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째날(10.24)
오늘은 그 동안 참아왔었던 우리들의 분노를 교육청에 전하는 힘찬 투쟁의 날이었습니다. 그 과정들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담아 보았습니다.
교육청 출근 저지투쟁
오늘 아침 동지들은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8일째 되는 동안 어느 누구도 우리의 외침에 귀기울이지 않았고, 교육청의 책임자들은
협상자리에서조차 아무런 의지를 보이지 않았기에 우리들은 오늘 결사투쟁을 결의했었습니다. 우리는 장애인교육에 아무런 의지를 가지지
않는 교육청을 규탄하고, 장애인교육권 확보를 위한 싸움이 현재까지 벌어지고 있음을 시민들 에게 선전하기 위하여 교육청 정문도로와
뒷문을 휠체어로 점거하였습니다. 그러자, 일주일이 넘는 시간동안 아무런 관심을 가져주지 않던 교육청 공문원들이 반응을
보였습니다. 아침부터 힘들게 자신이 다니고 있는 ‘교육청’ 에서 ‘교육권’을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보이는 반응은
너무나 친절(?)했습니다. 정작 자신들의 소중한 차가 주차할 곳이 없자 그들은 얘기했습니다. “꼴깝한다.....” 어떠한 모진
대답이 오더라도 우리들은 무관심보다는 비난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어느 야학학생과 교사의 말처럼 투쟁을 하는 시간이 교육에서
배제되어 인간답지 못하게 살아온 지난날들 보다는 더욱 짧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흐르자 교육청에서는 시설보호요청을 ?
杉쩝?전의경들이 몰려왔고 2시간 30분여간의 치열한 싸움 끝에 교육국장와의 당장 협상을 약속받고 일단 정리를 하였습니다.
동지들은 지친 몸으로 아침식사를 준비했고, 대표단은 교육국장과의 협상을 위해 교육청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교육국장은
‘행정감사라서 나가야 된다. 얼굴보러 왔다’라고 이야기 하면서 지나쳐버렸고, 이에 우리는 면담이 아닌 협상을 요구했었지
않냐고, 기만적인 자세에 항의를 했습니다. 하지만 거센 항의에도 교육국장은 가버렸습니다. 농성단은 일단 식사 후, 이 문제에
대해서 논의하고 대응하는 것으로 합의하였고, 지친 동지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후에 벌어진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농성장 침탈, 폭력연행
찢겨진 상처에 약을 바르고, 삔 발목에 파스를 붙이면서 우리들은 뒤늦은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육청직원들이
앞에서 속속히 모여들더니 그 뒤로 3개 중대, 12명의 형사, 11명의 여경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농성장 철거를
고지하였습니다. 협상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사과보다는 아침의 투쟁을 빌미로 농성장을 쓸어버리겠다는 태도, 장애인교육권을
이야기하는 이들에 대한 관심보다는 더 이상 지껄이지 못하도록 연행해버리겠다는 모습, 상상을 뛰어넘는 교육청의 기만에 동지들은
모두 분노를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동지들은 기만적인 교육청과 공권력에 항의하는 집회를 그 자리에서 만들었고, 휠체어를
이용하는 동지들은 기둥에 쇠사슬을 묶어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각오하였습니다. 우리에겐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습니다. 곧
농성장 침탈과 마구잡이식 연행은 시작되었고 16여명의 동지들이 연행되고 많은 장애인동지들이 다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연행과정에서는 1명의 여성을 8명의 남성전경이 둘러싸 팔, 가슴, 허리, 다리 등을 잡고 들어서 옮기는 폭력적인 일들이
연이어졌으며 현행범 ? 繭醮?고지를 하지 않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동지들의 끈질긴 투쟁에도 불구하고 농성장의 물품들은 물론
장소까지 모두 교육청이 원하는 바 대로 ‘깨끗하게’ 정리되었고, 교육청의 의도 그대로 시끄럽게 난리를 치던 인간들은 모두
체포되었습니다. 하지만 결코 남아있는 동지들과 연행된 동지들은 투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안과 밖, 계속되는 투쟁
동지들의 연행이라는 아픔을 삼키며 우리들은 또 다시 투쟁을 준비하였습니다. 이대로 물러서기엔 너무나 억울하였습니다. 우리들은
긴급히 [대구시교육청의 농성장 강제철거 및 경찰폭력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고 지역사회에서 단체, 당 등 소식을 들은 많은
동지들이 모여주셨습니다. 투쟁은 연행된 경찰서 안에서도 계속 되었습니다. 조사를 받은 후, 연행된 동지들이 모여 연행과정 속
에서 벌어진 폭력유발, 성추행, 성적수치심유발, 미란다 미고지 등의 문제에 대해 경비과장의 책임있는 사과를 요구하며 경비과
사무실에서 농성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경비과장은 폭력유발에 대해서는 ‘하지 않았다’ 성추행 관련해서는 ‘시위한 여성이 강력하게
힘을 쓰면 어쩔 수 없지 않냐’, 미란다 고지는 분명 했다라고 하며 “법과 원칙을 지켰으니 사과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폭력이든 성추행이든 모두 시위자가 문제라는 전제가 명 백히 깔려있었습니다. 심각하게 인권에 대한 개념이 없 는 상태였습니다.
