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쏘기 / 김석수
활쏘기 배운 지 보름 정도 지났다. 몇 해 전부터 고등학교 동창 o 이 모임에서 한번 해보라고 권했다. 그 설명이 장황하다. 활을 쏘고 나면 잠을 잘 잔다. 밥도 많이 먹는다. 집중력이 높아지고 어깨 근력이 생긴다. 자세가 반듯하고 허리가 꼿꼿하다. 배우는 데 비용이 적게 든다. 나이가 들어 할 수 있는 좋은 운동이다. 만날 때마다 내가 활 배우는지 물어본다. 숙면할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서 한번 해볼까 하다가 몇 년이 지나갔다.
아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인간극장’을 가끔 본다. 어느 날 주인공으로 백 살 넘은 노인이 나왔다. 그는 혼자 생활하면서 활쏘기 운동한다. 교직에 있다가 정년퇴직하고 배우기 시작했다. 활시위를 당긴 지 40년 가까이 된다. 매일 활터에 나온다. 아내는 잠자는 중간에 가끔 일어나는 버릇이 있는 내게 활쏘기가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추천했다. 퇴직하기 전에 배워 보려고 활쏘기하는 곳으로 찾아갔다.
군 지역마다 대부분 활터가 있다. 가까운 총무정(總務亭)에 갔다. 기대했던 것보다 궁도협회 가입 절차가 복잡하다. 기존 회원 두 명 추천을 받아 입회 원서를 제출한다. 사두(射頭; 활터를 총괄하는 사람)가 면접하고 임원 회의에서 심사한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내 의향을 말하고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흔쾌히 응해 주었다. 서류 제출 후에 한 달쯤 지나 총무에게서 연락이 왔다. 입회 결정됐으니 활터로 나오면 사범이 가르쳐 줄 것이라고 한다.
사범은 키가 크고 하얀 구레나룻이 덥수룩하다. 그는 활쏘기한 지 팔 년째다. 궁도 지도자 자격을 작년에 받았다. 복장 규칙, 궁대(활를 담는 자루)를 허리에 매는 법, 활터 이용 방법 등 예절부터 알려 주었다. 집궁 원칙을 명심하라고 한다. 첫째, 먼저 지형을 잘 살핀 후 바람 방향과 세기를 봐라(先察地形, 後察風勢). 둘째, 자세는 정(丁)자도 팔(八)자도 아니게 서서 가슴을 비우고 배에 힘을 준다(非丁非八, 胸虛腹實). 셋째, 활을 잡은 손은 태산을 밀 듯이 하고 살을 잡은 손은 호랑이 꼬리를 잡아당기는 것처럼 하라(前推泰山, 後握虎尾). 넷째, 쏘아서 맞지 않으면 자기 자세를 돌이켜 봐라(發而不中, 反求諸己).
그는 내게 41파운드 연습용 활을 주었다. 거울 앞에서 양팔을 벌려 활시위를 턱 뒤까지 당겨보라고 한다. 빈궁 연습이다. 처음에는 힘이 들고 어깨가 아프다. 열흘 정도 하고 나니 익숙하다. 다음은 주살질이다. 오늬와 시위를 잡아매고 쏜다. 이때부터 동진동퇴(同進同退)라 하여 다른 사람이 사대(射臺)에 나가면 같이 나가서 연습하다 끝나면 들어온다. 화살은 한 번에 다섯 발씩 쏜다. 그것은 한 순이라고 부른다. 한 순씩 쏘고 십 분 정도 쉬었다 한다.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나면 사대에 다시 올라간다.
신사(新射; 처음 활쏘기를 배우는 사람)는 빈궁 연습과 주살질 각각 보름씩 한 달간 훈련받고 사대에 올라간다. 나는 빈궁을 열흘 연습했더니 사범이 주살질하라고 38파운드 활을 주었다. 그는 내 자세를 잡아 주며 좋다고 칭찬을 가끔 한다. 활 당기는 힘이 부쳐도 그는 괜찮다고 격려해 준다. 깍지를 엄지에 끼고 주살질하니 손가락이 아프다. 그는 내가 힘들어 할 것 같아 빈궁 연습할 때보다 약한 활을 주었다. 익숙해지면 다시 더 센 화살을 잡으라고 한다. 활을 잡는 순간 집궁 원칙을 떠올리며 일정한 과정 즉, 일종의 ‘루틴’을 만들어서 연습하라고 충고한다.
궁대에서 화살을 빼서 아래 마디를 왼손 엄지와 검지 사이 넣는다. 오른손 검지와 중지로 살 깃간 마디를 담배 개비를 잡듯이 잡고 밀어서 활 절피에 끼운다. 과녁을 보고 비정비팔(非丁非八)로 왼발은 똑바로 오른발은 비스듬하게 선다. 풍향을 살피고 활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다. 왼손은 태산을 밀듯이 버티고 오른손은 호랑이 꼬리를 잡아당기듯이 한다. 이때 활시위를 한껏 당겨 화살이 턱밑으로 내려와 귀밑까지 가야 한다. 숨을 깊게 마시고 가슴을 비운다. 화살촉을 과녁에 정조준하여 화살을 놓는다. 왼손이 움직이거나 오른손이 떨려서는 안 된다. 활을 쏘고 나서 손을 내리지 않고 화살이 어디로 날아가는지 지켜본다. 그 과정이 어렵고 힘들다. 활과 내가 한몸이 되고 집중해야 한다.
주말에 활터에 나갔더니 사범이 내게 사대(射臺)에 올라가서 쏘아 보라고 44파운드 활을 주었다. 나는 더 연습이 필요하다고 주저했다. 그는 괜찮다고 한번 해보라고 내 용기를 북돋았다. 다른 사람과 함께 처음 사대에 올라 활을 겨누니 긴장이 되었다. 처음 다섯 발은 과녁에서 빗나갔다. 두 번째 순에서 세 발이 맞았다. 신사가 처음 한 발만 맞혀도 일 중례를 한다. 세 발 맞히면 삼 중례를 하고 다섯 발 모두 맞히면 ‘몰기’라해서 신사 대회를 한다. 나는 단번에 세 발을 맞혀서 삼 중례만 했다.
통닭 두 마리와 맥주, 음료수를 시켰다. 모처럼 정에 온화하고 화목한 분위기가 넘쳐흐른다. 대부분 처음 사대에 올라 그렇게 맞추는 사람이 없다며 칭찬이 자자하다. 사범은 내가 잘한다고 좋아한다. 내가 활쏘기 재주가 있다며 열심히 해서 선수로 활약하라고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얼떨결에 세 발이 맞았다. 나는 칭찬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내가 두려워할 때마다 괜찮다고 격려해 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첫댓글 제가 아는 언니도 활쏘기가 좋은 운동이라며 권유하는 말을 했습니다.
골프를 쳐서 필드에 나가면 "머리 올렸다"고 축하해 주더니 활쏘기에도 그런 의식이 있나 봅니다.
온화하고 화목한 분위기라니 앞으로 계속 다녀도 좋을 듯 싶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우와! 전혀 모르는 분야네요. 옛날에 태어나셨다면 이름난 장수가 되셨겠네요.
활을 배우는 과정을 참 자세히 잘 쓰셨네요. 읽으면서 제가 왼손은 활을 잡고 태산을 미는 것처럼 힘이 들어가고 오른손으로는 호랑이 꼬리 잡아당기듯이 조심스럽게 화살을 당기는 것처럼 긴장이 됩니다. 활쏘기 매력적인데요.
이제는 활쏘기까지 접수하셨네요.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읽어 주어서 모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