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학 개론 / 황주석
바람의 소리는 바람이 내는 소리가 아니고
물의 소리가 물이 내는 소리가 아닌 것처럼
바람은 허공 속에서는 소리가 없다
물이 강이나 저수지 속에서는
무음인 것처럼
바람은 서로 다른 기온의 차이로 일고
갈 길을 막아서는 물체에 부딪치는
물리적 충격에 튕겨지면서 울리는 공명이리라
물은 낮게 낮게 더 낮은 곳으로 흐르며
조약돌을 굴리며 애써 오르내리고
역류하면서 토해내는 울림이리라
그들의 삶은 오직
현실적인 존재 상황에 따라
처해진 운명 입장에 따라
각자의 원초적 감성에 따라
울고 웃는 것이리라
존재는 스스로 울지 않는다
― 황주석의 「울림학 개론」을 읽고
황주석의 「울림학 개론」은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시처럼 시작하지만, 끝내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시로 귀결된다. 제목에 붙은 '개론(槪論)'이라는 학문적 용어는 다소 건조한 인상을 주지만, 시인이 풀어내는 내용은 물리학과 존재론, 자연과 인간의 감성을 하나의 사유 체계 안에 엮어낸다. 이 작품은 '울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인간의 삶 또한 관계와 충돌 속에서 비로소 의미를 획득한다는 사실을 성찰한다.
시의 첫 연은 매우 인상적인 역설로 시작된다.
바람의 소리는 바람이 내는 소리가 아니고
물의 소리가 물이 내는 소리가 아닌 것처럼
이 두 행은 작품 전체를 이끄는 핵심 명제이다.
우리는 흔히 바람이 운다고 말하고, 물이 노래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을 부정한다.
바람은 스스로 소리를 내지 않는다.
물도 스스로 울지 않는다.
이 역설은 곧 인간에게도 적용된다.
사람 역시 혼자서는 울림을 만들 수 없으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갖게 된다는 암시가 된다.
이어지는 구절은 이러한 생각을 자연과학적 시각으로 확장한다.
바람은 허공 속에서는 소리가 없다
물이 강이나 저수지 속에서는
무음인 것처럼
시인은 감성적인 수사를 앞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물리학의 원리를 차용한다.
바람은 장애물을 만날 때 소리가 생기고,
물은 바위와 둑, 굴곡을 만날 때 비로소 흐르는 소리를 낸다.
자연의 원리를 설명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인간도 삶의 장애와 갈등을 만날 때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는 철학적 비유이다.
둘째 연은 울림의 발생 원리를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바람은 서로 다른 기온의 차이로 일고
갈 길을 막아서는 물체에 부딪치는
물리적 충격에 튕겨지면서 울리는 공명이리라
여기서 '공명'이라는 단어는 매우 중요하다.
공명은 단순한 충돌이 아니라 함께 울리는 현상이다.
즉 울림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인간의 기쁨과 슬픔도 마찬가지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현실과 이상이 부딪치며,
꿈과 좌절이 충돌할 때 삶의 울림이 만들어진다.
셋째 연은 물을 통해 인간의 생애를 비유한다.
물은 낮게 낮게 더 낮은 곳으로 흐르며
조약돌을 굴리며 애써 오르내리고
역류하면서 토해내는 울림이리라
'낮게 낮게'라는 반복은 물의 겸손한 속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 흐름은 결코 평탄하지 않다.
조약돌을 굴리고,
오르내리며,
때로는 역류한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울림은 곧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삶의 소리이다.
특히 '역류하면서 토해내는 울림'이라는 표현은 매우 강렬하다.
역류는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는 일이다.
인간 역시 운명을 거스를 때 가장 처절한 목소리를 내게 된다.
이 한 구절은 저항과 생존의 철학까지 품고 있다.
마지막 연은 작품의 철학을 완성한다.
그들의 삶은 오직
현실적인 존재 상황에 따라
처해진 운명 입장에 따라
각자의 원초적 감성에 따라
울고 웃는 것이리라
이 대목에서 시인은 바람과 물을 떠나 인간을 직접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같은 삶을 살지 않는다.
처한 환경도,
운명도,
감성도 다르다.
그래서 울림 역시 모두 다르다.
누군가는 웃음으로,
누군가는 눈물로,
누군가는 침묵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결국 시인이 말하는 '울림학'은 자연의 학문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학문인 셈이다.
작품의 미학적 성취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과학적 사고와 시적 사유를 자연스럽게 결합했다는 점이다.
대부분 자연시는 감성을 앞세우지만,
이 시는 물리학의 원리를 출발점으로 삼아 존재론으로 확장한다.
바람과 물의 소리를 설명하는 과정은 논리적이지만,
결론은 인간 삶의 철학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전개는 매우 지적이며 독창적이다.
또한 제목인 **「울림학 개론」**도 흥미롭다.
'개론'이라는 학술적 용어가 오히려 시의 철학적 깊이를 예고한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울림'이라는 개념을 하나의 학문처럼 읽게 되고,
시인의 사유를 따라가게 된다.
아쉬운 점
반면 몇 가지 보완할 부분도 있다.
무엇보다 설명성이 다소 강하다.
예를 들어
"바람은 서로 다른 기온의 차이로 일고"
는 과학적으로 정확한 설명이지만,
시에서는 다소 교과서적인 문장처럼 읽힌다.
조금 더 이미지화하거나 은유화했다면 서정성이 한층 살아났을 것이다.
또한 마지막 연의
"현실적인 존재 상황"
"처해진 운명 입장"
과 같은 표현은 철학적 의미는 분명하지만,
추상성이 높아 시적 긴장을 다소 약화시키는 면도 있다.
앞부분이 자연 이미지를 통해 의미를 전달했다면,
마지막까지도 이미지를 유지했더라면 여운은 더욱 깊어졌을 것이다.
종합 평가
「울림학 개론」은 자연의 소리를 소재로 삼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은 왜 울고, 왜 웃으며, 무엇 때문에 자신의 목소리를 갖게 되는가를 탐구한 철학시이다.
이 시에서 울림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관계의 결과이며, 충돌의 흔적이고, 삶의 증명이다.
특히 첫머리의
"바람의 소리는 바람이 내는 소리가 아니고 / 물의 소리가 물이 내는 소리가 아닌 것처럼"
이라는 역설은 작품 전체를 지탱하는 뛰어난 사유의 출발점이다. 이 한 구절만으로도 독자는 자연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고, 나아가 자신의 삶 역시 수많은 만남과 부딪힘 속에서 비로소 '울림'을 만들어 왔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황주석은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은 혼자서 울리지 않으며, 삶의 모든 울림은 세상과의 만남 속에서 탄생한다는 깊은 존재론적 진실을 전하고 있다. 자연과 과학, 철학과 서정을 한 편의 시 안에 아우른 점에서, 「울림학 개론」은 사유의 깊이와 독창성을 겸비한 의미 있는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