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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בהר 베하르" : 5월 넷째 주 토라포션 in 5776
레25:1-26:2(To), 렘32:6-27(Haft), 눅4:16-21(Brit), 고후8-13(신약)
1부 예배
암송구절
레25:1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בהר 베하르 : 산에서, In(ב) Mountain(הר).
- ב 베 라는 것은 공간, 시간을 모두 뜻한다. 그 시간 안에 있다, 그 공간 안에 있다는 것을 둘 다 뜻한다.
하야를 가지고 묵상하실 때 여러분들에게 어떤 유익이 있냐면, 하야에는 히브리어가 있다. 우리는 어떤 말에 있는 파워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 하나님께서 히브리어를 주실 때 이미 그 안에 하나님의 파워가 들어있다. 무슨 신비주의냐고 하지만, 원래 하나님은 신비주의자 이시다.
사람이 변화되는 것이, 내가 다 알아서 변화되는 것 같지만, 알고 변화되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내가 자라는 것도, 이 세포가 어떻게 해서 된다고 알고 변화시키는가? 밥 먹고 위장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서 움직이는가? 내 몸에서 내가 아는게 몇개나 될까? 내 몸의 점 갯수, 머리카락 갯수 정확히 아시는 분 있는가? 아는게 도대체 뭐가 있는가? 난 나에 대해서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내가 알고 나를 움직이는 것은 거의 없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움직여지는가?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움직여진다. 특별히 말이라고 하는 것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움직일 수 있는 힘과 파워들이 들어있다.
Ex ) 나무에게 사랑한다고 이야기 해 주면 나무가 잘 자란다고 한다. 나무가 사랑한다는 말을 알아듣는 것일까? 그것을 이해한다고 생각하는가? 사랑한다는 말 자체에 있는 파워와 에너지가 나무를 살리는 것이다.
아기들에게 사랑한다라고 이야기를 해 줘야 할까, 안 해 줘야 할까? 사랑한다는 말을 못 배웠으니까 해 줘도 되고 안 해 줘도 되는가? 그런데 왜 해 줘야 하는가? 사랑한다는 말 자체에 이 아이가 클 수 있는 힘이 들어있는 것이다.
어느 전도자가 지나가는데 깡패들이 패싸움을 벌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전도자가 깡패들을 향해서 하나님이 당신들을 사랑합니다고 외쳤더니 멈췄다고 한다. 그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했을까? 그 말 속에 그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들어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 땅에 내려오셔서 토라를 주셨다. 그러면 우리가 그 하나님의 토라를 다 이해할까? 우리는 일 년 배우고 어느 정도 알 것 같다는 낌새들이 조금 보인다. 토라는 영원히 알 수가 없다. 그런데 하나님이 왜 주셨을까? 이것 자체에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힘과 파워가 들어있다. 이것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이것이 임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들어있다.
그래서 우리가 토라 공부를 하고, 히브리어를 공부하는 것이다. 특히 그 말 중에 가장 큰 힘을 가진 것을 히브리어라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히브리어를 보전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2000년 동안 사탄이 가장 많이 한 일 중의 하나가 히브리어를 없애는 것이다. 말을 없애는 방법은, 그 민족을 없애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을 다 죽이려고 했다. 그것을 홀로코스트라고 했다. 그런데 다 죽일 수가 없었다? 왜 못 죽였을까? 그들이 히브리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히브리어를 배운다는 것은 상상 이상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 주님은 주님 자체를 내가 알파요 오메가다, 알레프요 타브다라고 하신다. 알레프부터 타브, 모든 히브리어를 다 합치면 주님의 모습, 형상이 된다. 그래서 주님은 히브리어의 첫 번째 글자와 마지막 글자, 이것을 택한다는 것은 내가 이 전체라는 것이다. 놀라운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히브리어를 전혀 모르는데도, 히브리어 찬양을 들을 때 주님의 임재를 느끼는 사람이 참 많다. 주님 안에 깊이 들어간다. 그래서 정말 히브리어를 잘 하는 줄 아는데, 무슨 내용인지 모른다. 그런데 왜 그렇게 감격하고 주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갔냐고 물어보면 모른다고 한다. 우리는 대부분 모르고 산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산다.
매 주 간에 여러분들은 히브리어 하나씩을 배우고 있다. 이번 주는 베하르이다. 주님의 역사하심이 가득하길 바란다.
사실 우리가 삶 속에서 존재적인 결합이 일어나는 것도 다른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말을 하면 그것이 다 저 사람이 이해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정말 이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그런데 왜 말을 하는가? 말을 하면 내 생명이 저 사람에게 건너간다. 그 말이 살아서 운동력있어 역사한다. 말씀이 우주 만물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사실이다. 나를 붙들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계속 나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 말씀을 내가 이해해서, 내가 그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 말씀 자체가 나를 붙들고 있는 것이다.
בהר 베하르는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공간과 시간 속에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공간과 시간에서 우리는 하르로 살아야 한다.
הר 하르 : 산, The(ה) Spirit(ר)
사람은 산에서 살게 되어있다. 산의 Life style, 산 사람으로 살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산을 산신령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전혀 무관하진 않다. 옛날부터 도 통한 사람이 왜 굳이 우물신령이나 강신령이 아니라 산신령인가? 산이라는 것이 성경에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에덴동산에 사람을 두신다. 산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산에 홍수가 났다. 그리고 사실 사람들을 다 멸할 때 물로 산을 잠기게 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을 때 땅에 쌓았는데, 어디에 안 살려고 했는가? 산에 안 살려고 했던 것이다. 시날 평지에다가 바벨탑을 쌓았다. 산의 Life style을 살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
바벨탑을 쌓은 인간과 전혀 다른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아브라함에게 레크레카-너에게로 걸어가라고 하시면서, 결국 창22장에서 아브라함을 모리아 산으로 인도하였다. 이 산에서 여호와께서 준비하시리라. 여호와 이레가 나왔다. 여호와 이레는 산에 대한 이야기이다. 산에서 주님이 보여주신다
רא 라아(=이레) : 보여주다
- 산에서 다 보여주고 준비하신다. 산에서 인간은 살 수 있다.
베하르는 산에 대한 이야기이다. 산의 라이프 스타일을 가져야만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을 볼 수 있고, 준비하신 것을 받고,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다. 놀랍게도 베하르에 나오는 토라포션 내용은 다 안식년, 희년에 대한 내용이다. 구속에 대한 이야기이다. 노예에서 사람을 다시 구속한다. Ransome이라고 한다. 팔렸던 사람을 친척들이 무르는 이야기들이다. 안식년과 희년에 대한 이야기이다.
토라포션 신명기에서 안식년을 다시 다룬다. 르에이다. 여호와 이레이다. 여호와께서 산에서 다 보여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다 산에서 살게 되어있다. 그러면 이 산에서 산다는 것이 도대체 뭔가? 영으로 산다는 말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이 세상에 우리가 실제라고 여기는 것은 사실 실제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나의 몸을 나의 실제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보이지 않는 것이 실제이다. 그래서 우리는 99%의 보이지 않는 실제를 가진다. 우리가 실제라고 여기는 것, Body, 몸이라고 여기는 것은 1%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정말 실제라고 여기면서 아둥바둥 사는 것은 1%에 지나지 않고 99%는 다 영에 속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베하르에서 주님이 99%의 실제를 보여주고 싶어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1%를 실제라고 하기 때문에 늘 결핍을 느낀다. 빈곤하다. 우리의 행복은 100% Charge가 되야한다. 행복은 충만한 것이다. 100%가 있어야지 뭘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우리가 인생에서 느끼는 것은 늘 나에게 1% 밖에 없는 것이다. 왜? Body를 실제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가난, 빈곤이라고 한다.
어떻게 우리는 99%를 얻는가? 산에서 얻는다. 영에서 얻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산으로 인도하신다. 출애굽기 후에 모세의 노래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애굽에서 데리고 나오셔서, 하나님의 기업의 산으로 인도하신다고 한다. 그것은 영으로 살게끔 하는 곳으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결국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더라도,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계시는데, 예루살렘은 결국 산이다. 다 모리아 산, 시온 산, 감람 산이다. 하나님은 저 북방에 있는 시온 산에서 온 땅을 다스리신다. 주님은 시온 산에서 영광스럽게 되시고, 우리를 시온 산으로 인도하신다. 그것이 산에 대한 이야기이다.
레25: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산에 대해서 이야기하신다. 산을 주고싶어 하신다. 그것의 가장 핵심이 이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너희는 내가 주는 땅에 들어갈 것인데, 그 땅이 안식하게 하라는 것이다.
הארץ 하아레쯔 : 그 땅
שׁבת 샤밧 : 안식
땅이 샤밧을 지킨다는 것이 뭘까?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의 이야기를 한다. 시내산과 약속의 땅은 무슨 관계인가? 약속의 땅에서 살기 위해서는 시내 산의 가르침이 필요하다. 그러면 시내 산의 가르침은 뭔가? 다 샤밧에 대한 것이다. 안식년에 대한 것이다.
그러면, 약속의 땅에 살려면 이 시내산의 가르침이 필요하다. 시내산의 가르침이라는 것은 약속의 땅에서 살기 위해서는 인간의 모든 문명의 저주를 제거해야 한다. 원래 수 많은 문명이 이스라엘 땅을 정복했다.
- 앗시리아(북이스라엘), 바벨론(BC 586), 페르시아(고레스 왕), 헬라(알렉산더), 로마
이것이 지금 인류 문명을 주도하는 주 세력이다. 지금 이 세력이 없어진 것이 아니다. 여러분들이 숫자를 쓰고 있다. 이것은 페르시아의 문명이다. 모든 종교와 신들은 바벨론 종교의 문명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도 주님은 교회 가운데 끊임없이 바벨론을 떠나고, 나오라고 이야기하신다. 바벨탑이 옛날에 쌓여진 사건이 아니라, 우리는 끊임없이 바벨탑을 쌓는다. 우리는 산, 영에서 살지 않고 끊임없이 평지에서, 육으로 살고 싶어한다. 인본주의, 인간 중심은 헬라이다. 또한 모든 법 체계는 로마의 법이 다스리고 있다. 헬라를 실제화 시키는 것이 로마이다. 이것이 인류의 문명이다
이 문명이라는 것인 인류에게 행복한 삶을 주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문명화되면 행복해지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 로마가 겁나 행복해졌을까? 폼페이는 왜 망했는가? 인류 문명 타락의 극치를 달렸다.
문명이 인류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준다. 문명은 실제적으로 인류에게 1%밖에 해당되지 않는 육신적인 것을 실제라고 하면서, 그것을 실제로 누리게 해 주겠다고 한다. 이런 문명이 이스라엘 땅을 점령했을 때, 놀랍게도 이스라엘 땅이 아니라, 문명이 사라졌다. 어떤 문명도 약속의 땅을 점령할 수 없었고, 오히려 모든 제국과 문명이 다 사라졌다. 참 신기한 일이다.
그래서 많은 역사학자들이, 중동의 조그마한 땅인데, 어떠한 거대한 제국도 이 땅을 점령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저것을 점령하려고 왔다가는 오히려 그 제국이 사라진다.
마지막 때 시온에 있는 모퉁이 돌 하나에 모든 열국이 다 넘어진다. 또 마지막에 스가랴에서 보면, 모든 문명이 이스라엘을 치러온다. 계시록에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을 치러 온 땅의 왕들을 독수리들이 뜯어먹게 된다. 문명의 제국들이 다 사라진다.
