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시평 제199호 (2009년 9월 1일)
일본 중의원 선거 결과
최영호 (영산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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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30일 총 480명을 선출하는 일본의 중의원 선거 결과, 민주당은 308석을 획득하여 단독 과반수를 훨씬 넘기는 대승리를 거두었고 반면에 자민당은 119석에 그쳐 창당 이래 최악의 참배를 맛보았다. 영국의 BBC가 평가한 대로 이번 일본 민주당의 대승리는 작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난 오바마 선풍에 비견할 만한 역사적 사건이다. 일개 야당이 일거에 단독 과반수를 획득하고 당당하게 정권 교체에 나선 것은 전후 일본 정치에서 최초로 이루어진 사건이다. 이것은 이제까지 관료 주도의 행정과 거대 자민당의 내부 정책 조정을 통해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되어 오던 국가적 규모의 정치 시스템에 유연성과 불안정성이 야기되기 시작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일본 정치의 근본적 성격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총선거에서 나타난 대변혁은 자민당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표심으로 작용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4년 전 중의원 선거에서는 일본 국민들이 고이즈미(小泉) 수상의 개혁 노선을 지지하며 자민당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바 있다. 그러나 고이즈미가 내세운 행정 개혁은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는 반면, 오히려 그가 내세운 시장원리주의가 사회 전반에 급격한 구조 조정을 조장하여 양극화 현상, 의료 복지의 황폐, 지방경제의 피폐 등을 초래함으로써 일반 국민 생활에 악영향을 끼친 것으로 해석되었다. 여기에다가 고이즈미 정권 이후 자주 일어난 자민당의 수장(首長) 교체는 정치적 무능력과 무책임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이미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에 참패하는 교훈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자민당 정권은 계속하여 멀어져가는 국민들의 표심을 되돌리기에 역부족이었다.
반면에 민주당은 자민당 정권의 실책을 지속적으로 비판하면서 표심을 모아갔다. 최저임금 인상, 자녀보육수당 확대, 중소기업 법인세 인하, 고속도로 통행료 무료화 등, 국민생활과 직접 관련된 지원 정책을 내세우면서 현 정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을 흡수해 갔다. 여기에 ‘선거의 귀재’로 불리는 오자와이치로(小澤一郞) 민주당 대표대행의 민심을 겨냥한 전략도 이번 선거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지역구 선거에서 경험과 경륜을 내세우는 자민당 후보에 대해 민주당은 참신함과 개혁성을 무기로 하여 대항했다. 일반 국민에게 널리 알려진 새로운 얼굴들을 후보로 공천했으며 지역에 밀착된 선거 운동에 힘을 쏟았다. 그 결과 이번 선거에서 사사카와(笹川) 현 자민당 총무회장을 비롯하여 가이후(海部) 전 수상, 야마자키(山崎) 전 부총재, 나카가와(中川) 전 재무상 등의 거물급 정치가들을 물리치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중의원 선거 결과, 다음과 같이 민주당은 의석수에서 제1당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총정원 민주당 자민당 공명당 공산당 사민당 기타 결원
중의원 480 308 119 21 9 7 16 0
참의원 242 117 81 21 7 5 11 3
외교정책에 있어서 민주당은 선거과정에서 자민당과 차별화 하는 정책으로 미국에 대한 대등한 외교관계 추구와 아시아 국가와의 협력관계 증진을 내세웠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이 국제사회와 합의하지 않고 독단으로 아프간 전쟁을 개시했다는 비판적 견해를 제시하기도 했고 미군 제7함대만으로도 일본의 방위를 담당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에 실전부대까지 일본에 배치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정권을 잡고난 후의 민주당이 얼마나 미국으로부터 방위정책의 자율성을 확보해 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방위정책에서 일본이 독자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노력은 이제까지 자민당 정권에서도 추구해 왔던 일이며 과도한 변화는 도리어 아시아 주변국을 자극할 소지가 크기 때문에 민주당으로서도 신중하고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해 가지 않을까 전망된다.
한편 기존의 민주당 정책노선에 따르면 한국과 중국에 대한 외교정책은 보다 유화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이제까지 민주당의 하토야마유키오(鳩山由紀夫) 대표 등은 야스쿠니신사로부터 A급 전범의 위패를 분리하거나 독립 추도시설을 설치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해서는 북방영토와 같이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주장하면서도 신중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 그리고 북한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납치’ 문제 등을 이유로 대화를 거부해 온 자민당 정권에 대해 이의를 제기해 왔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민주당 정권이 앞으로 일부 국민들의 저항을 무릅쓰면서까지 얼마나 적극적으로 새로운 정책으로 옮길 것인지에 대해서는 귀추가 주목된다.
한국과 중국으로서는 민주당에 거는 기대가 크다. 어제 이명박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에게 외국 정상으로서는 처음으로 전화를 걸어 축하인사를 전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통화에서 한국 국민이 이번 선거로 하토야마 대표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하고 한국과 일본이 서로 손잡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하토야마 대표는 반드시 발전적 한일 관계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하고 민주당이야말로 역사를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정당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우애의 정신을 갖고 더욱 긴밀하게 협력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중국 정부도 오늘 일본 총선거 결과에 대해 논평하면서 양국 관계의 발전을 기대하는 호의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장위(姜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오늘 정례 브리핑에서 일본의 선거 결과를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고 말하고, "이웃이면서 아시아 주요 국가인 중국과 일본이 고위급 교류의 우호적인 분위기를 지속적으로 유지하여 아시아의 평화와 발전을 함께 촉진해야 한다"고 하는 기대를 표명했다.
다만 민주당의 승리가 곧 바로 한일관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것으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전반적으로 민주당의 성향이 자민당에 비해서 원칙적으로 영토문제나 역사문제에 대해 신중하고 주변국 입장을 배려하는 입장이 강하기는 하지만 민주당 내부에는 다양한 의견을 가진 구성원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에는 자민당 의원보다도 훨씬 더 우파적인 보수 성향의 의견을 가진 정치가도 있다. 또한 이번 총선거에 쏠린 민심을 달래기 위해서는 민주당 정권이 경제 살리기와 고용안정을 위해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 자칫 경제 정책에서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이번에 자민당을 향했던 분노의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는 만큼 민주당으로서는 여론의 향방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하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이치는 일본 국민 뿐 아니라 주변국 국민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그동안 문제의 소지가 많았던 자민당 정권이 신중하게 ‘관리’해 온 한일관계가 오히려 선명성과 참신성을 내세우며 기대를 받은 민주당에 의해 더욱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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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시평] 지난 호 자료는 한일민족문제학회 홈페이지 www.kjnation.org<한일관계시평> 또는 최영호 홈페이지 www.freechal.com/choiygho<한일시평>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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