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상영시간이 길어 무등산을 오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싶어 6시로 요구하는데 답이 없다.
6시에 식당에 가려면 금당산을 걸어 돌아오거나
1수원지 편백숲을 지나 새인봉을 돌면 적당하겠다.
극장에서 나와 막내한테 전화하니 어렵다 하고 큰놈도 안된단다.
아직 복학도 안하고 직업도 없는 놈들이 바쁘단다.
그렇게 살아라.
점심 먹을 곳이 안 보인다.
눈발을 피하려 지하상가로 내려가 분식집을 찾는데
생각해 보니 금남로4가역 앞에 있었다.
새로 단장한 전일빌딩 뒤 남원추어탕에 간다.
다시 지하도를 건너 49번을 탄다.
2시 40분을 지난다. 어제는 1시 40분쯤에 올라 막 어두워지려는
5시 50분쯤 내려왔다.
오늘은 길이 더 미끄러울 것이다. 증심사 약사사 구경하고 새인봉으로 내려오면
되겠다고 오른다.
증심사 입구에서 그냥 당산나무로 올라간다.
해도 길어졌고, 아마 달도 떠 있을 것이니 6시 50분쯤에 내려와도
막내 말처럼 조난은 당하지 않을 것이다.
얼지는 않았으나 눈 덮인 매끈한 바위는 미끄럽다.
늦은 시각이어서인지 사람이 없다.
중머리재에 한시간이 지나 도착한다.
두 여성이 사진을 찍는데 폰 꽂은 삼각대가 바람에 넘어진다.
하산할 때 용추봉에서 일몰을 볼 수 있을지 모르니 장불재로 오른다.
아들을 데리고 내려오던 남자가 지금 오르면 비박하고 내려오느냐고
경상도 말씨로 묻는다.
난 다시 내려올 거라고 답한다.
장불재 아래 나무들은 어제보다 검은 색이 더 많다.
장불재 바람을 피해 막사 안으로 들어가 배낭을 벗는다.
땀에 젖은 셔츠를 벗고 다운 점퍼를 입는다.
철수 형이 준 복면을 하고 장갑도 바꾸고 아이젠도 신는다.
아무도 없는 장불재의 눈보라를 보다가 입석대로 올라간다.
4시가 넘었으니 공단 직원들이 강제로 하산하라기를 바라기도 했는데,
통제소인지 안내소인지 문은 잠겨 있다.
입석대 아래에서 마지막 내려오는 젊은이들을 만난다.
쉬지 않고 오른 길에 힘이 떨어져 돌계단 같은 오르막에 느려진다.
서석대에도 아무도 없다.
바람이 차고 눈이 몰아치지만 기온은 그리 낮지 않아서인지
돌에 맺힌 눈은 많지 않다.
혼자 셀카를 찍고 있는데 뒤에서 빨간 옷의 남자가 걸어온다.
인증샷을 찍어 달라해 몇 번 찍어주니 손이 시리다.
원효사에서 올라왔다는 그는 아이젠도 스틱도없다.
전망대로 내려가며 몇번 나무를 본다. 여기도 어제보다 눈이 나무에 덜 붙었다.
전망대를 지나 손을 주머니에 넣고 내려온다.
중봉 가는 길도 걸을만하다. 내 몸이 추위를 모르는 걸까?
중봉에서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해가 질 무렵에 하늘이 붉을텐데 아쉽다.
아이젠이 돌에 부딪히니 발목에 소식이 온다.
속도를 내지 못하고 부지런히 걷는다.
어두워지기 시작하지만 걸을만하다.
당산나무 옆엔 불이 켜져 있다.
불없는 신림교회당 앞이 밝아 하늘을 보니 구름 사이에
반달이 바쁘게 지나간다.
의재미술관 앞에서 아이젠을 벗고 힘을 내 내려온다.
6시 50분을 지난다. 처음으로 화장실을 다녀오니 차 몇 대가 지나가 버렸다.
45번을 환승해 오고 있는데, 퇴근한 바보가 전화해 차에서 내려 국밥을 먹고 가라한다.
코가 맹맹 감기 기운이 있어 소주를 참고 암뽕순대국밥을 먹고 눈길을 걸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