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글은 몇년전에 이야기이다.
나는 오전6시 10분에
용산역에서 부산으로 내려가는 완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참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가는 설레이는 이마음
달리는 열차의 차창밖으로 보이는
산과 들은 푸르름과 싱그러음의 그 자체다.
내가 타고가던 열차가 얼마를 달렸을까
갑자기 열차의 한쪽문이 열리더니
홍익회 구루마가 통로로 들어서며
자~~땅콩있어요~~
마른 오징어 있어요~~
그리고 삶은 달걀도 있어요~~하며
호객 행위를한다.
나는 내 앞을 지나려던 구루마를 새우고
달걀 한줄과 사이다를 사서 옆에앉은 동승자한테
삶은 달걀 한 개를 권했더니 극구 사양을 하기에
그럼~~하면서 달걀 한입에 사이다 한 모금을 마시며
연신 차창밖 풍경을 응시를했다.
말 그대로 세월아 네월아 하며
달리는 완행 열차다보니 간이역이라는
간이역은 다 쉬어가며
그렇게 또 열차는가 얼마를 달렸는지
그때 열차내에서 안내방송이 나온다.
요번역은 대전역 입니다.대전역 하며
안내방송이 끝나며 열차가 대전역에 정차를하자
기다렸다는듯이
홍익회 직원이 열차로 올라오더니
승객 여러분!!
서울에서 새벽차 타고 오시는 분들은
많이시장 하셨지유~~
이열차는 당 역에서 20분을 정차하오니
열차에서 내리시면 풀렛폼에 홍익회에서
운영하는 가락국수와 우동이 있으니
시장끼를 때우고 가세유~~하며
여기서도 호객행위가 이루워진다
마침 시장끼도 있기에
나는 그사람의 안내에따라 열차에서 내려 홍익회를들러
우동 한 그릇을사서 먹다보니
그 옛날 군대 시절이 생각이난다.
첫 휴가때 오후늦게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군용열차가
밤 12시경에 대전역에 정차를하면 허기진배로 사먹었던
우동이 생각이나서 그 때를 상기하며
우동을 먹어봤는데 그 때 그 우동맛이 아니었다.
그렇게 우동 한 그릇으로 아침겸 점심을 때우고
열차에 다시올라 얼마를 가다보니 눈에익은
간이역들을 지나 드디어 내가 오랜만에 찾아오는
내고향 간이역에서 하차를하여
나는 역전을나와 지금도 역전앞을 수호신처럼 서있는
두아름드리 살구나무밑을 지나다 보니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다라이에 좌판을깔고
떡과 각종 야채를파는 아주머니들이 계시며
그중에는 안면이있는 분이 인절미를 팔길래
한 봉지를사고 다시 점빵을들러 생수한병을 사가지고
족히 십리길이 넘는 고향 마을을 향해서
발길을 옮기며 소롭길을 들어서니
참 오랜만에 맡아보는 싱그러운 산천초목 풀냄새가 내코를 자극한다.
나는 쉬며 걸으며 쉬엄 쉬엄 가다보니
어느새 저멀리 내고향마을 앞산 박달고개가 보인다.
이제 다왔구나 하며 걸음을 재촉하여
한달음에 고향 마을을 들어섰는데
이게 웬일인가?
예나 지금이나 고향의 산천은 그대로이지만
아는집은 몇집이 안되고
대부분 타성인들이 와서 살고있으며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며 20여년만에 찾아온 고향은
너무도 찬바람이불며 쓸쓸하기만 하였다.
이럴줄 알았으면 고향을 찾아 오지말고
차라리 향수로나 달래볼걸 하는
후회스러움이 뇌리를 스쳐간다.
나는 발길을 옮겨 선산에 조상님들을 찾아
禮를 올리고 고향 마을을떠나 박달고개를
넘어서는데 나도몰래 콧등이 시큰한건 왜 일까?
그리고 마침 이 노래 가사가 생각이 나기에 올려본다.
고향에 찾아와봐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되뇨♪♪
두견화 피는 언덕에 누워 풀피리 맞춰불던 내 동무야♪♪
흰구름 종달새에 그려보던 청운의 꿈을♪♪
어이 지녀 가느냐♪♪
어이 새워 가느냐♪♪
첫댓글 기차에서 사먹던 귤 삶은 계란이 그 당시엔 맛있었어요
"홍익회" 추억에 젖은 단어구요 ㅎ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것두 옛말 지금은 2,3년마다 변하는 것 같아요^^
우리 여백원총무님 첫댓글 고맙습니다.
