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쓰기 요령 2
앞서 설명한 서사문학의 원리 (이야기하는 사람 →이야기→ 듣는 사람)와 창작의 중요성 (진실을 전달하는 기법, 이야기를 방편으로 활용하는 능력)을 수필 쓰기에 적용하여 차근차근 서사문학의 하나인 문학적 수필 쓰기 요령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수필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경수필(Light Essay)부터 논리적인 중수필(Heavy Essay)까지 폭넓지만, 기본적으로 '자기 고백적 서사'라는 공통점을 가집니다. 내가 경험한 이야기(Fact)를 통해서 내가 얻은 진실(Truth) 또는 나만이 본 진실을 독자들에게 고백하듯이 은유와 상징을 사용하여 써나간다는 뜻입니다.
1. 이야기 (소재) 발굴 및 주제 설정
수필은 작가의 경험과 사색을 원료로 합니다. 여기서 작가는 '이야기하는 사람'이자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1.1. 소재 찾기 (서사의 원재료)
- 관찰과 메모
일상 속에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 순간, 평소와 다른 감정(기쁨, 분노, 슬픔, 깨달음)을 느낀 사건이나 혹은 사물을 발견했다면 그것이 바로 서사(원재료)가 됩니다.
-예시: 길가에 피어난 잡초를 보고 "어떻게 저렇게 척박한 곳에서 살아남을까?" 생각한 순간.
구체적인 사건을 기록합니다. 단순히 '힘들었다'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했는지 구체적인 Fact를 기록합니다. 수필의 '진실(Truth)'은 이 구체적인 사실(Fact)에서 시작됩니다.
1.2. 주제(진실) 정하기 (작가의 의도)
수필의 주제는 작가가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감동이나 깨우침', 즉 진실(Truth)입니다. 이 주제는 단순한 사건 요약이 아니어야 합니다. 나의 경험(Fact) →내가 깨달은 것(Truth) →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주제)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 예시: 잡초를 본 사건 → 강한 생명력의 발견 →(주제) 어떤 시련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2. 창작적 기법: 독자를 몰입시키는 구성
수필은 소설처럼 복잡한 허구를 요구하지 않지만, 독자가 지루하지 않게 '재미있게' 읽도록 만드는 창작적 기법 (방편 활용 능력)이 필수적입니다.
2.1. 효과적인 도입 (독자에게 말 걸기)
- 충격적이거나 재미있는 시작
이야기의 첫 문장은 독자가 계속 읽도록 이끄는 갈고리(Hook) 역할을 해야 합니다. 사건의 가장 극적인 순간이나, 주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강력한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나쁜 예: "어제 나는 길을 걷고 있었다.“
좋은 예: "그때 나는 알았다. 인간에게 절대로 희망을 주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2.2. 서사와 사색의 균형 (Fact와 Truth의 조화)
수필은 '사건'만 나열하는 보고서도 아니고, '생각'만 나열하는 논문도 아닙니다.
가. 사건 제시
경험(Fact)을 생생하게 서술합니다. 독자가 그 상황에 함께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오감을 동원하여 묘사 합니다.(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
나. 사색 전환
사건 서술 후, 그 사건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진실, Truth) 깊이 있게 해석하고 성찰하는 부분을 배치합니다.
2.3. 비유와 상징의 활용 (방편의 극대화)
추상적인 깨달음(진실)을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스며들게' 하려면, 설명하기 보다는 비유나 은유 같은 문학적 장치를 사용해야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의미가 확장 됩니다. 은유와 상직은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진실보다 독자가 더 깊이 더 다양하게 더 많이 생각하고 이해하게 만듭니다.
예시: '시련을 이겨낸 잡초'를 '꿋꿋한 생명의 상징'으로 비유하여 표현하면, 독자로 하여금 당신의 깨달음을 더 선명하게 이해하도록 만든다는 뜻입니다.
3. 마무리: 주제(진실)의 명확한 전달
좋은 수필은 끝맺음에서 독자에게 작가의 의도를 명확히 각인시켜야 합니다.
3.1. 여운을 남기는 결말
도입부에서 시작한 이야기(갈고리)로 다시 돌아가 수미상관(首尾相關)의 구조를 취하면 통일감이 느껴집니다. 주제를 직설적으로 마무리하기보다는, 독자가 스스로 생각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게 할 수 있도록 함축적인 질문이나 미래 지향적인 다짐으로 끝을 맺습니다.
3.2. 퇴고: 독자의 관점 확인
글을 완성한 후, '이야기를 듣는 사람(독자)'의 입장에서 다시 읽어보세요.
가. 명확성
작가가 의도한 감동이나 깨우침(주제)이 독자에게 잘 쓰며드는가?
나. 유용성/기억
이야기가 독자에게 유용하게 느껴지고 오래 기억되게 만드는 창작적 기법이 충분했는가?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았는가?)이 요령들을 염두에 두시고, 독자에게 진실을 전하는 '방편'으로서 수필을 쓰시면 됩니다. 혹시 지금 떠오르는 소재가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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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쓴 경수필의 하나인 <도시에 핀 개망초>를 예시로 올려 드리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잘 썼다는 뜻은 아님. 도시로 말려온 필자의 공허한 마음을 표현해 본 작품임. 괜히 혼자서 술 한 잔 하고픈 생각이 나던 날의 순간적인 포착을 글로 쓴 것임. 그 기분에 많은 친구들이 공감을 해준 작품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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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핀 개망초/정임표
퇴근길이다. 더위를 잊으려고 CD를 꽂고 음악을 튼다. 1989년 10월 16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녹화한 ‘이미자 노래 인생 30년 실황 앨범’이다. 노래는 나의 인생, 황혼의 블루스, 눈물이 진주라면, 그리고 마지막 짝사랑까지 총 16곡이 담겨 있다. 이미자 노래는 가슴 깊은 곳에서 밀어 올리는 애잔한 감동이 있어 수백 번을 되풀이 들어도 지겹지가 않다. 승용차에 CD가 처음 부착되어 나오던 날 이 음반을 구입했으니 족히 12년은 들은 셈이다.
