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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제8강 - 1(2010. 10. 4.)
大方廣佛華嚴經 往復序(대방광불화엄경 왕복서) 1
(8강 유인물)
一心頂禮 盡十方三世(진시방삼세) 一切諸佛(일체제불)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尊法(일체존법)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賢聖僧(일체현성승)
我弟子等(아제자등) 講論三藏(강론삼장) 唯願三寶(유원삼보)
爲作證明(위작증명)
南無本師釋迦牟尼佛(나무본사석가모니불) 南無本師釋迦牟尼佛
南無本師釋迦牟尼佛
無上甚深微妙法(무상심심미묘법) 百千萬劫難遭隅(백천만겁난조우)
我今聞見得受持(아금문견득수지) 願解如來眞實意(원해여래진실의)
삼 배 올리겠습니다.
입정이 있겠습니다.
공부하기 참 좋은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지난여름은 덥기도 대단히 더웠지만,
또 그 더위가 어느 때 보다도 아주 길었습니다. 여기에 먼 곳까지, 서울ㆍ경기ㆍ강원도ㆍ지리산ㆍ
경북ㆍ해인사ㆍ안동 등지에서, 곳곳에서 이렇게 먼 길 더운 날 다니시느라고 아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거기에 보답하기 위해서 저는 이 공부 끝나면 내일부터 또 다음 시간 공부 준비하고 제가 할 수 있는
성의는 하느라고 다 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 시대에 우리가 한 달에 한 번씩 이렇게,
정말 불교의 경전 중에서 최고의 경전이라고 하는 이 화엄경을 가지고 승려의 본분에도 충실하고,
또 따라서 우리들의 개인의 어떤 수행과 정진을 하는 그런 계기도 되고요. 또 여기서 우리가 공부하신 것을
바로바로 돌아가셔서 포교 현장에 같이 활용할 수 있다고 하는 것. 또 제가 강의한 것에서 좀 더 개인적인 경험과
깨달음을 보태서 살을 붙여가지고 마음껏 활용하실 수 있는 그런 기회도 되고요.
여러 가지가 참 좋은 결실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유인물부터 잠깐 보겠습니다.
불교의 경전ㆍ어록ㆍ그리고 짧은 산문ㆍ혹은 발원문ㆍ기타 서문ㆍ아니면 자경문ㆍ경책문 등등,
글의 종류가 禪詩까지 합해서 무수히 많습니다. 종류도 많고 한데 또 글 량도 얼마나 많습니까?
통칭 일러서 우리가 팔만대장경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 정말 모든 분들이 한결같이 이구동성으로
최고의 글이 무엇일까? 이렇게 생각했을 때, 글께나 읽은 사람들은
주저 없이 청량국사의 往復序(왕복서)를 꼽습니다.
제가 앞에서도 말씀이 있었습니다만, 이런 서문이라든지 기타 화엄경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서론적으로 해야 할 것이 상당히 많지만, 그것을 일일이 다 하다보면 몇 년 걸려버리고
그러다보면 화엄경은 맛도 못보고 김 빠져 버리거든요. 그리고 지쳐버리고요.
우리가 강원에서 그랬습니다. 화엄경은 저 멀리 놔두고 현담만 가지고 그저 몇 달을 씨름하다 보니까
그냥 완전히 지쳐가지고 정작 화엄경은 보지도 못 하고, 또 본다 하더라도 건성으로 보게 되고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폐단을 막기 위해서 저는 서론 조금하고, 화엄경에 부속적으로, 우리가 꼭 상식적으로 알아야 할
그 부수적인 것들은, 우리가 상당히 세월이 기니까 두고두고 조금씩ㆍ조금씩 이렇게 서두에 맛을 보고 넘어가면
지루하지도 않고 그러면서 알 것은 다 알고, 또 화엄경도 본문을 그대로 공부하면서 넘어갈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사실 이것을 맨 처음 했어야 하는 서문이지만, 이제 시작하게 됩니다.
이것을 한 몇 회에 걸쳐서 나눠가지고 하기로 하는데, 그야말로 한 편의 글을 선택하라면 주저 없이
이 往復序를 선택합니다.
왜 往復序인가 하면, 이것이 大方廣佛華嚴經 往復序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往復(왕복)이 無際(무제)나, 첫 구절이 왕복이 무제라고 이렇게 나오기 때문에 통칭 往復序라고 그렇게 말합니다.
