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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패
이 홍사
퇴근하면서 보니 앞 골목의 돼지국밥집이 개업한 모양이다.
인도에 만국기가 휘말리고 부자가 되라고 리본에 쓰인 난 화분 대여섯 개가 입구에 줄을 지어 있었다. 요즘에 들어서 유행하는 말이, 돈을 세다가 잠드소서, 이런 문구다. 화분을 찬찬히 살피니 그런 문구도 어김없이 있었다. 이제는 너무 흔한 말이 되어 오히려 질이 떨어진다.
팔도순대.
팔도의 맛이 다 모였는가? 한동안 비어있던 점포인데 며칠간 점포 수리를 하는가 싶더니 오늘 보니 돼지국밥집으로 개업을 했다.
이 시점에 개업을 강행해?
경기가 최악이라고 했는데 이 시국에 개업을 강행하다니 참으로 간이 크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긴, 시설비가 많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오직 맛으로 승부를 거는 서민음식점이니 그럴 수도 있겠군. 하고 고개를 주억였다.
오늘 저녁은 이 집에서 때우면 되겠군.
오늘 개업했으니 시루떡 조각은 덤으로 얻어먹을 수가 있을 것이다.
집에 오니 현관문이 활짝 열려있고 거실문도 열려있었다. 계절은 봄을 잉태하고 있었다. 봄이라, 자연과 소통의 계절이 오는가? 날씨가 풀리니 문을 열어두는 게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달마야 집에 있나?
현관을 들어서며 내 왔노라고 소리쳤다. 그런데 반응이 없다.
달마야 어데 갔나?
역시 반응이 없다. 달마가 보이지 않는다. 순대국밥을 먹으러 가야 하는데 달마가 보이지 않는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어딜 간 거지?
달마는 순대국밥을 유독 좋아한다. 같이 가면 언제나 나는 돼지국밥에 양념을 풀어 얼큰하게 해서 그걸 안주로 소주를 한 병 비우고 달마는 순대국밥을 먹는다. 이젠 앞 골목에 돼지국밥집이 생겼으니 멀리 중앙시장까지 갈 필요가 없다. 달마가 순대국밥을 먹는 걸 보면 가슴이 시원하다. 절대 음식을 앞에 놓고 깨작거리는 법이 없다. 지선 스님에게 배운 식사 예절이다. 달마는 부처님의 가피에 힘입어 무럭무럭 잘 자란다.
달마가 집으로 온 지 사 년이 넘었다. 운해사의 지선 스님이 입적하신 지 사 년이 되었다는 말이다. 본디 지선 스님께서 상좌로 삼으려고 보육원에서 네 살배기를 입양했는데 달마를 키우다가 사 년 전에 지선 스님께서 갑자기 입적하시고 절에 비구니스님들이 들어오면서 공중에 붕 뜬, 아니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 동자승을 집으로 데려왔다. 집을 두고 달마는 바람의 둥지라고 했다. 언젠가는 떠날 바람이 자신이라는 걸 아는 눈치였다. 속가의 살림을 아는 것도 수행의 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압도적으로 작용을 했고, 또 동자승인 달마는 다른 큰 절로 보내지는 것을 몹시 두려워했다. 달마는 동자승의 본디 법명이 아니다. 법해라는 지선 스님께서 지어준 법명이 있다. 법해라는 법명이 있지만 나는 달마라고 부르고 달마는 그렇게 부르면 더 좋아한다.
집으로 데려올 적에 달마의 나이가 열두 살이었다.
네 살배기를 지선 스님께서 입양했으니 스님과는 팔 년을 산 셈이다. 달마는 지선 스님과 인연이 겨우 팔 년이지만 나는 지선 스님과의 인연이 삼십 년이 훌쩍 넘는다. 요사채를 지을 적에 목수로 일을 나가서 만나 인연이 되었다. 그 후로 절에 크고 작은 일이 생기면 스님께서는 꼭 나를 불렀다.
만능 처사.
모든 일을 다 한다고 그렇게 불렀는데 스님에 내게 지어준 법명이 있다면 만능 처사다. 스님은 처사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꼭 만능 처사라고, 만능이라는 말을 수식어로 붙였다. 목수부터 미장, 심지어 화장실 배관까지 절에서 내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좋은 인연이었다. 그렇게 참 좋은 인연을 쌓았지만, 달마에게는 밀린다. 스님이 입적하시고 다비식에서 달마가, 스님 불 들어갑니다. 울먹이며 외쳤다. 말하자면 달마는 스님의 상좌 역할을 다한 셈이다.
