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로댕 미술관을 방문해 작은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을 보면, 유명한 작품을 작게 복제해 놓았구나라고 생각하며 지나친 뒤, 정원으로 나가면 진짜 작품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실제로 정원에는 ~2m 높이의 거대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커다란 바위 위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조각상이 약간 녹색을 띤다. 청동에 들어 있는 구리가 공기 중의 산소와 이산화탄소에 반응하면서 표면의 색이 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품의 역사를 조사해 보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실내에서 봤던 작은 조각상도 단순한 복제품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유일한 원작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대체 무엇이 진짜 '생각하는 사람'일까? 이 작품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예술뿐 아니라 화학, 재료공학, 기계 기술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생각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독립 작품이 아니었다
오귀스트 로댕은 1880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새로운 미술관의 청동 문을 제작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그러나 정작 그 미술관은 끝내 건립되지 않았다. 로댕은 맡은 작업을 계속 진행했다. 그가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작품은 《지옥의 문》이었다.
작품의 영감은 14세기 이탈리아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에서 나왔다. 《신곡》의 《지옥편》은 단테가 상상 속에서 지옥을 여행하며 생전에 지은 죄에 따라 벌을 받는 사람들을 만나는 이야기다. 로댕은 지옥의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인간들을 거대한 문에 표현하려 했다. 그리고 그 위쪽에는 모든 장면을 내려다보며 사색하는 인물을 배치했다. 이 인물이 바로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인물은 단테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거대한 조각상이 처음부터 계획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최초의 생각하는 사람은 높이가 70cm 정도에 불과했다. 거대한 문 위에 놓일 하나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흙으로 만든 조각이 청동 작품으로 탄생
로댕은 먼저 점토로 인물을 빚었다. 점토 조각 위에 석고를 바르는데, 이 석고가 원래 조각의 세부적인 형태를 그대로 재현하는 역할을 한다. 석고의 주성분은 '황산칼슘 수화물'이다. 석고 반죽은 굳으면서 단단해지고, 점토 조각의 표면에 있던 근육의 굴곡과 작은 주름까지 정교하게 담아낸다. 석고가 굳으면 이를 이용해 주형, 즉 틀을 만든다. 여기에 녹인 청동을 부으면 점토로 만든 원래 형상의 청동 조각상을 얻을 수 있다. 청동은 주로 구리와 주석을 섞어 만든 합금이다. 구리에 주석을 더하면 재료의 성질을 조절할 수 있어 조각이나 종과 같은 물건을 만드는 데 유용하다.
이렇게 보면 조각상은 한 번에 만들어지는 물건이 아니다. 점토 원형을 만들고, 석고로 형태를 복제하고, 주형을 제작한 다음, 녹인 금속을 부어 굳히는 여러 단계를 거쳐 탄생한다. 로댕이 처음 만들었던 점토 원형은 안타깝게도 현재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로댕 미술관에는 최초의 작은 조각상을 청동으로 주조하기 위해 사용했던 석고 작품 가운데 하나가 남아 있다. 처음에 단순한 축소 모형이라고 생각했던 작품이 사실은 제작 과정의 중요한 흔적이었던 것이다.
최초의 청동 '생각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최초의 작은 청동 작품은 1884년에 주조되었으며, 호주 멜버른의 빅토리아 국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다른 청동 작품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로댕 미술관과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캐나다 몬트리올 미술관 등에도 작은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처럼 하나의 조각 원형을 바탕으로 여러 개의 청동 작품을 제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느 작품이 진짜일까?
여기서 '원작'이라는 말의 의미를 구별해야 한다. 조각가가 직접 빚은 최초의 점토 원형, 그 형태를 보존한 석고 작품, 그리고 그 주형으로 제작한 청동 작품은 서로 다른 제작 단계의 결과물이다. 청동 작품이라고 해서 반드시 하나만 존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원형에서 제작되었다면 여러 작품이 모두 로댕의 작품으로 인정될 수 있다.
작은 조각상을 어떻게 2m 크기로 키웠을까?
1880년대 후반, 로댕은 생각하는 사람을 더 큰 크기로 제작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흥미로운 기계 장치, 바로 '팬터그래프'가 사용되었다. 팬터그래프는 여러 개의 연결된 막대를 이용해 원래 그림이나 물체의 형태를 추적하면서 크기를 확대∙축소하는 장치다. 오늘날에는 디지털 기술로 쉽게 할 수 있는 작업이지만, 당시에는 기계적 연결 장치를 이용해 크기를 정확하게 바꾸는 것이 중요한 기술이었다.
로댕의 조수들은 이 장치를 이용해 작은 인물의 비례와 형태를 유지하면서 더 큰 점토 모형을 제작했다. 이후 이 모형을 바탕으로 거대한 청동 작품을 만들었다. 1903년에 제작된 대형 작품은 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 세계박람회에 전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로댕은 완성된 청동 작품의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결국 미국에 청동 원본 대신 청동처럼 보이도록 칠한 석고 작품을 보내기로 했다. 이 석고 작품은 세계박람회의 프랑스관에 전시되었다.
한편 1903년에 제작된 청동 작품은 현재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대학교의 그로마이어 홀 앞에 있다. 세계박람회에 전시되었던 대형 석고 작품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지만, 현재 전시되지는 않는다.
여기서도 '진짜'라는 말이 얼마나 복잡한지 알 수 있다. 세계박람회에 전시된 작품은 청동이 아니라 석고였지만, 청동처럼 보이도록 제작되었고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작품이다.
