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체육복을 읽는 아침 5.
건강한 빗자루는
꺾일지언정 부러지지는 않는다. 240328
임용 첫 학기는 열심히 헤매기만 했다. 새로운 학년도에는 이전의 업무를 계속하면서 1학년 남자반 담임을 맡았다. 초장에 기선을 확 잡아 자기네 일부 선배들처럼 허무하게 인생을 낭비하는 아이들로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교직 생활에서 처음 맡는 담임이니까 마치 전쟁터에 데리고 나갈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소대장의 마음으로 각오를 다졌다.
처음은 교복이었다. 유니폼은 그 집단이 규정하고자 하는 구성원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준다. 군인은 전투복, 소방관은 방화복, 학생은 교복을 입음으로써 자기 신분의 본질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그때는 생각했다. 그래, 처음 학급에 들어가면서 거칠게 문부터 열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녀석을 골라 트집을 잡고 공포 분위기를 잡자, 그러자면 반드시 누군가는 교복 대신 개성 있고 멋진 사복을 착용하고 왔어야 했다.
호기롭게 문을 쾅 열어젖히자, 오십 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내 쪽으로 향했다. 어색함 속에 어수선하게 떠다니던 공기가 소리의 멱살을 잡아끌고 바닥으로 착 가라앉는 게 눈으로 보이는 듯했다. 교탁까지 네 걸음 걷는 동안 내 눈동자는 심하게 흔들렸다. 그날 찍은 첫 단체 사진에도 남아 있지만,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와이셔츠에 넥타이, 조끼, 바지 심지어 나중엔 촌스럽다고 몇 번 입지도 않은 자켓까지 풀세트로 단정하게 차려입은 스물다섯 명이 호기심과 긴장감에 찬 눈빛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준비해 갔던 말도 제대로 다 못하고 어버버하다가,
“다 같이 나가서 단체 사진 찍자.”
하는 말로 첫 번째 조회를 마치고 말았다. 이상했다. 애들이 왜 예쁘지. 며칠은 아무런 일 없이 돌아갔다. 몇을 제외한 아이들은 제시간에 학교에 왔고, 무려 필기를 하면서 수업을 들었고, 아무런 사고도 치지 않았다. 그러나 역시 아직 어린아이들이라 그런지 같은 반 아이 하나를 따돌리고 놀린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장애인까지는 아니지만 안검하수*와 사시(斜視)가 동시에 있어서 상대와 대화할 때 눈의 초점을 잘 맞추지 못하는 아이였다. 이 녀석들이 금세 그 특징을 가지고 ‘물고기’라는 별명을 붙이고선 몰래몰래 놀려 먹었던 것이다. 기다리던 기회가 찾아왔다. 몇 번이나 경고해도 놀림이 그치지 않던 어느 날, 종례 때 책상을 뒤로 밀고 5열 종대로 세웠다.
* 안검하수(眼瞼下垂): 다양한 원인에 의하여 윗 눈꺼풀의 높이가 낮아진 상태
“너희들은 왜 나와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못해 안달이냐! 직접 놀린 놈, 방관하며 소리 없이 웃었던 놈들도 다 나쁜 놈들이다! 지금 전부 체육관으로 집합해!”
책상까지 교실 뒤에 치워 놓고는 굳이 왜 체육관으로 모이라고 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없는 일이지만, 사실 거기서 더 나아갈 생각은 없었다. 평소에 큰소리를 잘 내지 않던 담임이 이 정도로 화가 났다는 것을 보여주면 자기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겠거니 싶었다. 체육관에 모인 아이들에게 피티 체조부터 시켰다.
그러나 워낙 혈기 왕성한 아이들이라 전혀 힘들어하지 않았다. 아아, 더 무서운 이벤트가 필요하다. 하필 그때 떠오른 게 정우 주연의 영화 <바람>이었다.
“반장! 밀대 걸레 가지고 앞으로 나와!”
야간 자율학습에서 도망쳐 놀다 온 아이들을 교실 앞으로 불러낸 영화 속 담임은, 멀쩡한 막대 걸레 자루를 발로 차 꺾은 것으로 아이들을 때렸다. 정말 때릴 생각은 없었다. 나도 그 선생님처럼 발로 자루를 부러뜨리고 그것 들고 꾸중을 한 뒤 휙 내던지고 나가버릴 참이었다.
“여깄습니다, 선생님.”
긴장됐다. 반장에게 건네받은 밀대 걸레 자루는 영화에서처럼 나무가 아니었다. 형광등 불빛을 받아 반사되는 알루미늄 자루의 차가움이 손 안 가득 느껴졌다. 그래도 속이 비어 있느니 한방에 모가지를 잘 노려서 밟으면 한 방에 멋지게 부러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결단의 순간, 왼쪽 발에 힘을 단단히 주고 오른쪽 발 날로 더 정확할 수 없는 힘점을 노려 찼다.
하지만 자루는 깔끔하게 부러지는 대신 알파벳 L자에 가까운 형태로 힘없이 구부러지고 말았다. 갈등했다. 여기서 그만둘 것인가, 아니면 기어코 자루를 뽑아낼 것인가. 구부러졌지만 걸레를 밟고 양손으로 자루를 당기면 뽑힐 듯했다. 그러나 최대한 표정을 관리하면서 자루를 당겼다. 서너 번 용을 써도 뽑히지 않았다. 이제는 이 밀대 걸레의 구조가 궁금해서 들어 올려 가까이서 보다가, 전날 교직원 회의에서 환경부장 선생님의 그 말씀이 떠올라 힘없이 자루를 던져버렸다.
“우리 아이들이 하도 밀대 걸레로 싸움하다 보니 많이 파손됩니다. 그래서 제가 일일이 자루랑 걸레를 나사로 고정해 뒀어요. 하하하”
눈 감고 있으라고 했는데 실눈을 뜨고 그 모양을 보던 아이들은 웃음을 참느라 야단이었다.
“에이 씨… 집에들 가!”
하고 돌아 나오는 내 등에 아이들의 웃음이 와아, 꽂혔다. 건강한 빗자루는 꺾일지언정 부러지지 않는다. 그래, 중요한 건 그런 게지. 하지만 아이들을 향했던 분노의 눈빛은 크게 부러지지 않았는지, 물고기라는 별명은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첫댓글 멋있다.
유정민 선생님!
지금은 학생들이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를 안는다고 하니, 마음이 답답하다.
그래서 나라가 어려운 모양!!!!
그래도 좋아 지겠지
유정민 고맙다. 훌륭하다.!!!!!!!!!!!!1
고맙습니다, 격려의 말씀! 더 좋은 글로 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