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거의 업식(業識)에 얽매여 살 수는 없다. 과거의 업식으로 일어나는 나쁜 행위를 끊고 좋은 행위를 하면 된다. 좋은 행위의 시작은 12연기에서 애(愛)에서 유(有)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과거 업식에 끌려가지 않아야 한다. 담배 냄새를 맡고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 행을 취한다. 이처럼 나쁜 행위를 끊고 좋은 행위를 하도록 하는 것이 계(戒)이다. 그런데 계를 지키는 것도 매우 힘이 드는 일이기 때문에 항상 수(受: 느낌)를 잘 관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시끄러운 소리’는 소리를 듣는 사람에 따라 ‘좋은 소리’나 ‘시끄러운 소리’가 된다. 내 과거 업식에 따라 '시끄러운 소리'에 끄달이거나 '좋은 소리'에 끄달이지 않아야 한다. 소리는 소리일 뿐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잡초의 경우 싹(⑧수:受)일 때는 곡식과 구분이 잘 안 되나 자라서(⑨애:愛) 열매(⑩유:有)를 맺으면 다시 잡초가 된다. 따라서 수(느낌: 싹)를 잘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느낌을 잘 관찰하는 수행이 바로 마음 관찰 수행이다. 예컨대 화가 나는 순간 그 화를 잘 관찰하여 어떤 구별과 차별을 내지 않아야 한다. 수(느낌)을 관찰하는 수행을 잘 하면 이런 느낌을 일으키는 종자(③식:識-씨앗)를 알 수 있다. 종자(識)를 알면 자기 자신을 잘 알게 된다. 자기를 잘 알면 업식에 끌려다니지 않는 인연관계를 맺으며 세상을 살 수 있다.
자신의 업식을 알고 생활을 바르게 하여(戒) 마음이 안정되면(定) 지혜로운 삶(慧)을 살 수 있다. 계정혜(戒定慧)를 닦으면 탐진치(貪瞋痴)가 사라지고 삼악도(三惡道)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런 생활이 바로 고락(苦樂)의 반복을 끊고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12연기에서 무명(無明)을 찾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무명(無明)이란 원래 없다걸 알아야 한다. 방안이 어두우면 불을 켜면 밝아지는 것이지 어둠을 잡아 없애는 것이 아니다. 눈을 뜨면 꿈인 것을 알게 된다.
출처 : 법륜스님 <반야심경 강의 14-15강>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