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3> 달빛아래 진하디 진한 살냄새가... 1.그 여자 돌아오다(3) 어머니가 애원했으나, 아버지는 고개를 내저었다. "험한 꼴 당하기 전에 네 스스로 물러가거라. 네가 정녕 생각이 제대로 박힌 아이였다면, 조선 땅에 다시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니라. 너를 반겨줄 곳이 어디 있다고 부끄러운 얼굴 쳐들고 돌아왔더란 말이더냐? 네 스스로 강에 몸을 던지던지, 목이라도 매야했을 것이니라." 아버지가 돌아앉아 버렸다. 한나절을 마당에 퍼질러 앉아 버티다가 후둘거리는 몸뚱이를 끌고 친정집 대문을 나왔다. 나오는 길에 헛간에서 새끼줄 서너발을 끊어가지고 옥녀 마을 동구 밖을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죽으리라. 내 손으로 목을 매어 죽으리라. 죽어 귀신이 되어 사내놈들한테 원한을 갚으리라. 내 정녕 귀신이 된다면 사내놈들의 불알이란 불알은 모조리 뽑아버리리라. 다시는 여편네와 살풀이도 못하게 할 것이며, 자식새끼도 못 낳게 만들고 말리라. 꼭 그렇게 하리라.' 사내들에 대한, 오랑캐놈들이 쳐들어왔을 때에 연약한 여자 하나 지켜주지 못하고, 제 한 몸 도망가기에 바빴던 사내놈들에 대한 원망으로 옥녀의 가슴에 서릿발이 내려 앉았다. 남녀간의 살섞는 재미도 채 모르면서도 이불 속 송사를 벌일 때에는 온갖 달콤한 말로 귀를 즐겁게 하고, 온 몸이 저릿저릿한 기쁨을 주기도 했던 서방님에 대한 원망이, 그 즐거움, 그 기쁨의 몇 배나 되는 미움으로 가슴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그 여자였다. 제 아낙이 거칠디 거친 오랑캐 놈의 손에 개처럼 끌려가는데도 나몰라라, 제 한 몸 다락에 숨기고 외면했던 서방님에 대한 원한을 가슴에 꽁꽁 간직한 채 그 여자는 목매용 새끼줄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달은 이제 옥녀봉 골짜기를 훌쩍 벗어나 산이며 계곡이며 나무며 풀들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달빛의 애무에 취한 계곡이 꿈틀거리고, 나무들이 부시시 잠을 깨어 아으아으 괴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컹컹컹. 다시 김초시네 누렁이 놈이 생각났다는 듯이 짖어댔다. 오늘 낮에는 질퍽한 살풀이잔치가 없었던 것일까? 그래서 암내 난 암캐가 그리워 부르고 있는 것일까? 놈의 울음에서 진하디 진한 살냄새가 느껴졌다. 우람한 살몽둥이에 침을 흘리던 암캐들이 하루에도 몇 마리씩 따라다니던 누렁이였다. 따지고 보면 누렁이는 옥녀 마을 모든 암캐들의 지아비였다. 놈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암내난 암캐와 흘레를 했다. 그것도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골목을 차지하고 서서 당당하게 흘레를 했다. #가루지기 <4> 아랫도리 허전한 아낙들의 한숨소리
1. 그 여자 돌아오다(4) 사타구니 사이의 살몽둥이가 부실한 사내들의 기를 죽이며, 그 부실한 서방님의 살몽둥이 때문에 밤마다 아랫도리가 허전한 아낙들의 한숨소리를 들으며 하루에도 서너마리씩 암캐를 죽이며 씨를 심어주던 누렁이였다. 옥녀가 시집을 가기 전부터도 누렁이는 옥녀마을 암캐들의 지아비이며 왕이었다. 누렁이 때문에 다른 숫개들은 얼씬을 못했다. 설령 떠돌이 숫개가 마을에 나타나도 암캐들이 눈길 한번 안 주었다. '누렁아, 너는 좋겠구나. 나는 시방 목을 매달아 죽으려고 하는데, 너는 암놈이 그리워 짖고 있구나. 잘 살거라. 널랑은 지어미를 오랑캐 땅에 보내지 말고, 설령 지어미가 오랑캐 땅에 끌려가 몹쓸짓을 당하고 왔다해도 내치지 말고, 잘 살거라.' 혼자 중얼거리다 보니까 옥녀는 눈물이 났다. 토란잎에 맺힌 아침이슬 같은 눈물이 그녀의 뽀얀 두 볼 위로 주루룩 흘러내렸다. 컹컹컹, 끄륵 끄륵 끄륵. 다시 누렁이가 짖었고, 달이 성큼성큼 중천을 향해 걸어왔다. 옥녀가 하늘의 달을 올려다 보다가 목매에 목을 디밀고 그네를 타듯이 두 발을 훌쩍 날렸다. 눈물젖은 달빛이 아슴히 멀어져 가고, 옥녀봉 계곡이 온 몸을 뒤틀며 몸부림을 쳤다. 나무며 풀잎이 퍼르르 퍼르르 떨었다. 옥녀의 귀에서 누렁이의 짖는 소리가 조금씩 조금씩 밀려나고 있을 때였다. 다른 소리 하나가 이제 막 닫히려는 그녀의 귓속을 파고 들어왔다. "어허 이래도 이 놈이 정승판서의 자제로 팔도감사 마다하고 각설이로 나섰소." 각설이였다. 피박을 나왔다가 움막으로 돌아가던 각설이였다. 부자집 안방마님의 환갑잔치에서 물림상이라도 받았던 것일까? 어깨에 멘 걸망이 제법 묵직하게 흔들렸으며 막걸리라도 서너사발 마셨는지, 걸음을 떼어 옮길 때마다 이리비틀 저리비틀 온 몸이 비틀거렸다. "허허, 이것이 뭣이다냐? 소나무 가지에 매달려 흔들리는 이것이 시방 뭣이다냐? 이부자네 머슴님이 가다가 나 묵으라고 매달아 놓은 소다리다냐? 돼지다리다냐? 그것 참, 고이한 일이로고." 각설이 놈이 술이 취해 흐리멍텅한 눈을 가늘게 뜨고 소나무 가지에 매달린 물건을 기웃이 올려다 보았다. "이것은 사람이구나. 치마를 입은 것을 보니, 사람 중에서도 계집이 분명하구나. 허허,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내려주실려면 제대로 숨을 쉬는 계집을 내려주실 것이지, 목을 달아 뻣뻣하게 굳은 계집을 내려주시다니." 다음에 이어서 ~~~ [출처] 최정주의 #가루지기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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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