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트인 바다
탁 트인 동해 바다를 볼까 해서 길을 나섰다. 아침 일찍 집에서부터 걸어 창원중앙역으로 나갔다. 하루 한 차례 순천을 출발 포항을 오가는 무궁화호를 탔다. 며칠 전 물금 임경대를 찾아가던 길 탔던 그 열차였다. 이제는 물금을 지나 구포와 부전을 거쳐 해운대도 지나칠 셈이다. 재작년 새해 첫날엔 송정역에 내려 폐선이 된 동해남부선 철길을 걸어 해운대까지 되돌아온 적 있다.
봄에는 산나물을 채집하느라 여름엔 영지버섯을 찾아내느라 산을 찾고 숲을 거닐었다. 가을과 겨울에도 등산을 가기는 하나 들녘이나 강가 산책을 나서는 날이 잦다. 주로 시내버스를 환승해 창원 근교를 많이 다녔다. 드물게 열차를 타기도 한다. 지난 연말 다대포 몰운대를 다녀오고 다시 부산광역시로 찾는 셈이다. 열차는 삼랑진에서 강변 따라 미끄러져 내려 구포와 사상을 지났다.
내가 탄 열차는 경전선이 삼랑진에서 경부선으로 바뀌었다가 부전역에서 동해선 전철로 바뀌었다. 예전 단선이던 동해남부선이 기장 일광까지 복선이 되면서 부전역은 동해선 기점이 된다. 해운대와 송정과 기장을 지난 좌천에서 내렸다. 송정에서 내리고 싶었으나 전철만 세우는 역이라 좌천역에 내렸다. 아직 간이역 옛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역 건물이 인상적이라 사진을 남겼다.
역에서 내린 일행 가운데 등산복 차림이 몇몇 보였는데 가만 보니 역에서 가까운 곳에 기장의 명산으로 달음산이 있었다. 정상부 바위가 신령스러워 보이는 예사롭지 않은 산인 듯했는데 그 산은 훗날 오르기로 미루어두고 나는 바닷가로 나가기로 했다. 초행이라 방향 감각은 있어도 바닷가 가는 들머리를 몰라 산책하던 현지 노인에 물어 길 안내를 받아 문중마을을 찾아갈 수 있었다.
저만치 고리 원자력 발전소가 보이는 곳으로 십여 년 전 겨울 대학 동기 부부들이 펜션에서 하룻밤 묶고 횟집을 들린 기억이 떠올랐다. 문중에 이어진 칠암 포구는 기장 붕장어로 유명한 어촌이었다. 방파제와 이어진 몇 개 등대가 예뻤다. 칠암의 ‘칠’은 ‘일곱 칠(七)’이 아니라 ‘옻칠 칠(漆)’임은 현지인에 물어보지 않아도 알 듯했다. 연안 갯바위가 모두 검음 빛을 띠고 있었다.
탁 트인 바다를 조망하면서 칠암에서 벼랑 따라 돌아가니 소공원이 아주 멋지게 꾸며진 신평마을이 나왔다. 전망이 좋은 곳이라 카페가 줄지어 들어서 있었다. 내야 카페나 식당으로 들어갈 일 없이 공원 쉼터에서 배낭을 풀어 도시락과 곡차를 느긋하게 비웠다. 낮은 구름이 드리워 바다가 어두웠는데 점심을 먹는 사이 구름이 걷히자 드넓은 바다는 본색을 드러내 아주 파래졌다.
소공원엔 신평마을 유래와 함께 영화 ‘갯마을’ 촬영지라 소개되어 있었다. 울주 언양 출신 오영수 소설을 영화화 작품이다. 오영수는 인근 일광면 사무소에서 서기를 지내다 교직에 입문한 작가였다. 갯마을 청상과부의 사랑과 일상을 리얼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알려졌다. 소공원에 타이나믹호를 연상하게 하는 목조로 된 웅장한 배 조형물이 바다로 향해 나가도록 조성되어 있었다.
신평에서 동백마을을 지나 해안선 해파랑길을 따라 걸어니 일광해수욕장이 나왔다. 해안선이 초승달이나 그믐달과 같은 형상의 원호를 그린 그림 같은 모래밭이었다. 모래밭으로 내려가지 않고 산책로 따라 걸어 닿은 끝은 학리로 더 이상 길이 없었다. 오래 전 개신교 한 분파에서 개척한 신앙촌이 위치한 사유지라 해파랑길이 나 있지 않아 시내버스를 타고 기장도서관 근처로 이동했다.
다시 6번 마을버스로 군청을 지난 갯가로 나가 죽성마을과 월전마을 포구를 둘러보고 대변항은 들리지 못했다. 창원으로 복귀할 열차 시각을 가늠해야 했다. 역에서 멀지 않은 기장 시장으로 갔더니 갯내음이 물씬한 해조류가 많이 보였다. 어부의 그물에 걸려든 대게들도 수족관 가득 채워져 손님을 기다렸다. 나는 한 아낙이 팔던 물미역을 두 묶음 사 배낭에 넣고 기장역으로 향했다. 19.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