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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9장 1-16절. 불의한 재판과 예수님의 모진 고난
1. 오늘은 예수님이 죄 없이 채찍을 당하시고,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빰을 맞으신 모습과, 빌라도가 죄를 찾지 못한다고 하면서도, 유대인의 협박에 못 이겨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내준 장면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말씀 한 마디로 빌라도나 대제사장들이나 유대교인들을 처벌할 수 있으시지만, 불의한 그들을 포함해서 죄 많은 우리들을 위해서 잠잠히 대속의 모진 형벌과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는 감동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2. 오늘 말씀 속에는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첫째는 유대 나라를 압제하는 로마제국의 총독 빌라도입니다.
둘째는 로마제국의 식민지 통치를 받고 있는 유대나라의 백성들입니다.
셋째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잠잠히 모든 고난을 당하고 계시는 예수님입니다.
3. 그런데, 어이없게도 로마제국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를 세 번씩이나 선포하면서도, 식민지 유대 나라 백성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죄 없는 예수님을 사형에 넘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유대교 대제사장들과 백성들은 참된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주시는 하늘나라 왕이신 예수님을 거부하고, 오히려 자기들을 식민 통치하는 로마제국의 황제를 자기들의 유일한 왕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불의한 재판장인 빌라도를 당장 처벌하시지 않았고, 대제사장들과 유대 백성들을 당장 처벌하시지도 않고, 모든 사람들을 죄악과 영원한 죽음에서 해방시키려고 묵묵히 그 모진 고난들을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4. 오늘은 <고난을 당하신 대속의 주님>이란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3절. 죄 없이 우리 대신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1절.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 후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가서 그를 채찍질 했다. (Pilate then took Jesus and scourged Him.)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Τότε οὖν ἔλαβεν ὁ Πειλᾶτος τὸν Ἰησοῦν καὶ ἐμαστίγωσεν
At that time therefore took the Pilate the Jesus and flogged
‘데려다가’란 단어(ἔλαβεν)는 부정과거형으로서(took) 강제로 데려간 것을 가리키고, 원형(λαμβάνω)은 ‘잡다 받다, 얻다, 붙잡다’(to take, receive, get, lay hold of)란 뜻입니다.
‘채찍질하다’란 단어(ἐμαστίγωσεν)는 부정과거형으로서(flogged) 사정없이 채찍질 하는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μαστιγόω)은 ‘채찍질 하다, 매질하다’(to scourge, flog)는 뜻입니다.
1.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가한 채찍은 긴 가죽끈에 중간중간 날카로운 쇠조각을 매단 무서운 채찍이었습니다.
이 채찍으로 맞으면, 살점이 뚝 뚝 떨어져 나가고, 붉은 피가 줄 줄 흘렀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혼자 십자가를지지 못하시고, 구레네 시문이 대신 졌던 것입니다( 마 27:32, 막 15:21, 눅 23:26)
2. 이처럼 빌라도가 예수님을 잔인하게 채찍질한 이유는 무죄한 예수님을 잔인하게 채찍질함으로써, 유대교인들의 동정을 사서, 예수님을 석방하려고 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23:16. 빌라도가 이렇게 예수를 채찍질함으로, 유대인들에게 만족감을 주어, 예수를 놓아주려 함이러라.
3. 그러나 빌라도의 계산은 착오였습니다.
이런 빌라도의 타협적인 모습을 본 유대교인들은 더욱 빌라도를 밀어붙여서, 마침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했습니다.
그러므로 재판은 공정하게 해야 하지 타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4. 이처럼, 무죄하신 예수님이 무서운 채찍에 맞으신 이유는,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이사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벧전 2:24).
2절.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리고 군인들이 가시 면류관을 엮어서 그의 머리에 씌우고 그에게 자주색 옷을 입혔다. (And the soldiers twisted together a crown of thorns and put it on His head, and put a purple robe on Him;)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καὶ οἱ στρατιῶται πλέξαντες στέφανον ἐξ ἀκανθῶν ἐπέθηκαν αὐτοῦ τῇ κεφαλῇ,
and the solders having twisted together crown of thorns put on His the head
‘엮어서’란 단어(πλέξαντες)는 부정과거형 분사로서(having twisted together) 단단히 엮은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πλέκω)은 ‘엮다, 엮어 짜다’( to plait, weave together)는 뜻입니다.
‘씌우고’란 단어(ἐπέθηκαν)는 부정과거형으로서(put on) 머리게 확 씌운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ἐπιτίθημι)은 ‘얹다, 위에 두다’(to lay upon, place upon, put on)는 뜻입니다.
자색 옷을 입히고
καὶ ἱμάτιον πορφυροῦν περιέβαλον αὐτόν
and robe purple cast around Him
‘입히고’란 단어(περιέβαλον)는 부정과거형으로서(cast around) 단호하게 입힌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περιβάλλω)은 접두사 περί(관하여, 둘레로)와 βάλλω( throw, cast: 던지다)의 합성어로서 ‘둘레로 던지다, 입다, 옷을 감싸서 입히다’(to throw around, put on, wrap a garment about)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1.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 머리에 가시관을 씌운 이유는 조롱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마 27:28, 막 15:17)
이때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의 머리에 씌운 가시면류관은 팔레스틴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기린>이란 굵은 가시나무였습니다.
2. 만왕의 왕으로서 금면류관을 쓰셔야 할 예수님이, 이처럼 험악한 가시면류관을 쓰신 이유는, 우리들의 죄를 속죄하려고 쓰신 것입니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이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땅에 가시가 났었는데, 우리 예수님이 가시면류관을 쓰심으로 이런 저주가 물러가게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였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음이라 하였음이라.
3절.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리고 그들이 예수께 가서 말하기를 “유대인의 왕이여”라고 하며, 그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and they began to come up to Him and say, "Hail, King of the Jews!" and to give Him slaps in the face.)
