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나무/ 장영랑
늦가을 햇살이 장례식장에 나뒹구는 단풍잎을 훑고 있다. 이미 온몸의 붉은 기운을 내뿜던 단풍잎은 아니었다. 생명이 가진 촉촉함은 사라진 채 검불이 되어 바삭거리며 그저 나뒹굴 뿐이다. 가죽과 뼈만 앙상했던 올케언니의 마지막 모습 같다.
야릿야릿한 몸에 일자형 빨간 치마와 달걀찜같이 푹신한 스웨터를 입고 첫인사를 온 새언니는 한 그루 나무처럼 싱그럽게 우리 집으로 시집왔다. 굵은 쌍꺼풀에 길고 짙은 속눈썹을 가진 언니는 뽀얀 피부가 예뻤다.
처음으로 맞이하는 새 식구에 모두 들떴고 유난히 오빠랑 친했던 나는 언니의 살가움이 더 기대되었다. 감정 표현이 풍부한 우리 식구와 달리 빈말이 없는 새초롬한 언니였다. 모두부같이 반듯하고 정갈하면서 담백한 성격이었다. 마을 앞 느티나무처럼 큰 그늘을 드리우기보다는, 약한 가지로 겨우 제 삶의 양지를 더듬어 살아가는 집 앞마당의 나무 같다고나 할까.
언니 나무의 자람터로서 자식에 대한 염려가 일상의 습관이 된 아버지가 계셨다. 남의집살이의 설움을 알세라 아버지는 당장 집 장만을 해주셨고, 언니는 귀한 손자를 어른들께 안겨드렸다. 잔정이 넘치는 엄마는 손자를 본다는 기쁨에 깻잎장아찌며 코다리조림, 연근조림 같은 손 많이 가는 밑반찬을 만들어 언니 집을 들락거렸다.
귀한 티를 내는 조카는 순둥하지 않아서 여차하면 병치레로 입원을 해 고부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함께 놀라고 달랜 가슴으로 두 여인은 자연스레 서로를 북돋아 주는 사이가 되었다. 번창하는 시아버지의 사업과 남편의 착실한 직장 생활은 때깔 좋은 정원수처럼 그녀를 돋보이게 했다. 큰 나무 밑에서 한창 수액이 오른 언니 나무는 새 잎을 돋아내고 여러 줄기를 뻗어나갔다. 끝없이 뽑아 올려도 맑은 수액이 흘러나오는 화수분 같은 나무가 되어 땅 깊숙이 잔뿌리를 뻗어나갔다.
세상 착하기만 한 오빠는 끈기가 없었다. 아버지의 돈줄을 믿어서였을까. 반듯한 직장을 관두고 오빠는 사업에 욕심을 내었다. 장사꾼의 연륜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람이 처음부터 철강이라는 큰 사업체를 벌렸다. 건축 일을 하며 발이 넓은 친구와 동업이라고 했지만, 오빠는 자금을 대는 쪽이었다. 개업 축하로 받은 금테 두른 만년필이 결재 사인을 제대로 휘갈겨 보지도 못한 채 안 좋은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납품한 업체가 부도나서 물건값을 못 받았다는 등, 급하게 어음을 가져와 아버지께 현금을 받아 가서 갚지 못한다는 등, 급기야 아버지 돈으로 산 공장부지가 남의 손에 넘어갈 때까지 속수무책으로 오빠는 넋을 놓고 있어서 정말 알거지가 되었다는 말까지 들려왔다.
오빠는 실패로 삶을 포기하려 했다. 남 좋은 일만 시킨 어리석은 아들에 대한 원망의 잔소리와 가산을 날렸다는 송구함은 언니 몫으로 돌아왔다. 무능력해진 남편 대신 무언가 나서서 일해야 하지 않냐는 무언의 압력 속에도 언니는 집안 살림에 더 충실했다. 한번 싹을 틔운 곳에서 한평생을 살아야 하는 나무처럼 집안을 지켜나갔다.
언니는 오빠의 울분을 그늘로 식혀주고 기가 꺾인 아이들에게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늘어진 티셔츠와 빛바랜 집 치마가 언니 옷의 전부인 듯 아끼고 또 아끼며 살아갔다. 언니는 더이상 정원의 안락한 나무로 살 수 없었다. 뒷받침하는 삶이 힘에 겨웠을까? 희망의 빛을 찾아 우듬지의 끝눈 방향을 이리저리 맞추느라 가지가 굽어갔다. 자기의 몸은 낮추고 가족을 받쳐주느라 몸이 휘어갔다.
언니가 발 벗고 돈벌이에 나서지 않은 것은 오빠가 다시 일어날 자존심을 세워 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실패와 빈궁한 형편을 받아들여야 하는 언니는 어땠을까. 허허벌판 홀로 선 앙상한 겨울나무 같았으리라. 미래라는 햇빛은 먹구름에 가려지고 암흑 속에서 다시 새잎을 틔워야만 하는, 하지만 이 구름이 지나고 나면 더 무성한 잎으로 녹음을 드리우는 날이 올 것으로 생각하며 언니는 견뎠으리라.
