렀을지라도 그것을 얼마쯤 남기지 아니하였겠느냐 네가 어찌 그리 망하였는고
6 에서가 어찌 그리 수탐되었으며 그 감춘 보물이 어찌 그리 수탐되었는고
7 너와 약조한 자들이 다 너를 쫓아 변경에 이르게 하며 너와 화목하던 자들이 너를 속이고 이기며 네 식물을 먹는 자들이 네 아래 함정을 베푸니 네 마음에 지각이 없음이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지혜를 주십니다. 지혜..
하나님의 선물이 자고나니까 마당에 금덩어리가 떨어졌다 그런 것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한번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와 선물이 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솔로몬이라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딴것 준것 별로 없잖아요.
일단 지혜 하나만 주셨는데도 그 지혜때문에 온 세상 열왕들이 전부 금을 은을 다 싸들고 와서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왔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이 구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완전한, 가장 순수한 그런 기도제목이 있다면 하나님께 우리가 지혜를 달라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신다는 거야.
다른 것은 뭘 달라 뭘 달라 하면 하나님께서 더러 합당하지 않을 때 응답하지 않을 수도 있고 꾸짖을 수도 있고 한대, 지혜를 달라고 왔을 때는 꾸짖지 않는 다는 거예요.
자기 아들이 지혜롭다고 싶은데, 너 멍청하게 있어. 그러는 아버지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녀가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그런 것도 우리가 다른 것은 몰라도 그런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거죠.
그런데 이 에서 자손들이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지게 되면 지혜자가 사라지는 거야.
제가 볼 때 우리 나라 지금 위태위태한게 많아요.
지혜자가 사라지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 국민들이 점점 어리석어져요.
그러면 희망이 없어요.
그리고 세계를 지배할려고 하는 그런 악한 세력들은 어떻게든지 피지배민족, 자기들이 지배하게 될 그런 피지배민족들이 멍청하기를 바라는 겁니다.
그래서 역사를 보지 못하게 하고 성경을 뒤흔들어 버리고 온갖 스포츠(Sports) 섹스(Sex) 스크린(Screen), 이른바 3S라고 하죠.
그런 정책을 가지고 사람을 바보 비슷하게 그저..
아무 생각없이 출근하고 퇴근하고 먹고 즐기고 그저 향락주의로 빠져버리고 철학도 없고 사상도 없고 분별하는 어떤 지혜도 없고 그런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방송 문화라든지 인터넷 문화가 이런 것이 꼭 사람들을 지금 그렇게 만들고 있어요.
자기 혼도 없고 자기 철학도 없고 사상도 없고 주관도 없어요.
전부 TV에서 하는대로 다 따라해버려요. 아이들이..
옳고 그른 것을 안 따지고 분별없이 TV에서 옷을 하나 입으면 다 따라 입어버리고, 요즈음 한창 신정아씨가 유명한 모양인데, 그 신정아 패션때문에 패션계가 몸살을 앓는 거야.
옳고 그릇거나 말았든지 유명하니까 우리도 입자는 거야.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서울에 가서 강남이라되지 명동이라든지 신정아 패션을 입어야 사교계에 들어가는야.
이렇게 우리 국민들이 지혜가 없고 분별력도 없고 도덕적 감각도 해이해지고 타락하는 거야. 타락 사람들이..
여기 원래는 에돔 사람들에게 굉장한 지혜가 있었다는 거예요. 처음에..
욥기에 보면 엘리바스라는 사람이 나오죠. 데만 사람..
데만이라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에서가 엘리바스를 낳고 엘리바스를 데만을 낳고 데만이 또 엘리바스는 낳은 모양이거든. 데만 사람.
데만 사람 엘리바스는 에돔족속 같거든. 그 지혜로운 사람이..
굉장한 지혜자가 많고 모사가 많고,
그 유명한 아라비안 나이트라든지 다 그 쪽 지방의 이야기거든요. 옛날에..
굉장히 이야기꾼들 모사꾼들 장사꾼들 지혜자 이런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었던 땅인데,
그런게 사라진다는 거야.
하나님께서 은혜를 거두어 가시면 지혜가 사라져요.
사람들이 멍청해져서 속는 거야.
8절입니다.
8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에돔에서 지혜 있는 자를 멸하며 에서의 산에서 지각 있는 자를 멸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니까 죄를 짓고 악을 행하고 하면 하나님께서 그 민족중에서 지혜자를 명철 있는 자를 멸해버린다는 거예요.
