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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냄새의 기록
-이병률론: 시집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읽기
배옥주
1. 안온한 내공의 언어들
21세기 현대시는 언어의 해방을 꿈꾸는 환상성으로 상상력의 극점을 넘나든다. 일탈의 기교를 통해 익숙한 구조를 해체하는 환상시와 해체시의 경향은 정신의 무한한 확대와 마음의 순수한 자동현상(앙드레 브르통: André Breton)이라는 무의식의 세계를 전면에 배치한다. 이때 현대시에서 드러나는 해체나 전위의 형식은 단절과 소통 불능의 현상을 파생시킨다. 난해시를 쓰는 시인들은 이해가 잘 되는 시를 현대시의 인위적인 부산물로 치부하면서 불통의 시를 삶을 위한 거짓말에 대한 공격(칼 야스퍼스:Karl Jaspers)이라고 정의한다(염선옥). 현대시의 한 세계관으로 정립된 해체시나 환상시를 통해 불통의 세계와 소통하려는 작가의 의도적인 전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르를 넘어 시단의 흐름에서 파생된 ‘소통불능’과 ‘불편함’은 시에 다가가려는 독자에게 걸림돌로 작용한다.
의식의 개입을 배제한 자동 기술과 지배적 정황으로 치닿는 불편한 시에 주춤할 때쯤 공감의 시로 소통하는 시인 이병률이 등장했다. 시인의 시를 신뢰하는 독자들은 오랜 내공으로 쏟아내는 안온한 언어의 품에 덥석 안겨든다. 그의 시는 변화와 갈등을 포함한 신서정과 리얼리즘을 융합한 개성적인 사유로 발화한다. 심연을 휘젓는 위트로 미학적 예술성을 추구하면서도 대상이나 사건에 대한 시인의 감정을 담백하게 풀어낸다. 이병률의 시는 대상을 객체로 만들면서 화자를 중심으로 내세우거나 수동적인 관찰자 위치에서 들여다본다. 쉽고 편안한 언어로 형상화하는 감각적 이미지는 시적 정황을 미화하지 않고도 품위를 지켜낸다. 그의 시에서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로 확장해나가는 내면 사유의 힘을 만날 수 있다.
지방 문학행사장에서 문청들의 고민에 공감하던 이병률의 모습이 인상 깊게 남아 있다. 그는 애정을 고백하는 독자들에게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어 만나자(「이 넉넉한 쓸쓸함」)고 진심을 쏟아낸 시를 건네준다.
2. 괄호를 채우는 마음자리
유독 눈 냄새에 진심이다. 눈 냄새를 맡고 있으면서도 눈의 냄새가 사무치게 그리운 시인, 이병률이다. 눈앞에서도 그리워하는 눈 냄새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시인은 시집 출간을 제안 받고 눈 내리는 곳으로 달려간다. 눈 냄새에 파묻힌 그는 돌아올 날을 훌쩍 넘겨도 개의치 않고 눈 냄새 배인 시에 사람과 사랑을 각인한다. 시집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은 ‘시인 여행자’ 이병률이 겨울을 유랑하면서 건져 올린 눈 냄새로 가득하다. 이병률! 그를 떠올리면 설원에서 펼쳐지는 사랑영화가 오버랩 된다. 훗카이도 설원에서 ‘히로코’가 죽은 남친 ‘이츠키’에게 ‘오겡끼 데스까’를 외치는 <러브레터>나, 핀란드 설원에서 펼쳐지는 <남과 여> 같은. 겨울시인 이병률이 곁에 두고도 그리워하는 눈 냄새는 어떤 빛깔의 감정일까?
이병률은 삶을 열고 닫는(「의문」) 중심에서 만난 자신을 모두 비워낸다. 자신까지 온전히 버린 세계의 끝에서 삶의 방향을 좇는 슬픔과 고독의 밀도를 면밀하게 들여다본다. 그는 여행에세이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에서 여행은 시간을 들이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벌어오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타임슬립(Time Slip)처럼 백 년 전이나 천 년 후로 떠난 시간여행에서 벌어온 모험의 시간을 오롯이 시와 사랑의 감각을 깨우는 데 쓴다. 이병률의 일곱 번째 시집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은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자아와 시인이 이토록 사랑한 적 있었던 누군가를 찾아나서는 유랑이다.
