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엇이 사람인가? >
사람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철학적 담론은 많이 있어 왔습니다. 하지만 난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무엇이 인간인가, 라고. 전자의 질문은 인간의 내적 구성에 대한 이해와 설명을 요하는 데 반해 후자의 질문은 인간의 조건에 대한 질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말입니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몸을 갖고 있다고 다 사람이라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생물학적 조건을 넘어서는 인간으로서의 내적 조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맹자는 이 부분에서 수치심을 말했습니다. 옳지 못한 것과 선하지 못한 일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無惻隱之心 非人也), 즉 선악에 대한 분별력이 인간의 내적 조건이라고 본 것이지요. 맹자는 윤리적 인간을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인간을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하나님의 모습을 닮은 존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인간의 원형인 셈입니다. 그런 하나님으로부터 인간됨의 기원을 찾도록 요구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성경은 고대 근동의 약소국이었던 히브리 민족이 제국의 침략과 압제 속에 쓰였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약자의 시선으로 세계를 보는 창입니다. 한없이 나약해서 좌절하고 절망하여 강자의 침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의 위치에서 절대자를 향한 구원의 갈망을 호소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특히 예언서들은 제국의 침략과 수탈 아래 놓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고 명령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특히 구약의 예언서인 이사야서는 유다의 왕이 제국의 질서 가운데 잘못된 외교정책을 편 결과 나라가 몰락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쓴 책입니다. 이사야가 당대의 상황을 진단한 가장 주된 것은 ‘공의(체데크)’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서는 ‘하나님의 공의’라는 말이 주된 정조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지요. 공의와 함께 정의(미쉬파트)라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주된 용어로 등장합니다. 정의와 공의가 하나님의 속성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인간됨의 내적 조건도 정의와 공의에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정의와 공의는 혼자서 행하는 게 아니라 복수의 사람, 공동체, 사회 가운데서 요구되는 덕목입니다. 이것은 윤리적인 외피를 입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공동체가 유지되고 그 공동체 안에서 각자의 삶이 안전해질 수 있는 기초입니다. 그런데 정의와 공의는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사랑이 전제되는 고차원적인 덕목입니다. 이것은 타자에 대한 공감능력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타자에 대한 공감, 이것이 정의와 공의의 출발점입니다. 타인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경험하고, 타인의 슬픔을 내 슬픔으로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의 자격을 갖게 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인간의 죄를 대속했다는 기독교의 고백은 이런 의미에서 참됩니다.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연약성을 이해하고, 죄를 심판하기보다 용서하고 공감하는 마음, 그것이 십자가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혼자서 명상하고 수양해서 도를 얻는 종교가 아니라 타인과 공감하고 연대하여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는 종교입니다. 이런 시선으로 기독교는 세계와 인간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목사들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을 저는 적절하다고 봅니다. 자식을 낳아 본 사람만이 타인의 자식에 대한 공감 능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내를 사랑해본 사람만이 자기 아내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남자의 비장함에 공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 나라의 지도자는 올바르고 건강한 가정생활을 하고 자녀를 출산하여 양육한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자격을 부여해야 합니다. 가정을 가져보지도 않고 자식에 대한 절절한 사랑과 아픔도 모르는 여자가 대통령이 됐을 때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어린 생명들이 물속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구명조끼를 입었는데 발견하기가 그렇게 힘듭니까?”라는 말을 했습니다. 자식을 키워보지 않은 여자의 비극적인 인식이었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자가 세 모자가 죽은 반지하 창문 앞에 쪼그려 앉아 구경꾼처럼 들여다보며, “어제 퇴근할 때 보니까 아파트들이 벌써 침수되더군.”이라고 남 말하듯 합니다. 타인의 비통하고 비극적인 죽음에 일말의 공감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비정상적인 가정생활, 자녀를 낳아보지도 키워보지도 않은 사람이 지도자가 됐을 때 나타난 비극입니다.
앞으로 대통령은 정상적인 가정을 가진 사람, 자녀를 낳고 키운 부모, 군 복무를 마친 사람만을 후보로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자는 대통령 이전에 인간의 자격이 없습니다. 내 말이 아니라 성경의 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데서 온다고 말합니다. 무엇이 인간인가에 대한 성경의 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