앞에 가서 이르되
καὶ ἤρχοντο πρὸς αὐτὸν καὶ ἔλεγον
and they began coming up to Him and they were saying
‘앞에 가서’란 단어(ἤρχοντο)는 기동의(inceptive) 미완료과거형으로서(began coming up) 앞에 가기 시작한 것을 가리키고, 원형(ἔρχομαι)은 ‘가다’(to go, come)란 뜻입니다.
‘이르되’(ἔλεγον)도 미완료과거로서(they were saying) 계속 말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Χαῖρε ὁ Βασιλεὺς τῶν Ἰουδαίων·
Hail, King of the Jews
‘평안할지어다’란 단어(Χαῖρε)는 명령어로서(Hail) 항상 평안하라는 뜻이고, 원형(χαίρω)은 ‘기뻐하다, 즐거워하다’(to rejoice, be glad)란 뜻이고, ‘안녕’( Hail)이란 인사말(salutation)이기도 합니다.
손으로 때리더라
καὶ ἐδίδοσαν αὐτῷ ῥαπίσματα
and they kept giving Him blows with the palm
‘손으로 때리더라’란 말은 두 단어(ἐδίδοσαν ῥαπίσματα)로서, 앞의 단어(ἐδίδοσαν)는 미완료과거형(kept giving)으로서 계속 때리고 있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뒤의 단어(ῥαπίσματα)는 명사 복수형으로서 손바닥으로 여러 번 때리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1. 손바닥으로 때린 것은 심한 인격적 모욕을 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7장 30절에는, 얼굴에 침까지 뱉었고, 갈대로 머리를 쳤다고 했습니다.
이런 인격적 모독은 사람에게 큰 고통을 줍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런 인격적 모독을 받으신 것은, 우리의 인격적 상처를 치료하시기 위함입니다.
<내적 치유>의 원리가 여기 있습니다.
2. 이처럼, 만왕의 왕 예수님께서 이런 무서운 모독을 당하신 것은 누구 때문입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 때문입니다.
3. 예화
류태영 박사(柳泰永, 1936년~ )의 어릴 때 이야기입니다.
예배 때 목사님이 <예수님은 이 세상 만민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온 교인이 <아멘> 했습니다.
예배 후에 목사님이 류태영 학생에게 <예수님이 누구 때문에 죽으셨지?>
류태영 학생이 <만민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목사님이 다시 <그 말이 맞긴 맞다. 그러나, 너와 무슨 상관이 있지?>
류태영 학생 : <저와 무슨 상관이 있는데요?>
목사님 : <바로 너를 위해 죽으셨다>
내가 다시 물을 테니까 대답해봐.
<예수님이 누구를 위해 죽으셨지?>
류태영 학생 :<.........> (묵묵 부답)
그 후로 류태영 학생이 고민이 되어 2주간이나 교회를 안 나왔습니다.
류태영 학생 : (내가 머슴 아들인데,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이 어떻게 나같은 머슴 아들을 위해 죽었겠는가?.......)
집에서 고민하면서, 기도하고 성경 말씀 읽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감동하셔서,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서 죽으신 사실이 믿어지더랍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류태영 학생: <아! 나는 보통 인간이 아니로구나! 예수님이 나를 위해 가시면류관 쓰고,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으니, 나는 보통 인간이 아니로구나!>
그래서, <머슴 아들> 콤플렉스를 벗어버렸답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왕의 왕 되신 예수님께서 나같이 악하고 더러운 죄인을 위해서, 채찍맞고, 가시관 쓰고, 뺨 맞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인격적 모독에서의 해방되고, 죄에서 자유와 지옥에서 해방 얻는 기쁨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4-11절. 빌라도가 예수님의 무죄를 세 번씩이나 선언하면서도, 예수님을 무죄석방 시키지 않는 나약한 빌라도의 모습입니다.
4절.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빌라도가 다시 밖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말하기를 “보라,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데리고 나왔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런 죄책도 발견하지 못한 것을 너희가 알게 하기 위함이다”고 했다. (Pilate came out again and said to them, "Behold, I am bringing Him out to you so that you may know that I find no guilt in Him.")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Καὶ ἐξῆλθεν πάλιν ἔξω ὁ Πειλᾶτος καὶ λέγει αὐτοῖς
and went forth again out the Pilate and he says to them
‘나가’란 단어(ἐξῆλθεν)는 부정과거형으로서(went forth) 단호하게 나가는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ἐξέρχομαι)은 ‘밖으로’란 접두어(ἐξ)와 ‘가다’란 동사(ἔρχομαι)의 합성어입니다.
‘말하되’(λέγει)는 현재형으로서(he says) 말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Ἴδε, ἄγω ὑμῖν αὐτὸν ἔξω,
behold, I bring to you Him out
‘보라’(Ἴδε)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behold) 확실하게 보라는 뜻이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말입니다.
‘데리고’란 단어(ἄγω)는 현재 직설법으로서 지금 데리고 나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주고 있습니다.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ἵνα γνῶτε ὅτι οὐδεμίαν αἰτίαν εὑρίσκω ἐν αὐτῷ.
so that you may know that no guilt I find in Him
‘찾지’란 단어(εὑρίσκω)는 현재 직설법으로서 지금도 죄를 찾으려고 하지만 아무런 죄를 찾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란 단어(γνῶτε)는 부정과거 가정법으로서(you may know) 단호하고 확실하게 알게 하는 것을 가정한 말이고, 원형(γινώσκω)은 ‘알게 되다, 인정하다, 인식하다’(to come to know, recognize, perceive)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1. 빌라도 총독은 유대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예수님에게 채찍질을 한 후에,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예수님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고 두 번째 무죄를 선포했습니다. (요 18:38)
그런데도, 빌라도는 예수님을 무죄 석방하지 않았습니다.
나쁜 재판관의 모습입니다.