달마가 집으로 온 지 사 년!
아내가 없는 빈자리를 달마가 메워주었다.
달마가 아니었으면 아내의 빈자리가 공허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 달마에게 참 많은 것을 배웠다. 달마는 집이 바람의 둥지라고 생각한다. 잠시 머물다가 갈 곳이라고 생각하지만 있는 동안은 지극정성으로 가르쳐서 보내야 한다. 달마가 이제 열여섯이 되었다. 달마의 몸은 승복 안에서도 생체리듬에 따라 자랐다. 몽정기를 거치고 어엿한 청년이 되었다.
달마는 승가대학으로 진학하여 학승이 되는 게 지금의 목적이다.
무릇 배움은 도처에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달마가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이 승가대학이다.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승가대학을 갈 준비는 다 되어 있다. 네 살 때 운해사로 들어가 동자승이 되면서 지선 스님에게 한글을 깨우쳤고 제 말마따나 바람의 둥지로 내려와 고입 검정고시를 치렀고 비록 학원은 다녔지만, 또 일 년 만에 대입 검정고시를 가뿐하게 통과했다. 이제는 바람의 둥지에서 떠날 날이 다 되어 간다는 얘기다.
달마가 바람의 둥지를 떠난다?
달마는 역시 바람인가?
달마는 덤덤하지만 보내고 나면 허전함을 어쩌나?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고 나는 지레 걱정이 앞선다. 달마가 빠져나간 바람의 둥지는 얼마나 썰렁할까? 승가대학에 입학하면 기숙사에 해당하는 수행관으로 들어간단다. 거기서 다른 스님들과 생활하다가 졸업하면 다른 큰 절로 가겠지. 달마는 언제나 말한다. 큰스님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지선 스님은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 저 녀석은 전생에 중이었고 현생에 와서도 중이 될 팔자라고. 이왕에 중이 되는 거 큰스님이 되면 좋지만, 수행의 길이 쉬운 게 아니다.
이 시대에는 절에서 동자승을 찾아볼 수가 없다. 먹고 살기가 좋아져서 그런 탓도 있지만, 누구도 하나 있는 자식의 머리를 깎아 절로 보내지 않는다. 옛날에는 여러 자식이 있어서 입을 하나 줄이기 위해 머리를 깎아서 절로 보낸 일이 있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살기가 그만큼 좋아졌고 저출산의 원인도 일조했다는 생각이다.
운해사 같은 작은 암자에서 동자승을 찾아보기란 정말 어렵다. 큰절도 사정이 나은 것은 아니리라. 절에서 나오는 달력의 사진을 찍을 때 모델로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히는 게 고작이다. 우리 시대의 동자승은 그저 그림으로만 보는 것인데 운해사에는 동자승이 있었다. 바로 달마였다. 지선 스님이 열반하시기 전에 보육원에서 입양해서 억지로 동자승을 만들었기에 절에 오는 사람마다 달마를 보고 놀라워하며 반기고 머리를 쓰다듬곤 했다. 그 후, 우리 집에서 동자승이 보이니 동네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홀아비가 사는 집에 동자승이 보이니 동네 사람들은 마치 외계인을 보는 눈으로 보았다. 달마는 집에서도 늘 승복을 고집했다. 학원도 승복을 입고 다니고 학원에서 만난 친구들과 게임방에도 승복을 입고 간다. 시선 집중. 달마는 남의 시선을 받는 것이 짜릿한 모양이다. 달마는 속가에 내려와서도 승복을 입고 머리를 빡빡 깎고 생활한다. 지선 스님께서 승복을 벗지 말라고 유언을 했으니 그 말을 철저히 따르고 있는 셈이다.
보내기가 아쉽지만, 이제는 헤어져야 한다.
다음 달에 승가대학으로 달마는 떠난다.
본디 대학을 들어가는 나이보다 두 살이 어리지만, 일찌감치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축하할 일이지만 서운한 마음이 인다.
존재하는 것은 소멸을 전제로, 만남은 헤어짐을 전제로 형성되는 법이다. 누구와 만나더라도 언젠가는 헤어지게 마련이다. 그게 죽음일지라도. 죽음도 아니고 수행을 위해 승가대학을 가는데 기쁜 마음으로 덤덤하게 보내야 한다.
