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경험과 침묵하는 피질>
우리가 깨어 있는 모든 순간은, 미래로 여행하거나, 과거를 회상하거나, 쾌락에 대한 환상을 떠올리는 등 무언가로 채워진다. 우리의 마음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고, 끊임없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자기 마음속에 홀로 남겨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그런 불안한 순간을 피하기 위해 즉시 스마트폰을 꺼내 든다.
경험은 무언가에 관한 것이어야만 할 것 같다. 무언가를 의식하지 않고 경험한다는 것이 개념적으로 납득 가능하겠는가? 보고 듣고 기억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원하고 두려워하는 등등을 포함하지 않는 경험이 있을 수 있나? 그것은 어떤 느낌일까? 그 추정되는 순수한 의식 상태는 깊은 수면이나 죽음과 구분되는 현상학적 속성을 갖는가?
마음의 고요함, 즉 신성한 무(無, nothingness)에 멈출 때까지 평온해지기는 많은 종교와 명상 전통에서 오랜 세월 공통적으로 추구해 온 목표이다. 사실 소위 신비적 경험(mystical experience)의 핵심은, 모든 속성이 제거된 완벽히 고요한 마음, 즉 순수한 경험이다. 기독교 내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와 동시대를 살았던 안젤루스 실레지우스(Angelus Silesius), 그리고 14세기 [무지의 구름(The Cloud of Unknowing)]을 쓴 익명의 작가 등은 모두 그러한 고요의 순간을 언급했다. 힌두교와 불교는 “순수한 현시(pure presence)” 또는 “있는 그대로를 알아차림(naked awareness)” 등 많은 관련 사상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상태에 도달하고 유지하기 위한 명상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8세기 티베트 불교의 대가이며, 구루 린포체(Gure Rinpoche)라고 알려진 파드마삼바바(Padmasambhava)는 이렇게 썼다.
그리고 당신이 그러한 방식으로, 즉 있는 그대로 (어떤 논쟁적 생각도 없이)자신을 들여다보면, 그때는 오직 순수한 관찰만 있을 뿐이어서, 관찰하는 사람이 전혀 없이도 투명한 명료함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오직 있는 그대로의 명백한 알아차림이 나타난다. 이런 알아차림은 텅 비고 깨끗하게 순수하며,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명확함과 空性이 둘이 아니며, 진실하고 순수한 알아차림이다. 그것은 영구적이지도 않고 그 무엇에 의해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은 명료하고 현존하기 때문에 단순한 허무나 소멸되는 무엇도 아니다.
이러한 다양한 전통은 모든 정신적 내용이 완전히 중단된 공(空, voidness)의 상태를 강조한다. 알아차림은 생생하게 나타나지만, 그것에는 어떤 지각적 형태도, 생각도 없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삶의 지각 너머, 자아너머, 희망과 두려움 너머에 있는 텅 빈 거울로서의 마음이다.
신비적 경험은 종종 경험자의 인생에서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지각 및 인지 과정과 분리된, 이런 마음의 지속적인 측면을 알아보면, 정서적 평온을 지속시키고 웰빙을 향상시킬 것이다.
-<생명 그 자체의 감각 The Feeling of Life Itself> 의식의 본질에 관한 과학적 탐구, 크리스토퍼 코흐 p223~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