이 시내산의 주님의 가르침은, 다 우리를 빛으로 살게 하시는 것이다. 이 빛을 그리스도라고 한다. 영을 뜻하는 가장 핵심적인 단어를 빛이라고 한다
אר 오르 : 빛, 신성(א)한 영(ר)
= 하르, 오르, 둘 다 레쉬를 뜻한다
우리를 빛으로 살게한다. 모든 것을 빛으로 모이게 한다. 이 빛을 그리스도라고 하고,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신다. 이 빛이 존재하면 모든 어둠이 물러간다. 우리가 목적을 성취하는데 방해하는 모든 것을 제거하는 것은 빛이다. 이 빛으로 사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이 1%의 육신으로 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뭔가? 인간은 공간과 시간과 여기서의 인간의 활동으로 살게 된다.
- 공간 / 시간 / 활동
영으로 살라는 것은 이것들을 모두 초월하라는 이야기이다. 이것을 제거하라는 것이다. 공간과 시간과 활동으로 살지 말라는 소리이다. 이것을 초월하고, 완전히 이것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이 우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사실 공간과 시간 속에서 늘 살아간다. 이것을 제거해야 한다. 이것이 시내산에서의 일이다.
공간 (Space)
시간 (Time)
활동 (Motion)
- 모든 문명은 여기에서 나왔다.
이것을 결정하는 것을 물질이라고 한다. 물질은 공간, 시간이 있어야 하고 그것에 따른 활동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물질을 삶의 기본으로 하면 사람은 죽는다. 죽을 운명이다. Mortality라고 한다. 물질은 죽을 운명이다.
그래서 사람이 영생을 얻는다, 영원한 삶을 얻는다는 것은 이 물질로 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영원한 삶을 얻는다는 것은 그냥 오래 산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공간과 시간과 활동을 초월한다는 이야기이다. 삶의 기본이 공간, 시간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을 영원이라고 한다. 그리고 물질을 떠나는 것이다. 넘어서는 것이다. 이런 삶을 가르쳐주는 것이 베하르이다.
만약에 인간이 물질을 실제라고 하면서, 공간, 시간, 활동으로 산다면, 이것은 1%를 실제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죽을 운명에 처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실제는 물질이 아니라, 하르, The Spirit, 그 영이다. 그 영의 특징은 공간, 시간, 활동을 넘어서고 초월하는 것이다. 이것을 오히려 다스린다. 왜냐면 물질 Base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내산에서 주님은 그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것을 말씀하실 때 가장 핵심이 뭔가? 시간, 공간, 활동을 초월하는 것을 안식년이라고 한다. 세상의 모든 제국, 문명들이 토라에 나오는 법을 만들어서 지키고 있다. 물론 다는 아니지만, 어떠한 제국과 문명도 지키지 못하는 법이 있는데, 그것을 안식년 제도라고 한다. 희년이라고 한다.
특별히 안식년은 면제년이라고도 불린다. 면제년이라는 것은 7년의 끝에 다 빚을 탕감해줘야 한다. 아멘? 7년이 지나면 싹 없애준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희년이 되면 원래 내 것이었던 것이 다시 다 돌아온다. 원래 내 것이었던 것이 다시 다 내 것이 된다. 이것을 어떠한 제국, 문명도 행하지 못한다. 왜 그런가?
특별히 오늘날의 문명을 주도하고 있는 주 세력을 Banking System이라고 한다. 금융 자본이 모든 것을 주도하고 있다. 금융 자본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베하르이다. 금융 자본은 하여튼 산을 다 없애야 한다. 산 사람들이 생기면, 영으로 사는 사람들이 생기면 큰일난다. 금융 자본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면제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은행 빚이 있는가? 7년째가 되면 은행에 가서 이것은 다 면제해주셔야 한다고 이야기해보라.
베하르에서 영적인 삶을 이야기하며 왜 이것을 이야기할까? 이것은 단순하게 세상의 법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원리를 이야기한다. 다 탕감해주라. 그리고 안식년이 오면, 7년째에 씨를 뿌리지 말라고 한다. 너의 포도를 거두지 말라. 그러면 7년째에 농사를 안 지으면, 7년째의 끝에 뭘 먹는가?
만약에 남편이 7년째 되는 해에 나는 올해 일 안 한다고 하면 어떻겠는가? 벌써 살이 떨리기 시작하지 않는가? 그리고 7년째에 농사를 안 지었으니까, 8년째에 뭘로 사는가? 이제 씨를 뿌렸는데 말이다. 정말 힘든 이야기이다. 8년째에 수확이 와야한다. 이런 삶이라고 하는 것을 왜 주님이 베하르에서 이야기하실까
베하르는 어떻게 우리가 시간, 공간, 활동을 초월하는가를 가르쳐준다. 그 가르침의 핵심에 믿음이 있다. 도대체 누가 믿음이 있는 사람인가? 이 비밀을 이야기한다. 삶의 비밀을 예쏘드라고 한다.
예쏘드라고 하는 비밀은 다 하나님 나라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Kingdom을 살고 향해야 한다. 나라를 구해야 한다. 이게 비밀이다. 삶은 다 그분의 나라를 구해야 한다. 그런데 그분의 나라를 구하는 방법이 뭔가? 그분의 의를 구해야 한다. 그분의 의를 구하는 방법이 뭐냐면, 쯔다카라고 한다.
- 쯔다카 : 의, 구제, (이웃에게, 형제에게) 주는 것
그래서 주는 것인데, 자기의 것을 챙기지 않고 주는 것이다. 이것에 의해서 나라를 구한다. 그런데 쯔다카를 할 때 왜 믿음이 필요한가? 주님이 베하르 티칭을 마태복음에서 하신다.
-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주님이 더하신다는 것은 오히려 더 증대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더 완성된다. 주님이 더한다. 이것을 알고 쯔다카를 해야한다. 결국 주님에 대한 믿음이다. 주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믿음이고, 이게 비밀이다. 이게 바로 베하르의 비밀이다.
베하르는 시간과 공간과 활동을 초월하는 것인데, 이 초월하는 방법이 이웃에게 주는 것이다. 사람은 다 내일 무엇을 먹을까 걱정한다.
왜 쯔다카가 문제가 되냐면, 내가 이만큼 있으면 이것을 가난한 자에게 주라고 하면 어떻게 되는가? 내가 절반을 떼어서 줬다. 그러면 내일 나의 모습은 반쪽이 된다. 그런데 또 가난한 자가 와서 나 좀 더 달라고 하면, 내일 나는 더 작아진다. 그런데 이것 마저도 달라고 하면, 나는 아웃이 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다 물질에 따른 공간과 시간의 개념이다. 내일 내가 없어진다. 그래서 줄 수가 없다. 내일을 걱정하는 것이다. 시간 속에서 시간의 노예가 되어있는 것은 바로 내일을 걱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 것은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고, 지금 주어라는 것이다. 이것을 주님의 명령이라고 한다
시37:21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
- 의라고 하는 것은 계속 은혜를 베풀고 주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신다. 그의 의는 은혜를 베풀고 계속 주는 것이다.
우리가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는데 가장 핵심은 내가 주는 것에 핵심이 있지 않고, 아버지가 주신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자체는 베하르 티칭이다.
마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 산에 올라가서 가르치셨다. 그래서 산상수훈이라고 한다.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마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의라고 하는 것이 쯔다카이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쯔다카를 행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 사람에게 보이려고 쯔다카를 행하냐면, 아버지께서 갚아주신다는 것, 아버지께서 더하신다는 믿음이 없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시간과 공간에서 자기가 활동해서 무엇을 얻으려고 한다.
물질적인 것을 초월해서, 불멸, 영원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쯔다카라고 하는데, 자기 것을 주는 것이다. 자기 것을 주는 것을 통해서 시간을 초월한다. 내일이라는 시간 속이 아니라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산다. 더 중요한 것은 아버지께서 주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99%의 모든 실제는 하나님이 쯔다카를 행하는 자에게 주신다. 아버지께서 상을 주신다.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어떤 교회에서는 헌금을 할 때 항상 무기명으로 한다고 한다. 거기에 100%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의 가장 핵심, 은밀하게 한다는 것은 쏘드, 비밀이다. 이 세상의 삶의 비밀 중의 하나는, 쯔다카를 은밀하게 하는 것이다. 쯔다카를 은밀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사람 밖에 없다. 하나님이 갚아주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다.
쯔다카를 은밀하게 하지 못하는 사람은 꼭 사람, 공간과 시간, 물질적인 것에서 보상을 받으려고 한다. 쯔다카를 은밀하게 하는 것을 주님이 티칭하신다.
마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이게 지금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이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베하르에서 안식년을 지키라고 하시는 것이다. 제일 이것을 못 지키는 이유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안식년을 못 지키는 이유가, 그 다음 한 해, 내일을 걱정하는 것이다. 지금 씨를 안 심으면 내일 어떻게 되냐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아버지가 준다고 하신다. 원래 주는 존재는 아버지이다. 이것이 우리가 이 세상,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분께서 더하신다.
누가 믿음이 있는 자인가? 선, 쯔다카를 행하는 자들이다. 내 것을 떼어 주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 있는 자들이다. 이게 영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어떤 랍비 둘이 길을 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저만치에 어떤 청년 둘이 길을 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스라엘은 광야이다. 광야에서 길을 가는 것은 위험하다. 뜨겁고 힘들고 위험하다. 그래서 길을 갈 때 물과 음식이 굉장히 중요하다. 광야에는 먹을 것, 물이 없기 때문이다. 랍비들이 보고 있었는데, 한 지치고 음식이 없고 물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 나타나서 이 두 청년에게 음식을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래서 랍비들이 그것을 보고 저 두 청년이 어떻게 반응하는가 보기로 했다.
두 청년 중의 한 청년이 자기의 음식을 주었다. 한 청년이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너 그것을 주면 너는 어떡하려고 하는가? 이 청년의 반응은 재미있다. 나는 절대로 너에게 나누어주지 않을 것이다. 내일 되면 음식이 떨어지고, 쟤는 나에게 달라고 할 것이라고 계산한다. 그래서 못 주게 하는 것도 아니고 못을 박는 것이다. 나는 너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이 청년은 음식을 줬다. 그리고 이 가난한 사람이 자기 길을 가야하는데, 먹고 남은 음식을 또 싸서 주었다. 왜냐면 이 가난한 사람이 길을 가다가 또 굶주릴테니, 남은 음식을 싸서 줬다. 이 청년들이 남아있는 것이 없다. 랍비들이 멀리서 보고 있었다.
랍비들 중 하나가 이야기했다. 정말 하나님이 더하시기에 합당한 청년이다. 왜냐면 쯔다카를 행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기적을 베푸셔서 저 청년에게 더하시는지 보자고 했다.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오던지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청년은 굶주리고 목마르고 거의 죽게 되었다. 그래서 랍비 하나가 우리가 가서 도와주자고 했다. 그랬더니 한 랍비가 그냥 두어라. 하나님께서 쯔다카를 행하는 자에게 어떤 기적을 베푸시는지 보자고 했다. 랍비 하나는 몸이 단 것이다. 그런데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길을 가다가 나무 그늘을 발견해서 쓰러져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독사 하나가 나타나서, 이 청년을 죽이려고 했다. 상황은 점점 정 반대의 상황으로 가고 있다. 다 잃고, 굶주리고, 지쳐 실신했는데, 독사가 나타나서 이제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한 랍비는 구해줘야 한다고 하는데, 한 랍비는 쯔다카를 행하는 자에게 두고보자고 했을 때 갑자기 그 청년이 자고 있던 나무 위에서 다른 뱀 한 마리가 내려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독사가 그 뱀을 죽인 후에 이 독사는 자기 길을 가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쯔다카를 행한 청년에게 죽을 수 밖에 없는 길을 해결해 주셨다.