2. 성경에는 재판할 때, 사람의 낯을 보지 말고 공정하게 재판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신명기 1:17.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너희는 재판에 외모를 보지 말고, 빈부귀천을 일반으로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나라 재판은 일반적으로 공의롭지만, 그러나 세상 재판관에게서 완전한 정의를 얻을 것이라고는 너무나 기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영원한 재판장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5절.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 때 예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자주색 옷을 입고 나가셨다.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보라, 이 사람이라”고 했다. (Jesus then came out, wearing the crown of thorns and the purple robe. Pilate said to them, "Behold, the Man!")
이에 예수께서---나오시니
ἐξῆλθεν οὖν ὁ Ἰησοῦς ἔξω,
Went forth therefore the Jesus out
‘나오시니’란 단어(ἐξῆλθεν)는 부정과거형 동사로서(went forth) 단호하고 분명하게 나오시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φορῶν τὸν ἀκάνθινον στέφανον καὶ τὸ πορφυροῦν ἱμάτιον.
wearing the thorny crown and the purple robe
원문은 ‘가시 면류관과 자색 옷을 입고’이지만, 우리말대로 가시 면류관을 ‘쓰고’란 단어를 첨가해서 번역한 것이 좋습니다.
‘입고’란 단어(φορῶν)는 현재분사로서(wearing) 계속 입고 계시는 모습이고, 원형(φορέω)은 ‘계속해서 착용하다, 입다’(to bear constantly, to wear)는 뜻입니다.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καὶ λέγει αὐτοῖς, Ἰδοὺ ὁ ἄνθρωπος.
and he says to them, Behold the Man
직역하면 ‘그가 말하기를 보라 그 사람을’이란 말입니다.
‘말하되’(λέγει)는 현재형으로서(he says) 말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보라’(Ἰδοὺ)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behold) 확실히 보라는 뜻으로서, 주의를 환기시키는 말입니다.
1. 만왕의 왕이 가시면류관 쓰고, 자색 옷을 입고, 온몸에 피를 흘리며 비참한 모습으로 나오셨습니다.
<보라 이 사람이로다>( Homo Ecce)는 말은 헨델의 메시야 곡에도 나오고, 유명한 성화도 있고(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년), 유명한 책도 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의 죄를 지고 가시는 희생양의 모습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2. 이 때 예수님은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시편 22편 6절에는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사람의 조롱거리가 되신 것은 우리들의 수치 대신에 수모를 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신자들에게 수치와 모욕을 당하더라도, 이상히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원래 불신자들은 예수 믿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오히려, 어떠한 수치와 모욕 속에서도 예수님 모시고, 평강과 영광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143장> 웬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내 지은 죄 다 지시고 못 박히셨으니 웬일인가 웬 은혠가 그 사랑 크셔라.
6절.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래서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예수를 보았을 때, 그들은 소리쳐 말하기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고 했다.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그를 데리고 가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왜냐하면 나는 그에게서 아무런 죄책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고 했다. (So when the chief priests and the officers saw Him, they cried out saying, "Crucify, crucify!" Pilate said to them, "Take Him yourselves and crucify Him, for I find no guilt in Him.")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ὅτε οὖν εἶδον αὐτὸν οἱ ἀρχιερεῖς καὶ οἱ ὑπηρέται,
when therefore saw Him the chief priests and the officers
직역하면 ‘그러므로 대제사장들과 그 관리들이 그를 보았을 때’라는 말입니다.
‘보고’란 단어(εἶδον)는 부정과거형으로서(saw) 확실히 본 사실을 가리키고, 원형(ὁράω)은 ‘보다, 바라보다, 분별하다, 알아보다’(see, look upon, discern, beware)는 뜻입니다.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ἐκραύγασαν λέγοντες, Σταύρωσον σταύρωσον.
they cried out saying, Crucify crucify
‘소리 질러’란 단어(ἐκραύγασαν)는 부정과거로서(cried out) 단호하게 큰 소리를 지르는 것을 가리키고, 원형(κραυγάζω)은 ‘소리치다, 큰 소리를 지르다, 외치다’( to cry out, cry aloud, shout)는 뜻입니다.
‘이르되’(λέγο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saying) 말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란 단어(σταύρωσον)는 부정과거 명령어로서(crucify) 확실하고 단호하게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명령이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단호하게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λέγει αὐτοῖς ὁ Πειλᾶτος, Λάβετε αὐτὸν ὑμεῖς καὶ σταυρώσατε·
he says to them the Pilatus, Take Him yourself and crucify
‘이르되’(λέγει)는 현재형으로서(he says) 말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데려다가’란 동사(Λάβετε)와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동사(σταυρώσατε)가 모두 부정과거 명령어로서 단호하게 데려가서 단호하게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뜻입니다.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ἐγὼ γὰρ οὐχ εὑρίσκω ἐν αὐτῷ αἰτίαν.
I for no find in Him guilt
‘나는’(ἐγὼ)이란 말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찾지’란 단어(εὑρίσκω)는 현재 직설법으로서, 지금도 예수에게서 죄를 도무지 찾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동사입니다.
1. 보통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런 비참한 모습을 보면, 측은한 마음과 동정심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교인들은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고 소리질렀습니다.
이처럼, 불신자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지독히 싫어합니다.
그 이유는 마귀의 총동 때문입니다.(요일 5:19)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신자들에게 동정심을 얻으려고 생각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불신자들은 사랑의 대상이지 믿을 대상이 아님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2. 빌라도는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고 예수님의 무죄를 세 번째 선포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죄한 예수님을 석방해야 합니다.
그런데, 빌라도는 유대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무죄한 예수님을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했습니다.
빌라도의 잘못된 타협주의를 볼 수 있습니다.
죄는 단호하게 끊어야 하는데, 타협하려고 하면, 더욱 심한 죄를 짓게 됩니다.
