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지하철 전동차 안에서 노숙자 여성이 잠들어 있었다. 맞은편 좌석에 앉아 있던 남성이 그녀의 옷에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순식간에 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그 여성은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 뒤 노숙자 여성이 불에 스러지는 모습을 빤히 지켜본 범인의 신원이 과테말라 불법 이민자로 추방을 눈앞에 둔 세바스티안 사페타(33)로 알려져 공분이 일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페타에게 난데없는 공격을 받아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노숙자 여성의 신원은 알려지지 않았다.
국내 언론은 지난 2일 외신을 인용, 희생자의 신원이 데브리나 카왐(57)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카왐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쩌다 이런 황망한 일을 겪는 가련한 신세가 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뉴욕 폭스 5 채널은 9일 카왐이 뉴저지주 톰스 리버 주민이었다고 전했다. 노숙자 연맹은 미리 이런 내용을 파악했지만 가족에게 통보하는 절차를 먼저 밟느라 7일에야 피해자의 신원을 언론에 공개했다.
사실 카왐을 추모하는 의식은 지난달에 벌써 치렀다. 희생자의 신원을 정확히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지역사회가 함께 모여 숨진 이의 삶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에릭 곤살레스 브루클린 지방검사는 이날 성명을 통해 "무엇이 누군가로 하여금 이런 잔악하고 끔찍한 살인을 하게 만들었는지 짐작하긴 어렵다"면서 "카왐과 그가 사랑했던 이들은 정의로운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마땅하고 뉴요커들은 지하철에서 안전함을 마땅히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황망한 사고로 세상을 떠난 가련한 노숙자 여성의 신원과 그가 살아온 발자취를 궁금해 할 이들은 많지 않을지 모른다. '세계일화'란 개념이 얼마나 소중한지 생각해 보며 그녀의 부음 기사를 작성해 본다.
카왐은 뉴저지주 리틀 폭스에서 성장했는데 고교 시절 치어리더로 인기 많은 학생이었다. 일간 뉴욕 타임스와 얘기한 친구들에 따르면 펜케이크 하우스에서 아르바이트 일도 했다. 20대에 친구들과 함께 자메이카, 멕시코, 바하마 제도, 라스베이거스 등을 여행하며 다양한 단기 일자리들을 거쳤다고 친구 신디 서토시모 보위는 돌아봤다.
2000년대 초반 카왐은 유명 제약회사 머크에 입사했는데 그 뒤 내리막길이었다. 공공 문서들을 보면 그녀는 빚쟁이 신세로 전락, 파산신청을 해야 했다. 법원 문서들은 그녀가 여러 차례 체포된 적이 있다고 했다. 2008년 파산신청 서류에는 땡전 한 푼의 수입도 없는 그녀의 빚이 9만 달러로 기록돼 있었다. 당시 자산으로 옷가지들, 이불, 텔레비전, 800달러 나가는 닷지 네온(Dodge Neon) 뿐이었다.
소셜 서비스 국에 따르면 최근 뉴욕으로 옮겨와 노숙자 쉼터에 잠깐 머무른 것으로 확인됐는데 언제인지 일일이 밝히지 않았다.
범행 8시간 뒤 당국에 붙잡힌 사페타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뺌을 했다. 경찰이 나중에 범행 순간이 담긴 동영상을 보여주니 그걸 보고는 "오, 제길, 나네"라고 말한 뒤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브루클린 법원에서 살인과 방화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다.
검찰은 그가 카왐의 몸에 붙은 불을 더욱 키우려고 셔츠로 부채질을 했으며 벤치에 앉아 카왐이 불에 타는 모습을 지켜봤다고 주장했다. 당국은 사페타가 동영상을 지켜보며 "구역질을 느끼며 생경함을 느끼는 것처럼 굴었다고 했다. 눈을 비비며 스페인어로 "오 맙소사" 탄성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 뒤 형사들에게 "무척 유감이다. 내가 그러려는 게 아니다. 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 여인에게 무척 유감"이라고 덧붙였다.
밤새 술을 많이 마셨으며 지하철 안에서 잠 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 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2018년 추방됐다가 5년 전에 다시 몰래 미국 땅에 발을 들였다. 그 뒤 브루클린 피난소에서 지내며 사건 당시까지 지붕 수리 일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달에도 범죄로 고발된 내용이 있어 법원에 출두한 일이 있다. 뉴욕에서는 모든 연방 범죄 사건들이 재판으로 다투게 하기 위해서는 대배심의 기소가 있어야 한다. 기소돼 유죄가 인정되면 그는 최고 양형으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