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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0장
마케도니아, 고린도, 아시아에서 말씀으로 교회를 세움,
에베소 항구 밀레도에서 목회 사역을 간증하고 가르침
(찬송 618장)
2024-7-23, 화
맥락과 의미
19장에서 바울은 3년 동안 에베소에서 목회했습니다(53-55년). 그런데 바울 때문에 에베소에서 소요(소동)가 일어났습니다.
20장은 바울이 에베소를 떠난 후의 일을 말합니다. 3차 교회개척 여행(53-57년)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1. 마케도니아, 고린도, 아시아 교회들을 방문하여 복음을 전파함(1-6절)
2. 드로아 교회에서 8일간 복음을 전파함(6-12절)
3. 예루살렘을 향한 여행 계획, 드로아에서 밀레도로 감(13-16절)
4. 에베소 장로(목사)들을 가르침(17-38절)
1. 마케도니아, 고린도, 아시아 교회들을 방문하여 복음을 전파함(1-6절)
1-6절은 55-57년의 긴 기간의 기록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마케도니아에서, 그리고 아시아에서 제자들을 권하고 위로했습니다 (1,2,12절).
위로란 진리를 가르쳐서 진리 가운데 머물도록 의지를 깨우는 것을 말합니다. 복음을 반복하여 전하고 들을 때, 영혼이 강해집니다. 복음은 계속해서 들어도 지루하지 않고 달콤한 은혜의 소식입니다.
1) 마케도니아(그리스 북부)와 그 북쪽 지역에서 복음 전파(1-2절)
에베소에서 소요가 그치자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 마케도니아로 갔습니다(1절). 2절의 “그 지방으로 다녀가며”는 1년 반 정도의 기간에 한 일을 요약합니다(55-56년 후반). 빌립보, 베뢰아, 데살로니가 교회 등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 바울은 마케도니아 북쪽 일루리곤까지 복음을 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롬 15:19).
2) 헬라(그리스 남부, 고린도 등)에서 교회에서 가르침, 로마서를 씀(2절)
2절 “헬라에 이르러.” 헬라는 아가야 지역, 곧 그리스 남쪽을 말합니다. 바울은 아가야의 고린도에서 3개월 머물러 목회했습니다(56년 겨울-57년). 거기서 로마서를 써 보냅니다.
3) 육로로 마케도니아로 돌아왔다가 다시 아시아의 드로아로 감(3-5절)
바울은 고린도에서 예루살렘으로 여행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원래는 배를 타고 수리아로 갈 계획이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바울의 파송 교회 안디옥 교회로 갈 계획이었습니다. 가는 길에 예루살렘도 들릴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배를 타기만 하면 유대인들이 바울을 해하려 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정보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배를 타는 대신 북쪽으로 걸어서 마케도니아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3절). 8명의 동역자와 함께 북쪽으로 마케도니아로 갔습니다.
4절에서는 아시아에 함께 가는 전도팀원(전임 사역자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가져가는 거액의 구제 헌금 때문에 각 지역의 대표가 함께 합니다. 마케도니아 지역(베뢰아, 데살로니가) 사람 3명, 아시아 지역 사람 2명, 갈라디아 지역(더베) 사람 2명 등 7명과 누가(5절의 “우리”는 사도행전을 쓴 누가가 팀원으로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총 8명이 바울과 함께 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수고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많은 사역자를 열매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성도뿐만 아니라 직분자를 주신 것을 감사합시다.
5절, 그들은 마케도니아에서 배를 타고 먼저 드로아로 갔습니다. 드로아는 아시아(터키 동부지역)의 항구입니다. 6절, “우리”(바울과 누가)는 빌립보에서 무교절(주후 57년 4월7-14일)까지 있다가 배를 타고 드로아에 도착합니다.
2. 드로아 교회에서 8일 간 복음을 전파함(6-12절)
드로아에도 교회가 있었습니다. 안식 후 첫날(주일)에 “떡을 떼려” 모였습니다(7절). 떡을 떼는 것은 식사와 함께 성찬을 한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강론”했습니다(7,9절, 전도하는 것도 포함). 모든 예배는 설교와 성찬이 있는 것이 정상입니다.
강론은 지식을 전하여서 차근차근 가르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회에서 유대인에게, 혹은 아테네의 이방인들에게 전도할 때에도 복음 말씀을 차근차근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다음날 떠나야 해서 밤 늦게까지 말씀을 전했습니다. 유두고라는 청년이 3층 창틀에 걸터앉아서 바울의 강론을 들었습니다. 졸다가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그러다가 떨어져 죽었습니다.
