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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강, 평화를 담다!
여행개요
ㅇ 언 제 : 2022. 10. 12(수) - 10. 13일(목)
ㅇ 누 가 : ‘그그들’ 4명
ㅇ 어 디 : 남해나들이 / 진주, 남해, 하동일원
ㅇ 날 씨 : 맑음
ㅇ 여 정 : 진주성 – 사천케이블카 – 대방진굴항 – 독일마을 – 보물섬 전망대 – 돌 창고 프로젝트 – ‘최’참판(동정호)
여행앨범
1일차(10. 12)
가을나들이
가을입니다.
내자(內子)의 병환으로 좀 움츠렸더니, 콧구멍에 바람 안 쏘이느냐고 아우성입니다.
그러나 막상 움직이려니 이런저런 이유로 함께 하기 어려운 이들이 많습니다.
조촐하게 4명이서 모처럼 괴나리봇짐 둘러메고 길 떠납니다.
쌩~ 가을바람을 가릅니다.
고속도로표지가 진주가 가까움을 알리자 맑은 하늘만큼이나 마음도 들뜹니다.
시원한 남강 물줄기 따라 경남 진주의 매력적인 풍경 속으로 빠져듭니다.
오찬
식후경(食後景)입니다.
비빔밥 먹을까하다가 그래도 모처럼 내려왔기에 몸보신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공북문 주차장에 Parking하고 바로 앞에 있는 ‘유정’장어식당을 향합니다.
지역에서 꽤 유명한 장어요리 식당으로 반세기에 걸쳐 많은 사랑을 받는 집구석이라네요.
청정해역에서 잡은 장어를 손질하여 연탄불에 초벌구이 해서 나오는데, 깔끔한 장어탕에 뿅 갑니다.
꺼억~ 잘 먹었습니다.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보무당당하게 진주성으로 입성합니다.
진주성(공북문)
남강(南江)과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는 명소 진주성(晋州城, 사적 118호)입니다.
고려말기부터 왜구침범에 대비하여 쌓은 토성이라는데요, 조선시대(1591년) 경상관찰사를 지낸 ‘김수’가 확장 증축했으나 임진왜란(1593년)땐 함락되어 흔적이 많이 지워졌답니다.
정문격인 ‘공북문(拱北門)’으로 들어섭니다.
공경하는[拱] 마음으로 임금계시는 북쪽을[北] 향해 손을 모은다는 뜻이랍니다.
왜란 때 백성을 버리고 도주한 임금이었거늘 받들어 숭상할 만큼 민초들은 착했습니다.
성곽둘레 1,760m, 높이 5~8m로 성안에 많은 유적들이 있습니다.
1925년까지는 경남도청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죠.
시간을 거슬러 과거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 드는데요, 전통미가 가득 느껴지는 건축물들과 남강이 어울려 발 닿는 곳마다 아름다운 풍경이 감탄을 자아냅니다.
진주대첩기념광장
촉석문(矗石門)과 함께 ‘진주대첩기념광장’이 드넓게 펼쳐집니다.
임진왜란 때 6일간의 진주성대첩(1차)에서 왜군을 격퇴하고 순절하신 충무공 ‘김시민’장군전공비(경남유형문화재 1호)와 2차 진주성전투(1593년) 때 순국한 7만여 군관민의 호국영령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계사순의단(癸巳殉義檀)’이 눈에 들어옵니다.
진주성대첩은 1592년 10월 진주목사였던 ‘김시민’ 지휘아래 3,800명 관민이 일본군 5만을 격퇴시킨 영광의 승전이었습니다.
공성전(攻城戰)에 능했던 왜군도 견고한 성벽을 뚫진 못했다는데요, 이듬해 6월 앙갚음을 위해 다시 10만 대군으로 진주성을 공격합니다.
창의사 ‘김천일’을 비롯한 1만여 조선군은 10배가 넘는 왜군에 맞서 무려 열흘 가까이 버텼지만, 결국 외성 동쪽이 무너지면서 함락되고 5만여 군민(軍民)은 몰살됩니다.
당시의 비참함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완전복원을 통해 진주성의 힘찬 부활을 기대하는데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기 때문입니다.
