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서 함양과 우표 문화의 창달은
우표전시회로부터
김경은 경향신문 기획위원
‘수집(蒐集)’은 꽤 오래된 여가 활용 방법이다. 옛날에는 귀족이나 부자의 전유물이었다. 수집이 대중화된 계기는 180여 년 전 우표 탄생이다. 우표는 원거리 소통의 제도적 수단이었다. 이 우편 제도가 정착되면서 누구나 우표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다량 발매와 유통의 매개라는 우표의 속성도 대중화를 도왔다. 대중화가 우표를 수집 문화의 황제란 위상을 부여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은 “우표 수집은 왕의 취미이자 취미의 왕”이라면서 “우표에서 얻은 지식이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많다”고 말했다. 우표 수집하면 그 역사적·문화적·예술적 식견과 감각을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 우표는 각 나라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자연이 숨 쉬고 있는 예술품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 예술품을 모아둔 우표첩을 ‘지식과 상식의 보석함’이라고 일컫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통신이 우편을 압도하기 전에는 떨어져 사는 가족과 친지를 편지로 만났다. 우표와 편지로 만나는 세상이었다. 멀리 있으면 더 간절하게, 가까이 있으면 더 유별하게 편지를 기다렸다. 편지가 마음을 담는 것이라면 우표는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전해진 마음이 쌓이면 그것이 우표 수집이 됐다. 너도나도 우표를 모았다. 취미의 대명사는 우표 수집이었다.
우표 수집이 가장 활발할 때는 IT 산업 태동기였다. 우정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우편 물량은 2002년 55억 4,000만 통이었다. 국민 1인당으로 계산하면 98.8통이었다. 이때가 최정점이다. 스마트폰 출현은 세상을 바꿨다. 편지는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편지가 사라져갔다. 2018년 국민 1인당 평균 69.6통(총 물량 37억 통)의 우편물을 이용했다. 거의 30% 이상 줄어든 것이다. 69.9통, 그것에 모두 우표가 붙은 것은 아니다. 요즘 손편지 쓰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신 대량 발송 우편물은 크게 늘었다. ‘요금별납’ 소인이 찍힌 우편물이다.
우편 사업의 주체인 정부는 ‘우표 살리기’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가족사진을 담은 ‘나만의 우표’도 발행하고 동영상을 첨부해 스마트폰을 이용한 ‘NSP 우표’를 내놓았다. 또 10년 뒤에도 현재 산 가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영원우표’도 발행했다. 향기 나는 우표, 홀로그램을 이용한 우표, 한지로 만든 우표 등 다양한 우표를 선보였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의 사정은 어떨까. 만국우편연합(UPU)의 2008년 자료를 보자. 우편 강국의 금·은·동메달은 스위스(1인당 713통), 미국(667통), 노르웨이(573통)가 차지했다. 등외 주요 국가의 우편량도 만만치 않다. 핀란드는 533통, 룩셈부르크는 483통, 영국은 355통, 프랑스는 290통, 독일 259통이다. 호주는 258통, 일본은 194통이다. 우편 시스템이 발달한 선진국일수록 우편 물량과 우편 이용자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보다 많게는 6배, 적게는 2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 이들 우편 선진국도 세상의 변화를 피해가지는 못한다. 지난 2008년보다 적게는 25%에서 50%까지 우편 물량이 감소했다.
손편지는 우표 수집의 기반이었다. 우편량이 우표 수집의 저변이었다. 기반이 흔들리고 저변이 취약해졌다. 우표는 우표수집가의 전유물로 전락했다. 아니 그들도 왜소해지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 우표 수집하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0.17%에 지나지 않는다. 2005년에 16만 1,000명이던 우표 수집 인구가 10년여 만에 절반으로 줄었다. 2015년 8만 8,959명이다. 2018년은 조금 늘어 9만 3,921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취미 우표 통신판매 이용자 수와 전국 우취 단체 회원 수를 합산한 추정치다. 우표 수집 인구가 줄면서 기념우표 판매도 줄었다. 2006년 6,000만 여장이던 판매량이 2012년 3,000만 여장으로 반 토막 났다. 지금도 2012년 수준에서 반전하지 못하고 있다.
우표의 위기가 우표 취미의 퇴조를 부르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라제안 한국우취연합 회장은 “우리나라는 한때 우취 강국으로 주변의 부러움을 샀다”면서 “우표 사용 감소와 우취인 고령화 등으로 인해 우표전시회 출품 작품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의 위상을 잃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우취 문화의 활성화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필자는 경향신문 기획위원이다. 31년차 기자로서, 그리고 4년째 <우정이야기>(주간경향)라는 칼럼을 쓰는 우정인으로서 제안한다.
지속적인 편지쓰기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편지쓰기 대회 등 일회성 행사에 그쳐서는 안 된다. 편지쓰기는 최고의 글쓰기 공부임을 세상에 알릴 필요가 있다. 필자는 가끔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냐’는 질문을 받는다. ‘편지를 쓰라’고 대답한다. 쉽게 쓴 글이 좋은 글이다. 대화하듯이 쓰면 쉽게 쓸 수 있다. 편지는 기본적으로 대화를 전제로 쓰기 때문이다.
편지는 경험으로 쓰는 글이다. 지식정보화 시대에서 경험 정보와 가치가 지식보다 더 중요해지고 있다. 경험은 정보화 시대에 콘텐츠가 된다. 하버드대의 교육 목표는 설득력 있는 인재 키우기다. 그 목표 실현을 위해 글쓰기 그중에서 편지쓰기를 강조한다. 편지쓰기는 자연스럽게 우표 취미의 저변을 확대할 것이다.
두 번째 제안은 교육이다. 우표 수집의 묘미와 매력에 대한 교육이 그것이다. 우리 조상은 수집을 예술 활동의 마지막 경지로 여겼다. 조선 정조 때 학자 유한준은 “알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참으로 감상하게 되며, 감상하다 보면 수집(收集)하게 되니, 수집은 그냥 쌓아두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우표 수집은 단순한 오락거리나 여가 활용법이 아니라는 얘기다. 단지 우표를 모으는 게 아니라 체험을 모으는 것이고 지식을 채집하는 것이다. 세계의 어떤 수집도 우표만큼 채집의 즐거움을 주는 게 없다. 박물관을 만들 수 있는 취미는 우표 수집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셋째로 우표전시회의 활성화 모색을 제안한다. 전시회는 우표 문화의 결정체다. 전시회에서 우표 가치가 드러난다. 우표 취미의 저변을 확대할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국민이 손쉽게 우표 문화를 향유, 체감할 기회가 된다. 하지만 우표전시회의 기회나 규모도 축소되는 추세다. 예를 들면 오는 11월 15일부터 18일까지 나흘 동안 열리는 ‘2019 대한민국 우표전시회’의 주최를 한국우취연합에서 한다. 1954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열린 ‘대한민국 우표전시회’는 정부 주관 행사였다. 우정사업본부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주관을 포기했다. 한국우취연합에서는 “지난해 1/10 정도의 예산으로 행사를 치러야 한다”면서 “소규모 행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년의 대한민국우표전시회 예산은 3~4억 원이었다. 한국우취연합은 “행사장도 중앙우체국 강당을 빌릴 예정”이라면서 “참관객들도 줄어드는 것은 자명하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