죄악은 처음부터 단호하게 끊어야 합니다.
처음 술 한잔을 거절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단들도 아예 처음부터 끊어야 합니다.
3. 치안 책임자가 무죄한 사람을 석방해야 질서가 유지되지, 다수의 횡포와 소위 국민 정서를 앞세우면서, 불법을 행하면 안 됩니다.
다수결주의보다 하나님 앞에서 진리를 따르는 것이 성도의 올바른 삶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악과 타협하여 점점 더 죄의 노예가 되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서 단호하게 말씀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참다운 자유를 누리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7절.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유대인들이 그에게 대답하기를 “우리가 법을 가지고 있는데, 그 법에 의하면 그는 마땅히 죽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The Jews answered him, "We have a law, and by that law He ought to die because He made Himself out to be the Son of God.")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ἀπεκρίθησαν αὐτῷ οἱ Ἰουδαῖοι
was answered him the Jews
‘대답하되’(ἀπεκρίθησαν)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as answered) 단호하게 대답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Ἡμεῖς νόμον ἔχομεν,
We law we have
직역하면 ‘바로 우리가 법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가지고 있다’(ἔχομεν)는 현재형으로서(we have) 현재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Ἡμεῖς)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καὶ κατὰ τὸν νόμον ὀφείλει ἀποθανεῖν,
and by the law He ought to die
직역하면 ‘그리고 그 법에 의하면 그는 죽어 마땅하다’는 뜻입니다.
‘죽어’(ἀποθανεῖν)는 부정과거 부정사형으로서(to die) 확실하게 죽는 것을 가리키고, ‘마땅하다’(ὀφείλει)는 현재형으로서(He ought) 언제나 마땅하다는 뜻입니다.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ὅτι Υἱὸν Θεοῦ ἑαυτὸν ἐποίησεν.
because Son of God Himself He made
직역하면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었기 때문에’라는 뜻입니다.
‘함이니이다’(ἐποίησεν)는 부정과거로서(He made) 확실하게 만든 사실을 가리킵니다.
1. 유대인들은 처음에는 예수님이 왕이라고 해서 반역죄를 저질렀다고 고발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가 무죄를 세 번이나 선언하자, 자기들의 종교적인 조목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말로 정죄하기를 주문했습니다. (요 19:7).
이처럼 유대인들은 레위기 24장 16절과 신명기 18장 20절을 근거로, 사람이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 당연히 사형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마 17:5,눅 3:22, 요 5:17, 5:6, 10:29-30)
2. 로마제국은 피식민지 백성들에게 반란을 일으키는 사회사범은 엄격하게 처벌했으나, 종교적인 문제에는 자유를 주고 관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갈리오 총독은 고린도에서 바울을 고소한 유대인들에게 종교문제로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유대인들을 법정에서 쫓아냈습니다. (행 18:15)
8절.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러므로 빌라도가 이 말씀을 들었을 때, 그는 더욱 두려워했다. (Therefore when Pilate heard this statement, he was even more afraid;)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Ὅτε οὖν ἤκουσεν ὁ Πειλᾶτος τοῦτον τὸν λόγον,
when therefor heard the Pilatus this the word
직역하면 ‘그러므로 빌라도가 이 말을 들었을 때’란 뜻입니다.
‘듣고’(ἤκουσεν)는 부정과거로서(heard) 확실히 들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더욱 두려워하여
μᾶλλον ἐφοβήθη,
more he was afraid
‘두려워하여’란 단어(ἐφοβήθη)는 부정과거형 수동태로서(was afraid) 갑자기 놀란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 φοβέομαι)은 ‘도망가게 하다, 겁나게 하다, 놀라게 하다, 두려워하다, 놀라다, 무서워하다’( to put to flight, to terrify, frighten, fear, dread, am afraid, terrified)는 뜻입니다.
1. 빌라도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란 말을 듣고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이 두려움은 신적인 형상을 대할 때 느끼는 경외심이었고, 간밤에 빌라도의 아내가 예수님을 옳은 사람이라고 하면서 처벌하지 말라고 당부한 말 때문이었습니다. (마 27:19)
빌라도의 아내는 프로큘라(Procula)로서 예수님의 숨은 제자였고, 후에 동방교회(Greek Orthodox)에서는 성인으로 추대했습니다.
9절.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부터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리고 그가 다시 관정으로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기를 “너는 어디로부터 왔느냐”고 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에게 아무런 대답을 주지 않으셨다. (and he entered into the Praetorium again and said to Jesus, "Where are You from?" But Jesus gave him no answer.)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καὶ εἰσῆλθεν εἰς τὸ πραιτώριον πάλιν
and he went into the Praetorium again
‘들어가서’(εἰσῆλθεν)는 부정과거로서(he went) 확실히 들어간 모습을 가리킵니다.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부터냐 하되
καὶ λέγει τῷ Ἰησοῦ, Πόθεν εἶ σύ;
and he says to the Jusus, From where are you you?
‘너는’(σύ:you)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말하되’(λέγει)는 말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어디로부터냐’에서 동사(εἶ)는 현재형으로서(are you) 현재 와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ὁ δὲ Ἰησοῦς ἀπόκρισιν οὐκ ἔδωκεν αὐτῷ.
the but Jesus answer not did give him
직역하면 ‘그러나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을 주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주지’란 말(ἔδωκεν)은 부정과거로서(gave)는 확실히 주지 않은 상태를 가리키고, 원형(δίδωμι)은 ‘주다, 제공하다’(to give, offer)란 뜻입니다.
1. 유대교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자, 빌라도는 두려워했습니다.
특히, 마태복음 27장 19절에서, 빌라도의 아내가 간밤에 꿈속에서 예수님을 위하여 애를 많이 쓰고서, 저 옳은 사람을 상관 말라고 당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빌라도가 세상 나라에서는 6,000명의 군사들을 지휘하는 로마 장교였으나, 하나님 아들 앞에서 영원한 생사의 두려움을 갖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2.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너는 어디로서냐?>고 물었습니다.