촉석루
진주성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촉석루(矗石樓, 경남문화재자료 8호)’입니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누대로 강 가운데 돌이 우뚝 솟아 붙여진 이름인데, ‘남장대(南將臺)’ 또는 ‘장원루(壯元樓)’로도 불렸답니다.
1241년에 세워져 여러 차례 중수했으나, 임진왜란 때는 완전 소실되기도 했습니다.
부벽루(평양), 영남루(밀양)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중 하나인데요, 남강(南江) 바위벼랑 위에 도도하게 솟아 아름다운 자태를 뽐냅니다.
진주의 상징이자 영남제일의 명승으로 전시엔 군사를 지휘하던 지휘본부였고, 평시엔 향시(鄕試)를 치루거나 선비들이 모여 풍류를 즐겼습니다.
4개의 현판과 시인묵객들의 시판이 걸려있습니다.
매년 가을 진주성에서는 '진주남강유등축제'가 열려, 독특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곳입니다.
여전히 진주의 얼을 상징합니다.
의기사와 의암
‘논개’의 영정과 신위를 모신 ‘의기사(義妓祠, 경남문화재자료 7호)’도 있습니다.
진주성이 함락되자 나라의 원한을 갚기 위해 왜장을 촉석루 아래로 유인하여 함께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한 절벽에 작은 섬처럼 떠있는 ‘의암(義岩, 경남기념물 235호)’을 내려다봅니다.
위험하다하여 ‘위암(危巖)’으로도 불렸다는데, ‘논개’의 의로운 행동을 기려 ‘의암(義岩)’이라 부른다죠.
‘논개’가 껴안고 남강에 투신자살했다는 일본장수는 기실 일본규수에서 사망했다는데, 왜 이런 Fiction이 생겼을까요?
임진왜란이 끝나자 진주지역 탐관오리들이 선조에게 하사금을 받아내기 위해 벌인 촌극이란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진주성전투의 화신인 ‘김시민’장군보다도 더 많은 세금을 들여 성대한 추모식까지 벌리며 여전히 ‘논개’를 실존인물로 굳게 믿고 신봉합니다.
그러나 Fact가 아닌 내셔널리즘(Nationalism)이라 해도 우리는 그 의로운 충절 앞에 절로 고개를 숙입니다.
저 멀리 진주다리엔 ‘논개’가 껴안은 적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열손가락에 끼었던 가락지를 상징하는 황금색 Ring도 보입니다.
최근 좌파들이 다시 친일 Frame을 내세워 정쟁을 일삼고 있습니다.
곧 죽창과 함께 ‘논개’를 소환해낼지도 모릅니다.
정신 바싹 차려야 합니다.
진주남강 유등축제
진주성 남강일원에서 유등(流燈)축제가 한창입니다.
매년 가을에 열리는데, 올해는 10월 10일부터 31일까지 개최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전투에서 왜군이 강을 건너는 것을 저지하고,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기 위해 남강에 등을 띄운 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꽤 오랫동안 개천예술제 부대행사의 하나로 각종 등(燈)을 전시하며 조촐하게 진행됐으나 2002년 독립하여 2010년에는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되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5년 연속 대한민국 Global 육성축제로 선정된 명품축제입니다.
천년역사의 남강에 평화를 담았습니다.
전국의 많은 축제 중 으뜸으로 꼽히는 축제답게 다양하고 흥미로운 행사들이 많다는데, 그동안 기회가 닿질 않았습니다.
밤이면 국난극복의 겨레 얼이 도도한 남강과 진주성 일원에 세계평화와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등불을 밝힙니다.
유등축제는 오늘날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화합과 상생의 꽃으로 우리들 마음 깊이 자리했다는 평입니다.
촉석루와 진주다리의 유등이 남강모습과 어울리면 무척 아름답다는데, 야간까지 체류하지 못해 무척 아쉽네요.
진주성전투
진주 남강(南江) 성벽 따라 천천히 걸으며, 진주성전투를 생각합니다.
시신이 촉석루에서부터 남강 북안에 이르기까지 가득하게 쌓일 만큼 처절한 기억을 간직한 진주성입니다.
처참하게 살육당한 원한을 간직한 남강이지만, 촉석루와 함께 펼치는 가을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습니다.
천천히 걷다가 발아래 낙엽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잠시 멈추니 푸른 강물에 담긴 구름도 따라 멈춥니다.