바울은 모인 사람들에게 떠들지 말라고 하고 내려갔습니다. 혼란스럽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바울은 청년 위에 엎드렸습니다. 오래 전 엘리야(왕상 17:21)와 엘리사(왕하 43)가 청소년을 살릴 때도 그렇게 했습니다. 몸을 안고 그를 살렸습니다.
이 일을 통해 교회가 “위로를 받았”습니다(8절). 이 사건은 9장에서 베드로가 다비다를 살린 것과 비슷합니다. 예배 시간에 졸았던 청년에 대해 성령님께서는 책망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유두고는 노예 청년일 수도 있습니다. 낮 동안 곤하게 일하고 저녁에 모이는 예배에 나왔는지 모릅니다. 횃불에서 나오는 연기에 많이 졸렸을 것입니다. 영생의 복음을 듣다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살아났습니다.
피곤하게 일하다가 예배에 나온 성도님들은 참으로 귀합니다. 혹시 졸고 있다 해도 성령님이 크게 화를 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피곤한데도 말씀을 들으려 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피곤해도 교회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유두고 청년처럼 다치는 일이 없도록 가능한 졸지 맙시다.
3. 예루살렘을 향한 여행 계획, 드로아에서 밀레도로 감(13-16절)
바울은 드로아에서 “우리”(누가와 사역팀)에게 배를 타고 남쪽 앗소로 가게 했습니다(13절). 바울 자신은 육로로 걸어갔습니다. 그 지역에 있는 교회를 방문하고 전도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과 앗소에서 합류했습니다. 앗소에서 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 밀레도라는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바울은 서둘렀습니다. 오순절(57년 5월29일)에 맞춰 예루살렘에 가기 원했습니다. 유대인의 명절에 모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3년간 목회하던 에베소에 다시 방문하고 싶었지만 내륙에 있는 도시였기에 갈 수 없었습니다.
4. 에베소 장로(목사)들을 가르침(17-38절)
바울은 에베소의 장로(목사)들을 밀레도 항구로 불렀습니다. 목사들은 56km를 걸어서 밀레도 항구에 도착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그동안 어떻게 목회했는지를 간증했습니다. 그들에게 어떻게 목회해야 할지 가르쳤습니다.
1) 바울의 목회 사역 간증(18-24절)
19절에 바울은 “겸손과 눈물”로 목회했다고 말합니다. 겸손하게 섬겼습니다. 눈물은 성도의 변화를 위해 애쓴 것을 말합니다.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은 핍박을 참고 일한 것을 말합니다. 바울이 교회를 위해 섬긴 것은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을 섬긴 것(노예 생활)이었습니다.
20절,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거리낌이 없이” 가르쳤습니다. 물러서지 않고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성도를 격려할 뿐 아니라 책망하며 가르쳤습니다. 27절에서도 “꺼리지 않고” 가르쳤다고 반복합니다.
그 때문에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26절) 합니다. 목사가 바로 가르치지 않아서 성도들이 죄 가운데 계속 있을 수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벌을 받으면, 그 책임은 목사에게 있습니다. 목사는 목숨을 걸고 진리를 정직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성도는 달게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꺼린다”는 히브리서 10:38,39에서 ‘물러간다’는 말로 나옵니다.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믿음에 굳게 서서 물러가지 맙시다. 앞으로 나갑시다. 목사도 성도들이 계속 믿음으로 회개하며 앞으로 나가도록 물러서지 않고 가르쳐야 합니다.
21절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고 요약합니다. 복음은 증거입니다. 그리고 23절,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고 합니다. 바울이 노년에도 복음 증거를 위해 고난을 기꺼이 받았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고난에 대해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 각오를 했습니다(24절). 목회가 힘들고 고난이 따르지만, 목사는 “은혜의 복음”(24절)을 전하기 때문에 고난 가운데서도 기쁨이 있습니다.
교회의 지체인 우리 성도가 모두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교회를 세우기 위해, 가정을 세우기 위해, 사회 속에서 복음의 빛을 나타내기 위해 어떠한 고난도 두려워하지 맙시다. 우리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2) 목회 사역의 지침을 가르침(25-31절)
29절부터는 목사들에게 앞으로의 목회에 대한 조언을 해줍니다. 바울이 떠난 후 이리 떼가 교회에 들어와 양 떼를 아끼지 않고 죄에 빠뜨릴 것입니다. 기존 교인 중에도 잘못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이 일어날 것입니다.
사탄이 교회 안의 이리를 통해서 우리에게 유혹의 손길을 뻗칠 때 거기에 넘어가지 않도록 깨어 있읍시다. 주께서 가정의 일이나 직장의 일에서도 분별력을 주시기를 구합시다.