그 다음에 또 서문으로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소위 一物序(일물서)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一物序. 그것은 우리나라의 고려 말 조선 초에 계셨던 글도 아주 뛰어나고, 깨달음의 안목도 아주
뛰어난 함허스님. 함허스님께서 금강경 오가해를 출판을 하시면서 거기다 서문을 붙인 글이 소위 유일물어차하니
이렇게 시작이 나간다고요. 일물이라는 말이 앞에 있기 때문에 그래서 통칭 一物序라고 이렇게 부릅니다.
그래서 往復序ㆍ一物序. 이것이 정말 쌍벽을 이루는 그러한 명문인데요. 그 중에서도 往復序를 더 치지요.
대개 사람들이 더 칩니다. 一物序는 아주 선의 기운. 선지가 아주 빛나는 그런 글이라면 또 이 往復序는
정말 부처님의 안목으로써ㆍ불교의 최고의 안목으로써 이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그리고 그 이 세상을 말하자면
누가 무엇을 통해서 표현했는가? 그 아주 깊은 내용을, 숨어 있는 깊은 내용을 샅샅이 이야기한, 그리고 설명한,
우리 중생들에게 깨우쳐준 것은 과연 무엇인가? 이것을 말하자면 이 서문에 다 담았습니다.
그것이 곧 화엄경이라는 뜻인데, 화엄경 안에서는 그런 것을 말하고는 있지만, “그런 것이다.” 라고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서문에서는 “화엄경은 그런 것이다.”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법계, “이 우주법계는 어떤 내용이다.” 어떤 내용인데
“화엄경은 그 우주법계의 깊고 깊은 오묘한 이치를 이렇게ㆍ이렇게 밝혔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짧게 소개를 지금 합니다만, 가능하면 이것을. 원문을 한 100번 쯤 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외우는 것 보다는 100번 쓰는 것이 더 좋습니다. 100번 쓰면 외워질지 안 외워질지 그것은 제가 모르겠지만,
왜냐? 한번 쓰면 열 번 읽는 것 보다 더 나아요.
그래서 이것은 100번 쓰면 분필 하나만 딱 잡고, 화엄경을 다 이야기 할 수 있고, 온 우주법계의 원리를 다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쓰지 아니하면 자기 것이 안 됩니다. 외우는 정도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외우는 것 가지고는 부족해요. 하기야 우리 어릴 때 천수경 글자 하나 모르고 외웠지만 나중에 저절로 알게 되잖아요. 무슨 글자인지 다 알게 되고 그런 수도 있긴 있습니다만, 특히 이것은 한 100번 씩 쓰시기를 부탁드리고 싶어요. 왜냐하면 이 글이 얼마 안 되잖아요. 전체는 이것보다 한 10배 가까이는 되는데, 10배까지는 안 되겠네요. 한 5배 정도 되는 글입니다.
일단 그런 내용이고 이것은 당나라 청량산 대 화엄사 사문, 여기가 어디지요? 소위 우리가 여행 많이 가시는 오대산입니다. 오대산에 가면 제일 중심 되는 건물이 있는데 거기 중심 되는 현판에 주련을 보면, 현판하고 주련을 보면 七處九會. 이름을 전부 건물현판에다 써서 걸어놨어요. 아~ 참, 그것 보고 저는 아주 너무 감격스러웠습니다. 최소한도 그 오대산은 옛날 이 청량국사를 통해서 화엄 종찰 이었고, 화엄의 분위기가 아직도 그대로 곳곳에 남아있고, 특히 중앙에 있는 건물에는 하나ㆍ하나 七處九會의 명칭이 현판으로 붙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찰은 이런 특징이 있어야 되고, 그 특징을 몇 천 년이 흐르더라도 사실 살려야 되는 겁니다.
범어사는 화엄사찰이고ㆍ해인사가 화엄사찰이고ㆍ부석사가 화엄사찰이고, 화엄사찰중에서도 본사가 부석사입니다. 부석사 같은 데는 365일 계속 화엄경이 그냥 설해져야 되는 겁니다. 그것이 그 사찰을 세운 의미를 우리가 살리는 것이 되고, 그것을 통해서 어떤 수행과 불교에 대한 지식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고, 그런 것입니다. 스님들이 혹시 개인적인 절을 짓더라도 불교적인 경전이나 어록이나 하나의 그 어떤 사상. 거기에다 초점을 두고 사찰을 세우면 참 의미가 있지요.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공부하게 되고, 오는 신도들에게 설명해줌으로써 공부가 되기도 하거든요. 그렇습니다.