오래 보면 좋지만, 마음 같아서는 평생을 같이 살고 싶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게 어쩌면 인생인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 외손녀가 태어났다. 삼 칠을 넘기고 처음 보는 자리에서 나는 아기에게 말했다. 이렇게 만났으니 오래 보고 헤어지자. 그건 내가 오래 살겠다는 말과 진배없다. 그 외손녀와도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 슬프지만, 그게 인간사의 법칙이다.
그건 그렇고 달마는 어디를 간 걸까?
전화해 볼까?
핸드폰을 꺼내다가 그만두었다.
알아서 들어오겠지.
이제는 간섭할 나이가 아니다. 달마가 자율적으로 움직이도록 내버려 두어야 할 일이다. 요즘은 달마가 게임방에 자주 다니는 눈치다. 승가대학에 합격통지를 받고부터 학원에서 만난 친구들과 게임방을 들락거리는 모양이다. 친구들이라고 해도 두 살 정도가 많은 친구다. 속가에 내려와 그렇게 게임방을 다니는 것도 수행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나무라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겐 오락이 되지만 달마에겐 수행이 될 수도 있다.
내일은 아내의 제삿날이다.
도목수에게 하루를 쉬겠다고 하고 들어왔다. 내가 빠지면 손발이 맞지 않지만 어쩔 수가 없다. 작년까지는 아내의 제삿날이 되면 딸이 모든 제수를 장만했지만 이젠 아기가 딸렸으니 그러질 못할 것이다.
내일 아침에 달마를 데리고 재래시장으로 나가 제수를 장만해야 할 것이다. 혼자 다니는 것보다 달마를 데리고 오랜만에 시장 나들이를 한다는 게 즐거운 거지. 홀아비가 죽은 아내의 체사를 모시겠다고 혼자서 어슬렁거리면 그보다 처량한 일이 있을까. 그러고 보니 딸이 결혼해서 살림을 나고 혼자 있어야 할 홀아비 집에 달마는 청량제 구실을 톡톡히 한 셈이다. 심리적으로 의지가 되었던 게 사실이다.
바람의 둥지.
달마가 지은 택호다.
달마는 스스로 자신을 바람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바람이 떠나면 둥지는 얼마나 황폐할까? 이 빈 둥지에 혼자 남아서 생활을 해야 한다? 도목수 말마따나 어디서 참한 과부를 하나 데려올까? 아서라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을 수도 있다.
“어? 대빵! 일찍 들어오셨네.”
발랄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돼지국밥으로 저녁을 해결하겠다는 생각을 지우고 집에서 먹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고 쌀을 씻고 있던 참이었다. 아무래도 돼지국밥집이 개업했는데 승복을 입은 달마가 앉아서 순대국밥을 먹으면 다른 중생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지 못하리라. 돼지국밥집은 다음에 가서 맛을 검증하기로 하고 저녁은 집에서 때우겠다는 생각이었다. 돌아보니 털모자에 두루마기까지 찾아서 걸쳤는데 달마가 훌쩍 커 보였다. 승복에 두루마기를 입었으니 정중하게 예를 갖추고 출타를 했던 모양인데 어디를 갔다가 왔는지 궁금하다. 날씨가 풀리니 누비로 된 두루마기가 아니라 얇은 옷을 찾아서 걸치고 나갔다. 겨우내 입었던 누비옷은 아무래도 세탁소에 맡겨야 할 일이다.
“문을 다 열어놓고 어데 갔다가 왔더노?”
“오늘은 탭댄스 연습하고 왔어요.”
“탭댄스?”
기가 막혔다. 승복을 입고 탭댄스를 추다니. 바라춤을 배우는 게 아니고 탭댄스라. 상상이 쉽게 되지 않는다. 조금 전에 무릇 배움은 도처에 늘려있다고 했었지. 뭐라고 나무랄 수가 없었다.
“탭댄스가 재미있더나?”
달마는 뒷짐을 지고 낭창하게 말했다.
“무쟈게 재미있죠.”
할 말이 궁했다. 신식 승려라 그럴 수도 있겠지. 승가대학에 들어가면 규율이 엄격한데 실컷 놀아라, 는 생각이 앞선다. 그래도 저녁 예불을 올릴 것이다. 달마는 바람의 둥지에 내려와서도 아침 예불과 저녁 예불을 혼자서 올린다. 달마의 방에는 부처님 그림이 새겨진 족자를 걸어두었다. 그 앞에 맑은 물 한 사발을 놓고 예불을 올린다. 그 시간이면 달마가 쓰는 방은 작은 법당이 되는 셈이다. 달마의 방에서 작은 목소리로 불경을 외우고 나는 밖에서 듣는 게 바람의 둥지에 일상이 되었다.
