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30-37
악녀 이세벨 왕후의 최후 / 한서노회
1,교만과 미모의 비참한
2,인간의 위대함의 허무성
3,하나님의 말씀의 무오성
오늘 우리는 30-37절의 말씀을 통하여 철두 철미하게 악한 여자였던 이세벨의 비참한 최후를 보게 된다.
이 이세벨의 비참한 최후가 그녀가 저지른 죄의 결과임을 보면서 그것을 보는 우리들은 이세벨의 길을 가지 말아야 할 것이다.
1,교만과 미모의 비참함
교만한 왕비 이세벨은 끝까지 그의 ㄱ만함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그녀의 육체적인 미모를 끝까지 자랑하고 싶었다.
30절에 "예후가 이스르엘에 이르니 이세벨이 듣고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창에서 바라 보다가"
지금 예후가 새로운 왕이 되어서 이세벨의 일당을 무찌르기 위하여 달려오고 있는데 그 장본인인 이세벨은 예후가 온다는 전갈을 듣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1),눈을 그리고
자기를 죽이겠다고 예후가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하고 있는 이세벨의 준비는 그녀의 요염한 눈을 그리는 일이었다.
이 눈 화장은 옛날 Egypt에서부터 있어 온 일이다.
2),머리를 꾸미고
당시 외비들의 머리 꾸밈은 대단했다.
요지음에도 여인들이 미장원에서 머리 손질을 하는데 들어 보면 참으로 종류도 많고 단 한 번에 몇 십만원씩 하는 머리 손질이 많은 것을 본다.
물론 특별한 연예인들이나 귀빈들의 경우는 그것을 돈의 액수로 따질 수도 업을 만큼 엄청나다.
지금 하나님의 사람의 명을 받은 예후가 무었을 하기 위하여 이세벨을 찾아 오고 있는 것인가?
이세벨의 최후를 고하기 위하여 아니 이세벨의 잔당을 청소하기 위하여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람이 자기의 최후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도 무한한 축복 중에 하나이다.
지금 악하게만 살았던 이세벨에게 최후를 알리는 최후의 통첩이 파발을 통하여 전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세벨은 무엇을 했어야하나?
우리는 신약 성겡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 영감을 알고 있다.
그는 하로의 일을 최선을 다하여 아주 열심히 일을 했다.
그 결과 그해의 농사는 대 풍을 이루었다.
그래서 작은 창고들을 헐고 새로운 큰 창고를 지었다.
수확한 모든 알곡을 창고에 다 채웠다.
얼마나 장한 농군인가?
이 사람에게서 잘못한 부분이 무엇인가?
눅12;19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또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였으니"
이 부자도 자기의 영혼을 조금은 걱정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무었이 그의 영혼을 위한 준비인 줄을 알지 못했다.
자기가 열심히만 살면 그것이 자기의 영혼을 위한 것이 되리라고 믿었다.
그래서 부지런히 일했꼬 또 많은 것을 거두어 들였다.
그런데 성경은 그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눅12;20절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그런데 지금 본문에 이세벨은 무었을 하고 있는가?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있었다.
이세벨이 지금 이렇게 하고 있었음은 너무나도 당연한 처사였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세벨이 어떻게 살아 왔는가?
그녀가 평소에 아합을 대할 때 어떤 모습으로 대해 왔는가???/
아니 평소에 사람들을 대할 때나 어떤 일들을 처리해 갈 때 그녀의 방법은 무엇이었나?
오직 그녀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미모를 압세워 아합 왕을 한 손에 검어 쥘 수가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그녀는 평소에 한 번도 남에ㅔ 머리를 숙이는 것을 배워 보질 못한 사람이었다.
사람들에게 인사나 환영이나 받았지 한 번도 굽실거려 보지 못한 여인이었다.
그녀에게 결코 겸비한 모습이 있을 리 없었다.
다시 말해서 그녀에겐 회개의 경험이 전혀 없었던 여자인지라 그녀가 죽는 최후의 순간에도 그녀의 일생에대한 뉘우침이라든지 영혼의 준비가 될 수 없었음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육체를 위한 삶이 필연적인 것이나 그 필연적인 육체가 무엇을 위하여 있나를 아는 것은 더 우선하는 문제인 것이다.
이세벨!
얼마나 회개해야할 것이 많은 여인인가?
그녀의 손에 피흘리며 죽어간 선지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것만 ...
그 주어지는 기회를 끝까지 육신을 치장하는데 모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2,인간의 위대함의 허무성
31절에 "예후가 문에 들어오매 가로되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
이 말은 지금 이세벨이 예후를 향하여 하고 있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가 아니라 예후여 라고 했어야하는데 지금 그런 것들을 설명할 시간이 없다.
이 말의 뜻은 왕상16장에 사건을 빗대어 이세벨이 예후에게 하고 있는 말이다.