우리에겐 시시각각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온다.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뭔가? 내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니다. 모든 제국과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과 물질을 이용해서 해결하려고 살다가 다 잃어버리고, 죽음 앞에서 다 잃어버리고 가게 된다. 그제서야 랍비는 이제 우리가 가서 먹을 것을 주자고 하면서 그 청년을 배불리 먹였다는 아주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느냐? 사람은 쯔다카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것이 베하르의 핵심이다. 사람은 시간, 공간, 인간의 활동을 초월하지 않는 한 물질에 목메어서 살게 된다. 그러면 그것 자체가 죽을 운명이다. 물질은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떻게 불멸의 삶, 영원을 사는가? 그것의 유일한 방법은 내 것을 주는 것이다. 이것을 쯔다카라고 한다.
시79:11 갇힌 자의 탄식을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며 죽이기로 정해진 자도 주의 크신 능력을 따라 보존하소서
우리는 시간, 공간에 갇힌 자이다. 그런 자들은 죽이기로 주님이 정해진 자이다. 죽음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죽음에서 구해내신다. 원래 죽이기로 정해진 자였는데, 그 청년이 행한 쯔다카로 인해서, 거기서 나온다. 그분의 능력으로 그것을 보존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을 비밀이라고 한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 믿음, 하나님이 더하신다는 것이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라는 것이다. 내일 걱정은 내일에 속해있다. 지금 쯔다카를 행하면서 살라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이것을 바탘흐라고 한다
בטח 베탘흐 : 확신, 안전
- 너희들이 안전하게 거한다
이 세상에서 바탘흐, 확신이라는 것은 뭔가? 베하르에서 하르는 잉태, 씨를 뿌리다는 말을 가지고 있다. 베하르에서 이 세상의 삶은 잉태의 삶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다. 씨를 뿌리면 반드시 나무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씨를 뿌리면 된다는 것이다.
쯔다카는 마치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 그러면 반드시 나무를 주신다. 나무를 있게 하는 것은 주님이다. 나는 결코 나무를 있게 하지 못한다. 시간, 공간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내가 나무를 만들어내려고 하는데, 절대 안 만들어진다. 나는 이 세상에서 씨를 뿌리면 된다.
이 씨를 뿌리는 방법이 뭐냐면, 면제년이다. 면제년을 다시 한번 보자. 면제년이라고 하는 것은 슈미타라고 한다.
שׁמטה 슈미타 : 면제년
- 6년 동안 가난한 사람이 와서 손을 벌리면 죽어라고 꿔주어라.
신15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8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쥐지 말고
- 너와 함께 가난한 자가 있으면, 네 손을 움켜쥐지 말아라.
8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이게 약속의 땅에서의 삶의 가장 핵심이다. 6년 동안 돈을 꿔주는 일을 한다. 6년 동안 나에게 소출이 있는 이유는 꾸어주기 위해서이다. 여러분들에게 수입이 있다. 뭐든 나에게 들어오고 있다. 그 이유는 꾸어주기 위해서 존재한다. 수입이 없는 경우는 목적을 꾸어주려고 하는데 두지 않으면, 수입이 자꾸 없어진다. 수입이 없는게 있을 수 있을까? 있다.
수입이 없다는 것은 맨날 모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맨날 부족하다. 그 소리는 사실 제대로 된 수입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맨날 더 수입을 가지려고 삶을 산다. 왜냐면 맨날 모자라고, 만족이 안 되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수입이 내 필요보다 흘러 넘친다? 있는가? 봉금이 올 필요가 없고, 더 가질 필요가 없다?
부족한 것이 끊이질 않는다. 평생 모자람이 끊이지 않는다.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 그러면 네 손은 누구 손이고, 그는 누구인가? 다 그이지 않는가?
네 손이 누구 손이냐면, 수입의 목적을 꾸어주는 것을 두는 사람이다. 이 사람의 네 손의 정체이다.
그러면 6년 동안 남 좋은 일만 한다. 내가 왜 일하는가? 남 좋은 일을 위해서이다. 이것을 이웃 사랑이라고 한다. 토라를 배우는 사람들은 정말 허망한 것이다. 남 좋은 일만 시키려고 산다. 아멘. 이게 약속의 땅에서의 삶이다. 6년 동안 꾸어준다.
6일 동안 하는 일이 뭔가? 꾸어주는 일이다. 수입이 났다고 하면 꾸어준다. 뭔가를 가졌다하면 꾸어준다. 뭐가 생겼다 하면 다른 사람부터 살리고 본다. 토라 공부는 왜 하는가? 왜 깨달았는가? 나 살려고?? 그러니까 깨달음의 만족이 오는가? 더, 계속 깨달아야 한다. 끝이 없다. 진정한 깨달음이 오지 않다. 깨달음이 왔으면 이것을 가지고 계속 살려야 하는 것이다. 계속 꾸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7년의 끝이 오면 꿔준 것을 없었던 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또 나는 무슨 일을 한 것인가? 없었던 일이다. 돈을 안 받는다. 없었던 것이라고 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7년째 해에는 왜 꿔준 돈을 갚는 것을 면제해주냐면, 7년째는 오로지 둘이 결합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 이웃이 내 몸이다. 그래서 이 이웃이 완성되야만 내가 살 수가 있다.
이것을 톱니바퀴라고 한다. 이웃이 똑같은 톱니바퀴는 아니지만, 톱니바퀴가 되야지만 딱 결합이 된다. 그런데 이웃이 톱니바퀴의 한 쪽을 못 만들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만드는가? 나는 이 톱니바퀴(=어금니)를 다 만들었다면, 주님이 나에게 수입, 소출을 주신다. 내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소출을 이웃에게 주는 것이다. 내가 한 부분을 만드는데 1년이 걸렸다. 그러면 이것에 해당하는 잉여분이 있다. 소출이 있다는 것이다. 남는 것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이 부분만을 만들 수 있다. 다른 것을 미리 만들어두는 것이 아니다. 잉여 가지고 다른 것을 얼른 만들어두어야 내가 산다는 것이다
어금니는 어금니에만 박는다. 어금니가 남았다고 모든 치아에 어금니를 박아놓으면 큰일난다. 그런데 우리가 다 그렇게 산다. 그래서 다 어금니이다. 이 남는 것을 가지고 이웃의 어금니를 박아주는 것이다.
또 이웃이 행하는 것이다. 내가 남는 것이 있으면 또 이웃을 위해 해 주라. 결국 7년째가 되면 이 톱니바퀴가 완성이 된다. 이웃이 완성되었다. 그러면 7년째 되면, 이것을 도로 내놓는가? 어금니를 도로 빼 가는가? 그게 아니라, 7년째는 둘이 이제는 결합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7년째 해는 도로 내놓으라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이다. 이게 이 세상의 물질을 초월하는 것이다.
물질을 초월하면, 이 물질이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이웃이 나를 살리는 것이다. 이렇게되면, 사람은 영원을 살게 된다. 그래서 모든 수입은 다 이웃을 위한 것이다. 이웃의 톱니바퀴를 만들어주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시37:21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
악인은 꾸고 갚지 않는다고 한다. 이웃이 나이면, 그냥 주지 왜 굳이 꾸어주냐는 것이다. 어차피 7년째 해에 면제해 줄 것이고, 나랑 결합하기 위한 톱니바퀴이고, 이웃이 나이면 그냥 주지 왜 치사하게 꾸어주는가? 6년 동안은 꾸어주고, 6년 동안은 이웃이 그것을 갚아야 한다. 만약 7년째 어차피 면제받을 것이니까 계속 안 갚는다면, 악인이다.
왜 주님이 그것을 쓰는가? 꾼다라고 하는 것은 라바라고 한다.
לוה 라바 : 꾸어주다
שׁלם 샬롬 : 갚다
꾸어주는 것은 훈련을 실제화 시키는 것이다. 돈을 그냥 주면 그것을 자기 쾌락을 위해서 사용한다. 그런데 돈을 꾸어주면, 그것으로 자기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갚는다는 것은 형상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으로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형상을 완성하기 위한, 샬롬을 가져오기 위한 그 일을 하는 것이다. 꾸어준다는 것은 훈련하게 하는 것이다. 돈을 다시 받으려는데 목적이 있지 않다. 그런데 그것을 갚으려면 자기의 게으름을 합리화 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생산적인 일, 하나님의 형상 되는 일을 해야한다.
그렇지만 7년째가 되면 그런 삶을 산 사람들을 다 면제해준다. 그래서 악인은 꾸고 갚지 않는다. 악인의 전형적인 특징이 뭐냐면, 교회에 와도 이게 하나님꺼라고 하면서 지 맘대로 한다. 누가 줘도 하나님이 줘서 하는거지, 지가 잘나서 하는 것인가 라고 한다. 이게 악인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하나님 이야기를 하고, 굉장히 초월한 진리를 얻는 것 같지만 아니다. 어쩄든 의인은 의를 베풀고 준다
베하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간, 공간을 초월하도록 주시는 티칭이다. 내일 일을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쯔다카를 행하기 위해 수입이 생긴다. 이럴 때 인간은 물질을 초월하게 되어있다. 인간은 다 산에서 살게 되어있다. 쯔다카의 핵심은 하나님이 갚으시고, 더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산에서 살게 된다.
* 기도
하나님, 우리의 모든 수입, 소출이 나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원으로 나아가게 해 주십시요,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아래에서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걱정하지 않고 의, 쯔다카를 행하게 하여주십시요. 그 때 하나님께서 다 더하실 것을 믿습니다. 내 삶에 있는 모든 거침돌, 죽음을 제거하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에게 영으로 사는 법을 가르쳐주심에 감사합니다. 산에서 주님이 가르쳐주셨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게 하소서. 내일을 걱정하지 않게 하시고,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걱정하지 않게 하시고, 오로지 이웃에게 꾸어주기 위해서 사는 그런 삶을 살게 하소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 가운데서 살게 하소서
하나님은 의인을 절대로 죽음 가운데 두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쯔다카를 행하는 자들에게서 절대로 눈을 떼지 않으십니다. 모든 의인을 완성하시고, 풍요롭게 하시고, 모든 의인을 The Man이 되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은혜를 베풀며, 주는 그런 의의 삶을 살게 하소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시간과 공간의 노예가 되어서 내일을 걱정하며 살지 않게 하시고, 바로 오늘을 살게 하소서.
2부 예배
베하르와 베후코타이 토라포션이 나누어져 있기에 윤달이 끼었을 때는 공부를 자세히 할 수 있다.
בהר 베하르 : 산에서, In(ב) Mountain(הר).
- ב 베 라는 것은 공간, 시간을 모두 뜻한다.
Ex ) In His time, 그 시간에 안에
이번 주엔 산이라고 하는 것을 다루게 된다.
암송구절
레25:1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번 주 토라포션은 산에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전체개관 : 시내산에서 땅의 안식년의 규례에 대해 말씀하심. 6년 동안 땅을 가꾸어 소산을 거두지만 매 7년째 해에는 땅이 안식하도록하여야 한다.