그래버리면 그 나라는 망해요.
한 때 저 이란이라는 나라는 옛날에 페르시아 제국일 때, 그야말로 온 세계를 인도로부터 이디오피아까지 호령하던 나라인데, 지금 이란은 거의 거지 비슷하게 살아요.
하나님을 저버리고 다른 종교를 분별없이 선택하니까 지혜자가 없어져 버려요.
반대로 유럽쪽에 반달족 고트족 슬라브족 게르만족 튜튼족 아리안족 엥글로섹슨족 바이킹족 한 놈도 사람 같은 놈 없거든. 산적 아니면 해적들이야.
산적 아니면 해적들인데, 거기에 성경이 들어가고 성령이 들어가시고 기독교 문화가 들어가니까, 온갖 예술과 학문과 철학이 전부 거기에서 꽃피어나는 것 아녜요? 지혜자가 생기니까..
반면에 카톨릭을 받아들인다든지 아니면 이슬람을 받아들인다든지 불교를 받아들인다든지 유교를 받아들여 그야말로 유교를 받아들이면 하여튼 동인 서인 남인 북인 노론 소론 소북 대북 시파 벽파 티벽 태격 싸우다가 파벌이 싸우다가 나라가 망할 때까지 싸워버리니까..
이게 망하는 거예요. 다..
이슬람교는 시아파와 순리파가 피가나도록 죽으라고 싸우는 거야.
불교 같은데는 일 할게 없죠. 그냥 나무아미타불이니까 말짱 해봐야..
그러니까 불교 나라도 가면 멍청하게 그렇게 잘 못 살아요.
하여튼 기독교 문명과 문화가 들어가야, 들어가면 세가지가 들어가지 않습니까?
교회가 들어가고 학교가 들어가고 병원이 들어가는 거야.
그래서 사람이 구조적으로 볼 때 인격의 구조로 볼 때 영의 세계가 있으니까 목회자가 필요한 것이고 혼의 세계가 있으니까 교사와 학교가 필요한 것이고, 몸이 있으니까 의사가 필요한거거든요.
그러니까 영과 혼과 몸을 제대로 케어할 수 있는 교사 목사 의사가 함께 따라 들어가야 정상이예요.
그래서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유아사망율이 줄어들고 냉천한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고 물질문명 과학이 발달하는 것 아닙니까? 기독교 문명이 들어가면..
지금은 이런 문명이 하도 일반화 되어버려서 신 불신간에 불신자가 오히려 더 앞서 가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만, 어디든지 이런 현대 모든 문명은 사실 기독교 과학자 이런 사람들이 거의 다 발전시킨 거죠.
그런데 에돔 자손들에게서 하나님께서 지혜자를 멸하고 지각있는 자를 멸해버린다는 거야.
그러면 그 나라는 멍청하게 있다가 이용당하고 마는 거죠.
9 드만아 네 용사들이 놀랄 것이라 이로 인하여 에서의 산의 거민이 살륙을 당하여 다 멸절되리라
결론은 에서 자손의 결론은 다 멸절 된다는 거예요.
왜 멸절되느냐?
그런 멸절은 곧 하나님의 이것은 징계가 아니죠. 이것은 저주요 심판이요 끝장이야.
다 멸절하는 것이니까..
자 그 이유가 10절에 나오는데,
10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을 인하여 수욕을 입고 영원히 멸절되리라
멸절하는 이유가 뭐냐? 야곱 쌍둥이 족속 형제 족속인 야곱 족속에게 행한 포학때문에 에서 자손은 영원히 지구상에서 멸절된다 하는 얘기를 합니다.
이런 것이 하나님께서 도덕적으로 심판하신다는 거죠.
11 네가 멀리 섰던 날 곧 이방인이 그의 재물을 늑탈하며 외국인이 그의 성문에 들어가서 예루살렘을 얻기 위하여 제비 뽑던 날에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었느니라
그러니까 남과 똑같았어요.
쌍둥이 족속이고 형제족속이고 할 것 없이 남과 같이 대적과 똑같이 행동했다는 말이죠.
12 네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인간으로서의 윤리가 양심이 생각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자기 형제민족 쌍둥이 민족이 환난당할 때 방관하는 것만 해도 죄가 되지 않겠느냐?