빌라도가 세상 나라에서는 예수님이 갈릴리 출신인 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눅 23:6)
그러나, 빌라도가 진정 알고 싶은 것은 예수님의 영적 기원, 즉 <하나님의 아들이냐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3. 그러나 예수님은 대답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이 때, 만일 빌라도가 타협적인 자세를 버리고, 진정으로 진실을 따르고자 하였다면, 예수님은 죄 많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내가 메시야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빌라도에게도 대답해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때 빌라도가 진리를 따르려는 자세가 아니고, 불의한 재판관으로서 무죄한 예수님을 유대인들에게 넘겨주려는 자세였으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의 권위로써 침묵하셨습니다.
바로 유명한 ‘예수님의 침묵’ 사건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그리스도의 침묵>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26장에서 예수님은 대제사장 앞에서 침묵하셨고, 요한복음 19장에서는 총독 빌라도 앞에서 침묵하셨고, 누가복음 23장에서는 헤롯 왕 앞에서 침묵하셨습니다.
이사야 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확실한 진리를 보고서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진리를 말씀해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따르는 성도에게는 더욱 더 말씀의 은혜를 주십니다.
있는 자는 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을 더욱 더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더욱 더 말씀의 은혜를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10절.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러자 빌라도가 예수께 말하기를 “너는 나에게 말하지 않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를 가지고 있고, 내가 너를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를 가지고 있는 것을 너는 알지 못 하느냐?”고 했다. (So Pilate said to Him, "You do not speak to me? Do You not know that I have authority to release You, and I have authority to crucify You?")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λέγει οὖν αὐτῷ ὁ Πειλᾶτος, Ἐμοὶ οὐ λαλεῖς;
says therefore to Him the Pilatus, To me not You speak ?
직역하면 ‘그러므로 빌라도가 그분에게 말하기를. 네가 나에게 말하지 않느냐’는 뜻입니다
‘말하기를’(λέγει)은 현재형으로서(says) 말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말하지’(λαλεῖς)도 현재형으로서(you speak) 말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는---줄 알지 못하느냐?
οὐκ λαλεῖς ὅτι ἐξουσίαν ἔχω ἀπολῦσαί σε
not you have known that authority I have to release you
직역하면 ‘내가 너를 놓을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느냐’는 뜻입니다.
‘놓을’이란 단어(ἀπολῦσαί)는 부정과거 부정사형으로서(to release) 단호하게 놓는 것을 가리키고, 원형(ἀπολύω)은 ‘-로부터 멀리’( ἀπό: away from)라는 접두어와 ‘풀어주다’라는 동사(λύω, loose)의 합성어로서‘ 놓아주다’(to release)란 뜻입니다.
‘알지’(λαλεῖς)는 완려형으로서(you have known)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καὶ ἐξουσίαν ἔχω σταυρῶσαί σε;
and authority I have to crucify you?
직역하면 ‘그리고 내가 너를 십자가에 못박을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을’(σταυρῶσαί)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crucify) 단호하게 십자가에 못박는 것을 가리키고, ‘가지고 있다’(ἔχω)는 현재형으로서, 가지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권한’이란 단어(ἐξουσίαν)는 ‘행동할 능력, 권한’(power to act, authority)을 가리킵니다.
1.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를 세 번이나 선언했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앞에서 신적인 두려움을 느꼈지만, 자기가 세상적 재판장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앞에서 눈물로 죄인임을 회개해야 할 죄인 빌라도고 세상 권력으로 예수님의 생사를 주관하는 재판장이라고 허세를 부리고 있습니다.
2. 이것을 볼 때, 로마의 백부장이 예수님을 집안에 모실 수도 없다고 말한 겸손은 훌륭한 믿음이었고(마 8:8, 눅 7:6),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꼬꾸라져서 철저히 회개한 모습과 대조가 됩니다.
다윗 같은 사람도 왕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겸손했고(대상 17:16), 하나님의 선지자 앞에서 즉각 회개도 했습니다. (삼하 12:13)
11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만일 그것이 위로부터 주어지지 않았다면, 네가 나를 넘겨줄 권세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를 너에게 넘겨준 그 사람은 더욱 큰 죄를 지었다”고 하셨다. (Jesus answered, "You would have no authority over Me, unless it had been given you from above; for this reason he who delivered Me to you has the greater sin.")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ἀπεκρίθη αὐτῷ Ἰησοῦς
was answered him Jesus
직역하면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는 뜻입니다.
‘대답하시되’(ἀπεκρίθη)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as answered) 확실하게 대답하시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Οὐκ εἶχες ἐξουσίαν κατ' ἐμοῦ οὐδεμίαν
not you were having authority also Me against
‘없었으리니’에서 동사(εἶχες)는 미완료과거로서(you were having) 계속 가지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εἰ μὴ ἦν δεδομένον σοι ἄνωθεν·
if not it were being having given to you from above
직역하자면 ‘만일 그것이 위로부터 너에게 주어지지 않았다면’(if not it had been given you from above)입니다.
‘주어지지’란 두 단어(ἦν δεδομένον)로 되어 있는데 앞의 동사는 미완료과거로서(it were being) 계속된 상태를 가리키고, 뒤의 동사는 완료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given) 이미 주어진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διὰ τοῦτο ὁ παραδούς μέ σοι μείζονα ἁμαρτίαν ἔχει.
Because of this the one having delivered up Me to you greater sin has
직역하자면, ‘나를 너에게 넘겨준 자는 더 큰 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입니다.
‘넘겨준’이란 단어(παραδού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delivered up) 단호하게 넘겨준 것을 가리키고, 원형(παραδίδωμι)은 ‘곁으로’란 접두어(παρά)와 ‘주다’란 동사(δίδωμι)의 합성어로서 ‘넘겨주다’(hand over, deliver over)란 뜻입니다.
