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산[客山] 301m 경기 하남 남한산성
산줄기 : 한남남한산성지맥
들머리 : 하남시 상사창동 일원,
광주시 산성리 산성버스종점
위 치 경기 하남시 동부읍
높 이 301m
# 참고 산행기[사네드레]
남한산성 벌봉~객산
백제 건국의 땅과 한강을 굽어보는 산
객산(客山)은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산이다. 높이 301m이며 남한산 줄기에 속한다. 옛날 마귀 할멈이 한양에 있는 남산과 같은 산을 만들려고 이천의 도드람산을 떠서 치마폭에 싸가지고 가다가 힘이 들어 이곳에 놓고 그냥 가버렸다는 설화가 있다. 객산이란 이름은 객지에서 온 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산 아래에는 선법사가 있다.
청량산(광주)과 남한산성은 우리 겨레에 있어 한이 서린 산이며 성이다. 병자호란 때 삼전도의 치욕을 당하게 한 곳이며, 그 치욕의 상징이 삼전도한비(三田渡汗碑)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송파에 서있다. 그러나 이 남한산성의 북쪽 춘궁동(하남시)이 백제를 건국할 때의 서울인 위례성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물론 춘궁동 일대가 옛 하남 위례성이라는 확증은 없으나 가장 유력한 학설로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일대 고골(하남시 사창동 항동 교산동 춘궁동 일대)의 동쪽 울타리가 되는 산줄기가 벌봉과 객산을 잇는 능선이다.
고골은 남한산성에서 북동쪽 객산으로 뻗은 산줄기와 남한산성에서 북쪽 금암산과 이성산으로 뻗은 산줄기 사이로 한강을 향하여 부채살처럼 퍼진 골짜끼다. 이 골짜기 끝의 하남시 춘궁동이 옛 위례성이라는 것이다. 한강을 향해 펼쳐져 있는 이 고골은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을 뒤로하고 있다.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요즈음 이 지역에서 많은 유물들이 발굴되고 있다 한다.
이 골짜기를 서쪽으로 내려다보며 한강을 향해 동북쪽으로 뻗친 산줄기가 벌봉과 객산 줄기이며, 사실은 벌봉(512m)이 남한산성의 최고봉으로 수어장대가 있는 청량산(479.9m)보다 더 높다.
벌봉과 객산에 얽힌 이야기들
벌봉은 그 고스락의 바위가 벌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벌바위봉이라고도 부른다. 여기까지 성(봉암성)이 둘러쳐져 있지만 여기의 석성은 병자호란 때는 없었다. 뒤에(조선 숙종조) 광주유수 윤지선의 주장으로 축조된 것이다.
벌봉은 한쪽에서 보면 크나큰 두 쪽의 바위로 보이는 우뚝 솟은 암봉이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병자호란 때 청나라 태종과 그 군사들이 이 벌봉에서 남한산성 안에 있는 우리편 군사들의 상황을 살폈다 한다. 벌봉이 당시의 산성에서 가장 높은 수어장대보다 높기 때문에 산성 안을 넘겨다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청 태종은 이 벌봉의 정기를 깨트리기 위해서 폭파하려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청군들이 이 벌봉에 머무를 때 새처럼 큰 벌들이 청군들을 괴롭혔다는 이야기도 있다. 벌봉은 남한산성에서 흔하지 않은 암봉으로, 바위틈에 굴도 있어서 기도터로도 이용되고 있다.
객산(291m)은 그 높이가 300m에도 미치지 못하는 나즈막한 산이지만 그 모습이 독특하고 산자락에 옛 백제 건국의 도읍터로 알려진 춘궁동이 있다. 또 여기 춘궁동 일대는 개성 강화 수원과 함께 서울의 외곽 4대 요새의 하나인 엣 광주 고을의 행정 중심지였기 때문에 객산에 대한 기록이 많다.
대동여지도 광주부고지도 신증동국여지승람 인조실록 동여도에 객산이 나와있고, 구 한말의 한갑성 처사가 쓴 <대동산경>에는 옛 백제국의 서울이었을 뿐만 아니라 서역승 마라난타가 백제 땅에 처음 불교를 들여 온 '한산불사(漢山佛舍)"(삼국사기 백제 본기에 기록된 불교전래지)의 옛 가람터라고 밝히고 있으며, 고려사 역참 조에는 심지어 객산 자락의 고읍동을 '동쪽의 경주'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객산 바로 아래에 있는 선법사 경내에는 태평2년(977년)의 명문이 들어있는 보물 마애약사여래상이 있고, 춘궁동 대원사 터에도 보물인 5층석탑과 3층석탑이 있다. 또 요즈음에 천왕사 약정사 한산사 동사 개두사 법화사 등 많은 절터가 발견되었다 한다.