흔히 청량국사라고 부르지요? 澄觀(징관)스님이 撰(찬)했다. 지었다. 이런 뜻입니다. 제1門ㆍ제2門ㆍ제3門 이것이, 이 서문을요? 往復序 이것을 네 단락으로 나눠서 해석하는 방법도 있는데, 또 열 가지로 나눠서 해석하는 방법이 훨씬 세밀하고 구체적이기 때문에 여기서 제1門ㆍ제2門ㆍ제3門 하는 것은 열 가지 과목으로 나눠서 해석하는 것입니다. 우선 우리가 이 원문만, 산문 다~. 원문 소리 내서 크게 한 번 읽읍시다. 아! 이것은 읽으면 정말 좋은 훌륭한 글이기 때문에...
往復(왕복)이 無際(무제)나
動靜(동정)은 一源(일원)이라.
含 衆妙而有餘(함중묘이유여)하고
超 言思而迥出者(초언사이형출자)는
其唯法界歟(기유법계여)며
剖裂玄微(부열현미)하고 昭廓心境(소확심경)하며
窮理盡性(궁리진성)하고 徹果該因(철과해인)하며
汪洋沖融(왕양충융)하고 廣大悉備者(광대실비자)는
其唯大方廣佛華嚴經焉(기유대방광불화엄경언)인저
故我世尊(고아세존)이 십신초만(十身初滿)에 正覺
始成(정각시성)하사
乘 願行以彌綸(승원행이미륜)하시며
渾 虛空爲體性(혼허공위체성)하시니
富有萬德(부유만덕)이요 湯無纖塵(탕무섬진)이로다
강원에서 화엄경 공부하신 분들은 아마 이 往復序를 아실 것입니다. 往復(왕복)이 無際(무제)나 ←이것이 한 단락. 제가 사선(영상의 유인물에는 사선, 여기선 줄 바꿈)을 그었지요? 그것은 제1門에서도 다섯 개의 단락으로 나눕니다. 이것이 역시 청량국사 자신이 서문을 지어놓고 그것을 좀 더 세밀하게 분해하기 위해서 여기에 따르는 그 '抄(초)'니, '疏(소)'니 이런 말을 하는데 '초'가 무수히 많습니다. 상당히 아마, 이것 열배씩 되게 그렇게 합니다. 원문의 열배 이상 되도록 그렇게 '초' 를 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다섯 개의 단락으로 나누었는데,
往復은 無際나 그랬어요. 제가 이 새김도. 해석도 우정 번역을 해서 붙였습니다. 이것은 화엄경본문도 중요하지만, 이것은 정말 확실하게 글 해석하는 법ㆍ새기는 법도 분명하게 아셔야하고, 제가 또 100번을 쓰시라고 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저의 의무도 다 한다는 뜻에서 새기는데 이렇게 착오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 해놨습니다. 가고 돌아옴이 끝이 없다. 그랬습니다. 往復.(갈 往자, 돌아올 復자.) = 회복한다. 無際.(제는 지음 際.) = 끝이라는 뜻입니다. 한계. 한계가 없다. 이것은 뭔가 하니 법계의 大用이다. 그랬어요. 이 내용은요? 뒤에는 其唯法界歟라고 했는데 사실 법계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앞에다 붙이면 더 좋지요.