‘가지고 있다’(ἔχει)는 현재형으로서(has) 현재 가지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1.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자신이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만왕의 왕 앞에서 일개 총독이 무식한 교만을 부렸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이야 말로,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계시며, 영원한 생사여탈권도 가지고 계시는 분입니다.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참으로 무식한 사람이 용감합니다.
그러나, 진리를 아는 사람은 예수님 앞에 겸손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이란 말을 들으면서도, 무서운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2.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을 빌라도에게 넘겨준 대제사장의 죄가 더 크다고 말씀했습니다.
즉, 이방인인 빌라도는 하나님도 성경도 모르므로 예수님을 잘 믿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성경을 알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도록 요청했으니, 그 죄가 더욱 크다는 것입니다.
모르고 죄를 지은 사람 보다, 알고 죄 지은 사람의 벌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눅 12:47-48)
3. 이런 악독한 빌라도와 대제사장들과 유대인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 자신들의 모습입니다.
아담 이후로 죄 많은 인간들의 모습을 언제나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혹시 고의적인 죄를 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몰라서 죄를 짓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무시하고 귀신을 섬기거나, 무당 점쟁이에게 찾아다니지 않습니까?
혹은 술 먹고 방탕하며, 도적질하고, 살인하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안 믿는 사람은 몰라서 그런다고 하지만, 이미 믿는 성도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범죄하지는 않습니까?
죄를 짓는 자는 죄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아무쪼록, 고의적인 범죄를 범하지 마시고, 알지 못하고 지은 죄가 있으면, 빨리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참된 자유를 누리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194장>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려, 주 예수 십자가 지셨으니
기쁘게 부르세 할렐루야, 나 구원 얻었네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님 나를 구하셨네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가 구원 하셨네
12-16절. 유대교인들이 하늘나라 왕이신 예수님을 버리고, 세상 나라 왕인 로마 황제를 선택한 장면입니다.
12절.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이런 결과로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노력들을 했지만, 유대인들이 소리쳐 말하기를 “만일 당신이 이 사람을 놓으면, 당신은 가이사의 친구가 아닙니다; 자신을 왕이라고 하는 사람은 모두 가이가를 대적하는 것입니다”고 했다. (As a result of this Pilate made efforts to release Him, but the Jews cried out saying, "If you release this Man, you are no friend of Caesar; everyone who makes himself out to be a king opposes Caesar.")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ἐκ τούτου ὁ Πειλᾶτος ἐζήτει ἀπολῦσαι αὐτόν·
from this the Pilate was seeking to release Him
직역하자면 ‘이로부터 빌라도가 그를 놓아주려고 힘쓰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놓아주려고’(ἀπολῦσ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으로(to release) 단호하게 놓아주려는 것을 가리킵니다.
‘힘썼으나’란 단어(ἐζήτει)는 미완료 과거로서(was seeking) 계속 힘쓰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ζητέω)는 ‘구하다, 찾다, 요구하다’(seek, search for, desire, require, demand)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οἱ δὲ Ἰουδαῖοι ἐκραύγασαν, λέγοντες
the but the Jews cried out, saying
직역하면 ‘그러나 유대인들이 소리질러 말하기를’이란 뜻입니다.
‘소리질러’란 단어(ἐκραύγασαν)는 부정과거형으로서(ἐκραύγασαν) 큰 소리고 소리 지르는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κραυγάζω)은 ‘소리지르다, 큰 소리 지르다, 소리치다’(to cry out, cry aloud, shout)는 뜻입니다.
‘이르되’(λέγο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saying) 말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Ἐὰν τοῦτον ἀπολύσῃς, οὐκ εἶ φίλος τοῦ Καίσαρος·
if this man you shall release, not you are friend of Caesar
직역하면 ‘만일 당신이 이 사람을 놓으면, 당신은 가이사의 친구가 아닙니다’입니다.
‘놓으면’(ἀπολύσῃς) 부정과거 가정법으로서(you shall release) 단호하게 놓아주는 것을 가정한 말입니다.
뒤의 동사(εἶ)는 현재형으로서(you are) 현재 충신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πᾶς ὁ βασιλέα ἑαυτὸν ποιῶν ἀντιλέγει τῷ Καίσαρι.
everyone the king himself making speaks against the Caesar
직역하자면 ‘자기를 왕으로 만드는 모든 사람은 가이사를 대항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라는 뜻입니다.
‘만드는’(ποιῶν)은 현재분사로서(making) 현재 만들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반역하는 것이니이다’란 단어(ἀντιλέγει)는 현재직설법 동사로서(speaks against) ‘대항하여 말하고 있다’는 뜻으로서, ‘대항하여’란 접두어(ἀντι)와 ‘말하다’란 동사(λέγει)의 합성어입니다.
1.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를 알고 있었고, 신적인 권위를 느꼈고, 아내가 의인 예수님을 간섭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마 27:19), 예수님을 석방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2. 그러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석방하면, 가이사에게 반역한 죄가 된다고 협박하자, 마침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내어주었습니다.
당시 로마의 황제인 가이사는 디베료(Tiberius: 14-37년 재위)였습니다.
실제도 당시에 유대인들은 아켈라오가 횡포를 행하자, 로마 당국에 사람을 보내서 아켈라오 왕을 폐위시켰습니다(AD 6년).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19장 14절에서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가이사의 충신’(φίλος τοῦ Καίσαρος)이란 직역하면 ‘가이사의 친구’(friend of Caesar)라는 뜻인데, 당시에 로마제국에서 각 지방을 다스리는 총독들에게 주는 명예로운 칭호였습니다.
