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도 아끼며 뛴 15년 … 저도 팬클럽 있어요” 올해 끝으로 퇴임하는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그의 이름은 한국 영화계에서 ‘전설’이다. 김동호(73)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칸·베를린·로테르담 등 유수한 해외영화제 고위급 인사들과 밤새 술잔(더 정확히는 술병)을 주고받으며 그들을 한국영화 지원군으로 포섭한 일, 영화제 초창기 분(分)단위로 짜인 살인적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퀵서비스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고 부산 남포동과 해운대를 오갔던 일 등등.
무엇보다 회자되는 건 공직자 출신으로서의 깔끔한 처신, 문화부 차관을 지낸 저명 인사답지 않은 겸손함이다. 한 해의 절반 가까이를 해외에 머무는 그는 고령이지만 다른 직원들과 똑같이 이코노미 클래스를 탄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상대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도 한결같다. 선물을 일절 받지 않는 것도 아파트 경비원에게 ‘우리 집은 선물을 받지 않는다’고 일러뒀던 공무원 시절부터 비롯된 일이다.
인기배우도 유명감독도 아니지만 그런 그에겐 팬이 많다. 연극배우 박정자·윤석화, 가수 노영심, 임권택 감독, 배우 안성기·강수연 등 문화계의 ‘김동호 패밀리’는 유명하다. 물론 부산 시내 택시기사, 백화점 직원, 식당 종업원 등 ‘일반인 팬클럽’도 상당하다.
인간적 매력과 두터운 인맥(그는 1958년 만난 논산훈련소 내무반 동기들과 52년째 정기모임을 하고 있다), 공무원 경력으로 다져진 업무추진력. 이른바 ‘김동호 파워’가 오늘날 부산영화제를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자리잡게 했음은 누구도 토 달기 힘들다. 그런 그가 10월 7일 개막하는 올해 영화제를 마지막으로 퇴임한다. 개막을 한 달 여 앞둔 30일 그를 만났다. 부산영화제는 1996년 첫 해 관객 18만 명이라는 ‘대박’을 터뜨렸다. 주된 스폰서인 부산시와 부산영화제는 ‘관(官)은 지원하되 민(民)을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 윈-윈했다. “항상 ‘실무자부터 설득한다’를 염두에 뒀습니다. 무작정 높은 사람한테 부탁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문공부 기획관리실장으로 8년간 일하면서 터득했지요. 실무자부터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는 게 시간도 노력도 더 드는 것 같지만, 결과적으론 훨씬 효율적입니다. 고위급에 부탁을 넣는 건 실무자에게 돈이 왜 필요한가를 진솔하게 설명한 다음입니다.” 그는 “관이 인식을 전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이 민을 신뢰하도록 하려면 민이 먼저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경제효과 500억원이 넘는 성공사례지만, 출범을 준비할 때만 해도 ‘부산에서 영화제가 웬말이냐’는 인식이 압도적이었다. “문화인들조차 ‘부산=문화불모지’라는 생각이 워낙 강했으니까요. 지금은 아무도 그런 말 안 하죠. (웃음) 부산영화제가 부산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시민들에게 어마어마한 긍지를 심어준 점을 생각하면 500억원 그 이상입니다. 부산시와 부산 시민의 전폭적 지지, 관객들의 뜨거운 애정, 영화인들의 지지…. 감사해야 할 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는 영화제 성공 비결에 대해 “목표와 전략이 확실했고 창립 멤버인 이용관 공동집행위원장, 전양준 부위원장, 김지석 프로그래머 등이 주축이 된 양질의 프로그래밍(작품 선정)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는 아시아 초청작 130여 편 중 월드 프리미어(전세계 최초 상영)가 40편 가까이 됐습니다. 그만큼 저희 프로그래머들이 발로 뛰며 발굴한 작품이 많은 거지요. 떠오르는 아시아 감독들의 새로운 영화를 찾아내고 관객들이 스스로 발견하게 한다는 전략이 지금의 부산영화제를 키운 겁니다. 돈 없어도 재능이 있으면 PPP(부산프로모션플랜)를 통해 제작자와 맺어줬습니다. 2005년엔 아시아필름아카데미(AFM)를 만들어 영화인력 양성에 힘썼지요. 부산영화제는 자연스럽게 국내·외 영화인들이 오고 싶어하는 아시아영화의 허브가 됐습니다.” 이번 영화제에서 그는 해외영화제 탐방기를 모은 책 출판기념회, 손수 촬영한 배우와 감독 사진으로 이뤄진 사진전을 연다. 책에 실릴 축하메시지를 보내온 사람은 티에리 프레모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 허우 샤오시엔 감독, 네덜란드 영화저널리스트 피터 반 뷰어렌 세 명이다. 그의 도타운 해외네트워킹을 얘기할 때 사이먼 필드 전 로테르담영화제 위원장과 더불어 단골로 등장하는 이름들이다. 이들은 폐막 즈음에 잡힌 송별연에 참석할 예정이다. 그는 공직생활 30여 년을 인생 1기, 부산영화제 15년을 2기라고 불렀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인생 이모작’을 마친 이제, 3기가 시작된다. “50년 가까이 술 속에서 살다 보니 제 속을 내실 있게 채울 시간을 가지지 못해 늘 아쉬웠습니다. 퇴임하면 몇 달 정도 백의종군해서 영화제 일을 도운 뒤 붓글씨와 함께 문인화와 한학을 깊이 공부해보고 싶습니다. 영화 한두 편 만들어 보고픈 욕심도 있지요. 카메라 다루는 법을 제대로 배워볼 겁니다.” 몇 년 뒤 우리는 사서삼경을 가르치는 김위원장을 만날 지도 모른다. 혹은 그의 감독데뷔작을 부산영화제에서 만나게 될지도. 어떤 모습이든 그는 부산영화제에 그랬듯 24시간을 쪼개 쓰며 최선을 다할 것임에 분명하다. 글=기선민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김동호 위원장은 … 1937년 강원도 홍천 출생 1961년 서울대 법대 졸업 1961∼88년 문화공보부 문화국장, 보도국장, 기획관리실장 1988∼92년 영화진흥공사 사장 992년 예술의전당 초대 사장 1992∼93년 문화체육부 차관 1993∼95년 공연윤리위원회 위원장 1996년∼현재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김동호 “다이빙벨 편향된 영화 맞다, 그래도 상영했어야”미스터 킴(Mr.Kim)이 돌아왔다.” 김동호 부산영화제 조직위원장은 “부산영화제는 문화 불모지 부산에서 기적적으로 일궈 낸, 세계적 문화자산”이라며 “지원은 받되, 간섭은 받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독립성을 지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달 11~22일 프랑스에서 열린 칸국제영화제에서 각국 영화제 관계자들 사이에 발 빠르게 퍼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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