이번 베하르에서는 안식년이라고 하는 규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아주 신비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이해하기 정말 힘든 말씀 중의 하나이다.
전체개관 : 7년의 안식년을 일곱 번 센 싸이클 뒤에 오는 50번째 해는 희년이 되고, 그 땅에 자유를 선포해야 한다. 팔렸던 소유지나, 노예였던 사람이 모두 자신의 소유지, 가문에게로 돌아간다.
안식년은 7년째 해이다. 이것을 또 7번을 보내라고 한다. 오메르 카운트도 7번씩 7번을 하고 있다. 49년이 지난 후에 50년째가 희년이다. 희년은 자유가 선포되어진다. 자유를 원하시는가? 자유하다고 생각하시는가? 지금 자유한가? 정말 자기가 원하는 것 대로 되는가? 자기가 온유하고자 하면 그대로 되는가? 자기가 정말 사랑하고자 하면 그대로 되는가? 정말 뭔가를 인내하고자 하면, 절제하고자 하면 그대로 되는가? 그렇게 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정말 주시고 싶은 것이 자유이다. 하나님의 생명을 그대로 다 살아낼 수 있는 자유이다.
דדור 드로르 : 자유
- 자유에서 가장 핵심이 문(ד)이다. 어디에 종속되느냐, 어디에 붙어있느냐이다. 이게 자유이다
이 헬라 사상은 자유에 대해서 거꾸로 가르친다. 내 머리 위에 누가 없어야 자유이다. 내 위에 있는 머리를 제거하면 자유인 줄 안다. 이 헬라 사상은 인간을 완전히 망친다.
그런데 하나님이 정하신 머리에 붙어있어서, 그게 내 머리가 되야한다. 그분에게 붙어있는 것이 내 머리가 되는 것을 자유라고 한다.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을 자유라고 하지 않는다. 내 Ego, 자아가 내 맘대로 하는 것을 자유라고 한다면 이 세상은 혼돈 덩어리가 될 것이다. 그게 창1:2, 혼돈하고 공허한 것이다. 엄청난 혼돈이다.
이 자유가 우리에게 주어진다. 50년째의 자유가 주어진다. 모든 혼돈을 뚫고 자유가 주어진다. 이 자유라는 뜻은 누구에게 붙어있느냐는 것이다. 50년째 희년은 모든 인류에게 자유를 주는데, 하나님께 모든 인류를 다 붙인다. 그 때 인간에게 진정한 자유가 온다. 그것을 주는 토라포션이 베하르이다. 이번 토라포션을 통해서 하나님께 붙게 되시길 축복한다. 진정한 자유, 진정한 삶 다운 삶을 누려보기 바란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가지고 자유롭게 살아보길 바란다
Ex ) 내 팔은 정말 자유하다. 내가 시키는대로 하는데 왜 자유한가? 이게 이 팔의 자유이다. 이 팔이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면 자유할 것 같은가? 아니다. 꽥 죽어버린다. 이 사지가 나에게 붙어있을 때 자유한 것이다.
50년째 해는 모든 인류를 다 하나님에게 붙이신다. 이것을 위해 50년째 대속죄일날 주님이 뿔나팔을 부신다. 뿔나팔이 울려퍼지면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과 붙어 하나님과 하나됨을 이룬다. 그래서 누구에게 붙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에게 붙는 자에겐 놀라운 안식과 자유가 오고, 자기가 어떤 자인지 다 찾아진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산에 세우신다고 한다. 동산, 모리아 산에 세우시고, 시온 산에서 영원히 안전하게 거하게 하신다. 이게 베하르이다.
정말 그 머리를 찾고, 진정한 자유를 얻은 간증을 들어보도록 하겠다.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찾게 되었을 때 얼마나 놀라운 자유가 임하고, 행복, 변화가 임하는지 들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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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에서 가장 이야기하는 것이 부부의 에하드, 결혼을 모르면 하늘 문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신비가 토라 전체에 걸쳐있다. 사랑의 고백을 하는 것이 진정한 결혼 생활의 시작일 것이다.
인카운터에서 자기를 죄인이라고 하고, 주님 앞에 나온 이 한 사람이 얼마나 귀한 사람인지, 주님이 이 땅에 죄인 때문에 오셨다. 그런데 자기가 죄인이라고 고백하지 않는 것처럼 참람한 것은 없다. 우리는 주님이 얼마나 감사하고 놀라운 분인지를 알 수 있다. 이제 영적 자녀와 제자들을 낳을 것이고, 자기와 같은 자들을 더 많이 아들의 나라로 옮기는데 귀히 쓰임을 받을 것이다. 한 명의 영혼이 얻어졌을 때 천국에서 잔치가 벌어진다. 천국은 매일 잔치하느라고 경비가 상당히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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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25
1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는데, 시내산에서 말씀하신다. 산에서 말씀하신다. 산이 주는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시내산과 약속의 땅과는 깊은 연관이 있다. 시내산에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거기서 살게 되는 모든 전제 조건이 주어진다. 시내산이 없다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 네가 그 땅에 들어갔을 때 땅으로 하여금 안식하게 하라, 샤밧을 지키게 하라. 안식년은 땅의 샤밧이다. 그것을 시내산에서 가르쳐준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거기서 안전하게 살려면, 반드시 시내산의 가르침이 있어야 한다. 이 이야기가 18절에 나온다
레25:18 너희는 내 규례를 행하며 내 법도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땅에 안전하게 거주할 것이라
베하르는 다 안전에 대한 이야기이다. 땅에 안전하게 거해야 한다.
בטח 베탘흐 : 확신, 안전
- 확실한 것이다. Sure..! Certenly..! 분명하다. 확신하다..! 나랑 영원히 같이 살고 싶어?! 베탘흐..!!!
이게 안전이라는 말이다. 오늘날 미국 사람들이 제일 우선시 여기는 가치가 Security이다. 삶의 Security가 없으면 굉장히 불안해 한다. 그래서 테러 경고를 한다. Security에 문제가 생긴다. 그 땅에 안전하게 거주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기왕 살려면, 삶이 정착이 되려면 안전이 있어야 한다. 안전이 없으면 정착이 안 된다.
베하르는 어떻게 안전하게 거하느냐에 대한 티칭이다.
Ex ) 여기서 교회 생활을 하는 것도, 여기에 들어와 있는 것이 안전해야 한다. 여기 앉아있는데 갑자기 기둥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린다면, 여기에 가만히 설교를 들을까? 그럴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을까?
안전이라는 것이 왜 중요하냐면, 삶을 유지하려면 안전해야 한다. 베탘흐가 있어야 한다.
- 아니 베탘흐 : 나는 정말 확신한다. 그 어떤 것도, 사망이나 권세나, 하늘의 어떤 세력도, 가난과 부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를 끊을 수가 없다. 이것이 베탘흐이다.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중요한 것은, 지난 주 까지 생명도 얻고, 내가 누군지도 알고, 뭘 할 지도 알고, Festival할 줄도 아는데, 단 하나 남은 것이 베탘흐이다. 안전이 있어야 한다. 주님과 결합의 Festival을 하는데, 안전이 없으면 어떡하는가? 그러면 실현될 수가 없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를 끊을 것이 없다. 그러면 결국 이 בטח 베탘흐라는 것은 생명(ח)의 본질(ט)인데, 하나님이 다 더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를 끊을 것이 없다. 하나님이 더하시고, 하나님이 돌보신다. 이것이 베탘흐이다. 이게 없는 자들은 살 수가 없다. 확실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내 능력이 나를 돌본다? 내 능력이 뭔가?
- 대졸, 노가다 십장... 이게 나를 돌보는가? 이게 얼마나 허망한지 아는가? 이게 정말 안전할까?
왜냐면 인간은 갈수록 이 능력이 약해진다. 예전에 통했던 것이 안 된다. 얼마나 불안한지 아는가? 그래서 능력 있을 때 많이 챙겨둬야 한다. 못 챙겨놓으면 더 불안한 것이다. 그런데 아까 왜 짤려도 된다는 소리를 할 수 있는가? 안전이 온 것이다. 하나님이 돌보신다..!
예수를 인정하는 자는 하나님도 그 사람을 인정하신다. 그러면 하나님이 인정하시면, 하나님이 다 돌보신다는 것이다. 이것을 베탘흐라고 한다. 산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베탘흐이다. 이런 안전은 어떻게해서 오게 되는가? 사람의 안전을 제일 방해하고, 안전이 파괴되는 시스템을 지금 부터 배울 것이다.
그 시스템은 공간, 시간, 활동(사람의 능력)으로 이루어져있다.
- 활동은 원인과 결과라는 법칙을 발견해서 이루어진다. 원인과 결과는 시간을 파악해서 된다.
공간, 시간, 활동이라는 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안전 가운데 거하지 못하게 하는 핵심이다. 사람은 물질이 생명인 줄 안다. 이 세상에서 영은 한계가 없다. 그러나 몸은 한계가 있다.
사람에게 있어서 문제, 혼돈이 생겼다고 하는 것은, 사람이 물질, 몸에 포커스를 두었을 때 생긴다.
Ex ) 나에게 가난이 왔다? 가난이라는 것은 굉장히 큰 혼돈이고 어려움이다. 이것은 돈이 없다는 소리이다. 물질이 없다는 소리이다. 포커스를 지금 물질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계가 오는 것이다. 거침돌이 생기는 것이다. 내가 병에 걸렸다. 그러면 몸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내가 관계가 안 좋아졌다? 엄청난 혼돈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과의 문제가 생긴 것이다.
물질세계에서 사람이 물질적으로 살아갈 때, 사람에게는 혼돈이 오고 어려움이 온다. 물질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공간에서 살고 시간에서 사는 것이다. 이게 물질이 살아가는 특징이다. 물질은 반드시 공간이 필요하다.
여기서 만약에 선착순으로 다섯줄까지 다이아몬드 2캐럿씩 나누어준다고 하면, 자리 싸움이 치열했을 것이다. 왜? 나라는 물질, 몸이 앉으면 다른 사람이 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질은 우선 공간을 필요로 한다.
또한 물질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시간이 있어야지 물질은 자기를 살아낼 수가 있다. 만약에 물질에게 시간이 없다면, 굳어버릴 것이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시간이 멈추면 어떻게 되는가? 영화에 많이 나오지 않는가? 물질은 시간이 멈추면 끝장이다. 그래서 시간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물질에게 중요한 것이 내일이다. 시간이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공간을 점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근거로해서 활동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모든 물질은 다 끝난다는 것, 죽음이 온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원하는 것은 불멸, 멸망하지 않는 것이다. 영원이다. 영원하다는 것은 그냥 오래 산다는 개념이 아니라, 공간, 시간, 활동을 초월한 것을 영원한 것이라고 한다.
베하르에서는 공간, 시간, 활동을 어떻게 초월하는가, 즉, 인간이 어떻게 물질적으로 살지 않는가를 가르쳐준다. 물질적으로 살지 않아야 영원이 된다. 모든 물질은 멸망하고 끝난다. 아무리 공간과 시간을 점유하고 있더라도 모든 물질은 끝난다. 내가 어떻게하면 물질적으로 살지 않는가? 베하르에서 이 이야기, 그 신비를 가르쳐주고 있다. 영으로 살아야 한다
הר 하르 : 산, The(ה) Spirit(ר)
이 세상의 99%는 다 보이지 않는 것이다. 99%는 내가 모른다. 옆에 앉아있는 사람을 아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실제는 다 99%이다.
