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수능일이다. 내 아이는
아니지만 수험장에서 어느 때보다 마음 졸일 아이들을 위해, 혹은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부모의 심정으로 길을 나섰다. '아름다운
순례길'(상자 기사 참고) 7코스가 있는 전북 김제로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산세가 '아기를 안은 어머니의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母岳(모악)'이란 이름이 붙은 모악산 남쪽 자락의 금산사에서 시작해 8코스가 시작되는 수류성당까지 총 14.5㎞에 이르는 구간이다. 생각만큼
걷기 좋은 길은 아니었지만 불교, 기독교, 원불교, 천주교, 민족종교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아름다운 자연 풍광 못지 않게 종교마다 품은
이야깃거리가 풍부했으며,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이들과의 시공을 초월한 만남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길이 품은 역사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악산 남쪽 자락 금산사~수류성당
종교마다
풍성한 이야깃거리
새 세상 꿈꾸던 이들과 시공 초월한 만남
치유·명상의 땅에서 나를 되돌아보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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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순례길'
7코스에선 금산사 미륵전. |
출발지는 금산사(7-1)였다. 비로자나불(화엄신앙)을
본존불로 모신 대적광전 앞마당의 육각다층 석탑과 석련대 등 총 10점에 이르는 보물은 아랑곳없이 3층 통층 구조의 미륵전(국보62호)에 꽂혔다.
39척(11.82m)에 이르는 거대 미륵불상을 품은 이 법당은 오랜 고난의 세월을 보낸 민중에겐 희망의 근거가 되었다는 그 미래의 부처,
미륵신앙을 상징화한 것이다. 미륵신앙은 알려졌다시피 삼국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물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물론 어지러운 시대에
혹세무민하는 자들이 미륵을 자처해 민중들에게 정신적 혼란을 초래하는 일도 없지 않았지만 말이다.
금산사에서 매표소 입구로 다시
내려오는 오솔길이 참 예뻤다. 달팽이가 그려진 아름다운 순례길 이정표 '느바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김제시 문화관광해설사 송남진 씨는
'느바기'의 의미를 "느리게 걷고, 바르게 걷고, 기쁘게 걸으라를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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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자형 한옥 형태의
금산교회. |
금산교회(7-3)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1908년 미국 선교사에 의해 헌당된
이래 1989년 6월까지 예배를 보던 'ㄱ'자형 한옥교회 모습 그대로였다. 'ㄱ'자형 건물이 지니는 의미는 엄격하게 남녀를 분리하던 한국교회
초창기의 유교적인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100년이 넘은 풍금과 천장의 서까래가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금산교회서도 당시로서는 드물게 보는 평등사고의 일화가 있다. 마을의 부호로 금산교회 설립에 큰 몫을 담당한 주인 조덕삼을 제치고 그의 머슴이자
마부인 이자익이 장로에 당선된 이야기다. 조덕삼의 인간 됨됨이도 넉넉해서 후에 이자익 장로를 평양신학교에 유학 시켜 금산교회 담임목사를 맡기게
된다.
다시 길을 나섰다. 대순진리회(7-4) 상생 청소년수련원을 끼고
돌자 '동심원'(7-5)이 나온다. '동심원'의 정식 이름은 '동동동심원'. 동녁 동(東), 같을 동(同), 아이 동(童)자를 써서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으로 한결같이 동이족을 사랑하자'는 뜻으로 송재욱이라는 개인이 조성한 사유지다. 송 씨는 국내 최초로 독도로 호적을 옮긴
인물이다.
동심원에서 동곡마을로 들어서기 직전, 제비산 월명암으로 오르는
길가엔 조선시대 사상가이자 혁명가인 정여립(1546~1589)의 활동지(7-6)가 있다. 서른아홉의 나이에 이곳으로 내려온 정여립은 대동계를
조직하는 한편 '천하는 공공의 물건(天下公物)'이며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랴(何事非君)'는 생각을 전파하며 높낮이 없는 평등 세상을 꿈꾸다
'기축옥사'의 희생자가 되고 만다.
동곡마을(옛 구릿골)에선 증산교 교주인 강증산(1871∼1909)의 흔적을 더듬었다. 증산이
1908년 열었다는 '동곡약방'(7-7)은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그의 자취지만 '민중이 곧 한울님'이라는 그의 유지와 달리 폐쇄적인
모습이었다. 1909년 증산이 세상을 떠난 후 제대로 관리되지 않다가 2003년 대순진리회에서 종교 성지로 복원하면서 초가집은 기와집으로
바뀌었고, 일반인 출입은 금지된 것이다. 집 뒤, 그가 심었다는 대나무 밭만 먼발치에서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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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증산의 묘가 있는
증산법종교 '영대'. |
금평저수지(7-8) 나무 덱을 걸었다. 겨울을 나러 온 오리떼가
보이는 그곳이 한때는 '오리알터'로 불렸다. 송 해설사가 전한 바로는 한국 풍수의 창시자 도선 국사는 '이 터는 오리가 알을 낳는 터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고, 증산은 중생을 구제할 미륵불이 '올(來) 터'라고 부르던 곳이란다. 이윽고 증산교 창시자 강증산의 외동딸
강순임(1904~1959)이 설립한 증산법종교(7-9) 본부에 다다랐다. 증산미륵불을 봉안한 삼청전을 지나자 묘각인 영대(靈臺)가 우뚝 서
있다. 증산 부부가 잠들어 있었다. 영대와 삼청전은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스러지기 직전의 원평 집강소
원평마을로 접어들었다. 불교재단인 동국대 사대부속학교인
금산중고교(7-10)가 보이는가 싶더니 원불교 원평교당(7-11), 원평성당(7-12), 원평교회(7-13)가 차례로 이어졌다. 한 마을 안에
4대 종교가 서로 이웃하면서 상생과 화합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게 정말 신기했다. 원평교당은 특히 원불교 교주 소태산 대종사와 2대 종법사
정산 송규 정사, 3대 종법사 대산 김대거 종사 등이 수행한 인연지였다. 소태산 대종사는 금산사 미륵전 뒤 송대에 거처를 정하고 1개월을
휴양하던 중 자신이 깨달은 우주만유의 본원을 '○(일원상)'으로 처음 그려 보인 곳이기도 했다.