이에 연행된 동지들은 밖에서 규탄기자회견을 마치고 경찰서 앞에서 역시 규탄집회를 하는 동지들과 만나 경찰서장의 사과를 요구?
歐?위해 경찰서장을 만나러 갔습니다. 동지들은 경찰서장을 만나 상세한 진위를 설명했고, ‘사과하며 인권교육을 강화하겠다’라는
경찰서장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받아냈습니다. 저녁 6시가 조금 넘어서야 연행된 동지들은 모두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무자비한 인권탄압, 의지 없는 교육청 각성하라!
풀려난 동지들과 기다린 동지들은 저녁에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교육청의 오늘과 같은 작태를 이대로 두고만 보아선
안된다라는 데 동의하였으며, 이에 안정적인 농성 보장, 교육국장 협상을 요구하며 교육청 동관 1층을 점거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여기에서 밤을 지새웠습니다. 거세어 오는 교육청의 칼날 앞에 우리 동지들은 오늘 너무나 당당하게 싸웠으며, 여전히 지금도 싸우고
있습니다. 투쟁입니다.
아홉째날(10.24)
오늘은 그 동안 참아왔었던 우리들의 분노를 교육청에 전하는 힘찬 투쟁의 날이었습니다. 그 과정들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담아 보았습니다.
교육청 출근 저지투쟁
오늘 아침 동지들은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8일째 되는 동안 어느 누구도 우리의 외침에 귀기울이지 않았고, 교육청의 책임자들은
협상자리에서조차 아무런 의지를 보이지 않았기에 우리들은 오늘 결사투쟁을 결의했었습니다. 우리는 장애인교육에 아무런 의지를 가지지
않는 교육청을 규탄하고, 장애인교육권 확보를 위한 싸움이 현재까지 벌어지고 있음을 시민들 에게 선전하기 위하여 교육청 정문도로와
뒷문을 휠체어로 점거하였습니다. 그러자, 일주일이 넘는 시간동안 아무런 관심을 가져주지 않던 교육청 공문원들이 반응을
보였습니다. 아침부터 힘들게 자신이 다니고 있는 ‘교육청’ 에서 ‘교육권’을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보이는 반응은
너무나 친절(?)했습니다. 정작 자신들의 소중한 차가 주차할 곳이 없자 그들은 얘기했습니다. “꼴깝한다.....” 어떠한 모진
대답이 오더라도 우리들은 무관심보다는 비난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어느 야학학생과 교사의 말처럼 투쟁을 하는 시간이 교육에서
배제되어 인간답지 못하게 살아온 지난날들 보다는 더욱 짧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흐르자 교육청에서는 시설보호요청을 ?
杉쩝?전의경들이 몰려왔고 2시간 30분여간의 치열한 싸움 끝에 교육국장와의 당장 협상을 약속받고 일단 정리를 하였습니다.
