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앞길이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사방이 꽉 막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이런 막다른 골목이나 절망적인 상황을 지칭하는 한자 성어 중에 비교적 많이 알려진 것으로 산궁수진(山窮水盡)이 있습니다. '산은 막히고 물줄기는 끊어져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 성어는 남송 시대의 정치가이자 시인인 육유(陸游, 1125~1210년)가 지은 한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육유가 살던 시대는 북송이 금나라에게 멸망당하고, 대대로 중국의 중심지였던 중원 지역(장안 및 낙양 등을 포함한 지역)과 지금의 베이징, 텐진과 허베이성 등을 포함한 지역인 연운 16주가 금나라의 수중에 들어가고, 멸망한 북송의 유민들이 남송을 세워서 매년 금나라에 막대한 공물을 바치며 평화를 유지하고 살던 시대였습니다.
남송의 조정에서는 군사력을 길러서 북벌을 하자던 주전파와 현상태를 유지하자던 주화파가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황제가 주화론에 동조하고 있었기에 육유가 속한 북벌 주전파가 밀리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육유는 결국 조정에서 실각하고 고향인 저장성(浙江省)의 산음으로 돌아와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당시 육유는 북방 민족의 금나라의 위세에 눌려 살고 있는 나라를 생각하면 암담하고, 개인적으로는 정치적으로 더 길이 없는가 하는 상황 가운데 있었습니다.
어느 날 참담한 심정에서 유람을 나섰다가 산서촌(山西村)이란 마을을 방문하고 위로받고 희망을 발견했던 경험을 시로 적었습니다. 이 시를 통해서 난관을 상징하는 산궁수진(山窮水盡)과 희망을 상징하는 유암화명(柳暗花明)이란 대립하는 성어가 회자되기 시작했습니다.
遊山西村(산서촌에서의 추억)/ 陸游
莫笑農家臘酒渾 [막소농가납주혼] 농가 납주 탁하다 비웃지 마오
豊年留客足鷄豚 [풍년유객족계돈] 풍년이라 닭과 돼지 요리도 푸짐하게 대접받았다오
山窮水盡疑無路 [산궁수진의무로] 산 험하고 물길 끊어져 길 없는가 했더니
柳暗花明又一村 [유암화명우일촌] 버들잎 짙게 무성하고 꽃 밝게 핀 마을 나타났지
簫鼓追隨春社近 [소고추수춘사근] 퉁소 소리, 북소리 따라가 보니 춘사(春社)였네
衣冠簡朴古風存 [의관간박고풍존] 옷차림들 소박한 게 옛 모습 남아있네
從今若許閑乘月 [종금약허한승월] (나도) 달빛 아래 한가로이 노닐며 살 수 있다면
拄杖無時夜叩門 [주장무시야고문] 지팡이 짚고 나서서 무시로 밤에도 문을 두드리리.
1, 2연에서는 먼저 산서촌에서 받은 푸짐한 환대에 대해서 적고 있습니다. 납주(臘酒)란 납월인 연말에 음의 기운이 극에 달한 동지가 지나서 양의 기운이 점차 승하기 시작하는 납일에 지난해의 소출에 감사하며 새로운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에 쓰기 위해 빚은 곡주를 말합니다. 따라서 1연은 외국산 포도주와 위스키 같은 맑은술은 아닐지라도 농촌 생활의 정수와도 같은 소중한 납주를 대접받았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3연과 4연은 산서촌이 작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산이 막히고 물길은 끊어진 것처럼(山窮水盡) 마음이 답답하고 암담했었는데, 갑자기 길이 트여서 꽃길이 된 것 같이 느껴졌다고 적고 있습니다. 유암화명(柳暗花明)은 버들잎 무성하게 우거지고 꽃이 피어 마을이 온통 환한 모습입니다. 산서촌에서 무엇을 경험했길래 이렇게 절망 가운데에서 희망을 찾은 듯 체증이 내려가게 되었을까요? 그것이 다음 두 연에 나옵니다.
배가 고프고 피곤하던 차에 술과 고기를 잘 대접받고 쉰 후에(1,2연), 풍악 소리가 들려서 소리 나는 곳에 가 보았더니 춘사(春社)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춘사는 봄에 토지신에게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리고 사람들이 모여서 농악을 울리며 흥겹게 노는 마을 축제입니다.
농민들과 한데 어울려 놀다 보니 시름도 가시고 마음이 편안해진 시인은 마을 사람들의 복장에 대해서도 묘사합니다(6연). 단정하고 유행을 타지 않고 고풍이 그대로 남았더라고 적고 있습니다. 세상 물정에 밝지 않아 시류를 타지 않고, 소박하게 한데 어울려, 소원을 빌며 서로 희망을 북돋으며, 정겹게 열심히 사는 순박한 모습이 시인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시인은 조정의 일을 생각하면 나라의 정치는 한탄할 만 하지만, 농촌이 건재하고 농부들이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정치가 백성을 이끄는 것 같지만 사실은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고 주인입니다. 이상한 대통령이 세워져 이상한 정치를 펼쳐도 백성들은 각자 열심히 자신의 몫만큼 나라를 옳은 방향으로 발전시켜 왔기에 우리도 오늘날과 같은 번영을 이룩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7연과 8연에서는 산서촌에서 하루를 보내고 저녁과 밤을 맞으며 느낀 소회를 적고 있습니다. 정성 어린 환대(1~2연)를 받고 마을 사람들의 순수하고 순박한 삶(5~6연) 가운데에서 위로받고 쉬면서 하루를 보낸 후에, 여건이 허락된다면 이런 공동체에 속하여 어울려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을 '밤에도 찾아가 문을 두드리리'라는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는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이 시의 7,8연은 이호우 시인의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던 시조 '살구꽃 핀 마을'을 떠올리게 합니다. 8연은 이 시조의 '뉘 집을 들어서면 반겨 아니 맞으리'란 구절과 맥이 닿아 있습니다. 이호우 시인의 시조는 지나치는 나그네의 관찰자적 시점(視點)에서 피상적으로 마을에 대해 느낀 정겨운 소회를 적은 것이라면, 육유의 유산서촌은 마을의 삶 가운데 뛰어들어 한데 어우러져서 하루를 보낸 후에, 그들의 삶에서 희망을 보고 위로받은 후에 이 공동체의 한 사람이 되어 살고 싶다는 보다 더 깊은 정감을 담고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더 이상 길이 없는가 싶을 때가 때로 있지요. 하지만 참고 견디다 보면 '버들잎 우거지고 꽃 환하게 피는(柳暗花明) 시절'도 온다는 것을 말해주는 "산서촌에서의 추억"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