진주성 서문지휘소인 ‘서장대(西將臺, 경남문화재자료 6호)’는 작지만 촉석루와 같은 다락집이었다는데, 지금은 허술합니다.
임진왜란 때 승병의 근거지로 2차 진주성전투에서 순국한 승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호국사’도 보입니다.
순절한 분들의 신위를 모시기 위해 건립된 사당 ‘창렬사(彰烈祠, 경남문화재자료 5호)’엔 ‘김시민’장군을 비롯하여 삼장사 등 39신위를 모셨답니다.
진주성의 북쪽 지휘소격인 ‘북장대(北將臺, 경남문화재자료 4호)’도 당당합니다.
진남루(鎭南樓)란 편액이 눈에 들어오는데요, 내성 북쪽 끝 제일 높은 곳에 있어 낭떠러지 밑의 성 밖은 물론 성내와 외성에 포진한 성병(城兵)까지 지휘하던 곳이랍니다.
굴욕적 역사를 간직한 진주성(晉州城) -.
임진왜란 때 함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위정자가 어리석으면, 나라가 망하는 동서고금의 진리를 일깨워주는 듯합니다.
포정사
망미루(望美樓)라고도 불리는 영남 ‘포정사(布政司, 경남문화재자료 3호)’입니다.
1618년(광해군 10년) 창건해 경남관찰사 감영의 정문이었는데, 옮기기 전까지 경남도청의 정문이기도 했다는군요.
높이 7m의 ‘김시민’장군 동상이 늠름하게 서있습니다.
호국충절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건립했다는데, 지금도 나라걱정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진주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은 많습니다.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이 말해주듯 군량보급지인 전라도지방을 지키는 길목으로 조선과 왜의 다툼이 치열했고, 1862년 전국적인 농민항쟁의 시발점이 된 진주농민항쟁 등 큰 사건만 해도 부지기수입니다.
삶과도 가까운 진주성은 일상의 공간에서 걸어서 쉽게 닿을 수 있는데요,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때로는 축제의 현장으로 이방인을 반깁니다.
삶터에 역사와 문화가 깃든 풍광이 있는 성곽이 존재한다는 것은 큰 행운입니다.
낙엽들이 자꾸 눈에 들어옵니다.
푸르게 피어 있느라 고생했고, 떨어지면서 아름다운 빛깔을 내느라 수고하니까요.
사천바다 케이블카
이젠 진주를 벗어나 삼천포로 빠집니다.
사천바다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도착한 ‘대방’정류장입니다.
대부분의 케이블카는 산이나 바다를 잇는데, 사천은 섬(초양도)과 바다(한려수도), 그리고 산(각산)을 잇는 케이블카입니다.
2018년 4월에 개통됐는데요, 섬과 연결된 ‘여수’케이블카와 산과 이어진 ‘통영’케이블카의 장점을 합쳐 개통과 동시에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푸른 바다를 건너는 짜릿함은 물론 한려수도의 환상적인 전망 등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3개의 정류장(대방, 초양, 각산)에 승하차 시스템을 적용하여 총길이 2.43km를 다양하고 Dynamic하게 즐길 수도 있습니다.
한 바퀴 돌아오는 개념이기에 탑승시간도 25분 걸리는데요, 816m 바다구간을 최고높이 74m에서 아찔하게 관람할 수 있습니다.
‘대방’정류장에서 출발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초양’정류장에서 U턴하며 바라보는 초양도, 늑도, 신도, 박도, 두응도, 마도는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입니다.
사천시와 남해군을 연결하는 창선삼천포대교 5개다리(삼천포, 초양, 늑도, 창선, 단항)도 장관이네요.
4년 만에 다시 보는 풍경인데요, 여전히 멋집니다.
각산
‘각산’정류장에서 하차하여 각산(角山, 408m) 정수리를 둘러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섬과 바다를 보면서 탄성을 지르는 곳입니다.
적의 침입을 중앙에 알리는 위한 봉화대(烽火臺)를 복원해 놓았습니다.
예전 산행 때를 추억하며, 사천주변을 조망합니다.
삼천포항과 실안동이 말발굽처럼 둘러싸고 있는 풍경이 그림입니다.
산악회 때 참 많이도 들렸었는데요, 그때 그 시절 그리운 그 사람들은 다 어디에서 어떻게 지낼까요?