동지들은 지친 몸으로 아침식사를 준비했고, 대표단은 교육국장과의 협상을 위해 교육청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교육국장은
‘행정감사라서 나가야 된다. 얼굴보러 왔다’라고 이야기 하면서 지나쳐버렸고, 이에 우리는 면담이 아닌 협상을 요구했었지
않냐고, 기만적인 자세에 항의를 했습니다. 하지만 거센 항의에도 교육국장은 가버렸습니다. 농성단은 일단 식사 후, 이 문제에
대해서 논의하고 대응하는 것으로 합의하였고, 지친 동지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후에 벌어진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농성장 침탈, 폭력연행
찢겨진 상처에 약을 바르고, 삔 발목에 파스를 붙이면서 우리들은 뒤늦은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육청직원들이
앞에서 속속히 모여들더니 그 뒤로 3개 중대, 12명의 형사, 11명의 여경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농성장 철거를
고지하였습니다. 협상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사과보다는 아침의 투쟁을 빌미로 농성장을 쓸어버리겠다는 태도, 장애인교육권을
이야기하는 이들에 대한 관심보다는 더 이상 지껄이지 못하도록 연행해버리겠다는 모습, 상상을 뛰어넘는 교육청의 기만에 동지들은
모두 분노를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동지들은 기만적인 교육청과 공권력에 항의하는 집회를 그 자리에서 만들었고, 휠체어를
이용하는 동지들은 기둥에 쇠사슬을 묶어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각오하였습니다. 우리에겐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습니다. 곧
농성장 침탈과 마구잡이식 연행은 시작되었고 16여명의 동지들이 연행되고 많은 장애인동지들이 다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연행과정에서는 1명의 여성을 8명의 남성전경이 둘러싸 팔, 가슴, 허리, 다리 등을 잡고 들어서 옮기는 폭력적인 일들이
연이어졌으며 현행범 ? 繭醮?고지를 하지 않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동지들의 끈질긴 투쟁에도 불구하고 농성장의 물품들은 물론
장소까지 모두 교육청이 원하는 바 대로 ‘깨끗하게’ 정리되었고, 교육청의 의도 그대로 시끄럽게 난리를 치던 인간들은 모두
체포되었습니다. 하지만 결코 남아있는 동지들과 연행된 동지들은 투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안과 밖, 계속되는 투쟁
동지들의 연행이라는 아픔을 삼키며 우리들은 또 다시 투쟁을 준비하였습니다. 이대로 물러서기엔 너무나 억울하였습니다. 우리들은
긴급히 [대구시교육청의 농성장 강제철거 및 경찰폭력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고 지역사회에서 단체, 당 등 소식을 들은 많은
동지들이 모여주셨습니다. 투쟁은 연행된 경찰서 안에서도 계속 되었습니다. 조사를 받은 후, 연행된 동지들이 모여 연행과정 속
에서 벌어진 폭력유발, 성추행, 성적수치심유발, 미란다 미고지 등의 문제에 대해 경비과장의 책임있는 사과를 요구하며 경비과
사무실에서 농성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경비과장은 폭력유발에 대해서는 ‘하지 않았다’ 성추행 관련해서는 ‘시위한 여성이 강력하게
힘을 쓰면 어쩔 수 없지 않냐’, 미란다 고지는 분명 했다라고 하며 “법과 원칙을 지켰으니 사과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폭력이든 성추행이든 모두 시위자가 문제라는 전제가 명 백히 깔려있었습니다. 심각하게 인권에 대한 개념이 없 는 상태였습니다.
이에 연행된 동지들은 밖에서 규탄기자회견을 마치고 경찰서 앞에서 역시 규탄집회를 하는 동지들과 만나 경찰서장의 사과를 요구?
歐?위해 경찰서장을 만나러 갔습니다. 동지들은 경찰서장을 만나 상세한 진위를 설명했고, ‘사과하며 인권교육을 강화하겠다’라는
경찰서장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받아냈습니다. 저녁 6시가 조금 넘어서야 연행된 동지들은 모두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무자비한 인권탄압, 의지 없는 교육청 각성하라!
풀려난 동지들과 기다린 동지들은 저녁에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교육청의 오늘과 같은 작태를 이대로 두고만 보아선
안된다라는 데 동의하였으며, 이에 안정적인 농성 보장, 교육국장 협상을 요구하며 교육청 동관 1층을 점거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여기에서 밤을 지새웠습니다. 거세어 오는 교육청의 칼날 앞에 우리 동지들은 오늘 너무나 당당하게 싸웠으며, 여전히 지금도 싸우고
있습니다. 투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