만약 인간이 물질, 몸으로 살면 1%밖에는 없는 것이다. 1%가지고 살려니까 언제나 부족하고 힘든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보이지 않는 영으로 살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영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 보이지 않는 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예쏘드라고 한다. 이것을 비밀이라고 한다.
베하르에는 비밀이 가장 많이 숨겨져 있다. 이 비밀은, 사람이 삶에서 왕국, Kingdom, 나라를 위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나라를 추구해야 한다. 그러면 왕국을 구하고, 나라를 구하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이냐? 왕국, 나라를 구하는 비밀을 뭐라고 하는가?
- 이것을 쯔다카라고 한다.
쯔다카 from 쩨덱 : 의, 선행을 베푸는 것, 구제, 주는 것
- 의라고 하는 것은 이웃에게 주는 것이다.
사람이 쯔다카를 베풀기 위해서 살 때, 사람은 그의 나라를 향하게 된다. 주기 위해서 살 때 그의 나라를 향하게 된다. 이게 놀라운 비밀이다. 그리고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
"하나님이 더하신다, 하나님이 증대시킨다, 번영시킨다"
- 이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것을 알고, 그 앎을 통해서 쯔다카를 행하는 사람을 비밀을 아는 자라고 하고, 이것을 믿음의 비밀이라고 하고, 믿는 자라고 한다. 이럴 때 사람은 물질로 사는 것을 초월하게 된다.
마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마태복음 5-7장을 산상수훈이라고 한다. 베하르 티칭이다. 산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는 원래 산 사람으로 살게 되어있다. 모든 안전한 사람은 산에 살아야 한다. 안전이라는 것은 산이 아니면 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산이라고 하면 뭐가 우거진 산을 생각하는데, 이스라엘가면 산이라고 하는 것은 뭐와 같은가?
광야에서는 산이 임신한 배와 같이 언덕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도시는 항상 산 위에 건설된다. 왜 그러냐면, 비가 오면 와디라는 것이 형성이 된다. 나무가 없으니까 밑으로 다 와서, 밑에 있다가는 순식간에 쓸려나간다. 그러니까 안전하게 거할 수 있는 곳은 산 위이다. 그리고 왠만한 평지는 농사를 지어야 하기 때문에 집을 짓고 살 수가 없다. 또한 적이 쳐들어오면 안전한 곳이 산 위이다.
그래서 인간은 원래 산에 살게 되어있다. 그래서 주님이 반석 위에 집을 짓는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다 산지인데, 산이 다 Limestone 덩어리이다. 그래서 이 반석 위에 집을 지으라고 한다. 밑에다가 집을 지으면 비가 오면 쓸려내려간다는 것이다.
인간은 산에 살게 되어있다. 그래서 아담이 처음에 에덴동산에 살았다. 그런데 홍수가 난다. 홍수가 나면, 사실 하나님이 홍수를 통해 인간을 멸하실 때, 산을 잠기게 하시는 일을 하신다. 산들을 다 잠길 때 까지 홍수가 일어난다. 결국 하나님의 산이 아니라, 자기 산을 만들고, 자기 산에서 살아가는 것을 다 잠기게 하신 것이다.
그런 후에 배가 아라랏 산에 딱 도착한다. 예루살렘을 아라랏이라고 한다. 아라랏 산은 시온의 산들을 아라랏 산이라고 한다. 그래서 산에 내리게 한다. 산에서 주님께 제물을 드리게 한다.
그리고 바벨탑을 쌓는다. 인간들이 바벨탑을 산이 아니라 시날 평지에 쌓는다. 산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것이다. 평지에다가 바벨탑을 쌓는다.
산의 Life style을 살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산이라고 하는 것은 다 잉태이다. 씨를 뿌리는 것이다
- 하르 : 잉태, 씨를 뿌리는 것
씨를 뿌리고, 나머지는 다 하나님이 돌보신다. 그런데 인간들이 그것을 자기들이 주관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벨탑을 쌓지 않고,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을 돌보신다는 것, 그 믿음을 의로 여긴 한 사람이 있었다. 이 믿음을 의로 여긴 것이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을 돌보신다는 것에 대한 믿음이다. 레크레카한 아브라함이 있다. 결국 창22장에서 아브라함을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갔다. 내가 너를 인도하려고 했던 곳은 산이다. 내가 지시할 산으로 가라..!
신명기에서 안식년을 다루는 토라포션이 르에, 여호와 이레이다. 모리아 산을 다룬다. 산에 데리고 간다. 참 희한하다. 산에 데리고 가서 이삭을 바치라고 한다. 주님이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것인가?
출애굽기도 마찬가지이다. 모세의 노래를 보면, 출15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꺼내서, 하나님이 지으신 기업의 산에 너희들을 심고자 한다고 한다. 산에 심고 싶다. 그래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기어코 하나님은 예루살렘, 시온 산으로 가신다. 저 북방에 있는 시온 산, 거기서 온 땅을 통치하시고, 시온 산에서 우리와 결혼생활을 하시고, 시온 산에서 영원히 사시겠다고 한다. 내가 영원히 거할 곳은 시온산이다. 주님은 산이 아니면 살지 않겠다고 하신다.
이스라엘 땅에 가 보시면, 땅이 정말 조그마하다. 그런데 갈릴리-사해와 지중해 사이가 중앙 산악지대이고, 지중해 쪽이 평야지대이다. 여러분이 약속의 땅이라고 하면 기름진 평야지대에 살아야 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보고 유대 산지에 살라고 한다.
- 저 산지를 내게 주소서
왜 산지를 달라고 하는가? 평야를 달라고 하지? 산은 돈이 별로 안 나간다. 산에 살라고 한다. 주님이 나중에 에스겔서에 보면, 이스라엘 산에게 막 예언하신다. 참 이상하시다. 왜 산에게 예언하시는가? 다 산으로 돌아와야 한다.
결국 주님도 산으로 돌아오시고, 결국 에덴동산이 회복되어진다. 산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산은 다 물질을 초월한 삶의 양식을 말한다. 그것이 영으로 산다고 하는 것이다. 영으로 산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주님이 산에서 티칭하신다.
-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라.
공간을 초월한다. 또한 내가 시간이 남아도는가? 그래도 가라고 한다. 십리를 가줄 수 있는 시간이다.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을 주어라. 나도 물질이 필요하고, 공간에 거해야 한다. 내가 좀 앉자고하면, 피해줘야 하는가? 이 공간에는 나만 앉을 수가 있다.
지금 계속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다. 희한한 이야기이다. 나도 시간, 공간, 물질이 없어 죽겠는데, 뭔 소리를 하냐는 것이다. 내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 베하르, 영으로 사는 것이다.
이것의 가장 핵심이 달라는 대로 주라는 것이다. 안식년이라는 것, 7 cycle이라는 것은 뭔가? 6일 동안 열심히 일했다. 무엇을 위해서? 불금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지 않는가? 그리고 7일째 하루 쉬는 것이다. 이게 시스템이다
안식년이라는 것은 6년을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번다. 그래야지 7년째 해에 1년 동안 펑펑 쓰면서 살 수가 있다. 이것을 안식년이라고 하는가? 6년 동안 열심히 일하라고 한다. 소출을 거두라고 한다. 그런데 주님이 6년째 해에는 내가 그 해의 먹을 것과, 7년째 먹을 것과 8년째 것 까지 3년치를 6년째 해에 준다고 한다. 그것은 그 동안 모아논 것이 없다는 것이다. 있으면 3년치를 줄 필요가 없다.
지금 모아놓은 것이 있는가? 하여튼간 여러분들과 토라는 다르다. 6년 동안 열심히 일했는데, 결론이 모아논 것이 없다는 것이다. 분명히 하나님이 축복을 주시지 않았는가? 모아논 것이 다 어디갔는가? 다 먹었는가? 없다. 6일 동안 열심히 일했다. 그러면 하나님이 6일째 되는 날에 이틀치를 주신다. 모아 놓은 것이 없다. 뭐 하려고 일하는가?
이것이 베하르의 신비이다. 사람은 소출이라는 것을 주님이 주신다. 그런데 소출가지고 쯔다카를 해야한다. 다 나누어주어야 한다. 뭐 하려고 돈을 버는가? 주기 위해서 돈을 번다. 사람이 왜 주지 못하는가? 주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뭐냐?
- 내일 때문이다. 내일이 불안해서 그렇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게 대단한 것인 줄 알지 않았는가? 아프리카에서 순교하면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인가? 그런데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마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 의를 행하는데,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고 한다.
의를 행하는 것의 가장 핵심이 구제이다. 이웃에게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때 주의할 것이 있는데, 반드시 알 것이 아버지가 상을 주시고, 갚아주신다는 것이다. 이 원리이다. 이것을 믿는 자들만이 의를 행할 수 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은 의라고 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갚아주신다는 것을 믿는 자들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다.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구제함을 은밀히 하라고 한다. 정말 어렵지 않은가?
어떤 교회는 아예 헌금을 다 무기명으로 한다고 한다. 정말 마음 상하지 않는가? 내가 뭔가를 했는데 아무도 모른다. 그러면 맘 상하지 않는가? 안 상하는가?
Ex ) 누구에게 100원 줬는데 아무도 모른다면 몰라야 맞다. 그런데 내가 1억원을 했는데 아무도 모른다면, 어떨까?
은밀하게 하라는 것을 쏘드, 비밀이라고 한다. 인생의 비밀, 영원이 사는 것의 비밀은 은밀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비밀,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아버지가 갚아주시고, 아버지가 살아계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너희들이 삶을 살 수 있는 안전이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갚아주신다. 이게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의 핵심이다.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
물질과 영을 동시에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물질을 초월해서 영원의 삶을 살던지, 물질의 노예로 살던지 둘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런데 물질을 초월하는 그 삶에 대해서 주님이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신다.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우리는 반드시 쯔다카를 할 때 내일 내가 무엇을 먹을까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게 6년 동안 모아논 것이 하나도 없는 이스라엘 백성의 상황이다. 그리고 6년째 해에 주님이 3년치를 주시는 기적의 장본인이 되는 길이다.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로 대표되는 모든 문명의 제국들은 다 공간과 시간을 중요시 여긴다. 재정을 가지고 문명을 건축한다. 그러나 이 제국들은 이스라엘 땅을 점령했다가 다 사라진다. 오히려 점령했다고 하면 사라진다. 그 산에 올라왔다 하면 다 사라진다. 그 모퉁이 돌이 다 부딪혀서 사라진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문명의 제국들이 추구하는 것이 다 내일이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내일을 걱정한다.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 걱정하지 말라는 것은 내일은 없다. 영원은 지금이다. 지금 의를 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는 그 길이다. 베탘흐라고 하는 안전은 바로 여기서 온다.
신15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8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 필요한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필요한 것이 있다. 결핍이 있다. 필요라는 것은 결핍이 있다는 것이다.
자기에게 수입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늘 여러분들에게는 필요, 결핍이 있다. 항상 조금 모자라는 것 같다. 봉급이 올랐으면 좋겠는가, 안 올랐으면 좋겠는가? 나는 솔직히 봉급이 좀 내려갔으면 좋겠다는 사람 있는가? 왜 올라갔으면 좋겠는가? 결핍, 필요가 계속 있는 것이다. 수입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수입을 계속 늘려가야 한다.