법계라고 하는 것은 뭔가 하니, 불법의 大宗입니다. 불법의 가장 근본 되는 宗旨(종지)입니다. 이 불법은, 이 불교는 어떤 무슨 기회를 가르치는 가르침도 아니고, 또 어느 한 부분에 편협 된 그런 어떤 철학도 아니고, 온 우주법계를 통틀어서 그 존재의 원리를 깨달았고, 또 그 존재의 원리를 깨달은 대로 설했고, 그래서 그 존재 원리를, 우주법계의 존재의 원리를 우리가 공부함으로 해서, 그 원리에 맞게 우리가 산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경을 설하는 취지인데, 설명을 하기로 하면, 사실 청량스님 같이 설명하기로 하면 서문만 가지고도 정말 몇 달이 걸려도 다 못할 정도입니다. 아무튼 이 법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법계는, 우리 불교는 바로 이 우주법계의 원리를 가르치는 종교이기 때문에... 그래서 “화엄경” 하면 화엄경에서 이 우주법계를 다 논하지 못하면 어디 다른 경전에서 논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화엄경에서는 우주법계를 다 논하는, 우주법계의 원리를 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화엄경을 꿰뚫어 보신 청량스님께서는 이 처음에 법계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 우주법계는 가고 옴이 끝이 없다. 그렇지요. 우리가 가고 오고하는 것. 生ㆍ死. 去ㆍ來, 갔다가ㆍ오고ㆍ갔다가ㆍ오고, 자고ㆍ일어나고ㆍ자고ㆍ일어나고ㆍ일어나고ㆍ또 자고, 가고, 또 길게는 우리가 죽어서 다시 태어나고, 태어나서 살다가 또 죽고, 그리고 또 다시 오고ㆍ가고ㆍ오고, 이것이 끝이 없는 겁니다. 모든 존재가 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렇고ㆍ꽃 한 송이가 그렇고ㆍ우리의 일상생활이 그렇고ㆍ우리가 화엄경 공부하러 오고ㆍ가고ㆍ가고ㆍ오고하는 것도 역시 그렇고요. 호흡도 그렇잖아요? 내쉬고ㆍ들이쉬고ㆍ내쉬고ㆍ들이쉬고, 오른 발 나가면ㆍ왼발 나가고ㆍ왼발 나가면ㆍ오른 발 나가고, 일체 우주법계의 존재의 원리는 전부 그렇게 되어있다. 근사하잖아요?
往復이 無際라. 그러나, 그러나 動靜(동정)은 一源(일원)이라. 움직이고 고요함은 한 근원이다. 이것은 법계의 體大라 그랬어요. 본체는 작용은 그렇지만, 작용은 왕복은 무제지만 본체에 있어서는 뭐라고요? 움직이고 고요함은 한 근원이다. 아무리 가고ㆍ오고, 들 쉼ㆍ내쉼, 왼발ㆍ오른 발, 갔다가ㆍ돌아오고 하지만, 어디에 갔든ㆍ왔든 관계없이 항상 그 자리. 항상 나인 거요. 항상 나인 겁니다. 한 마디로 쉽게 표현하자면 항상 나입니다. 그것은 한 근원이다. 動靜은 一源이다.
動靜은 一源이라. 含衆妙而有餘(함중묘이유여)하고,
읽을 때 함자를 떼서 읽어야 됩니다. 含 衆妙而有餘하고, 超言思而迥出者(초언사이형출자)→ 超 言思而迥出者. ←이렇게 읽어야 됩니다. 예를 들어서 한 자ㆍ한 자 읽는데 1초 걸린다면 이것은 2초 ~ 3초쯤 시간을 잡는 겁니다. 含 衆妙而有餘하고 超 言思而迥出者. ←이렇게 읽습니다.
옛날에 어떤 선비가 아침에 나무하러 가는데, 어떤 학동이 鴻雁之大者(홍안지대자)요 麋鹿之大者(미록지대자). 鴻雁之大者 麋鹿之大者. 그것이 맹자 주에 나오는 글입니다. 鴻雁之大者 麋鹿之大者 ←이렇게 읽거든요. 그런데 저녁에 나무를 한 짐 해가지고 돌아오는데, 그 앞을 지나오다 가만히 들으니까 그 때까지 글을 읽고 있는데, 그 두 구절을 읽고 있는 겁니다. 아침에는 鴻雁之大者 麋鹿之大者. ←이렇게 읽더니, 돌아올 때는 鴻은 雁之大者요 麋는 鹿之大者라. ←이렇게 자기도 모르게 토를 딱 붙여서 읽더라는 겁니다. 띄어 읽을 걸 띄어 읽을 줄 알더라는 겁니다. 그 두 구절을 하루 종일 읽으니까 그새 물리가 터져버렸어요.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鴻 = 기러기 홍자. 雁 = 기러기 안자. 같은 기러기인데 鴻이라고 하는 기러기는 큰 기러기입니다.
鴻은 雁之大者요. 기러기의 큰 놈이고, 麋는 鹿之大者라. 똑 같은 사슴을 가리키는데 麋 = 큰 사슴. 鹿 = 보통 사슴.
