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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과 사랑의 본 모습
기억절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지난주에는 사랑이 없으면 모든 것, 심지어 영적인 은사도 무가치하다고 배웠습니다.
이번 주에는 고린도전서 13장에 아름답게 묘사된 사랑의 본모습을 더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분열의 이유중 하나였던 사람을 기준으로 하여 당파를 짓는 일에 대해 권면하고
이어서 성도들 개인간 분열의 원인이 되었던 은사의 올바른 사용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가 정말 회복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단 하나의 답을 제시합니다.
바로 사랑하라 입니다.
바울의 가르침중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는데 아무리 탁월한 은사를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으로 행하지 않으면 쓸모없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고전 13:1-3)
예수님께서는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진다고 경고를 하십니다.(마 24:12)
마지막 시대의 가장 큰 위기는 사랑이 식어지는 것입니다.
● 사랑의 본질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사랑은 감정으로 이해되기 쉽습니다.
누군가에 대한 호감이 커지면서 자신보다는 상대를 더 배려하고 말과 표정, 행동이 그 상대를
중심으로 변화되어가는 과정을 사랑으로 이해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또 다른 성서적 사랑에 대한 인식이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 문화를 반영한 성경의 세가지 사랑 즉 필레아, 에로스, 아가페 사랑으로 분류하지요.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좋은 감정과 우의를 필레아사랑,
이성간에 발생하는 정신적 육체적 관계를 에로스사랑
그리고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사실은 인간이 흉내낼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가페사랑으로 표현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실제적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우리에게 제시되었지요.
오늘 교과는 그리스도인과 교회에 필요한 사랑, 즉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인간내부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성령께서 주시는 특별한 은사”라고 말합니다.
이 특별한 사랑의 은사를 받으면 심적변화가 일어나 내 중심으로 살아왔던 내적동기가 타인을 향하게 되는 영적변화가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사랑은 우리의 행동, 감정, 생각을 쏟아붓는 전적인 헌신이라고 바울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을 해야할 일곱 가지와
하지 말아야 할 여덟가지로 설명합니다.
'해야 할 일곱 가지'는 오래 참고, 온유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부가설명>
성경은 불법이 성하므로 사랑이 식는다고 했다.
이 말씀은 사랑은 합법이라는 말이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다.
합법이라고 하면 그것은 삶의 원칙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이 계시한 사랑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면 관념적으로 이해한다.
구체적이지 못하고 추상적이다.
말을 바꾸면 하나님의 형상을 진짜로는 모르는 것이다.
교리로 이해하고 성경이 말씀했으니 받아 믿는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살피면 하나님의 형상은 그분의 자존성(自存性)이다.
이것을 이름이라고 하시며 말씀하신 이름이 ‘여호와’다.
성경의 하나님의 형상은 ‘여호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어떻게 그런가? 그분은 생명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생명성(生命性)이다. 내가 깨달은 것은 이렇다.
자존하신다는 말씀과 생명 자체라는 말은 같은 뜻이다.
그래서 그분에게는 사망이 없다.
성경은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딤전6:16)라고 계시했다.
이 생명은 창조하신 피조물에게 사랑으로 나타난다.
이 사랑은 하나님의 본성이다.
말을 바꾸면 하나님 생명이 나타나는 모습이 사랑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어서 생명을 얻었으면 그는 사랑이 생활화하게 된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요일3:14).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어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들어간 사람은 사랑으로 그것이 증명된다는 말씀이다.
사랑이 생활화하지 않았으면 그는 사망의 존재라고 했다.
그러니까 성경의 사랑은 생명이고 생명 없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려는 정신과 삶이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예수님을 통하여 대신 죽어주기까지 하면서 아담 자손들을 사망에서 영생의 생명으로 옮기신 것으로 증명했다(롬5:8).
우리는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면서 그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말만 한다.
이 정신이 없는 정서적 윤리적 사랑은 도덕적 정서적 사랑인지는 몰라도 유익이 없는 사랑이다(고전13:1~3).
고전 13장은 이 사랑을 계시한 말씀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다(요일4:8).
이런 정신이 없는 믿음은 불법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을 알고 있는지?
● 사랑이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
고린도전서 13장의 핵심은 4-7절입니다. 바울은 사랑의 특징에 초점을 맞추면서 사랑을 의인화하여
성령께서 주신 사랑으로 가득한 사람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바울에게 사랑이란 감정이나 느낌보다는 행동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사랑인가?
1.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힘겨운 상황에서도 인내를 보여 준다는 뜻입니다.
인내는 또한 서로를 용납하는 능력을 강조합니다(엡 4:2).
2. 사랑은 온유합니다.
온유는 친절과 함께 긍휼을 뜻합니다.(시145:9)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해도 사람에 대해 긍휼 즉 영혼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사역에 실패합니다.(사도행적, 318, 319)
3.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슬픔은 함께 나누는 친구가 많지만
누군가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친구는 많지 않다는 말이 있습니다.
함께 기뻐하는 사랑이 없을 때 자신도 불행하고 남도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4. 사랑은 모든 것을 참습니다.
이건 비밀을 말 안 한다는 것의 의미도 있다고 하고
어떤 분은 힘든 것을 버틴다는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많은 성경번역가들이 두 번째 해석을 더 선호한다고 교과는 이야기합니다.