객산에 대하여 '옛날 마귀할멈이 한양 땅에 남산을 만들려고 이천 고을의 도드람산 일부를 치마폭에 싸서 옮기다 힘에 부쳐 떨어뜨린 산' 이란 전설도 있다. 그레서 객지에서 온 산이라 객산이라 부르는 것이다. 옛날에 한강을 이용한 물류 거래와 관아를 출입하는 사람들로 붐볐던 객산 자락은 인조 4년(1626년) 광주의 옛 관아를 남한산성으로 옮긴 뒤부터 한산해졌고, 지금은 광주향교만 남아있다.
동문~벌봉~객산을 잇는 산행
남한산성과 벌봉, 그리고 객산을 잇는 산행은 첫째 호젓하고 편안한 산행이어서 좋다. 그리 가파르지 않고 어려운 곳도 없으며 흙길이어서 벗들과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며 산행하기에 아주 좋다.
숲도 좋고 등성이에 나무들도 무성해서 그늘도 좋은 데다 길 또한 널찍하다. 특히 동장대에서 벌봉을 거쳐 객산까지는 7km 안팎의 등성이길이면서도 표고차는 150m 정도밖에 되지 않아 은발의 산행에 알맞다. 그렇다고 마냥 편한 것만도 아니다. 여러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려야 하고 이리저리 돌기도 한다. 그러자면 겨울 날씨에도 땀으로 속옷이 촉촉하게 젖는다.
대체로 바위가 적은 산이지만 벌봉과 같이 우뚝 솟은 바위봉우리도 있고, 드문드문 큰 바위들이 보이기도 해서 심심치가 않다. 이 산은 다른 산에 비해서 소나무가 많아 운치가 있고 일년 내내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벌봉에서의 조망이 좋다. 산성 안을 들여다보면 옛 일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한강을 바라보고 펼쳐져 있는 객산과 금암산 줄기 너머로 건물이 꽉 들어찬 드넓은 서울과 뿌연 연무를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한다.
동문에서 시작하여 벌봉을 거쳐 객산에 이르는 산행은 처음엔 성벽을 따라 걷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대자연과 그 대자연 속에 인간이 만든 영조물과의 조화를 살피게 되고, 400여 년 전의 병자호란과 그 치욕을 생각하게 한다. 또 벌봉과 객산의 산길을 걸으며 한강과 고골을 내려다보면 200여 년 전 백제 온조왕을 비롯한 우리 조상들이 한강 가에 펼쳤던 꿈과 삶의 역정을 머리 속에 그려볼 수 있다. 400년과 2000년, 1600여 년의 시차를 두고 있었던 두 사실을 잇는 보이지 않는 어떤 끈이 있을 듯도 하다.
객산에 가까이 가면 육중하고 높은 송전탑들이 산즐기를 딛고 줄줄이 서울 쪽으로 넘어가는 광경도 보게 된다. 벌봉과 객산의 산행에서 도도하게 흐르는 역사의 물줄기와 발전의 이름 아래 망가지는 대자연에 관하여도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싶다.
봄기운이 완연한 2월의 어느 날 기린회의 박영순회장, 신희영 산행대장, 김승곤 회원들과 함께 남한산성 동문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동장대를 거쳐 벌봉에 오르고 객산까지 산등성이를 탄 다음 선법사로 하산했다.
성남시와 광지원을 잇는 308번 지방도가 남한산성을 남문에서 동문으로 관통하고 있다. 광지원에서 지나가는 차를 세워 동문까지 편승했다. 도중에 매표소가 있었지만 일행 중에 망월사 신도가 있어서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되었다.
동문에서 차를 내리자 길 아래의 수문을 구경하고 안쪽에서 성을 따라 장경사 쪽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지형을 이용해서 비탈에 쌓은 성이라 성 높이가 안에서는 사람의 키 높이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바깥쪽은 돌로 쌓은 수직벽이 열 길은 될 것 같았다. 이러한 훌륭한 성에서도 외적을 막아내지 못했다. 산성 안에 승병을 위하여 지었다는 9개의 절 가운데 지금까지 장경사 하나만 남아 있다. 성에 가까이 있는 이 절까지 찻길이 닿아 있다. 길은 여전히 성을 따라 평지와 가파른 비탈이 되풀이되며 옹성을 지나고 동장대터에 이른다. 곳곳에 이정표와 산성에 대한 설명판이 있고 탁자 의자도 놓여 있다.