돌아서서 쌀을 씻는데 달마가 뒷짐을 지고 감추었던 검은색 비닐봉지를 불쑥 눈앞으로 내밀었다. 뭔가를 사 온 모양이다.
“이게 뭐야?”
“꿀참외.”
“참외가 벌써 나왔나?”
“내일 제사잖아요? 제수로 쓸려고 사 왔죠.”
“아니, 그걸 기억하고 있었어?”
놀라웠다. 그리고 고마웠다.
봉지를 받아서 식탁에 얹어놓고 안을 살피니 노란 참외가 네 개나 들어 있었다. 윤기가 흐르는 노란 참외는 과즙을 머금고 씹으면 단물이 물컹 나올 것 같아 입에 침이 돌았다. 한 입 깨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참 계절도 없지. 이 시기에 어떻게 참외가 나와?”
혼잣말로 감탄했는데 달마가 들었는지 의외의 대답이 날아왔다.
“지구의 깡패들인데 무슨 짓을 못 하겠어요?”
지구의 깡패?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인가?
“그게 무슨 소리야?”
달마는 인류는 지구의 깡패라고 했다. 계절도 거스르고, 자연의 섭리를 역행하는 깡패 같은 존재가 바로 지구의 인류라고 했다. 도구를 이용해서 먹이사슬 맨 위에 인간이 있지 않은가? 인간이 무슨 권리로 땅의 지번을 만들어 자기 소유라고 우기고 사고팔아? 누가 그런 자격을 주었는데? 순전히 인간 마음대로 한다는 거지. 그리고 동물원을 만들어 갖가지 짐승을 가두어서 구경거리로 만들어? 또 필요한 동물은 사육해서 번식을 돕고 필요 없는 동물은 멸종의 위기로 몰아넣어? 무슨 권리로?
달마가 인간을 지구의 깡패라고 한 요지는 그것이었다.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또 하나를 배웠네! 누구한테 들었나?”
“깨달음이라고 할까, 스스로 생각했어요.”
“그랬구나. 그렇더라도 깡패들은 밥을 먹어야지. 깡패야! 점심 먹은 거 설거지나 해.”
개수대에는 달마가 혼자서 점심을 먹고 처박아 놓은 그릇이 수북했다. 달마는 토를 더 달지 않고 개수대로 돌아섰다. 그리고 팔을 걷었다. 저녁은 냉장고에 있는 두부를 꺼내 김치찌개를 끓였다. 날이 푹해지자 김치가 빨리 시는 모양이다. 더 신맛이 오르기 전에 김치를 빨리 먹어 치워야 한다.
마늘과 고추 다짐을 얼큰하게 푼 김치찌개.
저녁상을 물리고 달마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조금 보다가 예불을 올리러 방으로 들어갔다.
작은 방에서 낮은 목소리로 들려오는 독경을 들으며 나는 텔레비전 볼륨을 낮추고 지구의 깡패에 대해 생각했다.
지구의 깡패.
오늘의 화두다.
지구의 깡패가 인간이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로 위장하여 인간들은 지구의 깡패 노릇을 자행하고 있다. 먹이사슬 맨 위에 호랑이가 있는 게 아니다. 바로 깡패인 인간이다. 달마 말마따나 땅도 지번이라는 걸 만들어 사고팔며 제 욕구를 충족시킨다. 단순히 먹이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제 욕구까지 챙기며 땅을 산 인간은 주인행세를 한다. 무슨 권리로? 누가 지구를 인간의 전유물이라고 했나? 인간은 착각하고 있다. 하도 오래전부터 착각해서 그 뒤틀린 생각이 경화되어 돌이킬 여념조차 없다.
때마침 텔레비전에서는 동물의 왕국이 방영되어 나오고 있다.
사슴 한 마리가 밀림의 늑대에게 쫓기고 있다. 늑대는 사슴의 급소를 노리고 본능적으로 질주한다. 숨이 막히는 순간이다. 아마존의 밀림을 밀착 취재한 것이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다. 브라운관 속에서는 먹이사슬이 질서정연하게 존재하고 있다. 먹이사슬의 단계에서 낮은 동물은 개체가 당연히 많고 번식력이 왕성하다. 저게 자연의 섭리이고 질서인데 인간만 예외다. 인간의 발길이 닿으면 먹이사슬의 질서와 윤리는 파괴된다. 도구를 쓸 줄 아는 인간의 탐욕 때문이다. 언제나 필요 이상을 탐하는 무리, 그 와중에서도 인간은 입으로만 도덕성을 들먹인다.