아침에는 麋鹿之大者. ←이렇게 읽더니, 麋는 鹿之大者라. ←이렇게 딱 읽더라는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자꾸 읽다 보면 저절로, 저절로 含 衆妙而有餘하고 ←이렇게 띄어서 읽는 것이 저절로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중묘를 포함하고 있지만, 온갖 미묘함을 함유하고도 여유가 있고, 남음이 있다 이 말이지요. 이것은 법계의 相大라 그랬어요. 우주법계의 相의 모습이다. 그러니까 이것을 우리가 좋은 점 다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점 다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저 밑에는
富有萬德(부유만덕) 蕩無纖塵(탕무섬진)이라고 이렇게 했는데, 여기서 衆妙라고 하는 것은 좋은 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 밑에 富有萬德이라고 할 때는 좋은 점을 말하고, 蕩無纖塵하는 것은 좋지 아니한 점은 없고, 좋은 점은 잔뜩 있다. 만덕을 갖췄다. 이런 뜻인데, 여기서 衆妙라고 하는 것은 제가 가끔, 저의 입장에 있어서는 늘 人佛思想. 사람이 곧 부처님이다 라고 하는 그런 사상을 제가 자주 이야기를 하는데, 법화경강의를 할 때는 늘 해온 말이지요. 그런데 그 미묘한 작용이라고 하는 것은 善한 일만 한다고 해서 미묘한 작용이 아닙니다. 사기치고ㆍ나쁜 일하고ㆍ남 욕하고ㆍ모함하고 하는 것도 이것이 미묘한 작용입니다. 이 衆妙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다 포함되는 겁니다. 사람이 아닙니까? 사람의 마음작용이 아니면 어찌 사기 칠 수 있고ㆍ남을 속일 수 있고ㆍ모함하고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이 대단한 능력입니다.
선행하는 것만 능력이 아니라고요. 우리가 거기에 주안점을 둬야지, 그런 어떤 미묘한 작용에 주안점을 둬야지 善이다. 惡이다 거기에 치우치면 답이 없습니다. 사실 솔직하게 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육조스님도 不思善不思惡(불사선불사악). 첫 법문. 육조스님 깨닫고 나서 첫 법문이 不思善不思惡.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 우리가 善惡에 쫓아다니다 보면 답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善惡을 다 妙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온갖 미묘한 것을 다 함유하고 있지만, 그래도 여유가 있습니다. 얼마든지 남음이 있어요. 이것이 법계의 相의 모습입니다. 그 다음에
超 言思而迥出者. 言思. 말과 생각을 초월해서 멀리 벗어난 것. 이것은 뭐라고요? 융합하고 떨쳐버린다. 그랬어요. 超言思. 언사를 초월했기 때문에 하나의 텅 빈 하나라고요. 그러면서 멀리 벗어났으니까 이것은 떨쳐버린다. 融拂(융불) ←한자로는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은 뭐라고요? 其唯法界歟(기유법계여)며, 오직 法界뿐이다. 진리의 세계. 불교는 그냥 세계라고 하지 않잖아요. 세계도 전부 法界라고 그래요. 진리의 세계다. 이런 뜻이거든요. 그 “우주법계” 하면 전체가 이 드넓은 우주 공간을 다 포함해서, 저 기어 다니는 작은 미물까지도 그 속에 다 포함 되면서 그것은 곧 모든 존재는 전부 그 나름의 이치를 가지고 있고ㆍ그 나름의 진리를 가지고 있고ㆍ전부 그 나름의 어떤 길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본 겁니다.
그래서 그것은 뭡니까? 진리다ㆍ이치다ㆍ길이다 하는 것은 법입니다. 그래서 法界라고 하는 겁니다. 불교에서는 그냥 世界라고 하지 않고 法界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는 늘 法界ㆍ法界하잖아요. 법계 속에는 사람을 위시해서 모든 두두 물물이, 산천초목과 저기 수 억만 광년 밖에 있는 별 까지도 다 포함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여기서 법의 소속을 그 오직 法界뿐이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거꾸로 하면, 법계라고 하는 것은 가고 옴이 끝이 없고, 그렇지만 동정은 한 근원이다. 그 法界라고 하는 것은 또 온갖 衆妙. 미묘한 것을 다 가지고 있고, 그러면서도 남습니다. 얼마든지 여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말로 어떻게 표현해요? 超言思입니다. 말과 생각을 초월했습니다. 그리고 멀리 벗어나있습니다. 그 다음에
제 2門, 能詮(능전)을 달리 찬탄하다[別歎能詮(별탄능전)]
能詮 = 능히 말하다. 능히 표현한 것인데 그것은 뭔가 하면 뒤에 보면 其唯大方廣佛華嚴經焉(기유대방광불화엄경언)인저 라고 했습니다. 화엄경에 대한 찬탄입니다. 불교에는 주관ㆍ객관 ←이렇게 말하지 않고, “能所” ←이렇게 말하지요. 능히 설명하는 것. 바로 화엄경인데. 화엄경은 설명할 꺼리가 있어요. 그것을 “所詮” 그래요. 그것은 진리입니다. 그 법계를 화엄경이 설명한다. 이 뜻입니다. 그런데 화엄경을 한번 찬탄해야 되겠다 이 말이지요. 앞에는 “所詮” 설명해야할, 법계 이야기를 잠깐 간단하게 했고, 그 다음에는 그것을 말하는 사람. 말 내용도 중요하지만 말하는 사람도 중요하거든요. 그 말하는, 법계를 설명하는 화엄경이 또 중요 합니다.