그런것 같아요.
나는 20여년만에 찾은고향에서
그옛 추억을 찾으려니 바보 스러웠지요.........ㅎㅎ~~
제가 살아온 날들과 판박이 부분이 꽤 있네요
무엇보다도 달라진 고향을 바라보면서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느낌,
그것은 농경사회를 지나 산업화를 거치는 시대를 살아온 우리들에겐
거의 통과제의아도 같은 아픔이었지요
그렇습니다.
문전옥담이 노래가사처럼
잡초만 무성하더군요.
초가지붕에 홍시감이 주렁주렁
지금은 볼수없는
정겨운 고향집의 모습입니다 오랫만에 고향의 달라진 모습에 옛날의 그리던 고향은 아니더라.
도시화 되어서 많이 변한곳에서
옛날 뛰놀던 기억도 그립고
추억에 젖은 고향 방문 이었네요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것도
선산이 있는곳도
마음의 안식처가 되지요
그런가요?
고향이 변해도 너무 변해서 놀랐습니다.
문전옥답은 잡초만 무성하구요
옛친구들은 모두가 객지에 살다보니 만날수도없구
정말 너무 삭막했습니다.
선산에 예를올리고 잠시 고향마을을 내려다 봤지요.
옛날 추억이 스크린처럼 스치던군요.
홍익회와 대전역의 우동 ㅎㅎㅎㅎㅎㅎ
당시 새마을 호가 특급이었고 무궁화 비둘기가 뒤를 이었죠
약12시간을 타고 상경하고 귀경하였던 일들이 떠오르네요
추억을 회상하게 하는 글 잘 읽고 갑니다^^
그렇지요.
12시간 탔겠지요.
내가 김천위까지 6섯시간 이상을 탔으니까...
고향가는 모습을 설명으로 자세히 하셨군요
저역시 계란사먹고 대전역에서 뜨껀한 우동을
사먹엇던 기억이 생생히 납니다 좋은글 즐겁게
보고 갑니다..
그렇게 읽어 주셨다니 고맙습니다.
구향의 추억은 항상 아름다운 것 같아요.
고운댓글 고맙습니다.
옛날 학창시절 생각이 주마
등처럼 지나가네요.
저도 방학때 중앙선을 10
시간 타고 집에 가다보면
원주, 영주,안동역 홍익회서
가락국수 팔았고 제천역 도
착하면 다라이에 삶은 옥수수
이고 아지매들이 차창밖에
매달려서 파는데 돈과 옥수
수 바꾸는 찰나 열차가 떠나
버리면 돈만주고 옥수수는
못받을 때도 있었던 일도
생각나네요.
ㅎㅎ~~황당 했겠습니다.
고향의 옛추억은 되짚어보다보면 나도몰래
입가에 엷은 웃음이 번지지요.
뿌뚜리님도 고향의 추억을 많이 가지고 계시는군요.
망중한님
추억의 고향 여정이십니다.
지난시간들을
잘도 쓰셨네요
고향은 늘마음속에
그리움 입니다
쓸쓸한 마음으로 돌아오신 고향길 위로 드립니다
잘보고 갑니다
너무 속상했습니다.
설레는 맘으로 고향을 찾았으면
귀경할때도 웃으며 귀경을 해야하는데
그 쓸쓸함 글로도 표현을 못하겠더군요.
아주 혼났습니다.
우리가 현재 다 겪고있는 실상입니다.
정말 꿈 속에 고향을 그리며 살고 있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
사진에 본 흙 토담집이 그립습니다.
그시절에는 이웃간
콩한쪽도 나누워 먹던 시절이 있었지요.
제 나름대로는 기대가 너무 컸었나 봅니다.
저도 서울로 중학교 시험 보러 오는날 완행 기차를 탔는데
엄마가 얼마나 멸미를 하시던지 시험 걱정보다 엄마걱정 이 컸어요
참 그리운 시절 입니다 잠시 추억에 젖어 보네요
생각해보면
추억은 그져 즐겁고 그립기만 하지요.
잊지못할 추억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려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정지용님의 시가 생각나는 글 이군요
내고향 갱상도 진주남강옆 당목이 골짜기는 모두 허물어지고 개발되어
흔적조차 없고 고향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지거나 죽든가 하여
고향 없어진지 오랩니다.그나마 수원이 제 2의 고향으로 정들었습니다
그렇게 헤아려 주시니 고맙습니다.
고향의 산야는 그대로인데
폐가가 늘어나고 낮선 타성인들이 자리한 고향마을
너무도 서글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