깡패의 도덕성?
말의 앞뒤가 맞는지 모르겠다만 달마가 지구의 깡패를 운운하는 바람에 깡패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간은 지구의 깡패다. 고로 달마도 깡패다. 나의 정서를 잔뜩 훼손하고 떠나야 할 깡패. 걱정이 앞선다. 저 깡패, 달마가 떠나고 나면 혼자서 잘 견딜 수 있을까? 요즘 들어서 부쩍 그 걱정이 앞선다. 아내가 떠난 건 달마가 자칭 바람의 둥지로 내려오기 전인 칠 년 전이었다. 아내를 보내고 보니 빈집이 아니었다. 딸이 있었다. 딸과 둘이 생활하니 큰 불편을 모르고 지냈다. 그러다가 딸이 시집을 가기 전에 달마가 들어왔다. 달마를 데려오고 나서 일 년 있다가 딸이 시집을 갔다. 딸이 시집을 가면 혼자가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달마가 말동무가 되어주었기에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즐거웠다.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달마가 떠나면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 그게 문제다.
승가대학도 방학이 있나 모르겠다.
일 년에 몇 번을 올 수가 있을까?
딸도 아기가 딸렸으니 오는 횟수가 뜸할 것이다. 아기가 생기기 전에는 가끔 와서 챙기곤 했는데, 나는 세탁기도 돌릴 줄 모른다. 늘 달마가 빨래를 했으니 그것을 배우지 못했다. 이젠 달마에게 배워야 할 시기가 왔다. 달마가 어려서 들어왔지만 이젠 스스로 판단할 나이가 되었다. 사 년이 짧은 세월은 아니다. 나의 사 년은 거기서 거기지만 달마의 사 년은 엄청난 변화의 시기였다. 몸과 마음이 잔뜩 성숙하는 세월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승가대학으로 보내지 않고 내가 죽을 때까지 같이 살고 싶지만 그건 순전히 내 욕심이다. 달마는 공부를 해야 할 시기다. 하찮은 인연으로 큰스님의 앞길을 막을 수는 없다.
언제 껐는지 텔레비전이 꺼졌다.
아마도 동물의 왕국이 끝나고 정치 뉴스가 나오기에 꺼버린 모양이다. 요즘 정치 뉴스는 정서를 훼손한다. 맑은 정신으로 끝까지 시청하기가 힘들다. 안 보는 게 건강상 이롭다. 정말이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이 되었다. 이 시기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이 험한 꼴을 안 보고 떠난 아내가 부럽다.
달마를 보내고 혼자서 어떻게 견딜까 궁리하고 있는데 달마, 아니 깡패가 거실로 나왔다. 저녁 예불을 간단히 올린 모양이다.
“깡패야! 예불 끝났어?”
“마음이 정화가 안 되어요.”
“탭댄스를 추다가 왔으니 마음이 그렇지. 달마가 갈 자리가 따로 있지. 승복을 입고 무슨 탭댄스야?”
“그게 아니라 대빵이 마음을 잔뜩 흐려 놓았어요.”
“내가? 이 중생은 절대로 대승의 마음을 흐린 적이 없는데?”
달마의 말에 농으로 토를 달았다. 그렇게 토를 달면서도 달마가 떠나면 이런 시간에 누구하고 이런 농을 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내가 학교로 들어가면 대빵이 혼자 남아 어떻게 이런 시간을 보낼 수가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일 제사를 모시면서 보살님께 허락을 받아줄게요.”
“무슨 허락?”
“이제 서로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푸근한 반려자를 하나 구해도 좋다는 허락, 듣기 좋지요?”
아직 아이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역시 많이 컸구나. 그런 생각을 다 하고. 역시 지선 스님이 잘 보았다. 달마는 전생에도 중이었다고 했는데 사실인 모양이다. 중이 중으로 환생할 수 있는 확률은 지극히 묽다고 했는데 역시 큰스님이 될 인재다. 지선 스님께서 높은 안목으로 잘 본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을 했지? 달마가 가고 나면 강아지라도 한 마리 사려고 하는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강아지는 절대 안 됩니다.”
달마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왜 그렇게 기겁하느냐고 물었더니, 이별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강아지 수명이 십 년인데 정을 잔뜩 주다가 강아지가 죽으면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받는다는 말이었다. 달마의 말을 들으니 언제 변성기를 거쳤는지 제법 굵직하고 웅숭깊은 사내의 목소리였다. 정말 많이 컸구나. 바람의 둥지로 데려올 때는 분명히 동자승이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이제는 누구도 머리를 마음대로 쓰다듬어 줄 나이는 넘어섰다.