원평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독립만세가 지축을 흔들었던
원평장터(7-14)다. 장터에 연이어 전봉준이 동학교도를 이끌고 일본군과 관군을 물리쳤던 구미란도 지척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사실도 목도했다.
국내 유일하게 남은 동학혁명 원평 집강소가 다 스러지기 직전의 모습으로 방치되고 있었다. '건물, 땅 매매'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린 집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이제 원평천 둑길을 따라 6㎞를 더 가면 수류성당에 닿는다. 화율초등학교(7-19)와 수류성당(8-1)이 있는
금산면 화율리다. 이곳은 신부님과 스님이 지도하는 두메산골 어린이 축구팀 이야기를 그린 영화 '보리울의 여름' 배경이 되었다.
종착점인 수류성당에 들어섰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반겨준다. 1889년 4월
베르모렐 신부가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에 설립한 배재본당을 모태로 한, 백 년 이상의 교우촌 명성을 이어온 곳이다. 전주 전동성당보다도 5개월
앞서 지어질 만큼 호남에선 전통을 자랑했다. 올해로 125주년을 맞은 수류성당이 배출한 신부나 수도자 수가 지금까지 18명에 이른 것만 봐도
짐작이 간다. 다만, 현재의 성당은 1950년 인민군과 빨치산에 의해 전소돼 한국전쟁이 끝나고 본당 신자들이 구호물자를 직접 적립해 1959년
지었다고 김용 사무장이 전했다. 그 역시 6대째 수류성당 신자였다.
예정시간 4시간보다는 훨씬 오래 걸렸다. 그래도 김제까지
왔는데 싶어 지평선을 보러 가기로 했다. 동양 최대의 저수지 '벽골제'를 지나 김제 땅 서쪽 끝으로 차를 몰았다. 추수가 끝난 들판은 황량했지만
곳곳에서 태우는 볏짚 냄새가 좋았다. 운이 좋았다. 해가 꼴까닥 넘어가기 직전이었지만 광활한 김제 들녘의 지평선도 보고, 새만금 방조제를
바라보는 심포리 바닷가 망해사에서 낙조도 만났다. 길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글·사진=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TIP
■'아름다운
순례길'이란
아름다운 순례길은 개신교, 민족종교, 불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천주교 등이 상생과
화합을 위해 전라북도 지역의 다양한 종교문화 및 역사문화 자원을 연결해서 만든 길이다. 지난 2009년 민간 차원에서 시작돼 지금은 관에서도
지원하고 있다. 지난달 3회째 '2014 전북세계순례대회'를 치렀으며 전주 익산 김제 완주 등 4개 시군구에 걸쳐 총 9개 코스 240㎞로
개발돼 있다. 순례대회가 끝난 지금도 사람들은 삼삼오오로 모여서 자율적으로 순례의 여정에 오르고 있다. 순례 문의 및 자료 요청은
세계순례대회조직위원회 063-278-1101.
■7코스(김제 금산사~수류·14.5㎞) 찾아가는
법
아름다운 순례길 7코스 출발지인 전북 김제 금산면 금산사로 찾아갈 경우,
부산~대전통영간고속도로~익산장수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금산사IC를 빠져나가는 이정표다. 약 3시간 50분 소요. 기차(KTX·1544-7788)로
가려면, 부산역~서대전역~김제역에 도착한 뒤 금산사행 5번 시내버스(약 40분 소요·40분 배차 간격)를 이용한다. 고속버스는 전주로 가서
금산사행 79번 시내버스(약 50분 소요·45분 배차 간격)를 탑승한다. 7코스 종착점인 수류성당까지 걷고 금산사 주차장으로 되돌아가려면
원평까지 7번 버스를 타고 나간 뒤 원평에서 금산사로 가는 5번 버스로 갈아타거나 원평 콜택시(063-543-0381)를 이용할 수 있다.
김제공용버스터미널 063-547-6341.
■잘 데와 먹을
곳(지역번호 063)
금산사 아래 묵을 곳은 민박 몇 군데와 모텔(제일장·548-3326) 한 곳,
모악산유스호스텔(548-4401·2인실부터 다인실까지 다양) 정도다. 금산사 템플스테이(548-4441)도 있다. 7코스 내 음식점은
메기매운탕이 일품인 금평저수지 옆 '호수산장'(543-0270), 육회비빔밥이 인기인 원평성당 옆 '지평선청보리한우촌'(543-0076),
순대국밥으로 유명한 원평장터 '시골집'(545-0666)을 꼽을 만하다. 금산사 아래 식당 중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곳은
한일회관(548-4016)이 유일했다. 김은영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