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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년 7월 4일.
I went to the woods
나는 숲으로 갔다,
because I wished to live deliberately, to front only the essential facts of life,
내 뜻대로 살기 위해, 삶의 본질과 대면하기 위해서였다.
and see if I could not learn what it had to teach,
그리고 삶이 가르쳐 주는 것을 내가 배우지 못한 건 없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and not, when I came to die, discover that I had not lived.
또 죽음을 맞이했을 때 제대로 살지 않았다고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I did not wish to live what was not life, living is so dear;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으려 했으니, 삶은 그토록 소중한 것이다.
nor did I wish to practise resignation, unless it was quite necessary.
나는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이런 목표를 단념하고 싶지 않다.
I wanted to live deep and suck out all the marrow of life,
나는 깊이 있는 삶을 살며, 삶의 정수를 맛보고 싶었다.
to live so sturdily and Spartan-like as to put to rout all that was not life,
삶이 아닌 것을 모조리 없애버리면서 스파르타 사람처럼 기운차게 살고 싶었다.
to cut a broad swath and shave close, to drive life into a corner, and reduce it to its lowest terms,
낫을 휘둘러 길을 내고 풀을 바싹 베어 삶을 구석으로 몰아가서는 가장 낮은 단계까지 전락시킬 때,
and, if it proved to be mean, why then to get the whole and genuine meanness of it, and publish its meanness to the world;
삶이 천박한 것으로 판명난다면 삶의 천박함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완전히 알아내어 세상에 알리고
or if it were sublime, to know it by experience, and be able to give a true account of it in my next excursion.
반대로 삶이 숭고한 것이라면 경험을 통해 삶의 숭고함을 깨달아 내 다음 여행에서 그 사실을 정확하게 알리고 싶었다.
For most men, it appears to me, are in a strange uncertainty about it, whether it is of the devil or of God, and have somewhat hastily concluded that it is the chief end of man here to "glorify God and enjoy him forever.“
내가 보기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삶이 악마의 것인지 신의 것인지 모르면서 인간이 존재하는 주된 목적을 ‘하느님을 찬양하며 하느님으로부터 영원한 즐거움을 얻기 위함’이라고 성급히 결론짓기 때문이다.
1847년 9월 6일.
나는 숲에 처음 들어갈 때만큼 확실한 이유가 있어서 숲을 떠났다.
나는 경험에 의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배웠다.
즉, 사람이 자신이 꿈꾸는 방향으로 자신 있게 나아가면서
자신이 꿈꾸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면 보통 때는
생각지도 못한 성공을 거두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어떤 일은 받아들이고, 어떤 일은 내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게 된다.
요컨대 새롭고 보편적이며 보다 자유로운 법칙이 그의 주위와
그의 내부에 확립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예전의 법칙이 확대되면서
보다 자유로운 의미에서 그에게 유리하게 해석됨으로써
보다 높은 존재의 질서에 대한 허락을 받고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이다.
삶을 단순화하는 데 비례하여 삼라만상의 법칙은
덜 복잡해질 것이며,
고독도 고독이 아니고 가난도 가난이 아니며
약점도 약점이 아니게 된다.
Men say they know many things;
사람들은 많이 안다고 말하지만
But lo! they have taken wings—
보라! 그것들은 날개가 돋쳐 날아가 버렸다.
The arts and sciences,
모든 예술과 과학이,
And a thousand appliances;
그리고 무수한 발명품이,
The wind that blows
바람이 부는구나.
Is all that any body knows.
우리가 아는 것은 단지 그것뿐.
진실이란 추상적인 사고에서가 아닌
우리의 삶 속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단순 소박하고도 자족하며 하는 삶.
노동을 하지만 노동의 노예가 되지 않는 삶.
인간의 탐욕과 허영에 가려진
우리 삶의 근본적인 목적을 잃지 않는 삶
꼼꼼하게 챙기다가
인생이 다 지나가 버린다.
단순하게 살아라.
단순하게 살아라.
우리는 길을 잃은 뒤에야, 바꿔 말하면 세상을 잃은 뒤에야
비로소 자신을 찾기 시작하고, 우리가 지금 어디쯤 있는지,
세상과의 관계는 얼마나 무한한지를 깨닫기 시작한다.
호수는 풍경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표현이 풍부한 지형적 요소다, 그것은 대지의 눈이다. 사람은 그 눈을 들여다보면서 자기 본성의 깊이를 잰다.
옷이든 친구든, 새것을 얻으려고 너무 애쓰지 마라.
헌 옷은 뒤집어 입고, 옛 친구에게 돌아가라.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옷은 팔아버리고 생각은 그대로 간직하라.
당신에게 친구가 부족하지 않도록 신이 보살펴줄 것이다.
내가 날마다 온종일 거미처럼 다락방 한구석에 틀어박혀 있어도,
내 생각이 내 곁에 있으면 나에게 세상은 여전히 넓을 것이다.
