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경강선이 개통되었다.
올림픽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해서
고속철 예약을 시도했지만 표를 구하기가 어렵다....
스키 시즌이다 보니 일반석보다 특실이 먼저 매진이다.
그래서 향한 곳이 또 다시 안면도.
홍성에서 버스를 타고 태안에 도착.
태안에서 버스를 골라 타고 안면도 아무 바닷가로만 가면 되는데
늦은 출발로 벌써 캄캄하다.
매표 뚱뚱한 언니에게 지도를 보여주고
여기여기 가고 싶다고 하니 시내버스를 타라고 한다.
우리는 통상 시내버스하면 서울을 질주하는 그런 버스를 생각하는데
여기서는 터미널 안에서 시내버스가 출발한다.
그러니까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버스 중에서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골라서 타야 한다.
에라 모르겠다.
생소한 지명의 해안이 줄줄이 적혀 있는 버스에 올라탄다.
기사가 어디까지 가냐고 묻기에
아무 바닷가나 가까운 곳에 내려달라고 했다.
잠시 생각하는 표정이더니 200원 더 내라고 한다.
그래서 도착한 곳이 신진항.
이곳은 전에 집사람과 차를 끌고 같이 왔던 곳이다.
나는 새로운 포구로 가고 싶었지만
늦은 시간에 자칫 숙식에 골탕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경험으로 잘 알고 있어서
신진항을 선택한 기사의 배려가 바로 이해되었다.
칼바람을 맞으면서 걷다가
여수 식당이 보여 일단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혼자서 간단히 먹기에 부담되는 3-4만원 안주에서 망설이고 있는데
주인여자가 밴뎅이를 1만원 어치 무쳐준다고 한다.
아주 현명한 여인이다.
잘 먹고 숙소를 소개해 달라니까 대각선에 있는
콘도를 소개해준다.
창구에 가서 저기 여수 식당에서 3만원에
소개해서 왔다고 하니
여주인은 약간 억울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친절하게 키를 건네준다.
방에 들어서서 대만족.
내부는 충분히 따뜻하게 덮혀 있었고 청결했다.
콘도 역할에 충실하게 방이 두 개에 조리 시설이 완벽하다.
두 가족 약 10명은 이용할 수 있는 크기다.
여주인이 왜 억울한 표정을 지었는지 알겠다.
성수기에는 10-15만원 짜리다.
방이 너무 뜨거워서 요를 3개 깔고 수건 5장에 물을 흠뻑 뿌리고
티비를 보다가 금세 잠에 빠진다.
코가 막혀서 잠에서 깨니 12시.
다시 물을 바가지로 바닥에 뿌렸지만 30분이면 바싹 말라버린다.
불을 켜고 난방조절기를 찾았지만 어디에도 안 보인다.
중앙에서 관리하는 모양이다.
할 수 없이 베란다 창문을 여니 비로소 실내 온도가 내려가고
최적의 환경이 되었다.
긴긴 겨울밤은 원래 잠자는 시간이 아니라 사색하는 시간이다.
이런저런 생각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사고가 고갈되면 엉뚱한 곳으로 빠지기도 하지만
결국은 내가 살아온 시간과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중심으로 사색을 하게 되고
최종적으로는 내일의 일정 구상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약 3시간을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다시금 졸음이 온다.
온도를 맞춰서인지 달콤한 잠을 6시간이나 자고 아침을 맞이한다.
바다를 따라 걸으니 저 멀리에 집사람과 묵었던 호텔이 산중턱에 보인다.
그때는 산을 품은 호텔의 위용이 당당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초라해 보인다.
이게 전부 아난티의 부작용이다.
호텔과 정반대쪽에 어시장이 있어서 갔더니
내년 3월까지는 공판장인지 위판장인지 업무를 안 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 옆의 작은 가게에서 우럭의 가격을 물으니
1키로에 3만 5천원이란다.
그건 혼자 다 먹을 수 없는 노릇이다.
1만 원짜리 작은 거 하나만 달라고 하니 주인이 난색을 표한다.
그러면서 손바닥만한 우럭과 그보다 훨씬 큰 우럭 사이에서 고민하더니
큰 놈을 잡아 회를 떠준다.
미안한 마음에 5천원 더 내니 서더리에 조개를 넣어준다.
근데 이 조개가 살이 통통하여 너무 맛있었다.
바로 옆에 파란 바다의 포구를 끼고 먹는 식사는
서울에서 경험할 수 없는 중독성이 있다.
사실 이 분위기 때문에 바다를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거위의 간을 빼먹는 요리가 부럽지도 않고
곰발바닥과 같이 무식한 요리는 관심도 없다.
도대체 발바닥을 떼어내면 곰은 어떻게 걸으라는 건지
공자를 예수, 석가모니와 함께 삼대 성인에 올려놓은 심뽀를 모르겠다.
잘 먹고 버스를 타고 다시 태안으로 가는데 신기하게 차장이 있다.
노인네가 타고 내릴 때 부축하고 요금 계산할 때도 도와준다.
차장 문화는 80년도에 멸종되었는데
시골의 작은 버스에서 부활되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승객도 겨우 7명인데 무슨 인건비가 나온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궁금해서 인터뷰를 하려다가 자존심 상할까봐 그만 두었다.
아담한 크기의 차장은 옷도 멋있게 입었고 인상도 좋고
흔들리는 차안에서 중심을 잡을 때는
율동적이고 섹시한 자태를 보이고 있다.
버스 기사와 종일 종알종알 거리는 것을 보니
두 사람의 관계가 의심스럽기도 했다.
남녀라는 것은 붙어 다니면 금세 정이 들겠끔 되어 있는 것은
기정 사실이다.
이번 여행은 별 특징이 없다.
겨울답지 않은 파란 바다와 멋진 차장만 기억에 남는다.
신진항 옆에 길음이 해변이 있는데
다음에는 일찍 출발하여 거기를 가봐야겠다.
아까 차장의 말로는 태안에서 하루 3번 밖에 없다면서 시간표를 건네준다.
아름다운 차장 때문에라도 무조건 가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