13절.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 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러므로 빌라도가 이 말들을 들었을 때, 그가 예수를 밖으로 데리고 가서, 히브리어로 가바다라고 하는 돌 포장한 장소에서 재판자리에 앉았다. (Therefore when Pilate heard these words, he brought Jesus out, and sat down on the judgment seat at a place called The Pavement, but in Hebrew, Gabbatha.)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Ὁ οὖν Πειλᾶτος ἀκούσας τῶν λόγων τούτων
the Therefore Pilate having heard the words these
직역하자면 ‘그러므로 빌라도가 이 말들을 듣고’란 뜻입니다.
‘듣고’란 단어(ἀκούσα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heard) 확실히 들은 것을 각리키고, 원형(ἀκούω)은 ‘듣다, 귀를 기울이다, 듣고 이해하다’(hear, listen, comprehend by hearing)는 뜻입니다.
예수를 끌고 나가서
ἤγαγεν ἔξω τὸν Ἰησοῦν,
he brought out the Jesus
‘끌고 나가서’란 말(ἤγαγεν ἔξω)은 ‘밖으로’(ἔξω)와 ‘데리고 가서’(ἤγαγεν)란 두 단어로 되어 있고, ‘데리고 가다’란 단어(ἤγαγεν)는 부정과거 동사로서(brought) 단호하게 끌고 간 것을 가리키며, 원형( ἄγω)은 ‘인도하다, 데리고 가다, 끌고 가다’(to lead, bring, carry)는 뜻입니다.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καὶ ἐκάθισεν ἐπὶ βήματος
and sat down on the judgment seat
‘앉아 있더라’란 단어(ἐκάθισεν)는 부정과거형 동사로서(sat down) ‘앉았더라’로 번역해야 하고, 확실히 앉아있는 모습을 가리키며, 원형(καθίζω)은 ‘앉히다, 앉아있다’( make to sit down, to sit down)는 뜻입니다.
돌을 깐 뜰 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εἰς τόπον λεγόμενον Λιθόστρωτον, Ἑβραϊστὶ δὲ Γαββαθα.
at place being called Stone Pavement in Hebrew now Gabbatha
직역하면 ‘박석 깐 땅으로 불리는, 히브리어로 이제 가바다란 장소에 있는’ (재판석에 앉았더라)는 뜻입니다.
‘불리는’(λεγόμενον)은 현재 분사 수동태로서(being called) 현재 불리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1. 빌라도는 유대인의 협박(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다)을 받고, 예수님에게 사형 언도를 내리기로 결심하고, 총독이 거주하는 관정에 들어와서 재판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최후로 사형 언도를 내립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유대인들에게 내주면서 사형을 시키도록 최후 판결을 했습니다.
2. ‘박석깐 뜰’이란 로마시대에 피포장된 땅에 돌로 포장한 것을 가리킵니다.
당시 로마인들의 도로 포장 기술은 오늘날까지도 유명해서 그 포장도로가 무너지지 않고 잘 보관된 것들이 있습니다.
비아 돌로로사, 비아 압비아 가도처럼.
14절.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이 날은 유월절 예비일이었다: 때는 제 육시경이었다. 그래서 그가 유대인들에게 말하기를 “보라, 너희 왕이로다!”고 했다. (Now it was the day of preparation for the Passover; it was about the sixth hour. And he said to the Jews, "Behold, your King!")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ἦν δὲ Παρασκευὴ τοῦ πάσχα,
it was being now the day of preparation of the Passover;
직역하면 ‘그것은 이제 유월절 준비일이었다’는 뜻입니다.
동사(ἦν)는 미완룍과거로서(it was being) 계속 종일 준비일인 것을 가리킵니다.
때는 제육시라
ὥρα ἦν ὡς ἕκτη·
hour was being about the sixth
직역하자면, ‘시간은 여섯 시 경이었다’입니다.
동사(ἦν)는 미완료과거로서(was being) 계속 여섯 시가 지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καὶ λέγει τοῖς Ἰουδαίοις
And he says to the Jews
직역하면 ‘그리고 그가 유대인들에게 말하기를’입니다.
‘이르되’‘(λέγει)는 현재형으로서(he says) 말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보라 너희 왕이로다.
Ἴδε, ὁ Βασιλεὺς ὑμῶν.
Behold, the King your
’보라‘(Ἴδε)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behold) 확실하게 보라는 뜻으로서, 주의를 환기시키는 말입니다.
1. ‘유월절 준비일’이란 일주일간 계속되는 유월절의 준비일로서, 오늘날 금요일을 가리킵니다.
2. ‘때는 제 육시라’는 것은 오늘날로 12시를 가리킵니다.
15절.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o they cried out, "Away with Him, away with Him, crucify Him!" Pilate said to them, "Shall I crucify your King?" The chief priests answered, "We have no king but Caesar.“
그들이 소리 지르되
ἐκραύγασαν οὖν
they cried out therefore
직역하면 ‘그러므로 그들이 소리질렀다’는 뜻입니다.
‘소리 지르되’(ἐκραύγασαν)는 부정과거로서(cried out) 큰 소리를 지른 모습을 가리킵니다.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κεῖνοι Ἆρον ἆρον,
with Him away away
직역하면 ‘그를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란 뜻입니다.
‘없이 하소서’(Ἆρον)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away) 당장 없애버리라는 뜻입니다.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σταύρωσον αὐτόν.
crucify Him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σταύρωσον)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crucify) 당장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뜻입니다.
빌라도가 이르되
λέγει αὐτοῖς ὁ Πειλᾶτος
says to them the Pilate
직역하면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기를’이란 뜻입니다.
‘이르되’(λέγει)는 현재형으로서(says) 말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Τὸν Βασιλέα ὑμῶν σταυρώσω;
the king of you shall I crucify?