그래서 그 오직 대방광불화엄경언인저, 했는데요. “대방광불화엄경” 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해도 좋아요. 剖裂玄微(부열현미)하고 昭廓心境(소확심경)이라. 그랬습니다. 剖裂玄微. 유연하고 미세함을 쪼개고 나눈다. 화엄경이 시시콜콜 얼마나 세밀하게 말씀 많이 해놨습니까? 그 아주 유연하고ㆍ깊이 있고ㆍ미묘한 도리를 나누고ㆍ나누고ㆍ또 나누고ㆍ무슨 분자니 원자니 온갖 물질을 쪼개고ㆍ또 쪼개고ㆍ또 이름 붙이고ㆍ또 쪼개서 또 이름 붙이고 물리학이 발달하면서 요즘은 더 그렇지요.
그 玄微한 것을 낱낱이 쪼개고ㆍ쪼개 昭廓心境이라. 마음과 경계를, 이 昭자는 밝힌다는 뜻이지요. 환하게 밝힌다. 마음과 경계를 환하게 비춰서 텅 비운다. “곽”이라고 보통 하지만 우리 불교에서는 “확” 이라고 합니다. 소확심경이라. 옥편에는 “곽”이라고 나와 있는데 “확” 이라고도 합니다. 昭廓이라고 하는 말은 환하게 비춰서 텅 비운다 이 말입니다. 마음과 경계를 환하게 비춰서 텅 비운다. 이 화엄경은 그런 역할을 한다. 이 말입니다.
또 대방광불화엄경은 窮理盡性(궁리진성)하고 徹果該因(철과해인)한다. 窮理盡性. 이치는 다~ 궁구해요. 모든 이치는 낱낱이 그것을 분석해 파내는 겁니다. 끝까지 다 하는 것이 화엄경입니다. 그리고 本性. 본성도 다 드러내는 겁니다. 盡性. 이치를 궁구 다 하고, 그 성품도 다 하는 것. 다 하고 그 다음에 徹果該因이라. 모든 존재는 因果로 되어있지요. 연기로 되어있지 않습니까? 그 결과에 사무치고 원인도 지니고 있습니다. 여기는 佛果라고 되어있는데 佛果에 사무치고 因行을 갖추었다. 이렇게 했습니다.
화엄경은 모든 존재 원리, 因果를 설명하면서 아울러서 우리 수행의 어떤 地位漸次(지위점차). 발심에서부터 성불에 이르기까지의 그 地位漸次도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果자는 佛果라고 그렇게 표현을 하고, 또 因은 因行이기 때문에, 우리가 처음 발심했을 때를 因行이라고 하거든요. 그 佛果에도 사무치고, 佛果의 이야기도 아주 자상하게 되어있 고, 또 발심해서 어떻게 하면 성불할까? 하는 그 因行에도 화엄경은 다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因行을 갖췄다. 그랬어요. 그리고 화엄경은 여러분이 그동안 접해보셨지만, 뭐라고요?
