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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화, 무궁화를 보면 3가지가 생각난다.
그 중 하나는
40여 년 전 수원농대에서 교육을 받던 중 무궁화 생각을 하니 유달영 교수와 화훼담당 염도의 교수가 생각난다. 1970년대 중반 교육을 받기 위해 수원 서울농대를 찾았다. 그 때 강사가 무궁화 사랑한 유달영교수와 염도의교수였다.
나라꽃 무궁화 보급하기 위해 300여종의 품종을 개발하여 증식시키고 있었다. 무궁화 증식시키고 보급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던 두 분은 유달영교수는 정년 퇴임하고 염도의교수는 교통사고로 이 세상을 하직한 후 무궁화 연구와 보급은 담보 상태를 걷고 있다.
나도 무궁화를 보급할 목적으로 30여종의 무궁화를 신문지에 싸서 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거제까지 도착하여 삽목을 했으나 이동 중 너무 건조해서인지 모두 싹이 나지 않았다. 만약 그때 삽목이 잘되어 번식시켰드라면 지금쯤 거제에는 보다 많은 종류의 무궁화가 있었을 터인데... 7월의 꽃, 무궁화를 보니 문득 그때 생각이 난다.
또 다른 하나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은 공산주의가 태동하였고, 1960년대는 좌우가 충돌하는 시기였다. 그 대표적인 전쟁터가 ‘베트남 전쟁’이다. 1965년 미군이 개입하고 한국군도 1966년 파병했으나 1969년 닉슨독트린..‘아시아인은 아시아인의 것’으로 1973년 지미카터 주한미군축소/배트남 미군철수 등으로 대한민국 안보에 위협을 느낀 박정희대통령은 핵개발프로잭트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비밀리에 조직하고 해외 과학자를 초빙하여 핵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여기에 세계적인 물리학자 ‘이휘소 박사가 등장하고 이듬해 1977년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그리고 핵개발에 필요한 중수로 설치를 캐나다와 협약하여 체결하려 했으나 미국의 방해로 ’프로잭트890‘은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여기에 착안한 작가 김진명의 소설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어 450만부나 판매되었다.
셋째로 무궁화의 의미와 나라꽃 무궁화 이야기
우리나라 國歌는 애국가요, 國旗는 태극기, 國花는 無窮花이며 國鳥는 까치, 國木은 소나무이다. ( 애국가와 태극기는 지정, 무궁화는 잠정지정, 국조와 국목은 미지정이다. )
무궁화는 인도와 중국원산으로 수천년전 한국에 자생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그 근거는 없다. 그러나 여러 문헌에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산해경(山海經, BC6세기) 제9권 해외동경(海外東經)에 (君子之國在其北 有薰花草 朝生募死) 군자의 나라가 북방에 있는데 무궁화가 아침에 피고 저녁에는 시든다"라는 구절이 있다. (君子國...한국, 薰花草...무궁화), 또한 중국의 고금주(古今注,진나라BC221~206)에는 "군자의 나라는 지방이 천리나 되는데 무궁화가 많더라"(君子之國 地方千里 多木槿花)라는 구절이 있다.
이상의 문헌만으로도 한반도에는 수천 년에 걸쳐 무궁화가 널리 자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입증된다. 신라의 효공왕이 897년 7월 당나라의 광종(光宗)에게 국서를 보낸 일이 있었는데 그 국서 가운데 신라를 자칭하여 근화향(槿花鄕)이라고 한 구절이 있다. 이 국서를 초한 사람은 중국에까지 문장가로 이름이 나 있던 최치원(857~ )으로, 그의 문집인 〈최문창후문집 崔文昌候文集〉 제1권에 그 초안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러한 기록으로 미루어보아 이미 신라시대부터 한국을 '무궁화 나라'[槿城]라고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무궁화가 어떻게 한국의 나라꽃이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은데, 조선의 남궁억.윤치호 등의 발의로 애국가를 만들면서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구절을 넣음으로써 조선의 나라꽃이 되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대한민국이 수립된 직후인 1949년 10월 대통령 휘장과 행정·입법·사법 3부의 휘장을 모두 무궁화로 도안하여 문교부가 제정·사용했고, 1950년에는 태극기의 깃봉을 무궁화의 꽃봉오리로 제정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무궁화를 ‘눈의 피 꽃’, ‘부스럼 꽃’이라 하여 말살정책을 폈다. 그러나 무궁화는 꽃이 없는 여름에 계속해서 피기 때문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는 사랑 받는 정원수이다. (세계 5대 화목 중의 하나)
무궁화란 오랫동안 (약100일, 7-10월)꽃이 피기 때문에 지워진 이름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무궁화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들어 버린다. 그러나 꽃송이가 수없이 달려 있기 때문에 항상 꽃이 피는 것 같이 보인다.
일부 학자들은 무궁화가 중부지방 이북에는 심을 수 없고, 원산지가 인도나 중국이고, 진딧물의 번식이 심하고, 봄에 꽃이 피지 않고 여름에 핀다고 品格이 떨어진다고 일부는 주장하나..
첫째 중부지방에도 재배가 가능하며, 원산지가 인도나 중국이라고 하나 2천여년전 한국에 무궁화가 있었다는 내용이 있으며, 진딧물이 많다고 하나 진딧물은 소낙비가 오면 없어지기도 하고, 농약으로 쉽게 방지가 가능하며, 여름에 피어 품격이 떨어진다고 하나 오히려 꽃이 없는 여름에 피기에 더 品格를 높이는 게기가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무궁화가 법적으로 國花가 될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하고, 다양한 품종개발과 병에 강한 품종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
첫댓글 그냥 무궁화와 태극기는 바라만 보아도 좋은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