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건축하리라
스 4:1-6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음을 모아 하나님의 전을 회복하기 위해서 바벨론에서 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들이 본국으로 돌아온 것은 자신의 편안한 삶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전을 재건하기 위해서 스스로 고난을 길을 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만 되어지는 일입니다. 돌아온 사람들이 모두 예루살렘으로 모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예배를 회복하였습니다. 감격적인 성전 기공식도 올렸습니다. 역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기에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또는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인도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그저 순풍에 돛단 듯이 아무런 문제없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 일은 분명 하나님의 일이고,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는 일이었지만 그 일이 아무런 장애물도 없이 순조롭고 평탄하기만 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일은 아무 문제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일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마귀의 역사도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전투가 더욱 치열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없는 곳에는 마귀의 역사도 없는 것입니다. 그냥 놔두어도 되는데 뭐하러 일을 만들어 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곳에는 여지없이 그것을 방해하며 대적하는 무리들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우리는 이 영적 싸움을 계속해서 싸워 나가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군사들이 일어서면 그 대적들도 함께 일어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좀 믿음으로 견고히 설려고 하면, 항상 그것을 방해하고자 하는 세력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 원수들의 요구 (함께 제사를 드리자)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로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구하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하니”(2절)
본문에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전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1절) 유다와 베냐민의 원수가 저들이 돌아와서 하나님을 위한 전을 건축한다는 소식을 듣더니 지도자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우리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니 함께 성전을 짓게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런 요구를 한 사람들은 “사마리아인”들로서 종교혼합주의(Syncretism)에 물든 사람들이었습니다.
주전 722년에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 당할 때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백성들을 교체하면서 사마리아사람은 북쪽으로 이주하고 바벨론 및 북쪽 사람은 사마리아로 이주시킵니다.
열왕기하 17장 24~34절을 보면 그들의 이야기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와서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데 사자가 수풀에서 나오는 이상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25절) “저희가 처음으로 거기 거할 때에 여호와를 경외치 아니한고로 여호와께서 사자들을 그 가운데 보내시매 몇 사람을 죽인지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사자가 나와서 사람들을 잡아먹자 그들은 그 이유를 “우리가 이땅에 와서 살고 있는데 이 땅의 신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땅의 신은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제사장을 데려다가 여호와 하나님 섬기는 법을 공부했습니다. 그때부터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도 섬기고 자기들이 섬겼던 신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33절) “저희가 여호와도 경외하고 또한 어디서부터 옮겨왔든지 그 민족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그들의 신 목록에 하나 더 추가했을 뿐입니다.
그들의 문제는 거짓 종교를 참 종교와 아울러 섬기는 종교혼합주의였습니다.
둘째 : 지도자의 반응 (홀로 건축하리라)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하신대로 우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3절)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다른 것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도 섬기고 그것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도리어 하나님의 이름을 능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다른 우상들과 같은 반열에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이 이스라엘과 함께 일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원수들은 본질을 드러내었습니다. 본문 4절 이후를 보면 이들이 하는 것을 다 알 수 있습니다.
본문 (4~6절)“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의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경영을 저희하였으며 또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 저희가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을 고소하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원수들은 성전 건축을 좌절시키려 했고, 건축을 못하도록 겁을 주려 했으며 권력자들에게 뇌물을 주어 건축을 방해했습니다.
그리고 바사 왕에게 고소했습니다. 그냥 고소한 것이 아니라 중상모략과 모함을 해 고소했습니다.
유다 백성이 성전을 짓고 성벽을 건축하면 세금을 바치지 않을 것이라고 모함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바사 왕이 세금을 안내면 안된다며 건축을 중단시켰습니다.
사실 에스라 4장 6~23절의 고소사건은 80년 후의 사건이지만 중간에 삽입해 기록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원수의 공격이 이처럼 끈질기다는 것과, 유다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들의 제안을 거절한 것이 잘한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한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와 이스라엘 족장들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 일이 너희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홀로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셋째 : 중단없는 믿음 (하나님이 하신다.)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보셨으므로 그들이 능히 공사를 막지 못하고 이 일을 다리오에게 아뢰고 그 답장이 오기를 기다렸더라”(5:5)
끈질긴 원수의 공격으로 인하여 결국 성전건축이 중단되어 16년 동안 허송세월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학개와 스가랴 두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두 선지자가 “너희가 무슨 목적으로 귀환 했는데 지금 선정 건축을 하지 않는 것이냐? 성전 건축을 재개하라.”고 꾸짖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주전 520년에 성전 건축이 재개되어 515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있어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중한 것들을 소홀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하는 이 귀한 특권을 세상의 즐거움이나, 작은 이익들과 바꾸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 기도하는 일, 하나님의 사랑의 나누는 일, 믿음의 형제간에 교제하는 일,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일, 복음을 전하는 일,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백성들에게 주신 보석과 같은 귀한 선물들입니다.
이 보화들을 지극히 작은 것들 때문에 빼앗기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흔히 부담으로 여기며, 짐으로 여기는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특권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귀히 여기고 누리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내미는 타협의 손을 뿌리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의와 불법이 함께 할 수 없으며, 빛과 어두움이 사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늘 세상은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열심을 방해하기 위해서 달콤한 미혹의 손길을 내 밉니다.
그 유혹과 미혹에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강하고 담대하게 뿌리쳐야 하는 것입니다.
원수들은 자신들의 유화책이 먹혀 들어가지 않자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그 일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적이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우리를 대적하고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주님 다시 올 때까지 이 싸움은 절대로 멈추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