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을 이해하려고 계속 노력할수록 점점 더 길을 잃어가는 것 같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들과는 동떨어져 가는 걸 느낀다. 평화와 순수함은 증오와 공포에 지고 있다. 평화는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이곳에는 연민을 가진 자가 몇 안 된다. 기본적인 부드러움은 무뎌져 거의 없어지고 말았다. 나는 언제나 강하게 느껴지는 사랑의 부재에 압도됐다. 이 땅에 은혜를 아는 이가 몇 남지 않았다. 여기는 그저 잔혹함 뿐이다."
9일 밤 늦게 넷플릭스에 올라온 '사나운 땅의 사람들'(American Primeval)에 단박에 빠져들었다. 위 대사는 3회 중반 기병대의 델린저 대위가 핍진한 하루를 마친 뒤 그즈음의 감상을 일기장에 적어 내려간 것인데 이 드라마를 함축한다.
국내 관객 200만명을 모은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의 작가 중 한 명이었으며 '미드나잇 스카이'(2020)와 '트위스터스'(2024) 각본을 쓴 마크 L 스미스가 집필한 극본의 짜임새가 탄탄하다. 전투 장면을 롱 샷으로 촬영하는 등 전편에 '레버넌트'를 연상케 하는 것들이 즐비하다. '레버넌트'는 1820년대 실제로 있었던 일을 소개한 넌픽션을 스크린에 옮긴 것이었는데 '시퀄'이라 할 수 있는 '사나운 땅의 사람들'은 40년 뒤에 일어날 법한 허구를 아주 그럴 듯한 드라마로 엮어냈다.
때는 1857년, 갖가지 사연을 품고 황량한 서부를 찾아드는 개척민들과 이를 지키려 발버둥치는 원주민들의 가치관, 세계관, 문화와 무력 충돌을 다룬다. 베티 길핀이 세라 할로웨이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남편을 만나겠다며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의 첫 문장을 외우게 한 아들과 함께 역마차를 타고 오며 시작한다. 그러다 아이작(테일러 키취)이란 남자를 만나 도움을 받는데 그는 원주민들에게서 자라나 돌봄을 받는다. 군인들, 개척민들, 다양한 원주민 부족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모르몬교(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지도자 브리검 영(킴 코츠)이 이끄는 무장집단들이 얽히고 설켜 돌아간다. 제이컵 프랫(데인 드한)은 아내를 잃고 황량한 서부를 헤맨다. '새로운 가족'의 탄생과 같은 요즘 트렌드에 맞춘 설정도 눈에 들어온다.
영화 '핸콕'(2008)과 '론 서바이버'(2013), '딥 워터 호라이즌'(2016), '마일 22'(2018), 넷플릭스 6부작 시리즈 '페인 킬러'(2023)의 피터 버그가 연출했는데 박진감 넘치는 솜씨를 뽐낸다.
개척민들에게 쉴 곳과 교역소를 제공하며 한몫 챙기는 짐 브리저(셰이 위검)가 경고한다. 산의 눈과 회색곰, 늑대들이 우글거려 죽음이 앞에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이 때 원주민 여인이 프랫의 아내에게 묻는다. "너희들은 왜 그렇게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거야?" 프랫의 아내가 답한다. "공포?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공포 때문이지."
미국이 법과 제도를 갖춘 국가로 탄생하기 전 어떤 원시와 야만을 경험했는지 돌아보며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시리즈다.
음악은 텍사스 출신의 포스트 록 밴드 '익스플로전스 인 더 스카이(Explosions in the sky)'가 맡았다. 3회쯤인가부터 범상치 않은 사운드트랙이다 싶었는데 4회 엔딩 크레딧에 올라온 밴드 이름을 보며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버그 감독의 전작 '론 서바이버' 음악도 EITS의 손길을 탔다.
Explosions In The Sky - Full Performance (Live on KEXP)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