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의 방어 기지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
"충남 보령시(保寧市) 여행"
(화암서원등..,)
"보령시(保寧市)는 차령산맥이 서남으로 달리다가
마지막으로 꿈틀거려 오서산(오서산:790.7m)을 이루었으니 그기에서
남쪽으로 뻗은 줄기 끝에 성주산(성주산:677m)이 있어 보령을 그 동쪽과
갈라 놓았습니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가다가 이윽고 닿게 되는 곳, 보령시는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듯한 *고향* 으로 남아 있습니다.
서해 제일의 어항인 *대천항* 과 *대천해수욕장* 이
넓게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천수만과 오서산 일출)
"일생에 한번 뿐인
순간의 풍경, 아름다운 아침입니다."
(오천항과 충청수영)
"오천성(鰲川城)은 조선 중종 5년(1510)에 서해안 방어기지의 하나로 쌓은 성(城)이며,
구릉 주변에 성을 쌓아 성밖의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아주 전망이 좋은 곳입니다."
(오천성과 충청수영 : 鰲川城과 忠淸水營)
"서문이었던 망화문터의 석문 홍예(虹霓)만 남아 있고
성축의 남은 길이는 1km 남짓 합니다."
(충청수영 : 忠淸水營 설명판)
"충청수영성은 역사적 의미뿐만 아니라
수려한 경관을 즐길 수 있는 관광지로도 인기가 높은 곳입니다."
(충청수영 서문)
"조선 초기에 설치된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은 충청도 해안을 방어하는
최고 사령부 역할을 했으며, 조운선의 보호와 안내 그리고 외적 방어 역할을 하다가
1896년에 폐영(廢營) 되었습니다."
(충청수영~진휼청과 영보정)
"조선시대 충청수영(忠淸水營) 안에는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영보정,진휼청으로
추정되는 이 곳을 비롯해서 영보정 건너 보이는 곳에 객사(客舍)와 삼문(三門) 만이 남아 있습니다.
(진휼청 : 賑恤廳)~충남문화재자료 제412호
진휼청(賑恤廳)은 흉년에
충청수영 관내의 빈민 구제를 담당하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충청수영 성곽 길)
"진휼청에서 영보정 가는 성곽길입니다.
성곽길을 천천히 걸어면서 오천항의 풍경을 즐길 수 있습니다.
(영보정 : 永保亭)
"오천성 중심에 있는 영보정(永保亭)은 바닷가 절벽 위에 세워져,
보령호. 천수만 등의 보령 섬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정자입니다."
"다산 정약용, 백사 이항복 등 많은 시인(詩人) 묵객(墨客)이 영보정에 들러
숱한 시문을 남겼으며 이곳을 조선 최고의 정자로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충청수영 내삼문~공해관 : 控海館)~충남 유형문화재 제210호
"조선시대 충청수영 안에는 많은 건물들이 있었는데, 1896년 폐영과 함께
대부분 소실되고 *진휼청, 영보정, 객사, 공해관* 의 삼문만 남아 있습니다.
이 건물은 수사의 집무실이었던 공해관(控海館)의 출입문 역활을 하던 삼문(三門)입니다."
(충청수영 장교청~객사 : 客舍)~충청문화재자료 제411호
"이 건물은 충청수영 객사(客舍)입니다.
수군절도사가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시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禮)를 올렸으며, 중앙에서 내려오는 관리들의 숙소로 사용했습니다."
(충청수영에서 바라본 오천항)
"오천항(鰲川港)은 백제 때부터 배가 드나들던 항구로 조선시대 때는
수군절도사영이 있었을 만큼 군사적인 중요성이 강조되었던 곳이며,
지금은 서해의 수산물 산지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 포구입니다."
(충청수영에서 바라본 안면도)
(보령화력발전소)
(토정 이지함 선생 묘역 안내판)
"*토정비결(土亭秘結)* 의 저자 이지함 선생의 가족 묘가 있는 곳입니다.
앞날을 훤히 내다봤던 초능력자, 산천을 떠돌던 이지함은 늦은 나이 57세에
관직에 올라 포천현감, 아산현감 등을 거쳐 백성들을 위해 많은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이지함 선생 묘역)
"역사절 사실 소위 *대윤(大尹)과 소윤(小尹)* 의 권력다툼으로 벌어진 여러 사건들 때문에
둘도 없는 친구 *안명세* 의 죽음 탓에 옷을 찢어 발을 싸매고 거짓 미치광이로
세상을 도피하며 살았습니다."