이병률은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좋은 사람들」로 당선된 후 여러 권의 산문집과 시집으로 독자들과 소통해왔다. 시인은 감정의 재료가 소진될 때까지 괄호 안에 머문다. 이병률에게 여행·사랑·바람·눈 냄새는 생의 괄호를 채우는 소중한 목록이다. 첫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부터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까지, 산문집 『끌림』부터 『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까지 ‘사랑’과 ‘여행’은 이병률 시세계의 중심 화두다. 그의 시편들은 시인의 길에 대한 진정성을 확인하는 여행자의 시선(『끌림』)으로 펼쳐진다.
시인은 왜 슬픈지 물으면 왜 슬프지 않는지 되묻는다(「해변의 절벽」). 사랑과 가까워지는 일은 바닥없는 슬픔을 진심으로 슬퍼하는 절박함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에게 사랑은 완성되는 것이 아니므로 사랑을 증명하려는 시도는 쓸모없는 일이다. 시인이 정의하는 사랑의 실존은 ‘누구나 채울 수 있고 비울 수 있는 괄호’이며, ‘가진 것보다 가지지 않은 것을 버리는 것’(「사랑」)이며, ‘마음이 마음을 흠모하거나 산책하듯 스미는 것’(「사랑은 산책자」)이다.
붙들고 울고 있다
한없이 서로를 껴안고 울고 있다
놓지 않고 있다
허물어지지 않기 위해 붙들고 서서
함께 허물어지려고 붙들고 있다
두 사람 신발 등이 눈물에 젖고 있다
두 사람이 껴안고 서 있는 자리에
열과 공기가 닿은 것처럼
두 사람을 제외한 곳만 눈이 내려 쌓이고 있다
- 「폭설」 전문
위 시는 1행이 1연인 9행 9연의 여백을 강조하는 구조다. 의도적으로 행과 행 사이 거리를 두어 독자가 두 사람의 깊은 사랑에 대해 사유할 공간을 만들어준다. 두 사람은 눈이 펑펑 쏟아지는 한 데서 눈을 맞으며 껴안고 울고 있다. 한없이 우는 모습과 쏟아져 내리는 폭설의 시각 이미지는 그들의 복잡한 심경을 한폭 수채화로 그려낸다. “허물어지지 않기 위해 붙들”고 있는 것이지만, “함께 허물어지려고 붙들”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불륜의 사랑이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보여주려는 걸까? 어떻게든 두 사람은 뜨겁게 달아오른 마음을 붙들려고 애쓰는 이들이다. 서로 껴안고 고스란히 폭설을 받아내는 두 사람 바깥으로 눈이 쌓이고 있다. 폭설을 뚫고 뿜어져 나오는 “열과 공기”는 포옹을 갈라놓지 못 할 만큼 뜨거운, 사랑은 그런 것이다(「농밀」).
당신 눈에 빛이 비치기 시작합니다
사랑은 그런 것입니다
당신 눈 속에 반사된 풍경 안에
내 모습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은 그런 것입니다
세상의 여러 틀이
자발적으로
윤곽을 잡게 되었습니다
별이 바람에 흔들릴 때면
당신 눈동자가 흔들린 거라 믿게 되었습니다
- 「농밀」 전문
참견하느라 늦은 사람이 몸을 일으켜 조금 빠르게 걷는다
늦춰 걷던 사람도 속도를 맞추려는지 몸을 조금 서두른다
그래
맞출 수 있다면 이것저것 잇대어서라도 맞춰야지
- 「친구」 부분
나는 누구의 이빨이라면 물려죽어도 괜찮고
누구의 이빨에 씹혀 죽으면 억울할 것 같은지
- 「사랑」 부분
도무지 전부가 마비되고 없다 해도
그리하여 마디마디 접붙일 것이 없기에
다글다글 원하는 것이 없다 해도
- 「사랑」 부분
사랑을 향한 정서는 인간 본연의 감정표현만 다를 뿐 시간이 지나도 힘줄이 맞닿으면 전해지는(「두 사람」) 마력이 있다. 위 시편들은 어떻게든 상대에게 맞춰주려는 속성에 집중한다. 맞춰주는 것은 사려 깊은 배려에서 비롯된다. 「농밀」에서 화자는 당신 눈에 비치는 빛이나 “당신 눈 속에 반사된 풍경 안”에 나타난 자신의 모습에서 사랑을 확신한다. ‘사랑’이란 마주보는 상대의 눈 속에서 ‘나’를 찾는 것이다. ‘당신’과 끈끈하게 결속된 자아의 관계가 농밀한 사랑으로 이어져야 “세상의 여러 틀”이 “자발적으로 윤곽을 잡”고 반듯해진다. 바람에 별이 흔들리면 당신의 눈동자는 흔들릴 수밖에 없고 화자 또한 흔들린다. 이처럼 사랑은 함께 흔들리는 “그런 것”이다.
