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날마다 더욱 더 좋은 날 되소서)
심완 박전상환
1.
오늘은
어제보다
더 나은(又日新) 하루이길
날마다 변화(多變化)하고
한 걸음 더 진보(進步)하며
후회(後悔)도 미련도 없이
최고 최선
다하는
2.
완성(完成)된 삶이 아닌
노력(努力)으로
개척(開拓)하고
미지(未知)의 꿈과 희망(希望)
내일(來日) 향해 땀(汗) 흘리며
스스로(自己)
자신(自身)의 삶(生)을
창조(創造)하는 성실함
3.
실패(失敗)와
좌절(挫折) 속에
절망(絶望)을 이겨내며
오늘(今日)은 어제(作日)보다
더 좋은 하루(日日是好日)이길
고난(苦難)과 고통 속에도
아름답게
꽃 피길
ㅡ 마음그릇 心椀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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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날마다 더욱 더 좋은 날 되소서)
마음그릇 心椀 박 찬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이라는 말(文章 聖語)은
운문 문언(雲門文偃, 864~949) 선사(禪師)가
던진 화두(話頭) 가운데(中)
하나이다.
운문(雲門) 선사는
중국 당(唐)나라 말에서
오대를 거쳐
북송(北宋) 초까지 활약한
선승(參禪僧)으로
속세간명(俗名)은
광진 대사(匡眞大師)
라고도 하는데
법명(法名)은
문언(文偃)이고
운문종(雲門宗)의 개창조
창시자이다.
운문 선사는
선불교(禪佛敎)에서
가장 뛰어난 화두(話頭)를
가장 많이 창조(創造 법설)한
조사(祖師)로서
유명한데
화두(話頭,
본참화두 공안(空案))는
조사(佛, 祖師)가
제자(佛弟子 수행자)를
깨달음의 길(無上正等覺道)로
가르쳐 인도(引導)하며
이끌기 위해 만든
상징적이고
교훈적(敎訓的)인
고도의 교육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데
운문 선사가
제시(題示)한 화두(話頭)로는
특히
《간시궐(乾屍厥,
마른 똥 막대기》라는
화두(話頭,
공안(空案))가 유명하다.
어느 학승(學僧 수행승)이
운문 문언(雲門文偃) 선사에게
“
부처(如來佛 세존)란 무엇입니까 ?
여하시불(如何是佛) ?
”
라고 물었을 때
이에 대한
운문 선사의 대답(答說)이
바로《간시궐(乾屍厥,
마른 똥 막대기)》이었다.
흔히 우리는
진리(眞理)는 성(聖)스럽다고만
생각한 나머지
성(聲)스러운
커튼(장막, 관념)에 가려서
진실(眞實)을
제대로 바로 보지 못하고(不觀)
간과 할 수가 있다.
"
저 말(說法)은
그 무슨 똥 막대기 같은
소리인가 !
"
충격적인 이 말은
진리(眞理)는 성(聖)스럽고
고귀高貴)하다.
"
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마음의
문(心 靈魂 門)을
열게(초발심) 해주고
아뇩댜랴삼먁샴보리
(阿耨多羅三藐三菩提)
anuttara samyak sambodhi
즉,
위 없는깨달음
무상등정각(無上正等覺)을
성취(成就 이루어 나아감)하여
얻게(수지 득지) 해 주기 위한
화두(話頭)였다.
이처럼
운문 문언(雲門文偃,
864~949) 선사(大禪師)
말씀 모음 어록(語錄)의
특색(特色)은
상대방(相對方 수행자)
질문(質問)의 포인트를 잡은
간단명료(簡單明了)한
어구(語句)에 있음을 알수 있다.
그러한
해탈지견(解脫智見)의
운문 선사(雲門文偃 禪師)
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어록(語錄)을 남기는 것을
철저히 거부했다고 한다.
그의 설법(雲門說法)은
흘러가는 구름(流雲)과 같이
막힘(장애)이 없었지만
누가 그 것을 남겨서
기록(記錄)이라도 하려고 하면
반드시
야단(호통)을 쳐서
기록을 하지 못하게 했다고
전(傳)해져 온다.
그런데
그의(雲門文偃 禪師)
제자(法弟子) 가운데(中)
한 사람이
자기 옷자락에
설법을 몰래 받아 적어서
어록(語錄)의 일부나마
오늘 날에 전해져 온 것이다.
그래서
저서(著書)는 따로 없고
그(雲門 禪師)의 말(說法)을
기록(記錄)한
[ 운문광진선사광록
(雲門匡眞禪師廣錄) ]이
전(傳承)해져 왔다.