‘대방’정류장으로 복귀하여 주변을 두리번거립니다.
‘실안’낙조는 일몰명소로 전국에서 손꼽히는 곳인데요, 이곳 전망대에서 낙조를 상상합니다.
예전에 비눗방울을 뿌려줄 땐 마치 동화속의 풍경 같았습니다.
윤슬 반짝이는 바다풍경을 마음속에 담습니다.
만찬
후배가 운영하는 ‘밀 포드’모텔을 찾아 '창선'도로 왔습니다.
바쁜 후배 대신 제수씨와 그동안의 안부를 묻습니다.
방 배정 후 화려한 만찬을 위해 ‘단항’회 센터로 이동합니다.
싱싱한 해산물이 군침 돌게 만듭니다.
횟집주인이나 서빙 아줌마들의 밝은 호의에 덩달아 기분이 Up -.
거나하게 한상 받았습니다.
마침 달빛도 밝네요.
숙소에 들어와 시원한 맥주로 뒤풀이합니다.
Good night~♡
2일차(10. 13)
대방진굴항
남해의 태양이 창문을 두드립니다.
아침식사를 위해 어제 건넜던 창선삼천포대교(昌善三千浦大橋)를 건너 다시 삼천포로 나갑니다.
5개 교량이 3개(늑도, 초양도, 모개도) 섬을 디딤돌삼아 사천시 삼천포와 남해군 창선도를 이어줍니다.
1995년 2월 착공하여 2003년 4월 개통된 총길이 3.4km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단골로 선정되는 아름다운 다리입니다.
우럭매운탕으로 쓰린 속을 달했는데요, 식당은 허술해 보여도 펄떡펄떡 뛰는 우럭 맛에 탄복했습니다.
예까지 왔으니 대방동에 위치한 ‘대방진굴항(大芳鎭掘港, 경남지정문화재 93호)’을 잠시 디다 보고 가기로 합니다.
수령 200년의 팽나무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숲 가운데 만들어진 인공항구인데요, 연안을 빈번히 침범하던 왜구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 만든 군항시설 ‘대방진(大芳鎭)’이 있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밖에서 볼 때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설계된 군사기지인데요, 왜구침공 시 물리치기 위해 수군만호(水軍萬戶)가 주둔하고 있었다죠.
현재의 ‘굴’항은 조선시대 말기에 수천의 인부를 동원하여 둑을 쌓아 1820년경에 완공한 것으로 300여의 수군과 전함 2척을 상주시켜 왜군의 침공에 대비했답니다.
해군출신이기에 관심 있게 둘러보지만, 육군출신들은 시큰둥합니다. ㅎ
독일마을
이젠 남해도를 더듬을 차례입니다.
조선시대엔 유배지였다지만, 지금은 빼어난 자연환경과 인문학적 유산을 간직한 아름다운 경관에 볼거리와 먹거리가 넘쳐나 ‘보물섬’이란 닉네임이 붙은 곳입니다.
삼동면 물건마을에 자리한 ‘독일(獨逸)마을’입니다.
붉은 지붕이 꽤 이국적이네요.
병풍처럼 마을을 감싸는 뒷산이 북풍을 막아주고 앞쪽해안은 반달모양 방풍림이 해풍을 막아줘 살기 좋은 길지로 알려졌는데요, 1960~1970년대 독일로 떠난 광부와 간호사들이 은퇴 후 돌아와 정착한 곳입니다.
1963년 12월 광부 247명을 시작으로, 1977년까지 8,000여 광부와 11,000여 간호사들이 서독으로 떠났습니다.
빈곤하던 시절 독일 가서 열심히 일해 받은 월급은 몽땅 고국으로 송금되어 가난에 찌든 부모형제자매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었을 뿐 아니라, 외화부족에 허덕이던 조국에도 크게 기여해 전후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황정민)’와 ‘영자(김윤진)’가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독일마을은 경제발전에 헌신한 독일교포들이 고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터전을 제공하고, 이국적인 독일문화를 체험하는 관광지로 개발키 위해 2001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했습니다.
파독전시관을 둘러보고 나오니 하얀 벽과 붉은 기와지붕의 그림 같은 독일식 건물들이 눈에 띠는데요, 옛날 그들의 설움에 앞서 이국적인 분위기에 감탄합니다.