.. 방관할 것이 아니며 유다 자손의 패망하는 날에 기뻐할 것이 아니며,
유다 자손이 어려움 당할 때 에서 자손은 항상 박수치며 훼파하라 훼파하라 끝까지 훼파하라 이렇게 손뼉이나 치고 입을 벌리고 그런 못된 짓 했다는 거야.
.. 그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라
13 내 백성이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성문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성문에 들어간다’는 것은 약탈하기 위해서..
예를 들어 한 족속이 와서 예루살렘을 칠 때 다시는 국가 수비대 이런 병력들이 치고 들어오는 그 쪽으로 가서 방비한다고 난리가 안 되겠어요? 온 관심이..
그 쪽을 방비한다고 할 때 그 반대편에 가서 약탈하는 거야.
앞문을 막고 저항할 때, 에서 자손은 뒷문으로 가서 약탈하는 거예요.
이런 짓을 항상 했어.
그러니까 오히려 예루살렘을 침략해오는 적들은 피를 흘리는데, 이들은 피도 안 흘리고 뒤로 들어가서 성문으로 들어가서 싹 훔쳐서 다 도망가는 거야.
그런 아주 악날한 짓을 많이 했어요.
그렇게 하기를 1700년-1800년 근 2000년 가까운 세월동안 그런 짓을 하는데, 그 악한 나라도 2000년 씩이나 참아주는 거야.
그러니까 사람들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고, 믿음 없는 사람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는 거예요.
악한 사람들은 악한 일에도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니까 인생들이 악을 범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한 번 죄를 지을 때 마다 바로 벼락이 때려봐. 아무도 죄 못 지을 텐데..
한 민족 악한 민족을 1000년 2000년씩이나 참아주니까 사람들 생각이 그렇지 않겠어요?
이래도 괜찮은가 보다.. 하나님은 없는 거야. 마음놓고 죄를 짓자. 이렇게 가는 거야.
반대로 믿음 없는 사람들은 ‘착하게 살아봤자 말짱 헛거다 젠장..’ 하면서..
선을 행하다가 낙심한다는 거죠.
그러나 참 경배하는 자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오바댜 처럼 아무리 에서족속이 악을 행하고 1700년간 보존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경건하게 살고도 핍박받고 수탈당하고 한다 할지라도 오바댜 같은 사람들은 낙심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오바댜라는 사람이 성경에 너댓 사람이 있는데, 아합왕 때에 궁내대신이 오바댜가 있었어요.
아합과 이세벨 시대에 궁내대신 오바댜가 그 어려운 틈 속에 흉년이 3년 6개월 동안 든 가운데서 선지자의 생도 요즈음 같으면 신학생들 50명씩 50명씩 굴에 숨겨놓고 3년간이나 돌봤어요. 양식을 먹여가면서..
그런것 들통나보세요. 목이 10개라도 이세벨에게 남아나겠어요? 그것..
그렇지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여호와를 경배하는 오바드야후 오바댜였기 때문에, 이 오바댜가 아닙니다.
다른 오바댜인데, 그 사람 역시 여호와를 경배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거야.
그래서 야곱 자손이,
..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고난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재물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며
14 사거리에 서서 그 도망하는 자를 막지 않을 것이며,
그 성에서 적군에게 쫓겨서 이스라엘 자손 야곱 자손이 쫓겨서 목숨이라도 건져볼려고 도망을 가는데, 도망가는 그 사람들 다 막아줘. 대적이 잡을 수 있도록..
그런 일 하고야 너희가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겠느냐? 그 말이죠..
14 사거리에 서서 그 도망하는 자를 막지 않을 것이며 고난의 날에 그 남은 자를 대적에게 붙이지 않을 것이니라
붙이지 아니했어야 돼. 너희가..
하나님께 사랑과 긍휼을 입을려면 그런 못된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15절입니다.
15 ○여호와의 만국을 벌할 날,
거기 줄을 그으세요. 중요한 대목이죠.
그러니까 악한 일이 일어날 때 그 악한 일이 일어날 때 마다 즉각즉각 심판이 단행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날을 정해놨어요.
어떤 날이냐? 여호와께서 만민을 만국을 벌할 날.
함께 다 기록을 해놨다가 충분히 기록하고 저장해놨다가 한꺼번에 다 처리하기 위해서 정한 날이 있다는 거예요.
15 여호와의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왔나니 너의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이게 진리죠.
여호와의 만국을 벌할 날이 있다는 것도 진리이고, 너의 행한 대로 너희 머리로 돌아간다는 것도 진리예요.