“최 보살이 어때요?”
달마가 느닷없이 최 보살을 들먹였다. 일순 숨이 멎는 기분이 들었다.
“최 보살? 누구? 운해사의 공양주 말이냐?”
그렇다고 했다.
“예쁘죠. 마음씨 곱지요. 음식을 정갈하게 하는 솜씨가 출중하지요.”
보는 눈은 같은 모양이다.
“하하하. 최 보살이 뭐가 답답해서 이렇게 없는 늙은이에게 시집오겠냐?”
달마는 시야가 넓지 못하다. 절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갇혀 자라서 그런지 혼자 사는 여자라고 하면 운해사의 최 보살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운해사에는 공양주 보살이 있다. 최 보살로 불리는 나지막한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를 지닌 여자인데 무슨 연유로 절에 들어가 공양주 보살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마음이 참 여린 여자고 보고 있으면 보는 내가 애가 쓰이는 여자다. 달마는 최 보살이 지어주는 밥을 먹고 자랐다. 모르긴 하지만 달마는 최 보살에게 모성애를 느꼈을 수도 있겠다. 나에게는 부성애를 살짝 느꼈을 수도 있는 문제이고 보니 나에게 여자라고 하면 최 보살이 연상되는 것도 틀린 이치는 아니겠지. 달마는 절 살림을 하는 사람이라고, 최 보살과 나를 묶어서 생각하고 자란 모양이다. 남자의 일은 내가 하고 여자의 일은 최 보살이 했으니 작은 암자에서 보는 시각이 좁아 둘을 묶어서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최 보살은 내가 알기로는 젊은 나이에 무슨 연유로 혼자가 되어 어쩌다가 운해사의 공양주로 들어왔는데 그 기간이 십 년이 훌쩍 넘었다. 말수가 적고 조용한 여자인데 음식 솜씨가 그만이다. 최 보살은 십 년을 넘게 보아왔지만, 꼭 필요한 말 이외는 해보지 않았다. 절에서 일하는 날, 어쩔 수 없이 공양하더라도 앞에서 밥을 먹기가 언제나 조심스러운 여자다.
“내가 최 보살에게 다리를 놓아볼까요?”
“달마야, 최 보살이 뭐가 답답해서 나 같은 인간에게 마음을 주겠냐?”
“대빵은 항상 그게 문제고 흠라니깐요.”
달마는 눈을 흘기며 힐책했다. 순간적으로 그 모습이 보기가 좋았다.
“무슨 문제? 무슨 흠?”
“자기 자신에게 혹독하도록 엄격하다는 것.”
“그래?”
달마는 말했다. 나에게 흠이라면 자기 자신에게 너무 엄격하다는 것이란다. 자기 자신에게 너무 관대하면 그것도 문제가 되지만 너무 엄격하면 피곤하단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자신에게 혹독하도록 엄격했나? 잘 모르겠다.
“내가 자신에게 좀 관대하게 생각하면 최 보살과 어울릴까?”
“소승에게 맡기소서. 소승이 다리를 놓아보리다. 전생에 지은 인연이 있으면 어려운 일이 아닌 일이지요.”
달마는 느닷없이 합장하고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농은 아니다. 달마는 이런 일로 농을 하는 성품이 아니다. 내일 제사를 모시고 나면 조만간 최 보살에게 연락이 갈 것이다. 달마는 어떤 방법으로든 그녀의 의향을 파악할 것이다. 생각하니 가슴이 설레는 일이기도 하다. 이 나이에 여자를 들여? 달마 말마따나 전생에 인연이 있으면 가능한 일이기도 하겠지.
“달마야! 나가자. 아무래도 소주 한잔해야 쓰겄다.”
갑자기 소주 생각이 났다. 그냥 자기는 어쩐지 맨숭맨숭하다.
“요 앞에 돼지국밥집 개업을 했던데 거기로 가죠.”
달마도 들어오면서 보았는지 먼저 선수를 쳤다.
“그러자. 그 집 맛을 검증하자.”
달마가 먼저 일어섰다. 현관을 나서는 달마의 머리통이 불빛에 반짝거렸다. 언제 이렇게 컸지?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면에는 내 마음을 흔들어놓고 떠나는 깡패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깡패? 느닷없이 달마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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