汪洋沖融(왕양충융)하고 廣大悉備者(광대실비자)입니다. 汪洋沖融. 뭐라고 해놨지요? 汪 = 깊고ㆍ넓고ㆍ가득하다. 洋 = 넘친다. 沖 = 텅 비었다. 그리고 또 모든 것을 융합해요. 모든 것을 또 융화해요. 廣大悉備라. 넓고ㆍ커서 다 갖추고 있는 것. 이 표현이 참 좋습니다. 汪洋沖融. 화엄경은 우리가 책장만 넘겨봐도 정말 汪洋沖融. 정말 大經이거든요. 큰 경이고 호환해요. 정말 호환하다고 하는 말이 이 화엄경에 잘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그것을 여기서 청량스님은 汪洋沖融해서 廣大悉備라고 그렇게 했습니다. 물이 가득해 가지고, 가득하고ㆍ깊고ㆍ넓고ㆍ그리고 막 넘쳐나요. 洋자는 넘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텅 비어서, 비었으니까 전부 하나로 통일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따로따로 독립 되어있으면 이것이 통일이 안 됩니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텅 빈 존재의 실상에 있어서 그래서 우리는 통일할 수가 있는 겁니다. 모든 존재가 통일할 수 있는 그런 조건을 갖췄습니다. 廣大悉備者는 뭐라고요? 그 오직 大方廣佛華嚴經뿐이다ㆍ그 오직 大方廣佛華嚴經뿐이다. 법이 속한 곳을 결론지었다. 제목을 그렇게 했지요? 법이 속한 곳. 법계가 어디에요? 대방광불화엄경에 속해있다. 이 뜻입니다. 참 이 관계를요? 정말 너무 아주... 불교역사 속에서 한 마디로 글을 제일 잘 하는 분. 깨달음이 물론 근본이 되어있고, 깨닫지 못하고는 명함을 못 내미니까요. 깨달은 사람으로서 글을 제일 잘 하는 분이 아마 청량국사가 아닐까?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글을 보면 그래요. 그 다음에
제 3門, 敎主는 헤아리기 어렵다.[敎主難思(교주난사)] 과목을 전통적으로 敎主難思. 難思 = 불가사의하다. 생각하기 어렵다. ←이런 뜻이지요. 故我世尊(고아세존)이 十身初滿(십신초만)에 正覺始成(정각시성)하사,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世尊께서 十身이 처음 만족함에, 수행이 가득 찼다 이 말입니다. 正覺을 비로소 이루었다. 저기 화엄경서두에 始成正覺이라고 하는 과목이 있고, 거기에 正覺始成. 始成正覺내용이 나왔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을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른 것을 여기선 十身이라고 했습니다. 十身이 初라고 하는 것은 “막 가득해 지자마자” 이런 뜻이지요. 이 때 初자는 겨우 纔(재)와 같습니다. “막 가득해 지자마자” “수행이 꽉 차자마자”
十身을 수행이 꽉 찬 것을 표현했는데, 놀랍게도 부처님의 그 수행이 깨달음 직전까지 단계에 이른 것을 十身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다른 선정이니ㆍ지혜니 이런 소리 하나도 안 하고, 열 가지 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화엄경을 잘 아는 사람이라야 이런 표현을 할 수가 있습니다. 대개 부처님이 깨닫기 직전까지 무엇이 만족했는가? 이것을 우리가 생각하면, ‘아 그것, 화두일념이 돼가지고 오매일여가 됐겠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뭐가 일념이 됐다.’ 아니면 ‘박사학위를 한 100개쯤 땄다.’ 여러 가지 표현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여기는 十身이라고 했습니다. 十身은 뭔고 하니 중생신입니다.
부처님이 되어서 중생사정 모르면 안 되지요. 그 중생신이 첫째입니다. 중생신을 갖추었고, 두 번째는 국토신입니다. 이 국토.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이 국토가 당신의 몸이 됩니다. 중생이 그대로 당신의 몸이 되고ㆍ국토가 당신의 몸이 되고ㆍ모든 중생들, 그들의 업보. 업보가 당신의 몸이 되고, 세 번째는 업보 신입니다. 그 다음에 성문ㆍ연각ㆍ보살ㆍ여래. 이 네 가지도 당연히 성문이 필요할 때는 성문의 몸으로ㆍ연각이 필요하면 연각의 몸으로ㆍ중생이 필요하면 중생의 몸으로ㆍ보살이 필요하면 보살의 몸으로ㆍ여래가 필요하면 여래의 몸으로, 그래서 성문 신ㆍ연각 신ㆍ보살 신ㆍ여래신을 다 갖췄어요. 거기다 또 더해가지고 智身. 지혜의 몸도 갖췄다.
그리고 또한 법의 몸도 갖췄다. 法身. 그것뿐인가? 그러면 허공이 섭섭하지요. 그래서 虛空身. 마지막으로 허공 신 까지 갖췄다.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화엄경을 앞으로 이해하는데 있어서 좋은 열쇠가 됩니다. 그래서 이 열 가지 몸이 막 만족해지자마자 비로소 正覺을 이루었다. 그 다음에 여기서도 띄어서 읽어야할 대목이 있지요.
乘願行以彌綸(승원행이미륜)→ 乘 願行以彌綸.