동장대터에서 성문을 지나 밖으로 나가면 외성인 봉암성이 이어지고, 길도 여전히 성을 따라간다. 성과 길은 한봉까지 이어지지만 한봉에 이르기 전 턱에서 성 줄기 한 가닥이 벌봉으로 갈라져 나아간다. 이 성 줄기는 벌봉을 지나 동림사터로 싸고돌아 내성으로 다시 이어진다.
동문~벌봉~객산 산행에서 가장 좋은 곳이 벌봉이다. 병자호란 때의 여러가지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고, 기도터로도 유명한 이 벌봉은 모습도 우뚝하고 조망도 좋으며 중간에 반석도 있어 쉬기에도 좋다. 우리는 여기서 점심을 먹었다.
벌봉 아래에서 암문을 빠져나가면 이제 성밖이다. 벌봉에서 객산으로 이어지는 길은 숲속을 지나는 편안한 흙길로 고즈넉하다. 거의 등성이 길이지만 산비탈을 가로지르는 길도 있고, 고개를 건너 봉우리 몇 개를 넘으며 오르내리는 곳도 있다. 벗들과 오손도손 정담을 나누며 걷기에는 아주 좋다. 벌봉에서 객산까지는 1시간 반쯤 걸린다. 정담이 끊어질 만큼 어려운 곳도, 정담이 중단될 만큼 숨찬 경사나 정담을 뒤로 미루게 할만한 훌륭한 경관이나 조망도 없다.
기린회는 고등학교 동기들의 모임이어서 허물없이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이 날의 이야기는 이제 회갑고개를 막 넘긴 나이들이어서 며느리 사위 본 이야기, 손자 손녀 이야기가 많았다. 손자 손녀가 귀엽다는 이야기와 맞벌이 며느리나 딸을 위해 손자를 돌보아야할 처지를 하소연도 하고, 그에 대한 핀잔도 오갔다. 그러나 그 자랑과 핀잔 속에는 어쩔 수 없이 60을 넘긴 나이에 대한 초조함이 배어 있었다. 이제 하나 둘 어려운 짐을 벗어버리고 편안하게 산이나 다니자는 말로 이야기는 마무리되는 것 같았다.
객산을 올라서니 바로 산 아래로 중부고속도로가 내려다보이고 팔당대교가 걸쳐 있는 한강이 푸른 물이 가까이에 보였다. 객산 아래의 선법사에는 마애약사불(보물 제981호) 아래 맑고 시원한 석간수가 있다. 그 시원한 약수를 마시면 산행은 끝난다.
*산행길잡이
남한산성의 동문, 동장대, 벌봉, 객산을 잇는 산행길은 외길일 수밖에 없다. 동문~장경사~동장대까지는 성벽의 안쪽 길로 가고, 동장대 암문으로 나가서는 봉암성을 따라 벌봉으로 오른다. 벌봉~객산~선법사 구간은 거의 산등성이로 이어진다.
물론 선법사~객산~벌봉~장경사~동문 순으로 갈 수도 있지만 교통편이나 산행의 멋 등을 생각하면 동문에서 시작해서 객산의 선법사에서 산행을 끝내는 것이 좋다. 산행시간은 약 3시간에서 3시간 반으로 잡으면 된다.
*교통
강변역(전철 2호선) 또는 동서울시외버스터미널에서 광주를 오가는 13번 버스를 이용해 광지원(남한산성 입구)에서 내린다. 다시 15-1번(30분 간격 운행) 버스로 동문을 간다.
성남시 모란역(전철 7,8호선)에서 남한산성 로타리행 9번 버스(1시간 간격 운행)를 이용한다. 전철 8호선 산성역에서 2번 출구로 나와 9번 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선법사로 갈 경우 하남시 감북동에서 30-5번 버스를 이용한다.
자가용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천호대교~길동~하남시~(43번 국도)~광지원~308번 지방도~동문 코스, 중부고속도로~경안IC~광지원~동문 코스, 잠실~복정네거리~약진로~남문~동문 코스, 경부고속도로~양재IC~헌인릉 앞~세곡동~복정네거리~약진로~남문~동문 코스로 접근한다. 참고: 월간<산> 2002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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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