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유배문학 「영사(詠史)」 삶의 올바른 길과 절개의 숭고함을 역설하다>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다음 오언절구(五言絶句) 4수(首) 「영사(詠史)」 ‘역사를 읊다’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 선생의 거제도 유배 작품으로, 그의 문집 유헌집(游軒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이 글은 선생이 경술년(庚戌, 1550년 명종 5년)에 거제도 고현동 유배지에서 지은 연작 시(詩)로, 중국 역사 속 인물들(양웅, 위환, 신도반, 순상)의 처신을 빌려와, 당시 을사사화(1545년) 이후 훈구·척신 세력이 권력을 잡고 선비들을 탄압하던 조선 명종 대의 어두운 정치 현실을 강하게 비판하고 선비의 지조를 강조한 작품이다. 결국 이 글은 중국 한나라(전한·후한) 교체기와 말기의 역사적 사건 및 인물들을 인용하여 치세와 난세, 처세의 의리를 읊은 작품이다.
○ 이번 ‘東’, ‘寒’, ‘虞’, ‘東’ 운목(韻目)의 「역사를 읊다(詠史)」 4수(首)의 연작시는 전형적인 영사시(詠史詩) 형식을 빌려, 중국 후한 말기와 왕망의 찬탈기를 배경으로 삼았다. 작가인 정황 선생 역시 을사사화와 정미사화(양재역 벽서 사건) 등으로 인해 변방 거제도로 유배를 가고 고초를 겪다가 유배지에서 사망한 인물이다. 그는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면서도 왕망, 동탁, 건녕 연간이라는 폭정의 시대를 소환함으로써, 당시 조선의 윤원형 일파와 명종 초기의 정치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동시에 지식인의 갈림길인 '변절(양웅)'과 '은거 및 지조(위환(魏桓), 신도반(申屠畔))'를 대조하여, 선비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과 절개의 숭고함을 역설(力說)한 명작이다.
○ 한편 「영사(詠史)」 4수(首)에 투영된 저자 정황(丁熿) 선생의 심정은 한마디로 ‘난세를 바라보는 지식인의 극심한 분노와 무력감, 그리고 참혹한 세태 속에서 지조를 지키겠다는 처절한 다짐’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가 이 시를 지은 경술년(1550년)은 을사사화(1545년)가 일어난 지 불과 5년 뒤로, 수많은 동료 선비들이 죽거나 유배당하고 척신(윤원형 일파)들이 조정을 장악했던 암흑기였다. 이 시기 정황 선생의 내면을 4가지 심정으로 분석할 수 있다.
①첫수(首)에선, 권력에 기생하는 변절자들을 향한 극도의 멸시와 분노를 드러냈다. 정황 선생은 유학자로서의 양심을 버리고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지식인들을 보며 깊은 환멸을 느꼈다. 이에 천 년 동안 비웃음을 받는 ‘양웅’을 끄집어내어, 당시 윤원형 일파에 붙어 동료를 고발하고 영달을 누리던 배신자들을 강하게 경멸하고 있다. 글을 배웠다는 자들이 정의를 외면하는 현실에 대한 지독한 분노와 환멸이 깔려 있다.
②둘째 수(首)에선, 살아남기 위해 숨어 지내야 하는 선비의 슬픔과 무력감을 피력했다. 불의한 조정에 나아가지 않고 은거를 택한 ‘위환’의 고사를 통해, 당시 올바른 선비들이 처한 비극적 상황을 대변한다. 재능이 있어도 조정이 썩어 은거할 수밖에 없는 현실, 즉 ‘나아갈 수도, 뜻을 펼 수도 없는’ 시대적 무력감을 토로했다. 벼슬길이 곧 죽음의 길이 되어버린 현실에 대한 깊은 한탄과 슬픔이 묻어난다.
③세째 수(首)에선, 어떤 압박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처절한 지조와 자존심을 서술했다. 폭군 동탁 앞에서도 머슴살이를 하며 절개를 지킨 ‘신도반’을 읊으며, 저자 자신의 도덕적 결기를 드러냈다. 권력자들이 위협하고 유혹할지언정, 선비로서의 자존심과 절개만큼은 절대로 꺾이지 않겠다는 처절하고도 당당한 의지다. 비록 몸은 유배지에 묻혀 고통받을지언정 정신적인 승리를 거두겠다는 고고한 다짐이다.