은사보다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으로 어려움 가운데도 버티는 능력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5. 사랑은 모든 것을 믿습니다.
교과를 보시면 모든 것을 믿는 다는 것은 문맥상 서로를
좋은 쪽으로 해석한다든 뜻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매일 나쁜거, 안 좋은 거만 이야기 하지 말고
사랑을 가지고 좋은 쪽으로 해석하는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6. 사랑은 모든 것을 바랍니다.
헬라어로 엘피조인데 엘피조는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나리라는
믿음이나 기대를 뜻한다고 교과는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은사는 많이 가졌어도 두려워하는 마음이 많아서 일을 추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7.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딥니다.
은사를 아무리 가졌어도 어려움 못견디면 크게 쓰임 받지 못하게 됩니다.
<부가설명>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이 말씀에서 ‘열매’라는 말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열매다. 이 열매는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그 생명의 열매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빛의 열매라고(엡5:9) 표현했다.
또 의의 열매라는 표현도 있다(고후9:10, 빌1:11, 약3:18).
열매라는 말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이 열매들은 예수님의 생명,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사람들의 생명의 결과물들이다.
그래서 열매라고 한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진정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을 때 그 생명이 맺는 열매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고 이 생명을 사람들의 빛이다.
그래서 빛의 열매, 의의 열매 성령의 열매는 다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성도들의 열매들이다.
● 사랑이란 어떻게 하지 않는 것인가?
화요일 교과에는 사랑하면 하지 말아야 할 8가지가 나옵니다.
1.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합니다.
2.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3.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4.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
5.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습니다. 사랑이란 타인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다
6. 사랑은 성내지 않습니다.
7.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않습니다.
교과를 보시면 이 말은 남의 잘못을 곱씹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8.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합니다
실수하는 사람, 잘못하는 사람보고 고소해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부가설명>
바울은 로마 13장에서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10)라고 말한다.
소극적인 표현으로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않는 것이다.
악은 도덕적 악행도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다.
가장 핵심을 이웃이 예수님을 믿을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성경이 지적하는 가장 강한 악행이다.
이웃에 있는 불신자에게 불친절하거나, 속상하게 하거나, 손해를 끼치거나 이런 삶의 태도는 이웃이 예수님을 오해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이것은 보기에는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크게 나무랄만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이
이웃이 예수님을 믿는데 방해가 되었다면 이웃에게 악을 행한 것이다.
사람을 죽게 하는 것이 악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막3:4).
영생의 생명의 기를 막는 것 이상으로 악한 것이 없다.
● 예수의 초상화
어떤 신학자는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장이 아니라 예수님의 초상화다."라고 말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예수님이 곧 사랑이시니까요.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천국도 사랑으로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부가설명>
교과 저자가 열거한 내용들은 사랑이 생활로 드러나는 모습이다.
이 모든 모습은 하나님 생명이 작동하는 상태들이다.
그래서 요한은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사망에 머물러 있는 상태라고 분명히 기록했다(요일3:14).
그리고 16절에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심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았다고 기록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과 그분의 사랑은 동일한 것이다.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사망을 처리하시는 과정이었다.
부활하신 것은 죽지 않는 생명을 드러내는 것이었다(눅20:35,36).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딤후1:10).
예수님은 생명 자체시다.
그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셨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 하셨다.
그분의 이 생명이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모습이 사랑이다.
우리가 거듭나서 예수님의 이 생명으로 출생하면 이 생명이 우리를 사랑으로 살게 하신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그래서 교과 저자는 고전 13장을 예수님의 초상화라고 했다.
● 믿음, 소망, 사랑
그래서 바울은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 가운데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고린도교회는 은사가 부족한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믿음은 보는 것으로,
소망은 이루어질 것으로 바뀌지만,
사랑은 하나님의 성품이기에 영원히 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생 가장 힘써야 할 것은 더 큰 은사가 아니라 더 큰 사랑입니다.
<부가설명>
사람들은 사랑에 관한 설명으로 고전 13장 보다 잘 된 글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사랑을 논할 수 있도록 사랑의 본질을 알고 있을까?
생명이 무엇인지 모르는 만큼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다.
고전 13:3에는 몸을 불사르도록 내어준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했다.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것 자체를 지고한 사랑으로 여기는데, 그런 행동도 사랑이 없을 수 있다고 한 것이다.
나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많이 생각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로마5:8,10에 계시한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은 독생자를 죽게 하시므로 사랑을 확증하셨다.
또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독생자의 죽음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했다고 했다.
사랑은 화목의 줄이다.롬5:11의 화목을 kjv는 atonement라고 번역했다.
우리말로 구속이라고 번역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것을 분석해서 at one ment 라하고 하나됨이라고 설명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류가 하나님과 하나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생명을 얻어야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출생해야 한다(요1:12,13).
하나님과 하나되어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도록 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이 사랑을 나타내는
신자들의 삶이 다른 사람도 하나님의 생명을 얻어 하나님과 하나되도록 하는 것이 이 사랑을 나타내는 삶이다.
사랑은 이웃을 해롭게 하지 않고 이웃에게 생명력을 풍성히 얻도록 하는 삶이다.
● 마무리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분열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이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신앙을 내세워도 하나님과 동료를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아닙니다.(사도행적, 318, 319).
[26.3기.7과 안교교과/부가설명 김명호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