그 내용인 즉 바아사의 아들 엘라가 이스라엘을 통치한지 2년이 된던 해에 어느날 취해서 디르사라는 사람의 집에 있을 때 군대 장관이었던 시므리가 나타나 엘라를 죽이고 왕이 된다.
그러나 그나 왕이 된지 7년이 되는 해에 유혈혁명이 일어나 시므리는 왕궁을 불지르고 자기는 거기서 자살하고만다.
그러니 이세벨이 예후를 보고 너도 시므리와같은 처지가 되겠는가라고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이세벨의 말에서 발견되는 것은 남들이 한 것에 대하여는 기억을 잘하면서도 자기가 어떻게 남에게 했는 것인가에 대하여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게된다.
사람들에겐 남의 잘못은 오래 기억을 하면서도 자기 자신의 과오에 대해서는 너무나 관대한 것을 발견한다.
그러나 저러나 지금 이세벨은 그런 것들을 논하고 따질 때가 아니다.
아직도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
지금도 예후는 창밑인 썽 밖에 있고 이세벨은 성위인 이층방에서 예후를 내려다 보고 있다.
그런데 이세벨은 자기의 영혼의 장래를 생각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
왜/
평소에 한 번도 영혼의 준비를 해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세벨의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예후는 사람들에게 명하여 이세벨을 창에서 던지라고 했다.
32-34절 --- 35절을 다 같이 ..."가서 장사하려 한즉 그 두골과 발과 손바닥 외에는 찾지 못한지라'
참으로 위대하다고 생각 했던 한 사람의 최후가 비참하다.
누가 이세벨이 이렇게 죽을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렇게 위풍당당하던 이세벨 ~!
한 나라에 왕이 있었지만 나라를 온통 한 손에 쥐고 천하를 호령하던 이세벨인데 ...
하나님의 선지까지라도 마음대로 살해했던 권력자인 이세벨인데...
35절에 남은 것이 무엇인가?
두개골
발
손바닥
이것들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눈을 그리고 꾸미던 구개골인데 불과 순식간에 이지경이 되고 말았다.
들개들이 시체를 먹어 치울 때 남겨둔 것이 발과 손바닥이었다.
아마도 들개인 짐승들조차도 이세벨의 그 손과 발은 더럽고 추했던 모양이다.
이세벨의 악한 계획만을 일삼던 그녀의 두개골 무고한 사람을 치던 악한 그녀의 손 남에 것을 마구 해치고 짓 밟던 악한 그녀의 발. 이런 것들은 들짐승까지도 실어했다.
이세벨의 죽음이야말로 지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극 중에도 가장 끔직한 비참상이다.
3,하나님의 말씀의 무오성
36-37절에 "돌아 와서 고한대 예후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그 종 디셉 사람 엘리야로 말씀하신 바라 이르시기를 이스르엘 토지엣 개들이 이세벨의 고기를 먹을지라" "그 시체가 이스르엘 토지에 거름같이 밭 면에 있으리니 이것이 이세벨이라고 가리켜 말하지 못하게 되리라 하셨느니라"
이 말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야를 통하여 전에 아함이 살아 있을 때 한 예언이다.
왕상21장에 나봇이란 사람이 왕궁 앞에 좋은 포도 밭을 가지고 있었다.
아함왕은 이 포도 밭이 탐이나 그 아내의 악한 책략으로 나봇을 모함하여 살해하고 차지한다.
그때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야를 왕에게 보내어 오늘에 있을 일들을 미리 예언 하셨던 것이다.
이 예언을 아합과 그의 왕비인 이세벨이 들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사람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들었다.
아니 괘씸하게 들었다.
자기를 위한 것으로 듣지 않고 악한 말로 들었다.
그리고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그 하나님의 예언이 일점일획도 틀립이 없이 성취되고 있다.
사람들이야 대수롭게 여기든지 또는 그 말을 믿든지 말든지 관개치 아니하고 하나님의 예언은 정확하게 성취되고 있다.
오늘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어김 없이 전달되고 있다.
여러분들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먼저 생각하는게 무엇인가?
이세벨은 끝까지 그의 외모를 다듬었다.
이세벨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다.
이세벨은 비참한 최후를 당했다.
이것들이 모두 이세벨이 심은 죄의 열매들이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는 사람들에게 보일려고 나를 꾸미고 장식하지 말고 신랑이신 주님을 위하여 영적인 단장을 해야 하겠다.
우리는 인간의 위대함만을 추구하지 말고 인간의 허무가 무엇인지를 알아야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반듯이 성취된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이세벨은 그녀의 한 평생 육신의 만족은 얻었는지 모르지만 결국은 시체도 매장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더 주요한 것은 그녀의 갈 곳 없는 영혼의 비참함이다.
이세벨의 간 길을 아는 사람은 평소에 겸손하게 산다.
평소에 회개하면서 산다.
평소에 영혼을 위한 준비를 한다.
그래서 주님 오시는 그 날 등불을 밝히 밝히면서 주님 마중을 나간다. 아멘
출처 한서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