오빠는 다시 빚을 내고 아버지의 남은 돈을 털어 홍삼 판매점을 열었다. 가게 문을 열기만 하면 지인들이 거래처를 터줄 것이라 했지만 인사치레의 판매는 두 달을 넘기지 못했다. 월세가 밀리기 시작했고 모든 친인척이 동원되었지만, 제살깎기식 장사였다. 오빠는 다시 은둔자가 되어 속앓이만 했다. 언니는 남아있는 물건값이라도 건져 보겠다고 홍삼을 달이고 포장해서 친구들에게 아쉬운 말을 했지만 찬 기운만 맞게 되었다. 수피가 벗겨져 상처가 생기고 속이 썩어가고 있었다. 희고 고았던 얼굴에는 검은 반점이 생기고 온몸에 생기가 없어 보였다. 잘 먹지도 못하는데 이상하게 나날이 배가 부풀어 올라왔다.
복수가 이미 많이 차올랐지만, 병명도 모른 채 두 달을 헤맸다. 장기를 둘러싸고 있는 복막에 수많은 암세포가 몽글몽글 붙어 언니를 파먹고 있었다. 상세 불명의 악성종양이라 치료약도 치료방법도 없었다. 굵은 주삿바늘로 복수를 빼내지만 2주 만에 다시 차올랐다. 생살을 찌르는 고통과 복수에 눌려 가빠지는 숨이 두려워 물 한 모금도 제대로 마시지 못했다. 항암 주사 부작용으로 모든 음식은 쇠붙이 맛이 난다고 했다.
암이라는 낙뢰는 사정없이 언니를 후려쳤다. 언니는 바스러지는 잎조차 매달지 못한 나무처럼 속이 비어갔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하냐는 원망의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언니는 텅 빈 속을 지친 동물들의 은신처로 내놓는 나무처럼 병든 본인보다 어른들과 아이들의 여린 마음을 품어주려고 했다. 아파서 죄송하다고 엄마 노릇 못해서 미안하다고, 나을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우리의 기다림은 오래 가지 못했다. 복막에서 전이된 암이 장기를 파고들었다. 살점 하나 없는 몸에 예리한 칼날이 위와 비장, 소장을 다 걷어갔다. 나무가 둥지째 잘려 나가듯 육신으로 받을 수 있는 최고치의 고통이 따라붙었다. 물이라도 맘껏 먹어보겠다던 희망은 입으로 들어간 모든 것이 여과 없이 바로 쏟아져 나오는 두려움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모든 걸 상실한 허망한 눈빛의 언니를 보자 몇 번을 되새기고 간 위로의 말은 꺼이꺼이 눈물로 솟구쳐 병원 바닥에 버려졌다.
생명을 집어삼킬 듯 단풍이 붉게 타오르던 늦가을이었다. 언니는 병마의 강풍에 뿌리째 뽑혀 버렸다. 살기 위해 처절히 몸부림치던 언니는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를 잃은 엄마는 틈만 나면 생을 놓고 싶다고, 내가 저 대신 가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며 통탄의 눈물로 가슴을 쳤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은 우울증을 가져와 엄마의 기억을 갉아먹게 했다. 언니에 대한 오빠의 그리움은 역류성 식도염으로 나타나 오빠는 음식을 제대로 넘길 수 없게 되었다. 세상 가장 아픈 부재를 알아버린 조카들은 쓸쓸함 한 자락을 안고 사는 외톨이가 되어 마음을 닫아버렸다.
언니는 우리 곁에 서 있던 나무였다. 보이지 않게 바람을 막아주고, 존재하는 것만으로 우리에게 평안을 주었던 따뜻한 나무. 나무의 고마움을 알면서도 가슴 한켠을 내어 마음을 전하지도 못하고 언니를 보내 버렸다. 속이 타다 못해 움푹 파여 버린 언니의 등걸 한번 제대로 쓰다듬어 준 적이 있었던가, 살려고 내뻗는 뿌리에 시원한 물 한 바가지 흠뻑 부어 준 적이 있었던가.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고 한다. ‘난 이제 안 될 거 같아’라는 마지막 말을 전하면서도 고맙다는 말만 하고 떠난 언니는 온전히 나무의 삶을 살았다. 씨앗이 어디에 떨어졌든 탓하지 않으며 뿌리를 내려 가지를 뻗고 그늘을 만들고 결연하게 자리를 지킨 나무.
다시 언니 나무를 심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사는 소나무가 되어 야트막한 산에 자리를 잡았다. 고운 황토 흙에 몸을 지탱하고 곧곧하게 서 있는 언니나무 위로 세상의 모든 햇살이 모여 있다. 맘 놓고 위로만 뻗을 수 있는 우듬지를 가진 매끈하고 푸른 언니가 되었다. 천년의 바람도 견딜 수 있는 언니가 우리 곁에 다시 섰다.
첫댓글 의미화되어 있는 문단들을 통해 언니뿐만 아니라 어머니, 아버지, 오빠까지 캐릭터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남편의 흠을 가리고 자식들을 지탱해주느라 가지가 휘어지고 속이 텅 비어버린 언니나무~~ 읽는 내내 울컥하네요.
하지만 햇살 좋은 곳에 다시 심어진 언니나무는 가족들의 사랑을 기억하고 푸르게 성장할 것입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