「친구」에서는 늦은 사람과 앞선 사람이 속도를 맞추려고 애쓴다. 한 발씩 물러서서 무엇이라도 “잇대”기 위해 몸을 “일으키”고 몸을 “서두른”다. 사랑이 서로에게 안식을 가져다주는 일(「바다는 잘 있습니다」)이라면 다 내주고 빈집 같은 존재가 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빈 곳을 채우려 스밀 테니까. 같은 표제의 두 시 「사랑」 또한 예측 가능한 감정의 결을 암시한다. 사랑은 “물려죽어도 괜찮”은 이빨과 “전부가 마비되”고 “원하는 것이 없다 해”도 산 하나를 파내거나 쓰다 버리는(「사랑의 출처」) 불가항력의 마음자리다.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시들어 죽어가는 식물 앞에서 주책맞게도 배고파한 적
기차역에서 울어본 적
이 감정은 병이어서 조롱받는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대수인가 싶었던 적
매일매일 햇살이 짧고 당신이 부족했던 적
이렇게 어디까지 좋아도 될까 싶어 자격을 떠올렸던 적
한 사람을 모방하고 열렬히 동의했던 적
나를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 만들고
내가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조차 상실한 적
마침내 당신과 떠나간 그곳에 먼저 도착해 있을
영원을 붙잡았던 적
-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전문
사랑을 감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번 생의 암호를 풀 수 없을 텐데
어떻게 이러고 삽니까
사랑이 후방에라도 있는 겁니까
- 「언젠가는 알게 될 모두의 것」 부분
이병률은 오래 품었지만 끝내 잃어버려야 했던 사랑의 순간들을 기록해나간다. ‘말이 더뎌지는 순간이 마음의 리듬이 시작되는 시간’이라는 시인의 말을 쓸어내리면 타인의 뒷모습에 젖는 촉촉한 눈빛이 만져진다. 표제작인 이 시는 사랑을 경험해보지 않고는 발현될 수 없는 이미지들이 펼쳐진다.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에서는 각 문장이 ‘적’으로 종결된다. 지나간 시간에 의존하는 ‘적’은 오히려 무수한 상상력의 공간을 만들어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당신’을 이토록 사랑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조롱받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으며, “한 사람을 모방하고 열렬히 동의”까지 할 수 있을 것인가. 각각의 시행은 화자의 내면 심사가 표출되는 문장들로 포진되어 있다. 그 문장들의 감촉은 놀랄 만큼 물컹하고 유순하다. 우리는 과연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있는가. “마침내 당신과 떠나간 그곳에 먼저 도착해 있을 영원을 붙잡았던 적” 있는가.
자아를 사랑하지 않는 이가 타인을 사랑할 수 있을까?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은 마음속에 감정의 결을 새기며 어디로든 나아갈 수 있다. 사랑이 목뼈를 분질러 거대한 슬픔이나 외로움을 남긴다 해도 사랑 없는 생은 막힌 괄호일 뿐. “사랑을 감각하지 않”는 한 “생의 암호”조차 풀지 못한 채 제 안에 갇혀 살아야 한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열정으로(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사람들은 사랑을 오해”하거나 “구부러뜨리거나 질투”하지만 시인은 “사랑을 사랑하기 시작했”다고 선언한다. 사랑의 실천은 괄호처럼 비어 있는 공백을 인지하고 감각하는 일이다. 또한 사랑은 개인적인 일이면서 세계적인 일이어서 능동적인 사랑을 시작한 ‘나’를 ‘우리’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이때 결합의 경험으로 살아남은 사랑은 잊지 못할 기억으로 저장된다(에리히 프롬:Erich Fromm).
