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으로 다른 맛의 두 영화를 보았습니다.
한 영화는 정갈한 일본 가정식을, 다른 한 영화는 소스가 듬뿍 뿌려진 미국식 햄버거 세트를 먹는 듯 했습니다.
앞에 본 영화는 다소 심심한 맛이었지만, 깔끔하고 정갈했고, 보기에도 좋았습니다.
뒤에 본 영화는 맵고 달고 기름 맛이 강했지만, 입안의 모든 미각이 살아날 정도로 풍성한 맛이었습니다.
예상하시겠지만, 첫 번째 영화는 <바닷마을 다이어리>, 두 번째 영화는 <헤이트풀8>입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작년에 개봉했지만, 올해에 처음 극장에서 본 영화가 되었고, <헤이트풀8>은 올해 처음 극장에서 본 2016년 개봉작이 되었습니다.
각각의 이유로 상영관과 관객이 많지 않은 두 영화였지만, 개인적으로는 2016년의 영화관람 시작을 만족스럽게 해준 영화였습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큐레이터의 설명까지 들을 수 있어서 더욱 유익했습니다.
1.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쿠엔틴 타란티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이번 작품 이전까지 2편을 보았습니다.
<걸어도 걸어도>와 <공기인형>입니다. 특히 <걸어도 걸어도>는 아주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원더풀 라이프>와 <아무도 모른다>는 꼭 봐야 할 목록에 포함되어 있는데, 아직 보지는 못했네요.
아무튼 개인적으로 이런 일상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고레에다 감독은 일상을 단순히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일상을 살아가는 인물들에게서 미묘하게 보이는 충돌과 균열을 관객이 자연스레 느끼게 하는 연출이 탁월합니다.
<걸어도 걸어도>에서 물에 빠진 소년을 구하다가 목숨을 잃은 자식의 기일을 매년 찾아오는 그 소년을 대하는 어머니의 태도는 뭔가 섬뜩하면서도 이내 수긍이 가는 인상적인 연출이었습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식 B급 감성이라는 것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 그 감성이 제 취향도 아니었습니다.
특히 잔혹하기까지 하니 더욱 볼 생각이 들지 않았죠. 대표작인 <킬빌>도 워낙 화제가 됐기에 특정 부분의 장면만 아는 정도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타란티노의 영화를 극장에서 본 건 이번 <헤이트풀8>이 처음인 것 같군요.
가장 처음 본 타란티노의 작품은 <데스프루프>였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호평이 많아서 집에서 뒤늦게 봤는데, 역시 제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잔인한 장면도 있으니 기분도 별로였죠.
그러다가 <바스터즈: 거친녀석들>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영화를 정말 잘 만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그 유명한 오프닝 시퀀스와 독일군으로 위장한 ‘마이클 패스벤더’가 술집에서 독일군 장교에게 정체가 탄로나는 장면은 심장이 쫄깃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는 명장면이었습니다.
뒤에 개봉한 <장고: 분노의 추적자>는 <바스터즈>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재미있게 봤고, 뒤늦게 찾아 본 <킬빌 1>을 보고 뻑이 가버렸습니다.
<킬빌 1>은 지금 나와도 밀리지 않을만큼 오락적으로 정말 대단한 영화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를 더 좋아합니다.
타란티노의 영화가 오락적으로 뛰어나긴 하지만, 고레에다 영화의 공간과 인물들에게서 느끼는 감성에 더욱 마음이 가는 것 같습니다.
2. 심심한 듯 하지만...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기본적으로 심심한 영화입니다. 큰 사건이 없고, 극심한 대립이나 격한 감정표현도 없습니다. 그저 우리의 일상스케치처럼 보입니다.
영화 속 인물들의 감정과 심리가 전혀 강조되지 않지만, 더욱 잘 이해되고 공감되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내가 느꼈던 감정이 생각나는 듯 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영화 속에 몰입해서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래서 오히려 감정적으로 와 닿는 점이 많은 영화네요.
이야기는 심심하지만, 화사하고 쨍한 엽서 사진과 같은 영화 속 이미지들은 아름답고 평화로우며 따뜻합니다. 저런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영화의 배경은 우리가 사랑하는 만화 <슬램덩크>의 배경이었던 카나가와 현의 ‘가마쿠라’라는 도시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드는 장소이다 싶었죠.^^
<슬램덩크>와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배경인 곳이니 꼭 가봐야 할 일본 여행지 목록에 당연히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영화적으로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영화 속 네 자매는 각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이름값만큼 비중있는 역할이지만, 둘째와 셋째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습니다.