그러면 네 손을 펼 사람은 도대체 어디있는가? 수입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 네 손을 피는 것이 아닌가? 결핍이 없는 사람들이 손을 피는데, 여러분들이 다 결핍이 있는데, 손을 펼 사람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왜 인간은 결핍을 느끼는가? 인간에게는 반드시 잉여 생산물이 있게 되어있다. 약속의 땅에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The Man이 되기 위해서는, 이웃이 나인데, 6년 동안 소출이라는 것은 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웃과 나는 톱니바퀴의 관계와 비슷하다. 이것이 6년 동안에는 이 톱니바퀴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반대쪽 톱니바퀴와 연결되야지 나를 완성한다. 그런데 이쪽 톱니바퀴의 한쪽이 없다. 그러면 여기 톱니바퀴를 어떻게 건설하는가? 내가 꾸어주게 되어있다. 그래서 6년 동안은 열심히 일을 해서, 내가 톱니바퀴를 하나 만들었으면, 이것을 가지고선 얼른 내 톱니바퀴를 다 만들어놔야겠다고 하지 말라는 소리이다. 한 해에 하나씩만 만든다. 그래서 이것을 딱 하나를 만든다. 그러면 이것을 가지고 나머지 것을 만들어놓으려고 하면 안 된다
예를들면 어금니는 어금니 하나에만 있어야 한다. 많이 남았다고 해서, 자기 이빨을 어금니로 다 채우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어금니 하나를 딱 만들었으면, 이웃의 어금니를 주라는 것이다. 그 다음 해에 또 만들었으면, 남는 것이 있으면 이웃에게 주라는 것이다.
안식년의 신비가 뭐냐면, 7년째가 되면 꾸어줬던 것을 다 없앤다. 7년째가 되면 은행에 가서 반드시 이야기해야 한다. 올 해 7년째입니다. 모든 것 없애주세요. 그런 법이 어딨냐고 하면 신명기 15장 말씀에 있다고 해보아라.
그게 인간이 살 길이다. 6년 동안에는 꾸어준 것을 받는다. 그런데 7년째가 되면 오히려 안 받겠다고 한다. 7년째는 더 이상 꾸어주면 안 된다. 이것을 결합하는 일만 한다. 너가 나이기 때문이다. 결합하는 일만 한다. 이것이 안식년의 신비이다.
사람이 수입에 늘 결핍이 있는 이유는, 내일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내일 일을 걱정하지 않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이익을 가지고 이웃에게 주기 시작할 때 사람의 수입은 완전해진다. 그러면 내일 어떡하는가? 그게 하나님을 믿는가, 안 믿는가의 차이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실제적이다. 나를 천국 데려갈 분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나의 안전으로 믿으시는가? 그런 사람은 오늘 가난한 자를 향해 손을 편다.
베하르, 산상수훈 티칭은 굉장히 심플하다. 쯔다카를 위해 살라는 것이다. 단지 그가 더하신다는 것을 믿고,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광야에 두 청년이 물과 음식을 가지고 걸어가고 있었다. 시간과 공간을 살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물과 음식이다. 시간이 지나면 물이 떨어진다. 그런데 랍비 둘이 뒤를 쫓아가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고 했다. 그 앞에 목마르고 가난한 사람이 나타났다. 광야에서 매점, 식량도 없는 상황에서, 한 젊은이가 이 사람에게 자기 먹을 것을 주었다. 그런데 옆 친구가 너 나중에 내꺼 안 준다고 못을 박는 것이다. 벌써 머리가 돌아가는 것이다. 얘는 먹을 것을 주었으니까, 떨어지면 내 것을 같이 먹으려고 하는구나. 그러면 나도 죽는다. 내일 닥칠 일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젊은이가 네 것을 먹지 않겠다고 하면서, 지금 쯔다카를 베푼다고 먹을 것을 주었다. 그리고 이 가난한 사람이 길을 가려고 하는데, 먹을 것을 준 젊은이가, 이 사람이 먹을 것이 없으니까, 가다가 굶고, 목말라 죽을까봐, 그 사람이 먹고 남은 자기의 음식을 싸서 이 가난한 사람에게 들려주었다. 이 사람이 길을 갔다.
랍비들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저 젊은이는 큰일났다. 그러나 랍비들이 이야기하길, 쯔다카를 베푸는 살마에게 하나님이 상을 주시고, 더하시는 분이고, 기적을 베푸시는 분이다. 이 땅에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이유는 다 이것 때문에 일어난다. 쯔다카를 베풀지 않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한 랍비가 저 젊은이가 불쌍하니까 먹을 것을 주자고 했으나, 한 랍비가 하나님이 상 주시는 분임을 봐야 한다고 따라갔다. 그런데 시간이 점점 지난다. 시간과 공간은 우리에게 뭔 영으로 사느냐, 쯔다카, 의로 사느냐 확신시켜준다. 너 목마르고 배고프지? 사망이 왕 노릇하는 죽음의 사자가 이 청년을 덮친다. 이 청년이 가다가 나무 밑에서 쓰러졌다. 그런데 같이 갔던 한 친구는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 주면 자기의 내일도 죽음이 오기 때문에 이 청년 혼자 쓰러져 있었다.
그런데 독사 한 마리가 이 청년을 향해 온다. 광야의 독사는 맹독이다. 이 청년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닥쳤다. 한 랍비가 살려주자고 했는데, 다른 랍비가 하나님의 기적을 봐야한다. 하나님은 반드시 쯔다카를 행하는 자에게 더하시고 기적을 베푸신다고 했다. 우리가 기적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런데 그 때 바로 나무에서 다른 뱀 한 마리가 이 사람을 죽이려고 내려온다. 그런데 이 독사가 다른 뱀을 딱 죽이고 유유히 사라진다.
실제로 이 청년에게는 먹는 것을 잔뜩 먹고 왔어도, 죽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 도래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자기가 어쩌지 못하는, 먹고 마시고 나를 살리려고 그렇게 했어도, 독사가 물면 끝장이다. 그런 어려움과 절망과 재앙이 다가오는 것을 내가 막을 수 있을까? 못 막는다.
그런데 하나님이 막아준 것이다. 하나님이 Security이다. 쯔다카를 행하는 사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영으로 사는 사람에게 말이다. 영으로 사는 사람은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지금 나에게 있는 것을 주는 자이다. 쯔다카를 행하는 것을 베하르, 산 사람들의 삶의 Life style이라고 한다. 이 사람들이 산에 사는 사람들이다
만약 산에서 다른 Life style을 산다면 주님은 산에서 쫓아내시고, 포로가 되게 하신다. 베하르 기간에 진정한 영적 삶을 아시게 되기를 축복한다. 어느 누구도 결핍이 있는 자는 없다. 지금 나에게 있는 것을 나를 위해서 챙겨두지 않고, 친구처럼 나를 위해서 챙겨두지 않고, 나에게 있는 것을 오늘 준다면, 하나님께서 나타나실 것이다. 은밀한 곳에 계신 아버지를 만나게 될 것이다.
다비드리 목사
청년부 예배
옛날에 물류센터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심심해서 정말 작은 물건을 엄청나게 큰 박스에 넣어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박스를 여러개를 겹쳐서 포장해서 4-5겹으로 보낸 적도 있었다. 그래서 불려 간 적이 있다. 불만이 접수가 되고, 아침 조회 시간에 누가 도대체 이런 짓을 하는거냐고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에 작은 박스, 상자를 가지고 있다. 물론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의 차이이다. 상자는 보이지 않는다. 영의 눈으로 보아야지만 볼 수 있는 작은 상자가 있다. 그리고 그 상자 속에는 이제껏 우리가 볼 수 없었던 가장 아름답고 가치있는 것이 숨어있다.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석이 그 안에 들어있다.
물론 그 보석을 싸고 있는 박스, 상자는 그닥 비싼 것은 아니다. 자기가 값을 치루고 구입했을 수도 있고, 주변에서 쉽게 누가 주거나 얻을 수도 있고, 오다가다 줏을 수도 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박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의 보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나 스스로가 그 박스를 봉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열고 싶지 않아서 테이프로 끈으로 묶고 자물쇠로 잠궈버린다.
주님은 내 상자 속에 있는 보석과 같은 모양의 보석이시다. 내 안의 보석과 같은 모양의 보석이시다. 주님은 박스 포장된 나를 계속 바라보고 계신다. 나는 보석이고, 너는 박스다. 그리고 그 박스가 언제쯤 열려질지를 기다리고 계신다. 안에 있는 박스가 계속 열리고, 그 안의 주님과 만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자신과 같은 존재로 만나기 원하신다. 상자를 다 벗어버리고, 주님과 내가 존재와 존재로 만나기를 원하신다
나를 싸고 있는 그 상자를 벗어야지만 우리는 주님을 만날 수 있다. 비로소 그 때 주님은 나에게 다가오실 수 있다
사실 나를 감싸고 있는 박스는 내 모습이 아니다. 이뻐보이고, 멋있어 보이는 박스는 내 모습이 아니라, 그것은 다 허상이고 망상이다. 벌거벗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는 상태, 주님과 내가 존재와 존재로 만날 수 있는 상태, 존재와 존재가 하나됨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청년들이 되자. 우리에게 참된 자유함을 허락하실 것이다.
이 시간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은 한 자매의 간증을 듣기를 원한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박스 그 상태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 박스를 청년부 예배 가운데 벗기기를 원하는, 그리고 주님과 존재와 존재로 만나기 원하는 한 자매의 간증을 듣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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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따로 분리되어 있는 혼자라는 생각이 나를 박스 안에 가둬두는 것이다. 우리는 그 박스를 다 벗어버려야 한다. 그 박스는 내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귀한 자이고, 우리 각 사람은 연결되어 있는 한 몸이다. 이게 나의 존재인 것이다.
토라는 다 주님의 ק 쿠프, 소망을 담은 책이다. 에덴, 새 하늘과 새 땅, 이런 것들이 쓰여져 있다
사52:8 네 파수꾼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보리로다
그들의 눈이 마주보리로라. 존재와 존재가 연합된 그 사랑을 말하고 있다.
קוּם 쿰 : (소망을 가지고) 일어나다, 서다
쿰의 핵심이 ק 쿠프이다. 너의 소망이 무엇인가? 너의 부활 생명이 너의 소망이 될 것이다. 주님 앞에 바로 서는 것이 부활 생명이다. 부활 생명은 내 눈과 주님의 눈이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몇일 전 한 형제가 저에게 질문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사람들은 다 길이 정해져있고, 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야 하는지, 자신있게 나의 길이라고 말하고 싶고, 그렇게 믿고 돌아보지 않고 후회하지 않고 가고 싶지만, 자신이 없고 답을 내릴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인지 모르겠다. 토라를 배우고, 마하나임하고, 예수를 믿고 살고 있는데,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하나님이 그 답을 제시해 주실 것이다.
דרך 데레크 : 길, 머리(ר)에 종속(ד)되고, 적용(ך)하는 것
토라를 배우는 이 길이 맞는 것인가? 철저하게 그 머리에게 종속되면 그 길을 가는 것이 맞는 것이다. 내가 종속되는 그 머리가, 세상적인 머리인가, 그리스도의 머리인가의 차이이다. 그리스도의 머리에 완전히 종속되면 그 길을 가는 것이 맞다. 토라에서 말하는 길은 종속되지 않고는 갈 수가 없다. 내가 가는 길이 맞다고 하더라도, 종속되지 않으면 갈 수가 없다.