3. 유랑의 내면화
여행은 자신의 전생이 어땠는지 찾아나서는 길이다(「비린 생의 노래」). 얼마나 들고 있어야 하는지 몰라 불현듯 가방을 싸는 시인의 행위는 유랑의 내면화를 실천하는 모습이다. 여행은 돌아올 곳이 있어서 떠난다. 하지만 이병률은 돌아올 곳을 지우고 떠난다. 그는 여행에서 세상 끝의 기울어진 풍경을 앓으며(「세상의 끝」) 떠돌이 삶의 본질을 끌어당기는 존재의 흔적들을 만난다. 지하철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보다 지하철을 타고 달리는 사람의 시간이 더 느리다는 상대성이론처럼, 시인은 여행 안에서 느린 시간을 경영하며 천천히 존재의 안식처를 찾아낸다.
김수영, 유치환, 황동규, 김소연 등의 시인이나 정주영, 이병철, 손흥민 등의 유명인은 여행을 즐긴 인물들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유랑의식은 세계를 상대로 변화를 즐기고 정체된 세계를 거부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서른다섯에 모두를 버리고 타히티로 떠난 고갱의 여행이나, 시학적·철학적 범주로 확장시킨 김수영의 여행은 이병률의 여행과 묘하게 닮았다. 여행이 작가에게 필수적인 조건임을 역설하던(1964.9.23. 조선일보 대담) 김수영이 도피의 방편으로 동경했던 여행을 끌어안았다면, 이병률은 우연한 날 것의 여행을 껴안고 뒹굴다 축적되는 사유를 미학적으로 승화하는 시세계를 펼쳐낸다. 머리로 들어와 마음을 흔드는 철학(강신주)과는 달리, 이병률 공감의 시는 마음으로 들어와 머리까지 흔든다.
기차표가 없었는지 모자에게 자리는 하나뿐이다
듬직한 아들은 얼핏 봐도 아프다
노모가 보온병을 건네고 과자를 건네 보지만
다시 또 삶은 달걀을 건네도 아들은 싫다는 내색을 한다
아들은 육중한 무언가에 상체를 심하게 받친 듯하다
기차가 어느 역에 멈추고
어머니가 앉아 있던 자리에 자리 주인이 와서
이제 어머니는 서 있어야 한다
집에 가는 길이 멀다
<중략>
잠시 자리를 바꾼 아들이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 같더니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앞 칸에 자리가 많이 비어 있다는 전화였는지
앞 칸으로 무조건 건너오라는 말인지 서둘러 노모가 이동한다
두 사람은 마주 앉거나 나란히 앉았을 것이다
기차는 입원과 간호로 지쳤을 두 사람만을 태운 것 같다
기차는 굽은 철길을 따라서 돌다 돌다 그렇게 인생의 앞 방향을 내다보는 중이다
지독히도 부드러운 길은 멀겠지만 돌다 돌다 더 멀어도 되겠다
- 「기차는 칭다오에서 출발한다」 부분
-공부를 마쳤습니다
한 청년이 기내에 들고 탄 이불 보따리가 너무 큰 걸 보고는 승무원이 제지하자
-제가 하산을 했단 말입니다.
그러자 승무원이 말을 받았다
-하산을 했더라도 큰 짐은 부쳐야 합니다.
-부치고 남은 짐입니다. 더는 부칠 수가 없다고 해서 들고 탄 겁니다.
<중략>
공부를 다 하고도 가져갈 이불과 세간들이 있다 못해 힘을 내어 갈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공부인가
하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다 하더라도 그것은 얼마나 큰 공부인가
- 「하산」 부분
여행 경험으로 발현되는 이병률의 시는 허술하고 낮은 삶의 그늘을 연민으로 감싸 안는다. 소소한 감동과 깊은 생각거리를 전해주는 여행시편들을 통해 시인의 성정을 짐작할 수 있다. 칭다오에서 출발한 기차에는 아픈 아들을 앉히고 서서 가는 노모가 등장한다. 자리를 찾아 전전긍긍하는 모자의 모습에 동요된 시인은 집으로 돌아가는 모자의 길이 너무 멀다고 느낀다. 하지만 자리를 찾은 아들이 노모와 앉으러 간 그때부터 기차는 “돌다 돌다 더 멀어도 되겠다”고 안도한다. 모자의 심경이 시인의 심경으로 이입되는 순간 모자를 태운 전용 기차가 달려가는 “지독히도 부드러운 길”은 아무리 멀어도 괜찮아진다.
