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마티아 사도 축일 강론
송영진 모세 신부 ・ 15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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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티아 사도 축일 강론>(2026. 5. 14. 목)(요한 15,9-17)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9-17).”
1)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라는 말씀은, ‘부르심’이 먼저 있었고,
신앙인은 그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또 ‘부르심’은 ‘주님의 은총’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부르심’에 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
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에페 1,3-5).”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에페 1,11).”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에페 2,8-9).”
‘부르심의 은총’이 사람들에게 내린 것은 세상 창조 이전에
이미 정해져 있었던 구원 계획에 의한 일이고, 그 대상은
‘모든 사람’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응답하는 것은 아니고,
응답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또 응답했더라도 끝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은
하느님께서 인간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부르심에 응답할 자유도 있고,
응답하지 않을 자유도 있습니다.
자유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책임도 있습니다.
<어떤 직무를 맡는 것도
‘부르심’과 ‘응답’에 포함되는 일입니다.>
2) ‘응답’은 한 번 한다고 그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
끝까지(죽을 때까지) 응답하는 생활을 해야
‘완성’되는 일입니다.
끝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 멈추면, 처음부터 응답하지 않은
사람과 다를 것이 없게 됩니다.
응답이 완성되지 않는 것은, 응답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배반자 유다의 경우에도 끝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은 사람,
즉 사도로 뽑혔지만 응답하지 않음으로써 사도가 되지 못한
사람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사도로 뽑혔던 사람일 뿐이고,
사도였던 사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티아 사도는 유다의 후임자가 아닙니다.>
‘응답’을 기준으로 해서 생각하면,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사도로 뽑으신 일은 ‘사도단’을 구성하는 일의 시작일
뿐이었고, ‘사도단’의 구성이 ‘완료’된 때는 열두 사도의
응답이 모두 완성된 때, 즉 ‘사도들이 지상에서의 삶을
마쳤을 때’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3)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라는 말씀은, ‘신앙’은 여러 신들 가운데에서 하나를
‘선택’해서 믿는 일이 아니라,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일이라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만일에 ‘내가’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선택을 취소하거나 변경하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은 언제나 항상 ‘유일하고 절대적인 분’에 대한
‘사랑’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르 12,29-30)”
하느님은 ‘한 분’뿐이신 주님이시니, 신앙은 여러 신들
가운데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 신들 가운데 하나라면, 그 신은 하느님이 아닙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느님을 믿거나 안 믿거나,
또는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일 뿐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사랑하면 구원과 생명을 얻을 것이고,
믿지 않고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출처] 성 마티아 사도 축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