“이미자 노래인생 30년을 축하 해주시기 위해서 이 자리에 오신 4천여 관중 여러분! 이미자씨가 여러분을 감동시키기에 앞서 이미자씨 자신이 먼저 감동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이미자씨를 감동시켜 주십시오.” 김동건 아나운서의 편안한 사회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불러일으키고 17년을 건너뛰어 지금 음반을 듣는 나까지 감동에 젖게 한다. 그 노래에 그 사회다. 이럴 때는 맥주라도 한 잔 할 수 있는 누나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 앞에서 “ 눈물이 진주라면……” 이란 노래를 불러드리고 싶다.
복현 오거리 고가도로 밑에서 신호등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차를 세우고 에어컨 바람을 환기시키고자 차창 문을 여니 인도블록의 틈을 비집고 선 개망초 풀이 보인다. 아스팔트가 녹는 도로 옆에서 꽃을 피워 냈다. 하얗고 조그맣고 보드라운 꽃이다. 고향강변에서 지천으로 피던 꽃이다. 네온사인 불빛을 별 대신 바라보며 무슨 꿈을 꾸었기에 저리도 앙증맞은 꽃을 피워내었을까. 모진 생명이다. 물망초도 못되는 개망초 꽃이라 기억해줄 사람조차 없는가. 곁에는 버려진 폐품들만 즐비할 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노래에 취한 탓일까. 술을 마시고 싶었던 것일까. 아무 관심 없던 그 길에서 개망초가 나를 잡는다. 차를 돌려 한적한 골목에다 주차한 후 개망초꽃이 핀 곳으로 갔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 비좁은 곳에는 망초 풀만이 아니라 다른 들풀들도 끼어서 자라고 있었다. 노란 꽃을 피운 씀바귀도 있고 질경이 민들레 강아지풀도 보인다. 모두가 어릴 때 고향들에서 보던 풀이다. 풀 옆에 섰다. 멀쑥한 사내가 보도 한쪽에 서서 장미꽃도 아닌 잡초들을 지켜보고 있으니 풀들조차도 이상한 사람 보듯 흘깃거리는 것 같다. 매연이 뿜어져 나오는 차도 옆에서 타들어 가는 잎들이 비만 기다리고 있는데 하늘은 물 한 방울 떨어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고향의 들풀같이 낯설지 않은 그 풀들을 차마 외면할 수가 없어 통성명이라도 하고파진다. 고향은 어디며 형제는 몇이며 어찌하여 이곳으로 와서 살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좁은 곳에서 몇 해를 살았는지 물어보고도 싶어진다. 이제 곧 꽃이 지면 저 풀씨는 또 어디로 갈 것인가.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를 뒹굴다 여기에 자리를 잡았을 그 풀들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낮닭이 목청을 높여 한낮의 적막을 깨우면 먼 산의 뭉게구름이 한줄기 소나기를 퍼붓고 지나가는 곳, 서산 노을이 애태우다 지면 달빛과 별빛이 물에 잠겨 소 곤 도란대고 강둑에는 달맞이꽃이 밤새워 피어나는 곳, 꽃들이 풀들이 서로 자리를 양보하는 시원한 바람 부는 넓은 들이 제 고향이란 것을 알기나 할까. 온 곳을 모르니 돌아갈 생각도 못 하고 보지 못하였으니 이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줄 아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머지않아 꽃이 지면 씨앗의 대부분은 빗물에 쓸려 떠내려가고 운이 좋은 몇몇은 바람에 굴러가 어느 담벼락 틈새에서 또 저 풀꽃들처럼 목마른 싹을 틔우겠지. 껑충한 키를 발돋움하고 가지마다 작은 꽃들을 피워낸 개망초의 모습이 ‘살아남아야 돌아갈 희망도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듯한데 제가 남길 씨앗의 운명을 아는지 줄기가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다.
마음같이 되지 않는 삶, 수많은 걸림돌, 혼자만의 힘으로는 결코 풀 수 없는 매듭들 앞에서 그래도 절망치 않고 꽃을 피워내는 들풀들을 남겨두고 차로 돌아온다. 아직 시간이 이른 탓인지 호프집의 문은 잠겨져 있다.
돌아오다 보니 거리의 작은 틈새 틈새마다 에도 들풀들이 끼여서 자라고 있었다. 찜질방. 고시텔. 게임방. 노래방. 열쇠 수리. 도장. 담배. 학원. 의원. 약국. 이발관. 교회 같은 간판들이 빼곡히 걸린 낡은 건물 아래를 지나니 도시로 온 들풀들이 힘겹게 지고 가는 십자가가 보인다.
차 안에는 푹푹 찌는 더위가 기다린다. 더위를 잊으려고 다시 음악을 튼다. 이미자씨의 노래 ‘들국화’가 흐른다.
돌아갈 기약은 없지만 오늘 자신이 진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가는 들풀들. 돌이킬 수 없는 삶의 아픔을 안으로만 삼키며 꼿꼿이 서서 꽃을 피워내는 개망초가 의연하다. 노래 탓인지 망초 풀 탓인지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온다. 물망초가 아니라도 너를 어이 잊으리. 이럴 때 혼자 술을 마시면 참 청승맞을 것이다. 비라도 좀 내려 주었으면-. (원고분량 200자 원고지 13장/2008.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