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6년 음력12월 엄동설한에
청나라 홍타이지가 밀물같이 밀려 들어와
<병자호란>이 시작됩니다.
익히 알고 있는 (김상헌)과 (최명길)
모든 면에서 대척점에 서 있던 그들이
죽어서도,비석에서도 대척점에 서게됩니다.
김상헌.....1570~1652ㆍ안동 김씨
최명길.....1586~1647ㆍ전주 최씨
김상헌.....노론ㆍ강경파ㆍ명분
최명길.....소론ㆍ주화파ㆍ실리
김상헌 손자...김수항 (노론의 영수)
최명길 손자...최석정 (소론의 영수)
병자호란 당시 홍타이지가 내린 글에 대하여
❗김상헌~"그냥 이걸 병사들에게 보여줘서
사기를 격양시킵시다."
❗최명길~"와신상담도 살아 남아야 할 수 있
는것입니다."
항복 문서를 김상헌이 찢어버리자 최명길은 찢어버린 종이를 주워 맞추며
"대감은 찢으나 나는 주워서 맞추리다."
이렇게 모두것이 달랐던 두 충신들의 비석 글씨가 참으로 볼 만 합니다.
청음 김상헌은 의리와 절개의 화신으로 추앙받는 대신이고,
지천 최명길은 청나라 오랑캐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간신배로 대접 받고,
삼전도에서 인조임금이 수항단(受降壇)에 나가 삼배구고두례를 행하며 피눈물을 흘릴때
지천 최명길은 임금을 끝까지 모셨지만,
김상헌은 자식들 앞에서 목을 매 미수에 그쳤고 뒷문으로 빠져나와 안동 고향으로 내려갔지요.
그는 항복의 현장, 더러운 곳에 몸을 담기가 싫었던 것이다.
⬇️ 두 비석이 뭐가 다를까요?
⚛ 명나라 제후국인 조선의 대신✡
♦️ 청음 김상헌
*** (有明朝鮮) ***
⚛ 조선의 으뜸 대신 ✡
♦️ 지천 최명길
*** 朝鮮相國 ***
척화파(명분)와 주화파(실리)의 두 비석중
어느것이 더 근사하고 당당할까요?
두 대신들은 명나라가 멸망(1664)한 후에
영면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유명조선)은 비석에 새겨 넣습니다.(김상헌 비석)
주로 임진왜란 이후의 비석에 나타나는 글씨
"《有明朝鮮》"
⬆️ 김상헌의 손자 김수항 (유명조선 ㆍ있다)
⬆️ 최명길의 손자 최석정 (유명조선 ㆍ없다)
⬆️ 우암 송시열 (1607~1689)
물론 조선 전기에도 (유명조선)의 비문이 있습니다만,
당시 대표적인 정치인인 (明 숭배자)우암 송시열.
거의가 다는 임란 후 노론의 거두인 송시열의 영향으로 비문이 새겨지지않았나 생각합니다.
⬆️ 명재 윤증 비석 (1629~1714년)
⬆️ 은신군(1755~1771)
고양시 서오능의 장희빈 묘역.
感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