청동 조각상이 녹색으로 변하는 이유
청동으로 만든 생각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녹색이었던 것이 아니다. 청동의 주성분인 구리는 공기 중의 산소, 수분, 이산화탄소 등과 반응한다. 시간이 흐르면 표면에 여러 화합물이 생기고, 이로 인해 색이 변한다.
구리가 산소와 반응하면 산화구리 계열의 물질이 만들어진다. 이산화탄소와 수분 등이 관여하면 탄산구리 계열의 화합물도 생성된다. 이렇게 금속 표면에 생기는 화학적 변화의 산물을 '파티나'라고 한다. 파티나의 색은 환경과 생성된 화합물에 따라 달라진다. 검은색이나 갈색을 띠기도 하고, 녹색이나 청록색을 띠기도 한다.
구리 지붕이나 오래된 청동 조각상이 녹색으로 변하는 것도 비슷한 원리다. 이것은 단순히 페인트가 벗겨지거나 표면에 먼지가 묻은 현상이 아니다. 금속 표면에서 실제로 화학반응이 일어난 결과다. 따라서 정원에 서 있는 생각하는 사람의 녹색 표면은 작품이 오랜 세월 동안 공기와 환경에 노출되었음을 보여 주는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에 같은 조각상이 약 28개나 있다?
큰 '생각하는 사람'은 여러 개가 있다. 주형과 확대 모형을 바탕으로 여러 청동 작품이 제작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세계 곳곳에서 서로 다른 대형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디트로이트 미술관 앞의 작품은 루이빌에 있는 작품보다 며칠 뒤에 주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독일의 안과의사이자 미술품 수집가였던 막스 린데 박사가 로댕에게서 구입해 독일 뤼베크의 정원에 두었던 작품이다.
이 정원을 방문한 《절규》로 잘 알려진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는 《의사 린데의 정원에 있는 생각하는 사람》을 그렸다. 이 그림은 현재 로댕 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반면 로댕 미술관 정원에 있는 대형 청동상은 흔히 '원작'이라고 불리지만, 린데 박사의 작품보다 약 1년 뒤에 주조되었다.
오늘날 대형 생각하는 사람은 전 세계에 약 28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들은 모두 똑같은 색을 띠지 않는다. 각 작품이 놓인 환경과 시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로댕이 완성한 《지옥의 문》은 청동으로 만들어졌을까?
로댕은 생전에 《지옥의 문》의 석고 작품을 완성했지만, 청동으로 주조된 완성품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첫 번째 청동 주조는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이루어졌다.
《지옥의 문》은 높이가 약 6m, 너비가 약 4m, 깊이가 약 1m에 달하는 거대한 작품이다. 로댕 미술관에 있는 작품 외에도 미국 필라델피아와 스탠퍼드 대학교, 일본 도쿄 등에서 관련 작품을 볼 수 있다. 작은 인물 조각으로 시작한 생각하는 사람이 결국 거대한 문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고, 독립된 작품으로도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생각하는 사람을 자세히 살펴보면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져 있고, 팔꿈치를 무릎에 올린 채 손으로 턱을 받치고 있다. 팔과 어깨, 등과 다리의 근육은 팽팽하게 긴장한 듯 표현되어 있다. 마치 어려운 문제를 생각하는 데도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것만큼 큰 노력이 필요하다는 듯하다. 이 모습이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누구나 복잡한 문제를 붙잡고 고민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 조각상은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기울어진 자세 때문에 물리적으로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문제도 안고 있다. 속이 빈 청동 주조물 내부에는 무게중심을 조절하기 위한 납 덩어리가 들어 있다. 이 무게추는 조각상이 앞으로 넘어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서 있도록 돕는다. 작품의 아름다운 자세 뒤에는 무게중심과 균형을 고려한 공학적 해결책도 숨어 있는 것이다.
정리: 예술 작품에 과학이 숨어 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단순히 깊은 사색에 잠긴 인물을 표현한 조각상이 아니다. 그 작품의 역사에는 점토와 석고를 이용한 복제 기술, 청동 합금의 특성, 금속 표면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 팬터그래프를 이용한 확대 기술, 무게중심을 고려한 구조 설계가 함께 담겨 있다.
원작과 복제품이라는 구분이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도 보여 준다. 하나의 조각 원형에서 여러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으며, 각 작품은 제작 시기와 재료, 역사적 맥락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다.
다음에 '생각하는 사람'을 보게 되면, 그저 고민에 빠진 인물이라고만 생각하지 말자. 그의 근육에는 인간의 사색이, 녹색 표면에는 구리의 화학반응이, 기울어진 자세에는 물리학과 공학의 원리가 담겨 있다. 우리도 잠시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이 모든 것들을 차분히 좇아가며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참고 문헌:
① Copper and Bronze in Art and the Search for Rare Corrosion Products, Gerhard Eggert, 2023
② Corrosion Behaviors of Outdoor Bronze Sculptures in an Urban–Industrial Environment: Corrosion Experiment on Artificial Sulfide Patina, 2023
③ Corrosion Behaviors of Artificial Chloride Patina for Studying Bronze Sculpture Corrosion in Marine Environments, 2023
④ An investigation into the cause of corrosion on indoor bronze sculpture, Studies in Conservation, 2012
⑤ Two insights into Auguste Rodin’s The Thinker, François Blanchetière, David Thurrowgood, 2014 공식 미술관 자료
⑥ Casting Rodin’s Thinker: Sand mould casting, the case of the Laren Thinker and conservation treatment innovation, T. P. C. Beentjes, 2019, 암스테르담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⑦ Auguste Rodin and the Question of the Original in Sculpture, Antoinette Le Normand-Romain,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