이 노래 가사와 비슷하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고, 내가 가는 것인지, 주님이 가는 것인지 모르는 상태가 에하드의 상태이다. 내가 가는게 맞는게 아니다. 내가 가는 길이 이 길일수도, 저 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길을 주님과 함께 간다면, 그 길이 에하드의 길이다. 종속되어서 갈 때 주님은 답을 주시고, 목적지가 되어주실 것이다.
אמר 에모르 : 말하다, 지각하다, 살려 주는 영이신 주님
- 주님은 우리에게 지각하고 깨닫게하심으로 우리를 살아나게 하신다. 무엇인가에 대해 깨닫고 지각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살아날 수 있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 를 지각해야 인간은 살 수 있다. 인간에게 나를 살려 주는 에모르가 있는가? 내가 나를 살려 주신 예수 그리스도, 에모르가 있는가? 그분을 통해 깨닫고 지각함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이 있는가? 이것을 통해 인간의 삶이 결정된다.
토라는 내가 배운다고 배워지는게 아니다. 토라의 말씀은 살려 주는 영이신 예슈아가 알려주지 않으면 결코 살아낼 수 없다.
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דבר אמר 다바르 에모르 :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해서 기다렸던 그 메시아는 이 에모르이다. 우리를 살려주시는 에모르이시다. 다바르 에모르이다. 하나님의 다바르, 아버지와, 에모르, 예슈아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 상태가 바로 에하드의 상태이다. 영이 되고 생명이 되는 이 다바르 에모르가 에하드인 것이다.
다바르 - 에모르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된다.
그리스도와 교회가 하나가 된다
이스라엘과 이방이 하나가 된다.
영과 혼이 하나가 된다.
- 혼은 영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받는 의지는 주는 의지를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이야기일까? 이것은 다 한 마디로 하면, 결혼이다. 그래서 지난 주 토라포션에서 어떤 아내를 취하느냐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신부는 거룩해야 한다. 결혼했는데 신부가 거룩해야 하는데, For me, 자기를 위해서 결혼하면 큰일난다. 결혼은 에하드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에하드는 철저하게 자기 자신, 자아가 죽지 않으면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을 한 마디로 하면 미친 짓이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꼭 죽어야 하는가? 죽지 않고는 결혼할 수는 없는가? 내 의지가 살아있고, 자유의지가 죽지 않고 결혼하면 안 되나? 내 맘대로 하면 안 되나?
- 안 된다. 죽지 않으면 결혼할 수 없다. 내가 죽지 않고 결혼하면, 이것이 전쟁의 서막이 되는 것이다.
제가 29에 결혼했는데, 자아가 죽지 않은 채로 결혼했다가 몇 년간 전쟁을 치뤘다. 내 욕구는 불타오르고 있는데, 이것을 죽이라니?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한 때 심한 중독 중에 영화에 대한 중독이 있었다. 신작 영화는 극장에서 다 보고, 못 본 것은 다 비디오로 보았다. 그러나 결혼하는 순간 취미생활이 막히기 시작한다. 내 욕구는 혼자라도 영화를 보고 싶었다. 그런데 우리 아내는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왜 여전히 너를 위해 살려고 하고, 너의 의지가 발생하는가? 나는 좀 더 눕고, TV보고 싶은데, 아내는 계속 못 하게 한다. 자고 싶다고 해도, 일어나라고 한다. 자기의 자아를 계속해서 죽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완전 죽겠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 목사가 되면서, 이제는 내 의지를 위해서 살지 않을거야라고 하고 있지만, 없앤 것이 아니라, 살짝 덮어놓은 것 뿐이다. 아내가 없을 때 맘껏 다운을 받아놓고, 보면 된다. 내 욕구가 불쑥 튀어나올 때 마다, 나 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게 된다. 완전 테러 수준이다. 집안이 나의 욕구 하나로 인해서 붕괴되고, 아내와 싸우게 된다. 영화보고 싶은 사소한 것 하나가 가정의 파탄을 일으킨다. 몇날 몇일 말을 안 하는 이유가, 내가 더 자고 싶고, 먹고 싶기 때문이다.
아이들 간식이라고 꺼내놓은 것을 너무 맛있어 보이니까, 먹다보니 싹 먹어버린 것이다. 내 욕구가 먹고 싶어서 그랬다. 어떻게 애들 간식을 먹을 수 있는가? 당신이 아빠인가? 나를 사랑하는건가, 이 과자를 사랑하는 것인가? 그러더니 몇 날 몇 일을 싸우는 것이다. 그 과자가 뭐라고, 몇 개 먹은 것이 이렇게 크게 말을 안 할 정도로, 서로가 상처를 받을 정도의 싸움의 원인이 되는 것인가? 돈 주고 사오더라도 안 된다. 내 안에 여전히 남아있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자아가 죽지 않고, 탐심 가운데 더 내 것으로 취하고 싶다. 애들이 배고프다고 해도 괜찮다. 내가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 욕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에하드는 For me가 아니라, For him일 때 일어난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을 위해서, 그분을 목적으로 할 때 실현되는 것이다. 삶의 목적을 내가 아니라 주님께 두고 싶을 때, 주님은 살려 주는 영이신 에모르를 주신다. 그런 사람을 성경에서 코헨, 제사장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과 주님은 존재와 존재로 만나신다. 대제사장과 제사장으로서 만나주는 것이다.
암송구절
레25:1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בהר 베하르 : 산에서
הר 하르 : 산, 언덕
이스라엘의 산은 우리나라처럼 뾰족하지 않고, 두리뭉실하게 언덕처럼 되어있다.
הר 하르 from הרה 하라 : 잉태하다, 임신하다
- 산은 마치 여인의 배 처럼 둥글둥글하게 생겨있다.
주님이 하신 모든 사역들이 왠만하면 다 이 산에서 일어난다. 주님이 시내산에 오셔서 하신 일이 모든 것을 다 잉태하신 것이다. 거기서부터 성경 말씀이 시작되는 것이다.
지난 주 레23장 절기 장에서 배웠다. 절기의 핵심이 안식일이다.
שׁבת 샤밧 : 안식, 형상(שׁ)의 집(ב)을 완성(ת)하는 것
하나님의 형상이 되기 위한 시스템은 다 7에 대한 시스템이다. 다 7로 이루어져 있다.
- 유월절 : 첫째 달 14일, 7이 두 번 반복되면 유월절이다.
- 그 날 부터 7x7 = 49, 안식일을 7번 세면 오순절이다. 이게 절기를 지키는 방법이다.
"오늘은 오메르 카운트 29일째입니다. 오늘은 호드에 헤세드를 결합합니다"
הוד 호드 : 겸손, 감사
- 겸손에 사랑을 결합하는 날이다.
겸손은 나 자신의 필요나 만족함 보다는 더 높은 차원의 목적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그것이 겸손이다. 그래서 호드라는 것에 겸손이라는 뜻 말고, 위엄, 영광, 광채라는 뜻도 있다. 겸손이라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다 포용할 수 있을 정도의 따뜻함이 겸손이다.
이번 한 주 동안 나에게 이런 따뜻함이 있는지 돌아보자. 나에게 다른 사람을 포용할 만한 포용력, 따뜻함이 있는가? 따뜻하게 안아주고 포용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 사랑해? 사랑해. 이 사랑을 가장한 오만을 자기 사랑이라고 한다. 나의 겸손이 이 사랑을 더 증가시킬 수 있는 한 주간이 되길 축복한다.
창1장도 다 7의 시스템이다. 타즈리아에서도 아이를 남으면 남자 아이는 7일, 여자 아이는 14일 동안 기다리라고 한다. 이 7의 시스템이 계속 증가되다보면, 7년을 7번 세서 49년을 보내게 되는 안식년을 맞이한다
שׁמטה 슈미타 : 안식년, 면제년
- 면제하다. 탕감하다.
50년째가 되면 희년이 오게 된다. 오늘날에는 희년을 언제로 보느냐는 다 다르다. 올해가 희년이다? 다 다양하다. 희년의 나팔을 부는 것은 상관없다. 그런데 희년의 핵심이 뭔가? 희년은 반드시 안식년을 7번 보내야지만 희년을 보낼 수 있다. 그냥 내 후년에 희년 합시다가 아니다. 반드시 안식년을 7번 보내야 한다. 이 희년이 다 7의 사이클로 되어있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규정할 수 있는 것을 흔히 3단계로 볼 수 있다.
- 공간 / 시간 / 네페쉬, 공간은 올람, 이 세상이다. 시간을 샤나라고 표현한다.
이 세상을 인식하게 되면 우리는 지금 이 공간에 살고 있다
Ex ) 예슈아 비전교회, 이 공간에 있다.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을 4라고 표현한다. 동서남북이다. 왼쪽, 오른쪽, 위, 아래, 봄 여름 가을 겨울, 다 4이다. 4는 다 이 세상, 이 공간 자체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간을 인식하는 것은 또 다르다.
시간은 여기에 3을 더하게 된다. 그러면 7이 된다. 그래서 시간의 시스템은 다 7로 되어있다. 왜 성경에서 안식일도, 슈미타도 왜 계속 7이라고 하고 있는가? 다 이 시간에 대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7에 대한 시스템이다. 예배 드리는 이 공간에 와 있다고, 나는 예배드리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나는 예배드리러 왔지만, 졸거나 하면 안 된다. 그러면 이 시간 속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여전히 공간의 교회 안에 있는 것이지, 시간 속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샤밧 뿐만 아니라 모든 절기 시스템을 이 7에 대한 시스템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7에 대한 시스템, 시간을 보게 되었을 때, 이것을 계속 작동하다보면, 네페쉬의 단계, 10을 인정하게 된다. 4부터 시작해서, 7로, 7에서 10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4, 세상은 다 잉태하는 단계이다. 이 세상에서 내가 태어났지만, 이 시간의 시스템, 7에 대한 시스템으로 계속 살 때 시간, 7에서 비로소 해산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양육이 들어간다. 그러면 네페쉬, 10의 단계에서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된다.
나는 지금 이 공간에 살아있는가? 시간 속으로 들어왔는가?
안식일을 이야기한다. 안식일은 7번째 날,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가지이다. 예슈아 비전 교회에 와 있으면 나는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공간이다. 그러나 안식일은 그분의 시간, Time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이 시간의 주관자가 그분이라고 하는 순간 시간을 보게 되는 것이다. 안식일은 아무 것도 안 한다고 한다면 공간 안에 있다. 그러나 안식일은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지,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이게 시간 속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사람을 인식할 때 여기 있다고, 예슈아 비전 교회 교인, 누구누구라고 보지 않는다. 이쁘다, 키 크다, 작다, 이런 것이 그 사람을 말하지 않는다.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의 실제를 보지 못한다면 여전히 공간 속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시간 속으로 들어와서, 어떤 고민이 있으며 상관이 없다. 공간으로 한 형제를 바라보고 있는 것과 같다.
베하르 자체는 모든 것의 기초가 된다. 잉태는 모든 것의 기초이고 시작이다. 그래서 4라는 것을 계속 배우고 있다. 이 4가 네짴흐, 호드, 예쏘드, 말쿠트이다. 승리, 겸손, 기초, 왕국이 바로 이 4이다. 십자가이다. 이것을 살아내는 것이다.
그랬을 때 이제 하나님의 시간 속으로 들어온다고 하는 순간 3이 더해지게 된다. 헤세드, 게부라, 티프에레트이다. 무조건적인 사랑,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 주는 사랑과, 이것이 하나가 되야 시간 속에서 주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안식년에 오게 되면, 이 두 번째, 시간, 샤나 속에서 사람을 보게 된다.