일상의 큰 변화를 겪고 있는 건 그들도 첫째와 막내 못지 않을텐데, 그들의 심리묘사가 소홀히 다뤄지고 있다는 게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바스터즈>와 <장고>가 나치와 인종주의자들을 절대악으로 등장시켜 장쾌한 복수극을 펼치는 반면, <헤이트풀8>은 영화의 도입부터 중반까지 거의 말로만 채워져 있습니다.
그의 영화가 원래 말이 많고 말빨이 탁월하기는 하지만, 남북전쟁을 바탕에 둔 그들의 대화는 말빨은 없고, 말의 양만 많은 것으로 느껴집니다.
클라이막스를 향해 차곡차곡 장작을 쌓아올리는 과정으로 생각하면서 보긴 하지만, 지루함을 느끼는 건 저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중반을 넘어서고 현상금 사냥꾼인 ‘사무엘 잭슨’이 남부군 퇴역장교를 능욕하면서부터 이 영화가 타란티노 영화라는 것을 '각성'하게 됩니다.
이후, 마치 방아쇠를 당긴 것처럼 타란티노 영화의 인장과도 같은 잔혹한 피의 향연이 펼쳐지는데,
사람의 얼굴을 아무렇지 않게 박살을 내버리니 악취미도 이런 악취미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타란티노 영화가 잔인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시종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보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침 모자를 쓰고 간 게 다행이었습니다. 잔인할 것 같은 장면은 모자창을 넘어서 힐끔힐끔 볼 수 있었죠.
타란티노의 수다를 좋아하는 팬들은 좋아할 영화인 것 같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장고>보다도 못했습니다.
서두가 너무 길었고, 산장에 모인 8명의 나쁜 놈들 간의 긴장감은 잘 느껴지지 못했습니다.
10편만 만들고 은퇴한다고 하는데, 남은 두 편에서 <킬빌 1>을 넘어서는 작품을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3. 사랑스러운 여인들
배우 이야기는 <바닷마을 다이어리>만 하겠습니다. <헤이트풀8>의 배우들의 연기는 좋습니다.
특히, 똘망똘망하고 선한 눈빛에서 똘끼와 살의를 뿜어내는 여죄수 역의 ‘제니퍼 제이슨 리’의 연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머지 나쁜 놈들을 연기한 좋은 배우들의 이야기는 건너뛰고,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랑스러운 여인들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한때, 일본 드라마와 영화에 관심을 가졌었고, 자연스레 애정을 두고 본 여배우들도 있었죠.
한 동안 제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했던 두 여인이 <바닷마을 다이어리>에 출연했습니다.
첫 번째 여인은 자유분방하고 새침한 이쁜이 둘째 언니 역의 ‘나가사와 마사미’입니다.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와 드라마 <프로포즈 대작전>에서 그녀의 건강미와 환한 미소에 반했습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오프닝을 채웠던 그녀의 긴 다리의 각선미는 정평이 나있죠.
세련된 오피스 레이디(OL)로 나오는 그녀의 비주얼과 미소에서 시원시원한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의상도 참 바람직하구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실물을 봐서인지 그 아름다움이 더 뚜렷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첫째언니와 티격태격하지만 마음씨가 따뜻하고, 똑부러지는 듯 하지만 남자보는 눈은 부족한 둘째 언니 역할을 무난히 소화했습니다.
다만, 중요한 인물로 등장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영화 중심에서 살짝 벗어난 듯 해서 아쉬웠습니다.
두 번째 여인은... ‘정전엔 카호’라는 말을 기억하십니까? 바로 ‘카호’입니다. 한 때 각종 짤방을 통해 남자 네티즌들의 사랑을 받았던 여배우죠.
저는 영화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을 보고 애정을 가지게 된 배우입니다. ‘나가사와 마사미’와는 다른 청순하고 귀여운 매력이 있는 배우죠.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에서 첫사랑에 빠진 순진한 여학생을 연기한 모습을 보고 반했는데,
어느샌가 ‘역변의 아이콘’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번 영화에서는 역변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말았네요.ㅠㅠ
그녀가 맡은 ‘치카’라는 역할이 외모에 그닥 관심없는, 덕후와 4차원 기질이 보이는 인물이라 비주얼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프네요.
오랜만에 봐서 반갑긴 한데, 외모도 아쉽고 비중도 아쉽습니다.
원작에서의 ‘치카’는 폭탄머리를 한 개그 캐릭터라는데, 영화에서 ‘치카’의 캐릭터까지 힘을 실어주기에는 힘들었나봅니다.
책임감이 강하고 아픔을 가직한 채 동생들과 집을 돌보는 첫째 언니 역할의 ‘아야세 하루카’는
드라마 <호타루의 빛>의 ‘건어물녀’의 이미지가 강해서 처음에는 적응이 안됐지만, 보고 있으니 드라마 <진>에서 본 강인한 여성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예전에는 뭔가 기괴함이 느껴지는 외모라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에서는 안정적이고 든든한 어머니 같은 모습이네요.
