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고향을 찿았다.버스를 타고가면서 창밖을보니 스처지나가는 산과들이 정겹다.어린시절 뛰놀던 골목길,나는조등학교 앞에서 살았다.낮은 소나무 담장 개구멍 사이로 끼어들어가면 바로넓은 운동장이 있고 철봉에 거꾸로 메달려 하늘을 보다가 첫눈이 오던날 와아~ 눈이다 소리쳤던 기억들 초겨울 첫눈이 내리던날.어머니께서 나의 생일 이라며 시루팥떡을 쪄주셨다 그맛이란 지금도팥떡만 보면 침이 고인다.
넓은 운동장옆을 돌아가면 풀장이 있고 관리 하기 어려워서인지 물이 채워져 수영을 해본적은 없었다 .얼마만인가 고향은 너무 많이 변해 있었다.쉴새 없이 지나가는 자동차와 낮선 도로 빌딩이 줄지어 있고 골목길이였을것 같은 길을 따라 천천히 가보니 병원이 있었던 그자리에는 주차장이 생겼다 부비고 놀던 고향집은 사라졌지만 기억 까지 없어지는건 아닌것 같다.해마다5월이 되면 어머니의 생신이 들어 있어 고향을 찿고싶어 한다.
어머니가 편안히 쉬고 계신산소에 찿아가 카네이션 화분을 오래 볼수 있도록 모종샆으로 구뎅이를 판후 생수를 뿌려 주고 땅에 묻었다. 어머니의 고향은 중국 상하이다 쉽게 찿아갈수 없는곳 이기에 평생 그리워 하시다 팔순이 넘어 오십오년 만에 오빠와 함께 고향집을 다녀오셨다 비행기에서 내려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셨다 했다 어릴적 목조건물 이층집이 그대로라서 찿기 쉬웠다 하시며 일가 친척들을 호텔에서 기거 하시며 만났다 하셨다 어머니의 언니를 만났다 하시기에,,많이 울었어? 하고 물으니"왜? 울어 만났는데" 하셨다 의아했다. 듣기만 해도 감격 이었던 어머니의 고향집 이야기는 어머니와 함께 내기억의 창고에 켭켭이 보관중이다.어머니를 기억 할때면 꺼내볼수 있도록 기억의 창고에서 부디 썩지 않기를 바란다. 40대젊은 나이에 홀로되시어 언어도 통하지 않은 타국에서 여섯 형제를 감당 했어야 했던분 이시기에 어린 아이때도 감히 어리광을 부리거나 불평을 말할수 없었다.. 큰나무가 되어 잔뿌리를 내리고 싶어 했던 나의제2의 고향집 대구는 기본정서가 다르기에 참어려웠지만 어머니 만큼 어려웠겠는가? 일을 열심히 하면서 내삶에 집중 하며 살았기에괜챈했다. 사투리와 억양이 다르지만 언어가 통하기에 견딜수 있었고 살만 했다. 고향이란 태어난 곳을 뜻하기도 하지만 감정과 기억이 깃든 공간 이라 생각 하며 자신을 형성한 뿌리같은 장소 이기에 마음이 편안해 지는것을 의미 한다. 모처림 찿아간 고향집을 보기위해 동네 호텔에서 머물다가 터미널을 향하는 발걸음이 무척 가볍고 엉킨 마음이 정리되는것 같아 외롭지 않다는 생각과함께 행복 했다. 어머니의 세월 은 억세풀 같아 모진 풍파를 건디는데 얼마니 힘들고 외로웠을까 감히 상상이 안되었다
지금은 사라진 고향집 추억이 쌓인곳을 남겨둔쩨 기약도 없이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 오는길 나는 나를 받아 들이지 못해 얼마니 많은시간 애태웠던가를 생각하며 남은삶, 어떤 순간 에도나는 나를 믿을거라 다짐하며 고개를 떨군체 눈을 감았다.한번가서 보기만해도 편안하고 행복을 느낄수 있었던 고향집 사람들은 죽을 때가 되면 고향 으로 간다 했지만 어머니는 천국으로가셨다. 나도 고항을 떠나는날 어머니가 계신 우리들의 본향 천국으로가서 어머니를 만나고 싶다.
첫댓글 선생님,
생일에 어머니가 쪄주시던 시루팥떡. 무탈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정성이 느껴집니다.
맛있게 먹던 어린시절 모습이 그려지네요. 이런 추억들이 선생님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