- 샤나 : Year, Transformation
시간 속으로 들어가야지 Transformation이 일어나게 된다. 절기에 대한 것을 살아냈을 때, 이것을 훈련해 나갈 때 비로소 우리가 변화가 되는 것이다.
저는 고등학교 때 교회에서 하는 수련회에 빠진 적이 없다. 기를 쓰고라도 수련회를 가야했다. 심지어 수련회에 가기 위해, 학교에서 하는 보충수업을 뺴달라고 호소한적도 있다. 선생님 앞에서 가야한다고 운 적도 있다. 별의별 짓을 해서 수련회를 다 갔다. 왜? 수련회에 가면 뭔가 있을 자매와의 썸을 위해서이다. 이게 단순히 교회 수련회가 아니라, 지방 연합 수련회면 무조건 가야하는 것이다. 각양각색의 다른 교회 자매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말씀, 강사, 다 필요없다. 반드시 어떤 자매를 만나느냐가 중요했다.
그런데 꼭 저와 같은 자매를 만나더라. 연락처를 주고받고, 수련회 이후에 이 자매와 지속적인 만남, 교제, 이것이 내 목적이었던 것이다. 수련회에 빠진 적이 없다. 모든 수련회에 다 참석했다. 그 공간에 있었지만, 그 자체가 나를 인식하지 않았다. 그 안에 있어도 생각은 수만가지였다. 자매를 보고, 이쁘다. 이런 생각밖에 없던 것이다. 강의, 기도는 상관이 없었다. 누구, 어떤 사람을 만날까, 이게 주제였다.
수련회에 앞장서서 가겠다고 하고, 전도사님은 너 밖에 없다고 하지만, 제 마음은 다른데 있는 것이다. 공간에 있지만 여전히 시간 속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시간 속에서 주님을 체험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시간 속으로 들어와야지만, 그 시간의 인식 속에서 나를 발견한다.
주님은 공간 안에 나를 잉태시키지만, 반드시 거기서 나와서 해산해야 한다. 여러분도 물질적 몸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리고 잉태 후 해산하고 자라나는 것은 시간 속에서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는 하나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단계에 오면 공간, 물질적인 것을 다루지 않는다. 시간의 하나님으로 이 땅에 오신 분, 철저히 7의 시스템 가운데 오신 분을 우리는 메시아라고 한다.
주님은 하르, 산에서 말씀하신다. 이 머리가 말씀하고 계신다. 주님 자체 속에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머리는 다 사랑이다. 사랑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를 잉태하는 것은 진리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사랑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남편이고, 결혼헀기 때문에 아기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이 나오는 것이다.
레25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ושבתה הארץ שבת ליהוה 베샤브타 하아레쯔 샤바 라야훼 : 여호와를 안식을 그 땅에서 해야한다.
- 하나님이 주시는 땅, 땅은 다 마음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 그 주는 사랑에서 안식을 해야한다. 땅을 얻었다. 그러면 반드시 안식년을 가져야 한다.
3 너는 육 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 년 동안 그 포도원을 가꾸어 그 소출을 거둘 것이나
6년 동안 밭에 씨를 뿌린다.
זרע 제라 : 씨
- רע 라아 : 악
악이랑 계속 싸우면서 우리는 계속해서 이것을 바꾸는 관점을 갖게 된다. 악과의 투쟁을 하면서 바꾸는 시간을 갖게 된다
שׂדה 싸데 : 밭, 하나님의 모양(שׂ)에 대한 문(ד)
- 하나님의 모양의 문을 계속 다루게 된다. 하나님의 모양에 계속 종속되는 것이 씨이다.
씨가 없으면 하나님의 모양에 종속될 수 없다. 목표가 분명하고, 명확한 그러한 씨를 우리는 뿌려야 한다. 자인을 가지면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되어있다. 6일 동안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하는 것이 이것이다. 이 자인을 위해서이다. 알렢부터 바브까지, 결과적으로 이 자인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자인을 계속 만들기 원한다.
6일 동안 나를 계속 교정시키고, 변화시키면, 거기서 소출이 나오게 되다.
תבוּאה 테부아 : 소출
- 이것을 먹는 것이 안식이다.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 까지는 이것을 다 모아 하나님의 Kingdom으로 가져오게 된다. 이것이 누구를 위하는가? 라야훼, 야훼를 위한 안식이다.
תבוּאה 테부아 from בא 보 : 오다, come
- 주님은 우리에게 오시는 분이다.
행1: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주님은 위로부터 나에게 내려오는 분이다. 바로 바브(6)가 된다. 그런데 우리는 올라가는 것, 반사하는 자인(7)이다. 주님이 내려오시는 것과, 내가 씨를 통해서 해산하게 되면, 이것이 하나가 된다. 그러면 13이 된다. 그게 바로 에하드의 상태이다. 4->7에 가는 상태가 될 때 나팔 소리가 울려퍼진다. 그것이 희년이다. 진짜 자유가 선포되는 희년이다.
더 이상 내가 나를 위해서 발버둥치지 않아도 된다. 온전한 주는 사랑을 위해서 살 수 있게 되는 상태가 된다. 진짜 신성, 하나님이 무엇인지 아는 상태, 이 10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바로 희년, 요벨이라고 한다.
יבל 요벨 : 하나님의 손(י)의 시스템(ב)을 계속해서 훈련(ל)하는 상태이다
희년은 모든 것이 원래 상태로 원상복귀되는 것을 말한다. 진짜 기쁨이 뭔지 아는 때가 희년이다. 우리는 다 이것을 향해 가고 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거야가 아니라, 반드시 우리는 해산해야 한다. 그것이 끝이 아니라, 이것이 양육되어 장성한 분량에 이를 때 까지 가야하는 것이다. 이 희년의 상태가 오게되면,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레25:10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여러분의 소유지가 어디인가? 이 10의 상태가 되면 우리는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
אחזה 앜후자 : 소유지, 신성한 삶에 반응하는 것
from אח 앜흐 : 형제
= 형제에게 반응하라
네페쉬의 장성한 분량의 상태까지 가면, 우리는 이 형제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이웃 사랑에게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시렞로 이 공간에서 하는 이웃 사랑, 시간 속의 이웃 사랑이 아니라, 장성한 분량 가운데서 실제 이웃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내 삶 자체가 여전히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형제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소유지가 된다.
이곳으로 갈 수 있는 사람은 공간, 시간을 거쳐 네페쉬, 영혼의 단계까지 간 사람만이 갈 수 있다. 완전한 10의 상태에 갈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이웃 사랑을 나의 소유로 준다? 주님은 이 희년의 삶으로 우리를 계속 이끌고 계신다. 이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반드시 시공간을 다 초월해야 하는 것이다.
משׁפח 미쉬팤하 : 가족
공간에서 봤을 때는 우리가 가족이 아니라, 그러나 네페쉬의 상태로 왔을 때 옆 사람이 가족이다.
나는 동그라미 가운데 분리된 한 사람 같고,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공간 가운데서는 가족을 못 느낀다. 물질적인 세계에서는 가족인 것을 못 느낀다. 나랑 피가 섞였나? 그러나 장성한 분량의 상태까지 오게 되면, 나의 옆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족이 된다. 이 분리된 한 사람이 가족이 된다. 가족이 아프면 내 아픔이 되는 것이다.
가족은 다 한 사람을 말하고 있다. 토라에서 사람은 단 한 사람 밖에 없다고 배웠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한 사람이 되기 위해 가는 여정을 가고 있다. 사람인 것 같으나, 사람이 아닌, 우리는 한 사람, The Man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것이다.
각각 자기의 가족, 이 한 사람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이것은 10, 요벨의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우리는 다 에하드가 되어, 한 사람으로 만나게 될 것이다.
주님은 베하르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시내산에서 잉태했다. 잉태는 반드시 해산을 하게 되어있다. 7년, 7에 대한 시스템을 7번을 하여라. 이것을 완성시켜라. 계속 양육되고 자라면, 네가 장성한 분량에 이를 것이다. 그리고 나의 세상을 네가 살게 될 것이다.
정말 주는 사랑이 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여전히 4의 상황에서는 주는 사랑을 내 삶에 적용을 못 하고 있다. 주는 것 같지만, 여전히 받고 싶고, 다 주면 나는 뭐 먹고 살지? 계속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10의 상태에 오면 그런 걱정이 사라지고 자유함이 선포된다
이웃 사랑이 너희의 소유지가 될 것이다. 너희는 다 한 사람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번 한 주간 이 샤나를 통해 7에 대한 시스템, 시간을 배우길 축복한다. 하나님의 헤세드, 무조건적인 사랑, 주는 사랑을 배워서 네페쉬에 대한 지각, 깨달음이 있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한다.
베드로 이 목사
작성자 Joshua
유대력 Iyar(이야르)의 2번째달 선포기도
5. 바브( ו )의 달- 구속(되찾기)의 달 및 공급의 달을 연결하는 달
만약 당신이 이 달에 올바르게 움직인다면 년 내에 제대로 연결된다. 당신의 번창은 이 달과 연결된다. 바브(VAV)는 텐트(장막)의 말뚝이다. 우리는 이 땅에 천국을 가져올 수 있다.
야엘이 시스라의 머리에 말뚝을 박았다.(삿 4:21 “그가 깊이 잠드니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 말뚝을 가지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그에게로 가만히 가서 말뚝을 그의 관자놀이에 박으매 말뚝이 꿰뚫고 땅에 박히니 그가 기절하여 죽으니라”)
하나님의 심판이 그녀를 통해 실행되었다. 그리고 다윗을 보라(삼상 17장- 골리앗의 머리를 쳤고 돌이 이마에 박혔다. 그의 칼로 그의 머리를 벤다)
(선포)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늘 내가 너 대적(구체적)에게서 나아간다. 오늘 하나님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네 군대의 시체를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나와 일터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온 땅에 알게 한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너를 나와 가문의 손에 넘기셨다(삼상 17:45-47 다윗처럼 발로 목을 밟고 머리를 베는 예언적 행위를 하라). 나는 아버지의 집의 영광의 보좌이다. 다윗의 열쇠가 나에게 있다.
내가 하는 일마다, 내가 있는 곳마다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영광이 걸린다. 대적의 모든 권세는 파쇄 되고 그 위에 걸렸던 모든 것은 지금 떨어진다(사 22:20-25). 사탄아! 너의 모든 권세와 소유물은 예수님의 피로 나의 것이다!
6. 황소자리의 달
개선할 힘의 장소(부분)를 찾기 위해 자기 안으로 보고 관찰하면 드러난다. 반면에 황소같이 움직임을 계속하라. 주님을 의지하고 움직이는 것을 계속하십시오. 이것은 12궁도의 하나이다. 우리는 실제를 단지 모조하거나 모방하기 위해 시도하는 신비한 것들을 기억해야만 한다.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시 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선포)
나와 내 집과 일터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하며,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 땅에 이루어지게 한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낸 것처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낸다.
나와 일터에 하나님의 영광과 기적이 날마다 증가하여 나타난다. 풍부함이 넘쳐난다. 옛것이 새롭게 변화되는 개혁을 이루는 새로운 기름부음의 그릇이 되어 쓰임 받는다. 모든 자들이 주님을 알도록 하며 기쁨이 넘치게 한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한다(요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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