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인사천막약색(治人事天莫若嗇)
함석헌
사람 다스리고 하늘 섬기는 데는 아끼는 것만한 것이없다
씨알 여러분, 내가 왜 여러분께 달마다 꼭 편지를 써야 합니까? 그렇게 하는 규례가 돼서 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당초에 시작할 때에 그런 생각으로는 아니 했습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해오는 동안 어딘지 그렇게 된듯한 느낌이 있어 이따금 반성해보는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또 아직까지는 이것을 실속 없는 형식이라고 해서 그만두어야 한다는 판단은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이야 한이 없지만, 그것을 다 한다면 재미도 있겠지만, 이제 우리는 재미 같은 것을 바랄 수가 없고 사는 데, 하나의 역사적인 민족으로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아니 될 참말은 뭐냐 하는 것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것이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을 하려면 욕심이 없어지지 않고는 안됩니다. 내 나라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적이라는 저 나라를 위해서도 싸웁니다. 의는 내 나라에만 있는 것 아니고 저 나라에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병법에서 “천시불여지리지리불 여인화”(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라 할 때의 화(和)는 내 나라 국민을 사랑한단 말만이 아니고 저쪽, 적국이라는 저쪽의 국민을 더욱 더 생각하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런 정신을 가진 군대는 정말 테니슨의 말대로 “do and die, 그저 하고 죽는 것”뿐이지, 살아남아서 제 공로를 내세우자는 생각을 티끌만큼도 아니합니다. 군대가 전쟁에서 그런 모양으로 일반 씨알은 날마다의 생활에서 그래야 합니다. 사람이 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이 무엇입니까? ‘나’, 나입니다. 모든 일에 나 하나가 들어가면 다 썩어버립니다. 국민이 썩으면 사치를 합니다. 옷을 지나치게 입고 먹기를 지나치게 하는 것만이 사치 아닙니다. 말에도, 글에도, 생각에도, 권력에도사치가 있습니다. 필요 없이 하는 것은 다 사치입니다. 사치하는 마음은 남을 위하지 않고 나만을 아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한번 그런 마음이 들면 끝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 국민이 이런 어려운 시국을 만나게 된 깊은 의미는 우리에게서 들뜬 기풍을 제해버리라는 데 있습니다. 나는 우리 역사를 고난의 역사라고 합니다. 이 생각을 나는 일제시대에 하기 시작했습니다. 타고 난 재질은 극히 작지만 다행히 일찍부터 좋은 스승들 만나서 공을 위하는 정신을 조금 배웠습니다. 물론 감히 정성되게 지켰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날까지 잊지는 않고 옵니다. 그래서 일제의 압박 밑에 있으면서도 감정적으로 일본을 미워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이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참 힘을 얻을 수 있을까 거기 마음을 써왔습니다. 그러는 가운데서 얻은 것이 ‘고난의 역사’라는 말입니다. 간단하게 말한다면 한 국민이 위대해지는 것은 반드시 그 땅이 넓고 강한 것으로 되는 것 아니다, 우리나라는 타고난 밑천이 그것을 할 수는 없다, 도리어 우리는 남들이 그런 역사관을 가지는 데서 희생된 것이 우리의 처지이므로, 우리는 그것이 죄악이란 것을 가르쳐, 세계에 많은 약소국민으로 하여금 낙심하지 않고 평화적인, 모든 인류가 하나로 살아갈 수 있다는 평화적인 새 문화를 창조하게 하는데 우리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해방 후 세계역사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오늘의 세계 뉴스를 들어보면 곧 알 수 있습니다. 내 해석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경험을 옳게 살려내지 못하고 점점 더 사치한 문화, 더 악질적인 전쟁으로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크게 반성할 것은 우리는 그 그릇된 대국가주의 거기서 필연적으로 오는 대기업주의, 사치부허한 생활에 말려들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군, 관, 민이 다같이 이 점에서는 멀리 앞을 내다보는 눈으로 인류의 눈앞에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것을 우리 사명으로 자각해야 합니다. 높은 산에 올라서 보면 네 집 내 집이 없는 것같이 군, 관, 민이라는 그런 구식적인 관념을 버리고 새 역사 창조의 선봉으로서의 자신을 갖는 자리에 서도록 하지 않으면 우리 설 땅은 없습니다. 이란, 아프가니스탄에서 되는 일을 남의 일로 알아서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옛날 두목 (杜枚之)란 사람의 아방궁부(阿房宮賦)라는 글이 있습니다. 명문이라고 이름이 높습니다. 내용인즉 진시황이 무력으로 천하를 통일하고, 그것이 옳은 이치로 된 것이 아니고 강제로 억지로 된 것이므로 그것을 위압으로 천하 민중의 기운을 죽임으로써 하려고 만리장성을 쌓고 아방궁을 지었는데, 몇 날이 못가고 망했다, 그 원인이 뭐냐? 스스로 옳은 일을 하지 않고 악으로 억지로 했기 때문이다, 하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끝에 가서 누구나 책을 덮어놓고는 긴 한숨을 쉬고 깊은 생각에 잠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한 절이 있습니다.