이런 진리가 있기 때문에 성경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이 책의 분량이 얼마 안 되지만, 온 동서고금을 다 뒤져도 명확하게 이렇게 하나님의 심판의 기본이 이런 식으로 되어있다하는 그런 구절이 없습니다.
전부 다 아리까리하게 흐리멍텅하게 알송달송하게 되어 있어요.
이렇게까지 명료하게 명쾌하게 하나님의 심판을 소개하는 책이 없는 거예요. 세상에..
그러니까 분량이 얼마 안되어도 충분히 성경이야. 거룩한 진리가 담겨있다는 거예요.
.. 너의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너의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16 너희가 내 성산에서 마신 것같이 만국인이 항상 마시리니 곧 마시고 삼켜서 본래 없던 것같이 되리라
여러분 한 민족이 얼마나 처절하게 멸절되었는지 본래 없던 것처럼 된다.. 다른 데에 보면 씻어 엎어버린 것처럼 된다. 완전히..
여러분 부인들이 부엌에서 대개 바쁘면 씻어 엎어버리죠. 물이 쫙 빠지게..
씻어 엎어버려요. 그냥 다..
완전히 씻어 엎어버린것처럼 된다. 본래 없던 것처럼 된다는 거죠.
그러나 17절,
17 ○오직 시온 산에서,
예루살렘이죠? 늘 수탈당하기만 했던 예루살렘 시온의 산에서는
.. 피할 자가 있으리니 그 산이 거룩할 것이요 야곱 족속은 자기 기업을 누릴 것이며 (때가 되면)
때가 되면 야곱 족속은 자기 기업을 누릴 것이며,
18 야곱 족속은 불이 될 것이요 요셉 족속은 불꽃이 될 것이며 에서 족속은 초개가 될 것이라,
‘초개(草芥)’는 검불, 불타는 검불이 될 것이라.
.. 그들이 그의 위에 붙어서 그를 사를 것인즉 에서 족속에 남은 자가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니라
말씀을 딱 하시면 그렇게 됩니다. 그냥..
아주 지목해서 에서 자손이 이렇게 망한다고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는데, 그것은 역사에 보면 정말 그렇게 되었어요.
그래서 역사와 함께 성경을, 성경과 함께 역사를 보면 야 하나님 하신 말씀은 틀림같이 이루어지는 구나.
에서를 미약하게 하고 본래 없던 것처럼 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라.
역사 가운데 보면 그렇게 되었거든요.
애굽을 미약하게 하사. 그렇게 되었거든요.
니느웨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 그렇게 되었거든요.
무너졌도다 큰성 바벨론이여. 무너지기 전부터 이야기 하는데 무너져버렸잖아요.
그래서 성경을 읽어보고 그 후에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사람은 성경 말씀은 일점 일획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문자대로 성취된다는 것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과 역사를 보라 하는데 우리 대한민국 교육 정책을 세우는 사람들이 멍청한 사람들이 그 세상을 하나도 다 묶을려는 악의 세력에 굴복해가지고 역사를 선택과목으로 만들어버렸어요.
오늘 개천절 축사하는 사람을 보니까 역사가 선택 과목으로 된 것은 잘못되었다. 이 분이 단군을 자기 신으로 믿는 사람 같은데, 보니까..
그래도 역사가 어떻게 하다가 선택 과목이 되었느냐면서 질타하더라고.. 잘못되었다고..
잘못된거죠.
저는 역사를 중시해서 큰 딸을 역사를 전공시켜는데, 그래서가 아니라 역사를 모르면 안 돼죠.
역사 그 자체가 하나님 발자취이고 하나님의 솜씨이고 하나님 메시지가 담겨있고 하나님의 언어가 구체화 되어서 나타난 것이 들려지고 보여지는 것이 역사인데, 그것을 보지 못하게..
과거에서 현재까지 모르면 미래도 모르게 됩니다.
과거에서 현재까지가 역사인데, 그것을 모르면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그저 눈앞에 있는 향락을 쫓아서 흐느적거리다가 죽으라 그 말이죠.
역사를 알고 성경을 알면 똑똑해서 안 되니까.. 어떻게든지 성경 보지 못하게..
이 악한 세계가 가능하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사람이 성경과 역사를 보지 못하게 해요.
반면에 저는 끝까지 성경과 역사 그러죠.
그리고 시대가 시대인만큼 과학에도 관심을 갖고 있어야 돼요.