펼쳐지는 남해바다와 묘한 조화를 이루는데요, 소박하고 아름다운 물건포구 풍경에 한마디씩 합니다.
“물건 참 좋다~1” ㅋ
정성스럽게 꾸민 약 5만평 대지에 다양한 테마정원 ‘원예예술’촌도 구경합니다.
집안엔 들어갈 수 없지만, 자유롭게 드나들며 사진을 찍어대도 됩니다.
독일마을은 이제 관광남해를 견인하는 핵심관광지가 되었다죠.
한국에서 독일 만나기 성공~! ㅎ
보물섬전망대
대한민국에서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 손꼽히는 물미해안도로 따라 이동합니다.
이 길가에 물미해안전망대라고 불리는 ‘보물섬전망대’가 2019년 12월 문을 열었습니다.
탁 트인 바다를 배경으로 짜릿한 재미를 맛볼 수 있다기에 잠시 멈춥니다.
등대를 형상화한 건축물로 멀리서 보기에도 탁월한 위치에 들어서있어 이미 젊은이들 사이에 Hot한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다죠.
원통형구조로 되어 파노라마 바다전망을 자랑하지만, 내부에서 바라보는 바다모습은 초호화 고급크루즈를 탄 기분이라는군요.
1층 gallery는 유자와 멸치 등 남해특산물을 전시판매하고, 풍광이 일품인 2층 카페에선 향긋한 커피마시며 탁 트인 남해를 바라보는 곳입니다.
3층 옥상정원은 야외 카페공간입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옥빛 바다풍경도 그림이지만, 이곳의 백미는 유리바닥을 와이어에 의지해 걷는 스카이워크 체험입니다.
카페 외벽을 돌아가며 설치한 난간을 걷도록 만들었다는데, 찻값이 만만치 않습니다.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며 서둘러 내려옵니다.
요도(尿道) 약한 늙은이들의 비애입니다. ㅋ
멀리서 물살을 가르며 달려오는 배에 물끄러미 시선만 주다가 밥 먹으러 이동합니다.
아~ 늙음의 안타까움이여~!
오찬
남해에는 향토음식인 멸치횟집들이 많은데, 전복요리 음식점인 ‘녹진정’을 찜했습니다.
창문 밖으로 죽방렴(竹方廉, 명승 71호)들이 보입니다.
일종의 원시어장으로 물살 빠르고 수심 얕은 갯벌에 길이 10m쯤 되는 참나무기둥을 박은 뒤 대나무를 V자형으로 엮어 만든 그물인데요, 어살이 2019년 국가무형문화재(138-1호)로 지정되었답니다.
이제 거의 사라졌지만, 이곳 창선면과 삼동면 사이 지족해협 물목에 남아있습니다.
물때를 이용하여 고기가 안으로 들어오면 가두었다가 건지는 재래방식으로 이곳에서 잡힌 생선은 탄력성이 높아 최고의 횟감으로 손꼽힙니다.
녹진정은 View 예쁜 남해 맛 집으로 꽤 알려진 곳인데요, 울 노인네들은 시큰둥합니다. ㅎ
전복칼국수를 하려다가 이왕 왔으니 비싼(^^) 전복죽을 시켰습니다.
해물 모듬도 먹을까 생각했는데, 표정들을 보고는 포기했습니다.
멸치죽방이 보이는 시원한 바다에서 즐긴 멋진 오찬이었습니다. (나만 ㅋ)
호응도가 낮아 ‘미조드라이브’와 ‘설리’스카이파크도 생략했습니다. ㅎ
돌 창고 프로젝트
곡식창고였던 돌 창고를 카페와 문화공간으로 개발한 곳 ‘돌 창고 프로젝트’입니다.
1920년대 지은 화강암 농업창고로 폐허였는데, 2016년 문화기획자(‘최승용’)와 도예작가(‘김용호’)가 만나 개발했답니다.
돌로 된 이글루(Igloo) 같은 공간내부로 들어가니 1층은 전시, 2층은 카페입니다.
외관만 독특한 게 아니라 내부도 엄청 독특한데요, 가운데가 뚫려있어 비바람을 그대로 맞게 되어있습니다.