사천하지인(使天下之人) 불감언감노(不敢言敢怒)
천하 사람으로 하여금 감히 말도 못하고 감히 노하지도 못하게 만들어 놓았으니
독부지심(獨夫之心) 일익교고(日益驕固)
외로운 한 지아비(진시황)의 마음이 날이 갈수록 교만하고 완고하게 되었고나
술졸규(戌卒叫) 함곡거(函谷擧)
(그렇지만 그것이 도리어 천하인심을 불러일으키게 되어) 이곳 저곳서 반군이 일어나 아우성을 치게 되니, 어떤 군대를 가지고도 깨칠 수 없다던 함곡관이 그만 맥없이 빠지고 말았고
초인일거(楚人一炬) 가련초토(可憐焦土)
(초나라 사람이 본래 정신이 강해서, 초나라가 설혹 다 망하고 세 집 밖에 아니 남게 된다 하여도, 진나라를 멸망시킬 것은 반드시 우리 초나라 사람일 거다〔楚雖三戶 亡秦者必楚〕라는 말이 있었더니.) 초나라 사람이 한번 혁명의 횃불을 들자 삼백리 사방에 꽉 찼다던 그 화려했던 아방궁이 그만 쓸쓸한 잿더미가 되고 말았고나!
오호(鳴呼) 멸육국자(滅六國者) 육국야(六國也) 비진야(非秦也) 족진자진야(族秦者秦也) 비천하야(非天下也)
아아 슬프도다. 여섯 나라 망케 한 것은 여섯 나라 제 자신이지 진나라가 아니요, 진나라 씨도 없이 만든 것이 진나라 제 자신이지 천하가 아니로다.
차부(嗟夫) 사육국각애기인(使六國各愛其人) 즉족이거진(則足以拒秦)
아아, 여섯 나라가 만일 그 씨알을 사랑했다면 넉넉히 진나라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요,
진복애육국지인(秦復愛六國之人) 즉체삼세(則遞三世) 가지만세 이위군(可至萬世 而爲君) 수득이족멸야(誰得而族滅也)
또 진나라가 만일 여섯 나라 씨알을 사랑했다면 삼세(三世)만 아니라 만세에 이르기까지라도 임금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니 누가 감히 그것을 씨도 없이 멸해 버릴 수 있었을까?
진인불하자애이후인애지(泰人不睱自哀而後人哀之) 후인애지이불감지(後人哀之而不鑑之) 역사후인 이복애후인야(亦使後人 而復哀後人也)
진나라 망했으니 스스로 제 신세를 슬퍼할 수 조차 없었고, 그 훗사람들이 그것을 슬퍼했다. 그러나 훗사람도 만일 슬퍼만 하고 그것을 거울삼을 줄을 모른다면 또 훗사람으로 하여금 그 훗사람을 슬퍼하게 할 것이다.
요점을 말한다면, 씨알 하나에 있습니다. 씨알 사랑하면 나라 될 것이고 씨알 사랑 아니 하면 진시황만 아니라 그 누구도 다 오래 갈 수가 없고 훗사람이 불쌍히 여길 뿐일 것입니다.
춘추전국 시대에 나서 중국천지의 참혹한 꼴을 보고 노자는 치인사천막약색 (治人事天莫若嗇),사람 다스리고 하늘 섬기는 데는 그저 아끼는 것만 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정치과열이란 말이 요새 유행했습니다만, 그때도 정치과열한 것입니다. 그러면 국민이 들뜨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오늘의 걱정은 들뜬 데 있습니다. 들떠도 실속도 없이 들뜬 것입니다. 미국같이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사회의 틀이 잡힌 나라도 들뜨면 안 되는데(히피는 그 반동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남의 빚으로 겨우 일어서려는 나라인데 당장 돈이 있다고 제 돈이나 되는 양, 제 기계, 제 기술이나 되는 양 들뜨면 될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디서 주로 시작됐느냐 하면 정치에서입니다. 우리의 최근 역사를 생각한다면 정치에 과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뒤늦게 일어서는 우리일수록 들떠서는 안 됩니다. 그 원인을 또 찾는다면 깊은 철학(혹은 신앙심이라 해도 좋습니다) 없는 것이 그 원인입니다.
그렇지만 모든 문제는 씨알에게로 몰립니다. 결국은 모든 것이 땅바닥에 내려오고야 말기 때문입니다.
씨알의 소리 1980. 7 95호
저작집; 9- 325
전집; 8- 4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