사도가 눈물로 훈계하던 것처럼 에베소의 목회자들도 지금의 목사도 눈물로 목회해야 합니다(31절). 자녀를 양육할 때로 눈물로 목회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3) 마지막 권면(32-35절)
32절, 바울은 목사들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합니다. 목사들을 주님께 맡겨 드립니다. 우리도 목사를 주님과 주님의 말씀에 맡깁시다. 목사는 주님께 자신을 맡기고 말씀의 지시를 따라 나가야 합니다. 32절, 목사에게는 모든 자(성도들)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십니다.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장하고 수적으로 확장되는 것을 말합니다.
목사에게는 교회가 영적 사역을 하도록 하나님이 주신 기업입니다. 설교 사역을 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영적 기업을 받습니다. 목사에게 교회는 물질을 제공받는 기업입니다. 목사는 교회를 섬기는 것과 교회가 제공하는 물질 외에 다른 이익을 탐내서는 안 됩니다.
35절, 바울 자신은 수고하여 일하면서 나눔을 실천했음을 말합니다. 성도들에게 수고하고 나누는 모범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교회가 성숙할 때에는 교회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아서 목회 사역에 힘썼습니다. 목사는 전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써야 하고 성도는 목회자의 삶을 책임져야 합니다. 그러나 목사 자신이 구제하는 일에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모든 성도는 교회와 함께 하는 삶에 영원한 하나님의 기업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를 통해 어떤 이익을 얻으려 하기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로써 성도를 섬깁시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기뻐하는 복이 넘치기 바랍니다.
4) 눈물로 작별함(36-38절)
바울은 에베소 지역에서 온 목사들과 바닷가에서 아쉬운 작별을 합니다. “무릎을 꿇고” 함께 기도합니다. “크게 울며” 서로 “안고” 작별합니다. 복음 안에서 이런 사랑의 친교가 지금도 우리 교회에 계속되고 있습니다.
믿고 복종할 일
사도 바울이 생명을 바치며 수고한 결과 사역팀이 8명으로 늘어나고 교회가 번성하는 것을 보십시오. 우리 시대에도 말씀을 신실하게 전하고 들을 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수적으로 번창할 것입니다.
목사직은 겸손과 눈물로 낮은 자리에서 성도에게 복음을 전하고 섬기는 직분입니다. 목사가 주님의 노예로서 헌신하도록 기도합시다. 목사가 성도의 영혼에 필요한 것을 물러서지 않고, 그리고 겸손하게 잘 가르치도록 기도합시다.
우리 성도도 모두 직분자입니다. 우리 각자가 은사를 받은 대로 교회를 섬기는 직분자입니다. 부부로서 서로에게, 부모로서 자녀에게 직분자입니다. 우리의 직업과 가정 일은 하나님이 맡겨 주신 기업입니다. 이를 통해 물질적인 복을 얻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일할 때 영적인 복이 있습니다.
겸손과 눈물로 함께 교회를 세웁시다.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복을 누립시다. 우리가 직분자로서 섬겨야 할 사람에게 유익한 것을, 물러서지 않고 전합시다. 그러나 부드럽게 잘 가르치며 영향을 줍시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1절, 에베소를 떠나 마케도니아로 갈 때까지 있었던 일들
그때 소요가 그치자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 마케도니아로 갔습니다(1절). 이 짧은 말 속에 여러 사건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먼저 북서쪽에 있는 항구 도시인 드로아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복음 전도의 길이 많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고민이 많았습니다. 전에 에베소에 있을 때부터 씨름하던 고린도 교회의 문제였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간음과 성도들의 분쟁, 방언에 대한 자랑 등의 문제였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 있을 때 회개하도록 권면하는 편지(고린도 전서)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이 회개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다시 편지를 써서 디도의 편으로 보냈습니다(고후 2:4). 이 편지는 지금 남아있지는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눈물로 쓴 편지라고 하여 흔히 “눈물의 편지”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디도를 기다려도 오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초조한 마음으로 배를 타고 마케도니아로 갑니다(고후 2:12,13). 마케도니아에서 디도가 돌아와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했다는 말을 전해 줍니다. 바울은 그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다시 고린도 후서를 써 보냅니다.
<참고> “작정”(그노메, 3절), “정하다”(디아타소마이, 13절), “작정하다”(크리노, 16절)
“작정”(그노메, 3절), “정하다”(디아타소마이, 13절), “작정하다” (크리노, 16절)는 어떤 원칙에 따라 구체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15장에서, 예루살렘 공회에서 이방인들은 구약의 의식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결정할 때에도 야고보의 “의견”(크리노, 15:19)에 따라 교회는 가결했습니다. 복음의 원칙을 새로운 상황에 적용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교회는 성경의 교훈과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교리적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교회의 일들, 전도 사역의 계획 등도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구체적인 상황에 맞게 결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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