④네째 수(首)에선, 난세에 희생당한 동료들을 향한 피맺힌 애도를 표했다. 최고의 천재였던 순상(荀爽)이 동탁의 강요로 출사했다가 허망하게 급사한 비극을 노래했다. 이는 을사사화와 정미사화로 인해 뜻을 펴지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유배지에서 죽어간 동료 사림(선비)들을 향한 피맺힌 애도(哀悼)다. 또한, 자신 역시 언제 어떻게 정치적 희생양이 될지 모른다는 난세의 쓸쓸함과 허무함이 짙게 배어 있다.
**결국 정황 선생은 중국의 역사를 거울삼아 “조정이 이토록 더러우니 나는 차라리 굶어 죽을지언정 결코 타협하지 않겠다”는 매서운 선비 정신을 보여줬다. 동시에 마음 깊은 곳에는 시대에 대한 절망감과 희생된 이들에 대한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영사(詠史)」 1550년(庚戌) 역사를 읊다.** / 정황(丁熿 1512~1560)
*其一 양웅(揚雄)의 변절 비판
千載笑楊雄 천 년 동안 양웅을 비웃나니
一心頌莽功 한마음으로 왕망의 공덕을 기렸네.
識字猶云爾 글자나 안다는 자도 오히려 이와 같거늘
況誅半夜豐 하물며 한밤중에 풍(豐)을 베어 죽임에랴.
*其二 위환(魏桓)의 지조와 벼슬길의 험난함
考槃矢魏桓 고반(考槃)하며 다짐했던 위환은
無復下孤鸞 다시는 외로운 난새처럼 조정으로 내려가지 않았네.
此公難進意 이 어른이 조정에 나아가기 어려워했던 뜻을
試向建寧看 시험 삼아 후한의 건녕(建寧) 연간을 향해 보아라.
*其三 신도반(申屠畔)의 은거와 동탁(董卓)의 횡포
傭隱子申屠 머슴살이로 숨어 살던 자신도(신도반)는
有南容免夫 남용(南容)처럼 화를 면한 사내였네.
當初旣不屑 당초에 (불의한 조정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거늘
董卓能令趨 동탁인들 어찌 그를 억지로 달려오게 하겠는가.
*其四 순상(荀爽)의 허망한 출사와 절개
荀氏八龍中 순씨 가문의 여덟 용(순씨팔룡) 가운데
無雙第六公 당대 독보적이었던 여섯째 공(荀爽)이여
登台百日內 삼공(정승)의 자리에 오른 지 백 일도 못 되어
竟落高陽風 결국 고양(은거지)의 바람 속에 떨어지고 말았네.
[주1] 양웅(揚雄) : 전한 말기의 유명한 문장가이자 학자다. 한나라를 멸망시킨 왕망(王莽)의 조정에서 벼슬을 지내고 그를 찬양하는 글(劇秦美新)을 써서, 후대 유학자들에게 절개를 지키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주2] 왕망(王莽) : 전한을 멸망시키고 신(新)나라를 세운 찬탈자다. 유학자적인 대의명분을 내세웠으나 실패한 정치를 펼치다 결국 몰락했다.
[주3] 풍(豐) : 주나라의 옛 수도인 '풍읍(豐邑)' 또는 주역(周易)의 '풍(豐)괘'를 뜻한다. 영사시 문맥상으로는 풍요롭고 성대한 조정, 혹은 왕망이 세운 신나라 조정의 허울 좋은 성대함을 비유했다.
[주4] 위환(魏桓) : 후한 시기의 은사(隱士)다. 조정에서 벼슬을 내리며 불렀으나, 난세에 나아가 아첨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평생 은거하며 절개를 지켰습니다. (양웅의 처세와 대조되는 인물)
[주5] 고반(考槃) : 시경(詩經) 위풍(衛風)의 시 제목으로, '시골에 은거하며 즐겁게 사는 것'을 뜻한다. 세상의 부귀를 멀리하고 은둔하는 선비의 숭고한 삶을 비유할 때 쓰인다.
[주6] 건녕(建寧) : 후한 영제(靈帝) 때의 연호(168~172년)다. 환관들이 권력을 잡고 현명한 선비들을 탄압한 '당고의 화(黨錮之禍)'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비극적인 시기를 상징한다.
[주7] 신도반(申屠畔) : 후한 말의 대성 학자이자 절개를 지킨 은사. 동탁이 권력을 잡고 강제로 조정에 부르자, 이를 거부하고 바다로 도망쳐 평생 고고하게 살았다.