(토정 이지함 유상 : 土亭 李之菡 遺像)
"청강은 맑기도 한데 흰 갈매기 기슭에 있고
갈매기는 희기도 한데 청강 기슭에 있네
맑은 강물은 갈매기의 흰빛을 싫어 하지
않으니 갈매기는 길이 청강에 있으리."
"1578년 7월 행정가 이지함이 죽었습니다.
아산현감으로 부임한 지 두 달 만입니다."
"이지함은 부모가 묻힌 보령 이곳 선산에 안장됐습니다.
그 옛날 *이지함 본인이 묏자리* 로 잡았던 곳입니다."
(이지함 가족 묘역)
"토정유고(土亭遺考)에 따르면 그곳은 후대에 두 정승이 날 자리이나 막내아들에게는
불길한 자리였습니다. 이지함은 *집안을 위해 내가 재앙을 감당하겠다* 하며
그곳에 부모의 묘를 잡았습니다."
(토정 이지함 묘 : 土亭 李之菡 墓)
"그 묫자리의 발복으로 맏형 이지번의 아들 이산해는 영의정이 되고
둘째형 이지무의 아들 이산보는 이조판서가 되었습니다."
"이지함의 아들 이산두는 스무 살에 요절했으며,
그 선산에 초능력자 아비(이지함)와 불우한 아들(이산두) 이 가족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충남 보령시 토정로 1048입니다."
(가족 묘)
"충남 보령에 있는 이지함의 묘 오른쪽에는 아버지, 왼쪽 뒤편에는 요절한 아들 묘가 있습니다.
집안의 발복을 위하여 이지함은 아들의 불운을 떠 안았습니다."
(묘역 뒤에서 바라본 풍경)
"좌청룡,우백호,배산임수(左靑龍,右白虎,背山臨水) 로
서해바다를 품안에 품고 있는 최고의 명당인 것 같습니다."
(화암서원으로 가는 고개~질재의 보령정 : 保寧亭)
"질재는 주포면 보령리와 청라면 장산리를 잇는 고개이며 과거 보령현 시적에는
청라, 화성, 청양 방면으로 통하는 큰 길로 오래 전부터 불러온 지명입니다."
(청천저수지에서 바라본 화암서원)
(화암서원 : 花巖書院)~문화재자료 제 138호
"화암서원(花巖書院)은 1610년(광해2) 충청관찰사 정협과 이지함의 문인인
구계우가 주도하여 건립하였으며 1686년(숙종12)에 사액(賜額) 되었습니다.
(화암서원 외삼문)
(서재 : 西齋)
(강륜당 : 講倫堂)
(사당 출입문)
"*토정 이지함(土亭 李之菡)과 명곡 이산보(鳴谷 李山甫)* 를 모셨고,
1998년에는 이지함 선생의 영정을 봉안했으며 지역 유림들이 매년 춘추로 제향하고 있습니다."
(숭덕사 : 崇德祠)
(화암서원에서 바라본 청천저수지)
(대천해수욕장의 상징 *머드광장* 조형물)
(머드광장 표지석)
"대천해수욕장 입구에는 거대한 머드광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해수욕장과 연결되어 있으며 해마다 여름이면 널리 알려진 *머드축제* 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입니다."
(머드광장)
(인 어 비 상)
(대 천 해 수 욕 장)
"서해에서 해수욕장을 꼽으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대천해수욕장이며,
규모면에서도 서해안 최대의 해수욕장입니다."
"동양에서 조개껍데기로 이루어진 단 한 곳인 대천해수욕장은
5km가 넘는 백사장이 서해안답게 완만하게 이어져 많은 사람들이 찾는 좋은 장소입니다."
(대천해수욕장 조형물)
"머더광장 옆에 바다를 상징하는 다양한 조형물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특히 어린이들이 놀수 있는 기구들이 많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대 천 항 입 구)
"대천해수욕장에서 고개 하나를 넘으면 가까운 거리에 대천항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서해 제일의 어항(漁港)이며 주위에 있는 여러 섬들을 왕래할 수 있는 여객선이 운항되고,
대천해수욕장과 함께 많은 관광객들이 들러는 곳입니다."
(대 천 항)
(대천항에서 바라본 안면도와 원산도)
"대천항에서 바라본 안면도와 원산도 풍경입니다.
안면도에서 원산도까지는 연육교가 완성되어 통행이 가능하며 원산도에서 대천까지는
해저터널로 연결하기 위해 한창 공사 중입니다. 이 길(안면도~대천)이 완공되면 충청 서해지방의
교통이 원활해져 산업,관광 등 새로운 길이 열리게됩니다."
"청 풍 명 월~~보령여행...........................................................................,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