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시원해지는 스키점프의 화려한 영상과 함께 실화를 통한 웃음과 눈물이 배어나는 감동적 스토리로 주목 받은 영화 국가대표. 그 흥행 뒤에는 배우들의 빛나는 열연이 있었는데요. 차헌태역을 맡은 하정우나 최흥철을 연기한 김동욱의 연기도 대단했지만, 그 중 한명을 고른다면 저는 강칠구(김지석)선수의 동생인 지적장애인 봉구역을 맡아 너무나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이재응군을 뽑고 싶습니다. 능청스럽게 역할을 소화해내는 그의 모습은 관객들을 말 그대로 웃기다 울리다 했죠.
영화 국가대표가 많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 때문인데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영화 속 인물들과 우리가 좀 더 가까이 있음을 체감하게 합니다. 오늘은 감동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우리나라의 두 영화 '말아톤'과 '맨발의 기봉이'의 두 주인공을 통해 영화속 삶과 실제 삶을 비교해보고 이를 통한 우리 삶의 의미를 찾아보려 합니다.
초원이, 아니 형진씨는 어떻게 지내나요?
초원이 다리는?
백만불짜리 다리.
몸매는?
끝내줘요!
이 대사, 우리에게 너무나도 유명한 대사죠?2005년 개봉하여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영화 '말아톤'의 대사입니다. '말아톤'은 자폐장애를 가진 청년 '초원(조승우)이'가 어머니의 헌신적인 지원에 힘입어 수많은 역경을 딛고 서브3로 마라톤을 완주한다는 감동스토리입니다. 이 영화는 2005년 540만의 관객을 불러 모으며 그 해 최고의 흥행영화로 거듭났고, 당시까지만해도 전도유망하지만 조연급배우에 가까웠던 조승우를 일약 대스타로 만들어주었는데요.
이에 더해 초원이의 실제 모델이었던 배형진씨와 그의 어머니를 다룬 기사와 휴먼다큐멘터리가 성황을 이룰 정도로 당시 이 영화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했죠. 형진씨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무현대통령의 초대를 받아 청와대를 방문하기도 했다는데요. 그의 어머니가 직접 대통령께 이메일써서 방문을 청했다고 합니다. 정말 아들과 아들의 미래를 염려하는 마음이 크신 어머니인 것 같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발달장애에 관한 사회적 관심에 힘입어 말아톤 복지재단이 설립되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영화가 세상의 빛을 본 이후 '초원이'배형진씨와 그의 어머니의 삶은 어떨까요?
형진씨와 어머니의 삶이 순탄치 많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형진씨는 지난 2007년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하네요..그가 다니던 회사의 금융상태가 좋지 않아 고용하고 있던 많은 장애인들이 회사를 그만 둘 수 밖에 없게 되었는데요. 형진시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네요. 형진씨에게 닥친 크나큰 시련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여러가지 좋지 않은 상황이 겹치면서 형진씨는 머리가 빠지고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건강이 많이 악화되기도 했다네요.
세상이 영화 '말아톤'과 형진씨를 차츰 잊어가던 지난 2008년, MBC <네버엔딩스토리>에서 형진씨의 이야기가 방송 되었습니다.
당시 방송에서 형진씨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산악인인 엄홍길대장과 함께 백두산 등반과 암벽등반에 도전하였는데요. 여기서 기록단축을 위한 마라톤에는 더이상 참가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형진씨, 등산을 통해 새로운 꿈에 도전하는 그의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영화가 크게 성공하였다 해서 형진씨와 어머니의 아주 넉넉해진 것은 아닌 듯 하지만, 그래도 관심과 무관심이 반복되는 세상의 벽에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며 최선을 다하는 형진씨와 어머니의 모습이 참 보기 좋네요^^
맨발의 기봉씨는 잘 살고 있나요?
신현준과 김수미의 찰떡궁합으로 웃음과 감동을 멋지게 엮여냈던 영화 '맨발의 기봉이'. 이 영화는 2006년에 개봉하여 240만의 관객을 끌어모으여 흥행에 성공한 바 있는데요. 이 영화 역시 '말아톤'처럼 장애를 가진 한 인물과 그의 곁에서 그를 성심껏 지지해주는 인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 '맨발의 기봉이'는 실제 나이는 40세이지만 지능은 8살 수준인 기봉씨가 어머니의 틀니를 해드리기 위해 우연한 계기에 마라톤대회에 참여한다는 이야기인데요. 신현준과 김수미의 열연, 그리고 탁재훈, 임하룡 등의 맛깔나는 감초역할로 인해 이 영화는 마라톤의 뒤를 잇는 훌륭한 스포츠영화로 평가받았죠. 또한 기봉씨의 이야기를 다룬 만화와 책이 연이어 출시 되면서 두 모자는 세상의 관심을 받게 되는데요. 이러한 관심의 영향으로 기봉씨 모자를 위한 후원행사가 성황을 이루면서 이전보다 형편은 좀 더 나아지게 됩니다.
그렇게 행복하게만 사는 줄 알았던 기봉씨, 그의 소식이 2009년 초에 다시 들려왔는데요. 기봉씨는 영화가 개봉되던 그해 12월 4일 정든 고향을 떠나 여동생이 사는 강원도 철원군으로 그의 어머니와 함께 이사를 갔다고 합니다. 여동생과 다른 지원자들을 통해 철원에서 행복한 삶을 살게 되리라 기대했건만..기봉씨는 후원금의 처리 문제를 둘러싼 논란에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휩싸이게 되었다네요. 그 후 2년 여간 후원금 처리에 관한 법적 공방이 오가면서 기봉씨의 마음 고생이 굉장히 심했다고 합니다.
어머니 또한 이사온 이후 후원금과 관련된 고소에 많이 힘들어 하셨고, 끝내 치매증상까지 보이게 되셨다네요. 정말 마음고생이 심하셨나봐요.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늙으신 어머니는 결국 기봉씨보다 먼저 고향인 서산으로 되돌아가셨데요. 물론 기봉씨도 어머니의 뒤를 따라 지난 1월에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효성 지극한 그가 나이 많으신 어머니를 혼자 내버려 둘 수 없었던거지요. 영화에서처럼 실제로도 정말 천사표 기봉씨입니다.
기봉씨는 서산으로 돌아온 이후 다시 학교를 다니면서 학업에도 열중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지난 4월에는 '1004 릴레이 희망의 마라톤'에 대표주자로 참가했는데요.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 이 대회에 기봉씨와 말아톤의 형진씨 모두가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이 대회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합니다.
영화가 막을 내려도 여전히 세상을 향한 힘찬 걸음을 멈추지 않는 두 사람의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