비행기 에피소드에선 ‘하산’이라는 묵직한 낱말에 움찔하게 된다. 더 이상 짐을 부칠 수 없어 이불보따리를 들고 탄 청년은 승무원에게 “하산을 했”다고 힘주어 말한다. 청년과 승무원의 실랑이를 보며 시인은 “하산했”다는 청년의 말을 곱씹는다. 공부를 마치고 하산해서 “힘을 내어 갈 곳이 있다는 것”과 “마땅히 갈 곳이 없다 하더라”도 하산을 하는 것이 얼마나 큰 공부인지 깨닫는다. 하산할 만큼 들였을 노력과 창창할 미래에 대해 시인은 청년의 무한한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병률 시에서 연민은 삶을 개척해나가는 시적 대상을 다독인다. 이런 정서는 시인의 시적 세계관을 추동하는 요인이 된다.
헤어질 때 서로 사진을 찍는 종족이 있다고 생각한 후
다음번에도 또다시 공항에서였다
헤어질 때 힘껏 끌어안았다가 떨어지는 두 사람 몸에서
쩍하고 나뭇가지가 갈라지는 소리를 들었다
도대체 멀리 떠난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고
호소하듯 소리치던 한 사람이 한 사람을 껴안은 것뿐인데
나무 갈라지는 소리보다 더한 소리가 공항 안에 울려 퍼졌다
- 「공항에서」 부분
너는 아주 긴 여행을 할 거라고 했다
이번에 내가 근사한 술을 사도 되느냐고 물었어
시작은 근사하고 그러는 너는 더 근사하고
모르는 사람끼리 만나 작고 시시한 이야기를 쌓아간다는 건 참 경이롭지
모르는 사람끼리 만나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약속을 한다는 건 더 묘하지
- 「누가 내게 술 한 잔을 사줘도 되느냐고 물었어 」 부분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는 그때가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나짐 히크메트:Nâzım Hikmet, 「진정한 여행」). 바람의 호위를 받으며 140여 개국을 여행한 이병률. 이렇게 떠도는 삶을 즐기는 이병률에게 각별한 사람이 있다. 54세에 독일에서 별세한 허수경은 「혼자 가는 먼집」으로도 잘 알려진 시인이다. 후배시인 이병률을 아끼던 생전의 그녀는 영혼의 일을 자발적으로 즐기는 ‘시인 여행자’에게서 불가해한 풍경을 발견했다고 고백했다. 그 이후로도 시인이 운행하는 설국열차는 눈 냄새의 기록을 이어가며 끝없이 달리고 있다.
이병률에게 ‘공항’은 삶과 환경에 대한 그리움이 발현되는 토포필리아(topophilia)다. 복잡다단한 심경들이 섞여 있는 그곳은 시인이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상징적인 장소다. 떠나는 발길을 배웅하기도 하지만 떠나지 못하게 붙잡기도 하고 돌아온 발길을 마중하기도 한다. 공항에서 화자는 멀리 떠난다는 한 사람을 받아들일 수 없는 다른 한 사람이 떠나는 사람을 껴안는 소리에서 “나무 갈라지는 소리”보다 더한 소리를 듣는다. 나무가 쪼개지는 소리보다 더한 고통의 소리를 통해 헤어지지 않겠다는 이의 간절한 마음을 읽어낸다.
막연하게 당도한 여행의 현장에서 사람과 시를 선물 받는 것은 축복이다. 모르는 사람끼리 술잔에 담은 마음을 건네고 약속을 하는 것. 그건 ‘모르는’이 ‘아는’으로 바뀌는 근사한 일이다. 그는 여행에서 서투르게나마 자신이 누구인지 들여다보는 혜안과, 휘몰아치는 눈밭에서 타인의 막막한 뒷모습을 읽어내는 천리안까지 얻어온다. 그래서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친해지고 “작고 시시한 이야기를 쌓아”가는 여행 서사는 경이로울 수밖에 없다.