성경과 역사와 과학은 기본적으로 우리 성도들이 신학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성도들을 반드시 깨어서 성경과 역사를 똑바로 볼 수 있어야 돼요.
그래야 미래가 어떤 식으로 다가오겠는가 내다볼 수 있는 거죠.
19 남방 사람은 에서의 산을 얻을 것이며 평지 사람은 블레셋을 얻을 것이요 또 그들이 에브라임의 들과 사마리아의 들을 얻을 것이며 베냐민은 길르앗을 얻을 것이며,
베냐민 지파가 요단강 동편쪽을 차지할 것이다. 그런 얘기죠.
20 사로잡혔던,
20절 이게 한 단초가 될 수 있는데, 이 말은 예루살렘이 지금 바벨론에 사로잡혀 가는 것을 목도하고 나서 썼을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
바벨론에 의해가지고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그들이 와서 털어먹고 즐거워하고 했다면 이 20절 때문에 이것은 어쩌면 BC586년 전후로 이 말씀이 기록된 것이 아닌가? 그런 추측도 가능하다는 겁니다.
확실하지는 않은데,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사로잡혔던 그런 말로
사로잡혔던 이스라엘이라고 볼 때..
20 사로잡혔던 이스라엘의 뭇 자손은 가나안 사람에게 속한 땅을 사르밧까지 얻을 것이며,
그러니까 지금은 망하는 것 같은 이스라엘은 오히려 회복될 것이고, 지금 깔깔대고 그저 입을 크게 벌리고 조롱하는 에서는 영원히 멸절되고 말 것이다. 그런 얘기죠.
.. 예루살렘의 사로잡혔던 자,
아까는 이스라엘의 사로잡혔던 자, 여기는,
.. 예루살렘의 사로잡혔던 자 곧 스바랏에 있는 자는 남방의 성읍들을 얻을 것이니라
21 구원자들이 시온 산에 올라와서 에서의 산을 심판하리니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
이것은 BC2세기 경에 요한 히르카누스라는 사람이 에서 자손들을 쳐들어가서 전부 남자를 잡아서 강제로 할례를 받게 해서 유대 민족에게 복속을 시켜버리니까, 그 길로 유대 족속에 에서 자손 몇 사람이 포함된것 외에 나머지는 완전히 그저 나라가 종적을 감추고 말았습니다.
지금가도 에서 자손들 땅에 사람이 안 살아요.
관광객이나 왔다갔다하고 성지순례객이 왔다갔다할 뿐이지, 에서 나라는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살아갈 때 약탈 수탈당할 수 있는데, 그래도 당하는 것은 서러운 일이지만 약탈해 먹은 사람보다는 낫습니다.
차라리 빼앗긴 것이 약탈해 먹은 사람보다는 낫다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는..
세상에서는 빼앗아 먹은 놈이 잘 된거죠.
빼앗긴 놈은 서러운 것이고, 하나님 앞에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는 오히려 약탈해 먹은 에서는 영원히 멸망하는 것이고, 빼앗기고 수탈당했던 야곱 자손들에게 언젠가 회복되어서 그 기업을 누릴 것이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오바댜서 제목 옆에다가 한두 성경 구절을 적어 놓으면 좋겠어요.
‘이사야 34장’도 꼭같은 내용입니다. 이사야 34장 전체가 에서 자손이 어떻게 망하느냐 하면 것을 거의 문장과 단어는 다르지만 결론은 똑같습니다. 망하는 겁니다.
‘예레미야 49장 7절에서 22절까지’도 보면 에서 자손이 처절하게 망한다.
완전히 거들난다는 얘기를 쓰고 있어요.
마지막 한군데 더 보면 에스겔서 나중에 우리가 볼텐데, ‘에스겔 35장 1절에서 15절까지.’
에스겔서 한 장 전체가 몽땅 그저 에서 자손의 멸망을 예언한 건데, 에스겔서만 찾아보죠.
내용이 너무 같습니다.
에스겔도 35장을 보시면 내용이 너무 방금 우리가 본 오바댜서와 같다는 거야.
에스겔 35장을 펴면
[에스겔 35장]
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 인자야 네 얼굴을 세일 산으로 향하고,
세일산은 에서가 살고 있던 산이죠.
