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석이 지하철참사사고대책위원회를 찾아갔다. 그의 집인 대구에서는 상당히 먼, 서울 소재의 위원회까지 찾아간 까닭은, 현우를 찾는데 그들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였다.
"안 돼. 안됐지만 지금은 그런 것 수사할 여력이 없어. 다음 참사를 대비하는 게 먼저야."
위원회의 간부급으로 보이는 짧은 머리의 덩치 큰 이 사람은, 현석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그를 내쳤다.
"이럴 줄 알았어..."
현석은 투덜거리며 힘없이 뒤돌아섰다. 애초에 이런 대접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형의 행방을 찾기 위해서는 경찰과 위원회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사실 현석은 그의 형인 현우가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구열차사고에서 죽은 노숙자가 가지고 있던 주민등록증이 남긴 그 위화감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 점을 경찰에게 어필하기만 하면 그들의 도움을 얻을 수 있겠지만, 단지 이것만으로는 그들의 힘을 이끌어내기 힘들었다.
'조금 더... 단서가 필요해.'
최현우가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만 밝혀지면, 현우의 행방을 수색하는데 그들의 힘을 빌릴 수 있다- 현석은 그렇게 생각했다.
현석은 서울까지 간 김에 우선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제3차사고현장인 서울지하철 4호선 중앙역까지 가 보았다.
수도권 내 지하철이라긴 하지만 중앙역은 경기도 안산시에 위치하고 있어, 가는 길은 꽤 멀었다. 꾸벅꾸벅 졸던 그가 목적지에 도착해, 버스에서 졸린 눈을 비비며 내렸다. 하지만 현장을 본 그의 눈은 충격에 큼지막하게 커졌다. 잠이 확 달아났다.
사고현장은 정말 생지옥과 다름없었다. 물론 모든 시신처리와 사고현장의 정리는 어느정도 된 상태였지만, 사고현장은 현석의 머리속까지 파고들어 그의 대구에서의 사고기억까지 끄집어내었다.
'큭...'
현석은 갑작스레 찾아온 두통때문에 오른손으로 머리를 싸잡았다.
그런데 그 때였다.
...잠깐.
대구지하철참사와 서울지하철참사, 그리고 그 사이의 제2차 사고인 부산지하철참사에서의 묘한 공통점이 발견되었다.
접점(接點).
순간 현석의 눈동자가 한곳에 모아졌다.
'그래... 분명 이상하다. 하지만 어째서...?'
대구지하철참사 사고역명 : 중앙로역
부산지하철참사 사고역명 : 중앙역
서울지하철참사 사고역명 : 중앙역
사고역명엔 모두 '중앙'이라는 글자가 들어갔다.
'단순한 우연인가...?'
"...중앙 ...중앙..."
현석은 그 자리에 서서 끊임없이 '중앙'이라는 단어를 되뇌어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던 그는 이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사랑합니다, 고객님."
114였다.
"아... 서울지하철공사 부탁드려요."
"서울지하철공사 말씀이십니까?"
이윽고 '문의하신 번호는...' 으로 시작하는 기계음이 나오더니 전화번호가 나오기 시작했다. 현석은 바로연결하기를 선택했다.
"네. 서울지하철공사입니다."
(필자 주 - 서울지하철공사. 일명 메트로Metro. 민원신청은 전화 02-520-5000 에서 받는다)
젊은 여성의 목소리에 현석은 짧은 한숨을 내쉰 뒤 차분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수고하십니다. 얼마 전 사고 난 지하철 4호선의 중앙역 있잖습니까. 평소 통행인원 수가 많은가요?"
의외의 질문이었던지 수화기 너머의 여성은 잠시 당황하는 듯 싶더니 이내,
"아닙니다. 중앙역은 서울과는 거리가 있어 러시아워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인원이 많진 않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현석은 그렇게 낮은 톤으로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범인은 인명살상이 목적이 아닌 것인가?
확실히 그랬다.
대구의 중앙로역은 대구의 중심이고, 부산의 중앙역도 도시의 중심은 아니지만 남포동과 가까이 있어 유동인구가 많은 쪽에 속한다. 하지만 서울 지하철의 중앙역은 달랐다. 결코 서울중심지가 아닌 곳.
"아니면 '중앙'이라는 것에... 혹시 범인이 전하는 메시지가...? 아냐아냐... 잠깐."
미간을 찌푸리며 모든 가능성을 타진하던 현석은 순간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핸드폰을 꺼내들어 인터넷에 접속했다.
아직 사고가 나지 않은 광역시의 지하철은 대전지하철과 광주지하철이었다.
현석은 인터넷에서 그 두개 지하철의 역중 '중앙'이 들어가는 역을 빠르게 검색하기 시작했다.
"있다!"
대전지하철의 '중앙로역'. 광주지하철에는 없었다.
'다음은 대전인가!'
범인이 전하는 메시지가 있다 하더라도 지금은 그걸 파헤칠 때가 아니었다. 현석은 다음 사고 예방이 우선이라고 생각해 서둘러 지하철철참사사고대책위원회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네, 지하철참사 사고대책위..."
"다음은 대전이에요, 대전!!! 막아야 합니다!!!"
"네? 무슨..."
"시간이 없어요!! 어서!!!"
현석은 생전 내지 않던 소리를 크게 지르기 시작했다. 그의 목에는 핏대가 섰고,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현석의 옆을 지나던 사람들은 갑자기 걸음을 멈춰섰다. 하지만 그것은 길거리 한복판에 쩌렁쩌렁 울린 현석의 고함 때문만이 아니었다.
도로 위 검은 전광판이 잠시 지직거리기 시작하더니, 뉴스속보를 전하기 시작했다.
'대전지하철 중앙로역에서 지하철 폭발. 방화로 추정.'
짧고 강력한 메시지였지만, 그 때문에 거리의 모든 움직임이 정지했다. 현석은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트린 채 허탈한 웃음만을 지었다.
"하... 하..."
그리고 현장에는 현석 외에도 또 한 사람이 의미 모를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웃음은 푹 눌러쓴 모자의 그림자에 가려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다.
첫댓글 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