생각보다 좌석이 많지 않아 주말에는 웨이팅(Waiting)을 감수해야 된다는군요.
대표메뉴는 미숫가루와 덩어리 쑥떡인데요, 컵으로 나오지 않고 사발로 나오니까 느낌이 달랐습니다. ㅎ
이걸 요구르트 같은 달콤새콤한 우윳빛 Sauce에 찍어 먹습니다.
쫄깃하고 말캉한 맛이 입안을 기분 좋게 만듭니다.
외관부터 독특한 우뚝 솟은 돌 창고에서 미숫가루와 쑥떡을 먹고 있자니, 사막나라 아지트에 있는 느낌입니다.
젊은이들 속에 낀 노인네들이 돋보입니다. ㅎ
‘이순신 순국공원’에 들리려던 계획도 포기하고, 하동의 ‘최’참판 댁을 아직 보지 못했다는 사람이 있어 들리기로 합니다.
최참판댁(동정호)
지리산자락 형제봉이 병풍처럼 둘러치고, 섬진강이 비단 띠처럼 '무딤이'들판을 적시는 결 고운 고장 '평사(平沙)'마을입니다.
아버지 같은 지리산과 어머니 같은 섬진강을 가까이 둔 동리로 섬진강이 주는 혜택을 한 몸에 받은 땅이라네요.
들녘이 '악양(岳陽)'이요, 평사마을 강변모래밭이 '금당(金堂)'이며, 그 안에 있는 호수가 '동정(洞庭)'입니다.
구한말에서 해방 무렵까지 4대에 걸친 가족사를 통해 민족문제를 일깨워 줬던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土地)'의 주 무대이기도 한데요, 중국(호남)의 아름다운 풍경 8개소를 칭하는 '소상팔경(瀟湘八景) 평사낙안(平沙落雁)'에서 유래되었답니다.
만석지기를 서넛은 낼만하다는 동정호의 넓은 들녘이 내려다보이는 평사 상평마을은 어느 시골처럼 평온한데요, 이곳에 동학혁명에서 근대사까지 5대째 지주로 군림해오다 몰락한 만석꾼 '최'참판 댁이 있습니다.
가을들녘이 참 풍요롭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느림의 미학'이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배어있는 곳입니다.
잠시 효자 총각과 용왕 딸의 러브스토리가 전해지는 '동정호(洞庭湖)'도 들립니다.
백제 의자왕 20년(660년) 나당연합군으로 찾았던 당나라 '소정방'이 자기 고향 땅 동정호수와 흡사하다며 명명했다는 곳입니다.
천천히 머물러야하는 곳인데 어쩌다보니 평사들판의 상징 '부부송(夫婦松)'을 친견할 시간도 없네요.
언제 함 다시 찾아 자연이 호흡하는 속도에 맞춰 느릿느릿 걸어봐야겠습니다.
에필로그
계룡에 도착하여 또 먹어댑니다.
1박 2일 여정이었지만, 남는 건 뽈록해진 배뿐입니다. ㅋ
[먼저 쏘고 나중에 맞혀라.
과녁은 나중에 옮겨도 늦지 않다]
사선(射線)에서는 조준이 정확해야 과녁을 맞힐 수 있습니다.
허나 인생이란 사격장에서는 그러다간 한발도 못 쏘고 내려오기 십상입니다.
평생 조준만하다가 죽은 사람들도 부지기수랍니다.
이는 실패를 자산으로 보지 않는 고약한 사회분위기 탓 때문이기도 한데요, 실패하면 끝이라는 심리가 만연한 결과입니다.
심각한 표정은 버리고, 그냥 발사하면 됩니다.
[문을 나서면, 여행의 가장 어려운 관문은 지난 셈이다]
네덜란드 속담이라는데요, 마음에 새깁니다.
모처럼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 나들이에 나선 이순간이... 그저 행복할 뿐입니다.
가을공기 속에서 보낸 기분 좋은 여정을 마무리합니다.
계획된 일정을 채우지 못했어도 여행자는 늘 행복합니다.
그래서 또 떠날 채비를 합니다.
금욜(10. 14) 아침에 갯바위가
첫댓글 살아있네.
역시 끼꾼의 멋들어진 설명과 사진 돋보입니다.
산악회와는 인연 끊은겨?
보고잡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