[주8] 동탁(董卓) : 후한 말기 황제를 폐위하고 정권을 장악하여 천하를 극심한 혼란에 빠뜨린 잔혹한 군벌이다. 권세가 극에 달했으나 결국 부하 여포에게 살해당했다.
[주9] 남용(南容) : 공자의 제자인 남궁괄(南宮适)의 자(字). 나라에 도가 있으면 쓰이고, 도가 없어도 화를 면할 정도로 처세에 신중하고 현명하여 공자가 조카딸을 가치관이 바른 그에게 시집보냈다.
[주10] 순상(荀爽) : 후한 말의 학자로, 당고의 화로 은거하다가 동탁이 집권한 뒤 사공(司空)의 자리에 올랐다. 동탁의 폭정을 막기 위해 내부에서 도모하다가 병사한 인물이다.
[주11] 순씨 팔룡 : 후한 시절 명망 높았던 순숙(荀淑)의 여덟 아들을 일컫는 말이다. 모두 재주와 덕망이 뛰어나 '여덟 마리의 용'이라 불렸으며, 위에서 언급한 '순상'이 그중 여섯째다.
[주12] 고양(高陽) : 순숙과 순씨 팔룡의 고향인 '예주 영천군 고양리'를 뜻한다. 당대 최고의 명문가이자 현인들이 배출된 학문과 덕망의 고향을 상징한다.
● [「영사(詠史)」 ‘역사를 읊다’ 4수(首) 내용 해설]
「其一」 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양웅을 비웃고 있는 것은, 그가 한마음으로 찬탈자 왕망의 공덕을 찬양하는 글을 썼기 때문이다. 글을 읽고 자처한다는 지식인도 지조를 잃으면 이와 같으니, 하물며 한밤중에 밀지를 내려 반대파(선비들)를 참혹하게 처단하는 조정의 세태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其二」 은거하며 지조를 지키겠다고 맹세했던 후한의 위환은, 끝내 다시는 외로운 난새처럼 외롭게 조정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이분이 벼슬길에 나아가기를 그토록 꺼리고 어려워했던 속뜻이 무엇이었는지는, 환관들이 현신들을 학살했던 후한 영제(靈帝)의 건녕(建寧) 연간의 대참상을 보면 알 수 있으리라.
「其三」 신도반(자도)은 불의한 권력에 굴하지 않으려고 몸소 머슴살이를 하며 은거했으니, 공자의 제자 남용처럼 난세에 화를 면한 현명한 사내였다. 당초에 그토록 더러운 조정을 달갑게 여기지 않고 지조를 지켰는데, 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동탁 같은 독재자라 한들 어떻게 그를 협박하여 자기 조정으로 달려오게 만들 수 있었겠는가.
「其四」 후한 말 명문가인 순씨 집안의 뛰어난 여덟 형제(순씨팔룡) 중에서도 가장 뛰어났던 여섯째 순상(荀爽)이여. 동탁의 강요와 가문의 화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출사하여 최고 관직인 시공(司空)에 올랐으나, 백 일도 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 결국 고양(은거지 혹은 죽음)의 허망한 바람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구나.
○ [「영사(詠史)」 ‘역사를 읊다’ 4수(首) 핵심 분석]
「其一」 전한 말기의 학자 양웅이 왕망의 신나라 세력에 협조한 것을 비판하면서, 당시 권력자(이기, 윤원형 등)에게 아부하며 동료 선비들을 핍박하는 배신자들과 을사사화 당시 밤중에 기습적으로 이뤄진 숙청의 잔혹함을 폭로하고 있다.
「其二」 후한의 청류파 선비 위환이 환관 세력의 횡포를 예견하고 야인으로 은거했던 고사를 인용했다. 이는 명종 즉위 초 척신들이 권력을 휘두르는 상황에서 선비가 조정에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부질없는지를 은유한다.
「其三」 권력에 타협하지 않고 숯굽는 일이나 머슴살이로 생계를 이으며 지조를 지킨 신도반의 고사를 담았다. 당시 척신 정권이 선비들을 강제로 출사시키려 하거나 위협해도, 진정한 선비의 절개는 동탁 같은 폭력으로도 꺾을 수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其四」 천하의 인재였던 순상이 폭군 동탁의 위협에 못 이겨 조정에 나아갔다가 단명한 비극을 노래했다. 난세에 뜻을 펴지 못하고 권력의 압박 속에서 허망하게 스러져간 현인들의 운명을 슬퍼하며, 을사사화 이후 목숨을 잃거나 유배당한 조선의 사림들을 애도하는 뜻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