시간이 흐른다고 새벽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눈을 부시게 하는 빛은 우리에게 어둠과 같다.
우리가 자지 않고 깨어 있는 날에야 새벽이 찾아온다.
새벽은 앞으로도 많이 남이 있다.
태양은 아침에 뜨는 별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삶이 아닌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이란 매우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한 삶이란
나 이외의 것들에게 따스한 눈길을 보내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은
식어버린 불꽃이나 어둠속에 응고된 돌멩이가 아니다.
별을 별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발에 채인 돌멩이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 수 있을 때,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을 때,
비로소 행복은 시작된다.
사소한 행복이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든다.
하루 한 시간의 행복과 바꿀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
자기 자신을 사냥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좀 더 고귀한 스포츠가 아니겠는가?
“그대의 눈을 안으로 돌려 보라,
그러면 그대의 마음속에 여지껏 발견 못하던
천(千)개의 지역을 찾아내리라.
그곳을 답사하라,
그리고 자기 자신이라는 우주학의 전문가가 되라.”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鼓手)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 두라.
그 북소리의 음률이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
“만약 사람이 자신의 천재성의 희미하지만
끊임없는 진실 된 제안에 귀를 기울인다면,
처음에는 이것이 어떤 극단이나
심지어는 미친 짓으로 이끌어갈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점점 결심과 신념이 굳어짐에 따라
자기가 걸어야 할 길이 그 쪽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떤 건전한 인간이 느끼는 확고한 반대는
처음에는 미약할망정 결국에는 인류의 주장과 관습을 극복할 것이다.”
그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가장 변덕이 적은 사람일 것이다.
어제나 오늘이나 그는 한결 같으며 내일도 그러할 것이다.
두 사람이 숲을 거닐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속세를 완전히 벗어난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왜냐하면 그는 어떤 제도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인이었기 때문이다.
아침과 봄에 얼마나 감동하는가에 따라 당신의 건강을 체크하라.
당신 속에 자연의 깨어남에 대해 아무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른 아침 산책의 기대로 마음이 설래어 잠에서 떨쳐 일어나지 않는다면,
첫 파랑새의 지저귐에 전율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눈치 채라.
당신의 봄과 아침은 이미 지나가버렸음을...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내 인생을 오로지 내 뜻대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나는 인생의 본질적인 것들만 만나고 싶었다.
내가 진정 아끼는 만병통치약은 순수한 숲 속의 아침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이다.
아, 아침공기!
앞으로는 이 공기를 병에 담아 가게에서 팔아야 할 지도 모른다.
아침의 행복을 잃어버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라
그대의 삶이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맞부딪쳐 살아나가라.
회피하거나 욕하지 말라. 그대가 나쁜 사람이 아니듯 삶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 그대가 가장 풍요로울 때에 삶은 초라하게만 보인다. 불평쟁이는 낙원에서도 불평만 늘어놓을 것이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라 삶이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그렇게만 한다면 그대는 비록 달동네의, 형편없이 가난한 집에
있다고 해도 즐겁고 가슴 떨리며 멋진 시간들을 보낼 수 있으리라.
황혼의 빛은 부자의 집 창문뿐 아니라 가난한 자들의 집 창문도
밝게 비춘다. 또한 초봄에는 가난한 자들의 집 앞의 눈도 녹는다. 그대가 평온한 마음을 가지기만 한다면 거기서도 궁전에서처럼
즐겁고 만족스런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아무리 좁고 구불구불할지라도 그 길이 그대가 애정과 존경심을 갖고 있는 길이라면 그대는 그 길을 따라 걸으라. 비록 큰길 위에 서 있는 여행자라 할지라도, 그의 눈에 보이는 길이 울타리 사이로 난 좁고 험한 길이라면,
그 길을 추구해 나가라. 사람이란 결국 자신만의 좁은 길을 가는 것이다. -
자신이 삶이 아무리 비천할지라도
그 삶을 정면으로 대하고 살도록 하라.
피하지도 욕하지도 말라. 그 삶은 당신만큼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이 가장 부유할 때 당신의 삶은 가장 가난해 보인다.
남의 흠이나 잡는 사람은 천국에서도 흠잡기에 바쁘리라.
설혹 그 삶이 가난할지라도 당신의 삶을 사랑하라.
설혹 구빈원이라도 유쾌하고 신나며 훌륭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석양의 햇살은 부자의 저택에서나 구빈원의 창문에서나 똑같이
눈부시게 빛난다.
남아도는 부로는 없어도 상관없는 것만 살 수 있다.
영혼의 필수품을 사는 데 돈은 필요 없다.
우리의 눈을 감기는 저 빛은 우리에게는 어둠일 뿐이다.
그날은 바로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는 날 동터 올 것이다.
앞으로도 동틀 날은 얼마든지 있다.
태양이란 아침에 뜨는 별일 뿐이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 / '월든'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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