渾虛空爲體性(혼허공위체성)→ 渾 虛空爲體性. ←이렇게 읽어야 됩니다. 乘자하고 願자를 띄어서... 乘 願行以彌綸이라. 願行은 뭡니까? 誓願과 修行에 의지하여 두루 감싸며, 중생들을 건지는데 무슨 꺼리를 가지고, 무슨 재산으로 무슨 身力으로 건지겠습니까?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願과 실천행이 있어야 됩니다. 願과 실천행을 가지고, 실천행은 올라가서 탈 乘자 아닙니까? 거기에 의지한다는 뜻도 되거든요. 거기에 의지해서 彌綸이라. 이것은 전체를 두루두루 감싸는 것을 말합니다. 감싸고, 渾 虛空爲體性이라. 그러려면 부처님의 몸이, 아니면 성품이 어느 정도 되어야 되겠습니까? 渾 虛空爲體性이라. 허공과 합하여, 渾 = 혼합됐다. 이런 뜻이거든요. 허공하고 합해가지고서 자기의 體性이 됐다. 이쯤 되어야지요. 우리는 얼마나 좁습니까? 하~~ 좁아가지고 옳다ㆍ그르다ㆍ마음에 든다ㆍ안 든다. 분별하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참 기가 막히지요. 부처님은 渾 虛空爲體性입니다. 허공을 합해서, 허공 자체로써 체성을 삼아요. 體性의 깊음 이라고 해놨어요. 그 다음에
富有萬德(부유만덕) 蕩無纖塵(탕무섬진).
제가 참 좋아하는 구절인데요. 부유한 입장, 부한 입장으로써는, 우리가 세속적으로 부유하다고 할 때는 富有 ←이렇게 안 씁니다. 유자가 넉넉할 裕(유)자 지요. 여기는 富. 부한 입장으로써는, 넉넉한ㆍ풍부한 입장으로써는 萬德을 소유하고 있고, 그랬어요. 제가 부유함에는 ←이렇게 썼는데, 풍부함에는 萬德을 가지셨고, 온갖 만덕과 만행을 다 가졌다. 텅 비어 없는 입장으로써는 먼지 하나 없다. 蕩 = 소탕한다. 다 비운다 이 말입니다. 蕩자가 텅 비운다 하는 뜻입니다. 텅 비어 없는 입장으로써는 纖塵도 없다. 먼지 하나 없다. 그랬습니다. 표현이 아주 참 근사하지요?
여기에 대한 주해가 아주 많은데 그 풍부한 입장은 그야말로 萬德이니까 좋은 입장을 말하고, 蕩無纖塵이라고 하는 것은 일체번뇌ㆍ사량 분별ㆍ일체 악지악각. 이런 것이 싹~ 쓸어져서 없어지는 그 입장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이 뭡니까? 敎主難思. 敎主. 석가모니부처님의 그 위대함을 나타내는 구절이지요. 어찌 이 구절로 다 나타내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이 世主妙嚴品의 그 모든 내용들이 사실은 전부가 敎主의 難思. 부처님의 아주 위대한 점. 불가사의한 점을 표현하고 있는 그런 내용이기도 한데, 서문에서는 다 이야기하면 화엄경을 다 이야기해야 하니까 이렇게 간략하게 아주 멋지게 이렇게 글로 표현했습니다.
한 번 생각하면서 원문 쭉~ 다시 읽읍시다.
往復(왕복)이 無際(무제)나
動靜(동정)은 一源(일원)이라.
含 衆妙而有餘(함중묘이유여)하고
超 言思而迥出者(초언사이형출자)는
其唯法界歟(기유법계여)며
剖裂玄微(부열현미)하고 昭廓心境(소확심경)하며
窮理盡性(궁리진성)하고 徹果該因(철과해인)하며
汪洋沖融(왕양충융)하고 廣大悉備者(광대실비자)는
其唯大方廣佛華嚴經焉(기유대방광불화엄경언)인저
故我世尊(고아세존)이 십신초만(十身初滿)에 正覺
始成(정각시성)하사
乘 願行以彌綸(승원행이미륜)하시며
渾 虛空爲體性(혼허공위체성)하시니
富有萬德(부유만덕)이요 蕩無纖塵(탕무섬진)이로다
불교의 그 많고 많은 글 중에서 “최고 봉” 이라고 서슴없이 많은 사람들이 말 합니다. 그런 글을 조금 서두를 맛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