‘십자가에 못 박으랴’(σταυρώσω)는 부정과거 가정법으로서(shall I crucify) 단호하게 못 박는 것을 가정한 말입니다.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ἀπεκρίθησαν οἱ ἀρχιερεῖς
was answered the chief priests
‘대답하되’(ἀπεκρίθησαν)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as answered) 단호하게 대답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Οὐκ ἔχομεν βασιλέα, εἰ μὴ Καίσαρα.
not we have king, if not Caesar
직역하면 ‘가이사가 아니면 우리는 왕을 갖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가지고’(ἔχομεν)는 현재형으로서(we have) 현재 가지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1. 빌라도는 아내의 충고대로 예수님을 놓으려고 애를 썼으나, 유대교인들의 정치적 협박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유대교인들은 자기들의 왕은 가이사 밖에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는 데베리우스((Tiberius, 14-37년 통치) 였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빌라도 총독이 자칭 왕이라고 하는 예수를 놓아주면, 가이사에게 반역하는 사람이 된다고 협박했습니다.
당시에 유대교 지도자들은 헤롯 아켈라오를 로마 황제에게 고발하여, 헤롯 아켈라오의 목이 달아나게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총독 빌라도는 유대교인의 정치적 협박에 겁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정치 지도자가 죄 없는 예수님을 죽게 만든 것은 큰 문제였습니다.
군사 정권 때, 아무개란 사람도 죄 없는 광주 시민을 무차별 죽인 것은 얼마나 큰 죄인지 모릅니다.
아무튼, 우리나라에서도 빌라도 같지 않는, 소신 있는 정치 지도자가 나오기를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2.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란 말은 거짓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여호와는 우리의 왕’(יהוָ֥ה אֱלֹהֵיכֶ֖ם)이라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 유대인들은 마귀에게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우리의 왕 여호와’로 거부하고, 마귀 섬기는 로마 황제 디베리우스를 ‘우리의 왕’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아무리 유대 나라와 로마 나라가 원수지간이었더라도, 마귀에게 사로잡혀서 예수님을 대적하는 데는 하나가 되었던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가족들조차도 예수 믿는 데 원수 노릇을 할 수 있다고도 하셨습니다. (마 10:21, 막 13:12).
3. 유대교 지도자들은 원래 로마의 지배에서 해방되는 것을 숙원으로 바랐습니다.
어찌 하든지 메시야가 오셔서, 식민지인 유대나라를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주기만을 학수고대했습니다.
그런데, 유대교 지도자들은 어이없게도, 참된 해방자 예수님을 버리고, 로마의 황제만이 자기들의 유일한 왕이라고 고백하고 말았습니다.
마치 일제시대에 모든 국민들은 나라의 독립과 해방을 소원하는데, 일부 매국노들이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서, 독립운동가를 죽이고 일본 천황을 우리의 유일한 왕이라고 아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얼마나 한심한 일입니까?
16절.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래서 그 후에 그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주었다. (So he then handed Him over to them to be crucified.)
이에 예수를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τότε οὖν παρέδωκεν αὐτὸν αὐτοῖς
then therefore he delivered Him to them
‘넘겨 주니라’란 단어(παρέδωκεν)는 부정과거형 동사로서(he delivered), 단호하게 넘겨준 것을 가리킵니다.
십자가에 못 박도록
ἵνα σταυρωθῇ.
that He might be crucified
직역하면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이란 뜻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이란 단어(σταυρωθῇ)는 부정과거 가정법 수동태 동사로서(He might be crucified) 확실하게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가정한 말입니다.
(이에 그들이 예수를 넘겨 받으니라.)
Παρέλαβον οὖν τὸν Ἰησοῦν.
They took therefore the Jesus
괄호 안에 있는 내용은 한글개역개정에는 없지만, 새번역 성경에는 있습니다.
‘넘겨받다’란 단어(Παρέλαβον)는 부정과거형 동사로서(They took) 확실하게 넘겨받은 것을 가리키고, 원형(παραλαμβάνω)은 ‘넘겨받다’(take from, receive from)란 뜻이고, 접두어 παρά(곁으로)와 동사(λαμβάνω, 잡다, 받다)의 합성어로서 ‘넘겨받다’란 뜻입니다.
1. 드디어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유대인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를 세 번이나 선포했으나, 유대인들의 협박(자신을 왕이라고 주장한 예수님을 놓아주는 것은 가이사를 반역한 것이라고 함)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하고 참되신 왕이시오, 하나님이신데, 유대인들은 그렇게 기다리던 이 ‘영원한 왕이요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배신하고, 십자가에 죽게 한 것입니다.
이 얼마나 잘못된 것입니까?
그러나 마귀에게 사로잡히면 이런 최고 어리석은 짓을 하고만 것입니다.
2. 유대인들은 모세 같은 국가적인(정치적인, 군사적인) 구원자를 기다렸지만, 우리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인류의 구원자(영적인 구원자, 완전한 구원자)이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악독한 재판장 빌라도를 당장 처벌하지 않으셨고, 악한 대제사장들이나 유대교인들을 당장 처벌하지 않으셨고, 잠잠히 그들의 모든 죄와 우리들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대속의 모든 형벌들과 십자가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요 크신 사랑입니까?
<찬송가 143장> 나 십자가 대할때에 그 일이 고마워 내 얼굴 감히 못 들고 눈물 흘리도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3.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세상 어떤 지도자가 우리에게 참다운 해방과 자유를 갖다 주리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해도 참다운 자유와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참다운 자유와 행복을 갖다 주지 못했습니다.
미국이 참다운 자유와 행복을 가져다주지도 못합니다.
남북이 통일 되어도, 참다운 자유와 행복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4. 참다운 자유와 해방은 오직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악한 마귀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죽음과 지옥으로부터 영원한 자유와 해방을 주십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채찍에 맞으시고, 가시관을 쓰시고, 빰을 맞으시고, 십자가 죽음을 당하신 그 은혜를 언제나 잊지 마시고, 어떤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주님 모시고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언제나 승리하시고, 복된 생활 하셔서 주님께 감사 영광 돌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