사실상의 화자인 막내 ‘스즈’역의 ‘히로세 스즈’는 인상이 강하고 체구가 탄탄하네요. 일본 공포영화의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는 얼굴입니다.^^
축구를 잘하는 여학생으로 나오는데, 본 실력인지 연습의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공을 차는 폼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세 이복언니가 이루고 있는 따뜻한 가족의 영역에 들어가고 싶어하지만,
아버지의 잘못으로 대신 안게 된 죄책감 때문에 머뭇거리게 되는 여자 아이의 심리를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쌩뚱맞게도 축구공을 들고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네요.(목욕 후에 선풍기 앞에서 온몸을 말리는 뭔가 성진국스러운 장면도...^^;)
일본 연예계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인지는 모르겠지만,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기대받는 유망주인가 봅니다.
4. 잔멸치 덮밥, 잔멸치 토스트, 매실주, 오뎅카레는 진짜 먹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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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와 막내가 닮아있죠. 그 둘을 좀 더 부각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셋째는 원작에서 원래 개그를 담당하고 있어서 영화의 분위기를 위해 캐릭터를 부각시키기 힘들었겠지만, 둘째는 좀 더 표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절대 나가사와 마사미를 편애해서 그러는 건 아닙니다^^
@sidier 오프닝을 외박 중인 둘째로부터 시작하고, 둘째는 집을 파는 것도 크게 부정적이지 않잖아요. 반면, 첫째는 좋아하는 남자가 있지만 절대 외박하지 않고, 집을 지키려고 하죠. 이 둘의 이런 다른 성향이 좀 더 부각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막내의 이야기도 있으니까 잘못하면 산만해질 위험도 있으니 가지치기는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sidier 영화를 보고나서 되새겨보니 그런 생각이 든거지 영화를 볼 때는 저도 몰입해서 봤습니다.저도 첫째랑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둘째같은 여자를 더 좋아하지만요^^ 추천해주신 '랍스터' 꼭 챙겨보겠습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큐레이터 설명을 들으셨다니..어디서 보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여러 리뷰를 봤지만 리뷰 하나하나 볼때마다 그때그때 계속해서 마음 뭉클해지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가마쿠라는 꼭 가보세요. 영화의 배경이 무척 어울리는 도시라 영화에서 느낀 감성을 그대로 느끼실 수 있을거예요^^
큐레이터는 cgv 아트하우스의 프로그램입니다. 아트하우스가 있는 cgv에서 정기적으로 하는 것 같은데, 상영후 10여분간 영화 뒷이야기를 해주더군요. 저는 부산의 서면 cgv에서 봤고 이번주 금요일에도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큐레이터 프로그램이 예정되어 있더군요.
@풀코트프레스 CGV아트하우스였군요. 정보 감사합니다^^
나의 카호... ㅠㅠ
역변의 카호...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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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전 두작품을 보지 못해서 더 좋게 본듯합니다. 앞의 두작품도 가족에 대한 얘기니 중언부언처럼 보일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야기를 빼고라도 저의 취향에 맞는 작품이었네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감독이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쿠엔틴 타란티논데 이렇게 최신작들을 붙여서 리뷰를 써주시니 뭔가 반갑고 신기하네요!
저도 개인적으로 헤이트풀8은 좀 별로였습니다. 전체적으로 캐릭터들이 전작들에 비해 매력이 많이 떨어졌고 대화로 만들어지는 긴장감도 현저히 떨어지더라구요.
좁은 공간에서 여러명의 긴장 구조를 나타내는 것은 타란티노의 데뷔작인 '저수지의 개'들이 훨씬 더 뛰어 났던 것 같습니다.
인물들의 대화가 지루하게 느껴진게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체감하지 못해서인지 궁금했습니다. 만약 우리나라의 영호남 지역감정이 깔린 대화였다면 고도로 잘짜여진 영화로 느꼈지 않을까 하고 말이죠.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긴장감이 약한건 사실인것 같아요.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톤은 아주 쨍하지 않습니다ㅠㅠ 요즘 영화들이 대부분 진한 노랑 진한 초록 파랑을 많이 쓰는데 오랜만에 하늘하늘 연한 파스텔 톤의 콘트가 많이 떨어지는 톤이었습니다ㅠㅠ
음... 제가 표현력이 딸려서 말이죠^^; 쨍하다는게 햇살의 느낌과 따뜻한 색감을 말하려던건데, 이미지와 느낌은 머리 속에 있는데 뭐라 표현할지 모르겠더군요. 아무튼 쨍하다는 표현은 잘못된거군요. 하나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