.. 향하고 그를 쳐서 예언하여
3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세일 산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로 황무지와 놀라움이 되게 할지라
4 내가 네 성읍들을 무너뜨리며 너로 황무케 하리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5 네가 옛날부터 한을 품고 이스라엘 족속의 환난 때 곧 죄악의 끝 때에 칼의 권능에 그들을 붙였도다
6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너로 피를 만나게 한즉 피가 너를 따르리라 네가 피를 미워하지 아니하였은즉 피가 너를 따르리라
7 내가 세일 산으로 놀라움과 황무지가 되게 하여 그 위에 왕래하는 자를 다 끊을지라
8 내가 그 살륙당한 자로 그 여러 산에 채우되 칼에 살륙당한 자로 네 여러 멧부리에, 골짜기에, 모든 시내에 엎드러지게 하고
9 너로 영원히 황무케 하여 네 성읍들에 다시는 거하는 자가 없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10 ○네가 말하기를 이 두 민족과 이 두 땅은 다 내게로 돌아와서 내 기업이 되리라 하였도다 그러나 나 여호와가 거기 있었느니라
11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그들을 미워하여 노하며 질투한 대로 내가 네게 행하여 너를 국문할 때에 그들로 나를 알게 하리라
12 네가 이스라엘 산들을 가리켜 말하기를 저 산들이 황무하였으니 우리에게 붙이워서 삼키게 되었다 하여 욕하는 모든 말을 나 여호와가 들은 줄을 네가 알리로다
13 너희가 나를 대적하여 입으로 자랑하며 나를 대적하여 여러 가지로 말한 것을 내가 들었노라
말로 가지고 건방지게 말하는 것 하나님이 다 들었다는 거야.
14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온 땅이 즐거워할 때에 내가 너를 황무케 하되
15 이스라엘 족속의 기업이 황무함을 인하여 네가 즐거워한 것같이,
이스라엘 족속이 황무하게 될 때 에서가 즐거워했다는 거예요.
.. 내가 너로 황무케 하리라 세일 산아 너와 에돔 온 땅이 황무하리니 무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그래서 완전히 에서의 산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성으로 끝장 난다하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이사야나 예레미야나 오바댜 이런 사람들이 똑같이 에서 자손이 멸망한다고 예언을 했는데, 그 말씀대로 역사 그대로 이루어졌고 인류 역사상 다시는 에서 자손이 일어나지 못했어요.
그 에서 자손의 피를 타고 난 사람이 그 중에 한 사람이 헤롯 왕이예요.
헤롯 가문이 그 에서 자손의 사람들인데, 이스라엘에 와서 온갖 재주를 다 부리고 마지막으로 뭔가 꾀할려고 했지만 다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죠.
헤롯왕의 가문은 그야말로 악의 대명사처럼 악한 족속으로 그 성질을 그들에게 흐르던 피가 그대로 있어서 얼마나 악하게 했는지 몰라요. 헤롯 가문의 사람들이..
그래서 우리가 한가지 알아둘 것은 하나님은 영적으로 잘못된 것만 심판하는게 아니라, 도덕적으로 잘못되어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보통 복음주의적인 사람은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은 괜찮고 영적으로 잘못된 것을 심판하신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고 성경은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잘못되었을 때 그 댓가를 지불한다는 거야.
너의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이다.
너의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다. 언제? 여호와께서 만국을 벌할 날에..
그래서 결론으로 정리하면, 우리가 악한 자가 수탈하고 강탈하고 승승장구하는 것 같애도 그것을 보고 질투하거나 그 때문에 우리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면 안 되는 것이고, 의인들이 고난받을 때 쉽게 포기하지 말고, 의인의 고난도 오래가는 것이 아니고, 악한 자의 형통한 것도 길게 가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정한 때까지만 악이 창궐하다가 한번 하나님의 심판의 바람이 불고 나면 영원히 찾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눈을 닦고 찾아도 에서 자손은 찾을 수 없잖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뒤에 돌아와서 땅을 회복하는 것을 역사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모두도 오바댜같이 정말 진심으로 여호와를 경배하고 공경한다면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마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은 오바댜 선지자가 우리에게 남겨 주셨던 에돔 자손들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하여서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지면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된 사건들을, 예언으로 읽었고, 또 역사에서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에 악한 자가 형통한 것이나 의인들이 고난 받는 것을 보고 낙심하지 않도록 선을 행하다가 포기하지 않도록, 믿음과 담대함과 하나님의 심판을 바라보고 악한 반드시 보응받으며 선한 일도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보상하시는 것을 믿고,
끝까지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생명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