각설(各說)하고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이라는 말(文章 聖語)의 본뜻을
알기 위해서는
그 어원(語源)을
살피고 헤아려보아야 한다.
선가(禪家 선종)에는
《일전어(一轉語)》라고
하는 말이 있다.
선사(禪師,
선종의 큰 스승)가
거두절미(巨頭絶尾)하고
단 한마디
말(화두, 공안)로써
미혹(迷惑,
망령된 유혹)을 깨부수고
심기(心氣 마음의 기운)를
일전(一轉 하나로 전환)시켜서
전미개오(轉迷開悟,
미혹된 마음을 깨우침)하도록
하는 법문(法問)이다.
이러한 선사(禪師)
또는 불조사(佛, 祖師)들의
선문답(禪問答 묻고 답함)과
가르침(敎義)들이
공안(空案)
화두(話頭)로
하나 둘 모아지고 이루어져
쌓이고 또 쌓여져서(累積)
편집(編集)되었다.
바로 그 것이
선어록(禪語錄 선종)의
가장 백미(白眉 최고봉)로서
손 꼽히는
《벽암록(碧巖錄)》이다.
"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날마다 더욱 더 좋은 날 되소서)
"
라는
화두(話頭 공안)도
바로《벽암록 제6칙》으로
등장한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섣달 보름날 법회(法會)에서
대중(娑婆大衆)에게
새해 선물(新年選物)로 준
다섯 글자로 된 법문(法問)이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이였었다.
이 말(文句, 구절)이 나오는
문장(文章)을 옮겨 적어보면
"
「雲門垂語云
十五日已前不問汝
十五日已後道將 一句來
(自代云)
日日是好日
즉,
보름 전(15일 앞)의
일에 대해서는 너(汝)에게
묻지 않겠다.
보름 후(15일 뒤)의
일(현실)에 대해 말해보라.
(스님이 스스로 답했다)
날마다 더욱 좋은 날이 되리라.
"
한문에서
똑같은 글자(同字)가 겹치면
복수(覆數 두가지 이상의 뜻)의
의미가 된다.
따라서
《일일(日日)》은
《날이면, 날마다》이고
《호일(好日)》은
《좋고, 좋은 날》
즉,
한자로《길일(吉日)》
혹은《생일(生日)》을
가리키고
《시(是)》는
《바로 ○○이다》
라는 뜻이 된다.
생일날(誕日)은
왠지 기분이 상승하여 좋고,
즐겁게 잘 먹는 날이므로
날마다 생일(誕日)이라고
생각하고 해석해도 되는 것이며
《날마다 즐거운 날 !》
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운문 문언(雲門文偃,
864~949) 선사(禪師)가
위와 같이
여러 대중(一切大衆)들에게
말(說法)을 했으나
미처
아무도 대답(對答)을
하지 못하므로
스님(雲門文偃 禪師)께서
스스로 답(問答 묻고 답)하기를
“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날마다 더욱 좋은 날이 되리라)
”
이라고 전(傳)했다는 것이다.
이 것을
현대적(現代的)으로
재해석(再解釋)해서
본인(作者, 필자 本人)의
개인적(個人的) 설명(說明)을
덧붙인다 하면
"
시간(時空間,
즉, 찰나, 순간, 세월)은
흐르는 물(流水)처럼
끊임없이
흘러가고 변화(變化)하며
무상(無常)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나간 시간(時間)이나
공간(空間)
이미 지나간 일(過去事)에
몰두하고 집착(執着)해 봐야
자신에게 남는 것은
아쉬움의 미련(未戀)과
고통(苦통)일 뿐이다.
"
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하므로
“
십오일기전 불문여
十五日已前 不問汝
보름 전의 일은
너에게 묻지 않겠다.
”
라는
운문 문언(雲門文偃,
864~949) 선사(禪師) 스님의
말씀(說法)의 본뜻(本意)은
단순히
이미 지나간 과거(過去)를
버리라는 것(捨, 放下着)이
아니라
그 과거에 집착해서
현재(現在)와 미래(未來)를
망(妄 허물음)쳐서는 안 된다는
뜻과 의미(意味)가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날마다 더욱 더 좋은 날 되소서)
"
라는
말(文章) 속에 담긴
깊고 깊은
오묘(奧妙)한 뜻과
본래 의미(意味)가
되는 것이다.
여시아문(如是我聞)
나는 이와같이
보고 듣고 배웠다.
- 終 -
강원도 정선 동강 변
별빛총총한
초가삼간두옥
묵우당(墨友堂 글벗터)에서
우바새(優婆塞)
마음그릇 心椀 박 찬
(박전 상환)
두손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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