4. 사유의 여백
이병률은 스무 살에 시를 쓰기 위해 집 하나를 빌렸다(「오래된 집」). 그는 허무는 일도 많았던 어두운 방에서 이토록 사랑한 누군가와 허물어지려고 붙들던(「폭설」) 망설임까지도 폭설처럼 껴안고 뒹굴었다. 시인은 서술어를 쓸 수 없는 시적 잠재성 속에 미지의 사태를 숨겨두었다(이광호). 서술어를 쓰지 않고 말문을 흐려 시적 사유의 여백을 무한대로 확장하겠다는 의도다. 불도 켜지 않고 퉁퉁 눈이 붓도록 울어대던 어두운 방(「화양연화」)이나 이름도 모르는 두 사람이 몇 방울 포도물로 번져도 좋을 ‘황금포도 여인숙’에서 사무치는 마음속 혼잣말을 궁글리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시인의 감정이 포개지는 어두운 방이나 혼잣말은 무한대로 확장되는 여백을 생성하기 때문이다.
시인에게 여행은 ‘사랑’의 순례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여러 개의 안경이다. 이병률이 투명한 안경 너머의 세계에서 시와 사랑과 사람을 발견하는 일은 얼마나 ‘찬란’한가. 그는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세계 곳곳의 다양한 감정들을 맛깔나는 시로 요리한다. 시인이 차려낸 한 상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찬란한 바람 한 공기와(「바람의 사생활」) 타인을 향한 심장박동 한 대접 그리고 접시에서 버티는 가시 돋친 시(「경력서」)가 있다. 시인은 벅찬 감정을 쏟아내는 것보다 식탁 위에 가만히 마음을 올려두거나 냄새를 음미하며 사무사思無邪의 지점에 닿는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 절대적으로 착해지고 써보지 않은 근육으로 새로운 정서를 구축하는 시인. 이병률의 시는 내밀한 영혼과 숙성된 내면으로 대중과 시인을 아우른다. 눈이 쌓이듯 슬픔이 극에 달할 때 살고 싶어지는 기적처럼, 미혹된 마음에서 분별이 지워져 더 이상 허기를 느끼지 못할 때 젓가락으로 무념무상의 시를 집어 올리는 것이다.
리얼리스트가 시인의 죽고 사는 문제를 정의한다는 네루다(Pablo Neruda)의 말에 온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병률은 이상과 공상에서 한 걸음 물러선 리얼리스트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그는 사랑이 끝나면 쓰레기 같은 인간과 사랑을 했다고 화들짝 놀라거나(「과녁」) 직접 만든 계란말이로 힐링푸드의 안식을 전해준다. 쏟는 일과 쏟아져 내리는 일이(「내가 소년의 딱지를 뗀 세상의 첫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자각하는 이병률. 어느 날 이별이 만나자고 내민 손을 잡아주고, 길을 물으면 같은 방향이라며 함께 가자고 할 것 같은 시인. 그와 어깨를 겯고 걸어본다면 심장 구석구석 깨알같이 기록된 눈 냄새를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움’과 ‘비움’을 짊어진 시인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이국의 그릇가게 할머니처럼 한 걸음 뒤에서 무작정 기다리기로 한다. 내향적인 아이슬란드에서, 눈 냄새에 파묻힌 핀란드에서, 독자의 심연에서 그가 써내려가는 사유의 여백에 물들 때까지.
※PS
오래된 그 집 왼쪽에는 바다가 있고 뒤편에는 슬픔이 있다.
머물고 싶은 사람에겐 언제나 비워준다는 포근한 품에 한 번쯤 들러보시기를!
약력
배옥주
2008년 《서정시학》 시 등단
2022년 《애지》 평론 등단
<부경대학교> 문학박사
시집 『오후의 지퍼들』, 『The 빨강』
연구서 『이형기 시 이미지와 표상 공간』
평론집 『언어의 가면』
<요산창작지원금> 수혜, <김민부 문학상>, <두레 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