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7일 (수)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말씀 묵상 (갈라 2,1-2.7-14) (이근상 신부)
11 그런데 케파가 안티오키아에 왔을 때 나는 그를 정면으로 반대하였습니다. 그가 단죄받을 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12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오기 전에는 다른 민족들과 함께 음식을 먹더니, 그들이 오자 할례 받은 자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몸을 사리며 다른 민족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13 나머지 유다인들도 그와 함께 위선을 저지르고, 바르나바까지도 그들과 함께 위선에 빠졌습니다. 14 그러나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에 따라 올바른 길을 걷지 않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 앞에서 케파에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유다인이면서도 유다인으로 살지 않고 이민족처럼 살면서, 어떻게 이민족들에게는 유다인처럼 살라고 강요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갈라 2,11-14)
베드로는 이방인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그때 그의 마음이 얼마나 편안했는지, 오랜 경계와 낯섦이 얼마나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는 함께 먹었다. 그런데 바오로가 그에게 위선이라고 꾸짖은 것은 그 식탁에서 그의 마음이 충분히 따뜻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니다.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함께 먹던 식탁에서 물러났다는 사실이 위선의 내용이었다. 그의 물러섬을 다른 유다인들이 따랐고, 바르나바까지도 그들과 함께하였다. 한 사람의 두려움이 함께 먹던 사람들을 갈라놓았다. 복음으로 받아들인 이들을 사람들의 눈치 때문에 다시 멀리하는 행동. 바오로는 바로 그 행동을 위선이라 말한다. 그러니까 여기서 위선은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행동을 멈추었다는데 방점이 찍혀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이리 가르친다. “이웃 사랑은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내가 좋아하지 않거나 알지 못하는 사람까지도 사랑하는 것입니다.”(『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18항) 사실 이 가르침은 아가페의 뜻을 풀이한 것이다. 욕구에 조건지워지지 않은 사랑. 마음이 충분히 움직일 때까지 사랑을 미루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직 불편하고 낯설어도 함께 앉고,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필요한 손을 내어 주는 것. 그 사람의 선을 바라며 그렇게 행동이 먼저 움직일 때, 우리의 마음은 이미 사랑을 배우며 그리로 향하기 시작한다. 감정이 온전히 따라오지 못한다고 해서 그 사랑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먼저 우리에게 다가온 하느님의 사랑에, 아직 온전하지 않은 우리가 응답하는 것이다. 마음과 다른 사랑은 위선이 아니다. 그건 아가페다. 문제는 그 사랑을 잠시 이용해 먹는 사기들일뿐. 선행행위는 언제나 마음보다 먼저다.
마음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행을 미루는 태도. 어쩌면 위악이 우리 시대의 더 근본적인 악일지도 모르겠다. 선뜻 사랑할 수 없는 자신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차라리 냉담하게 사는 것을 정직함으로 내세우는 태도 말이다. 우리는 위선자가 되고 싶지 않다며 자신을 지키지만, 그사이 누군가에게 내어 줄 손과 함께 앉을 자리가 사라진다. 내 마음에 거짓이 없는지를 확인하느라 곁에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선을 미룬다. 베드로에게 요구된 것도 그 자리에서 자기 마음을 완성하는 일이었겠는가. 두려움이 있어도 함께 먹던 이들을 버려두지 않는 일, 그 식탁에 머무르는 일이었을 것이다. 마음의 부족함이 다른 사람을 밀어내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부터 분도회 피정을 동반중이다. 성 베네딕토는 시편을 노래하는 이들에게 “우리 마음이 우리 목소리에 일치하도록” 하라고 권한다. Ut mens nostra concordet voci nostrae. 베네딕토 16세는 이 말씀을 풀이하며, 전례에서는 주어진 말씀이 먼저이고 우리가 그 말씀 안으로 들어가 마음을 맞추어 가야한다고 설명하였다. 마음이 먼저 찬미로 가득 차야만 노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노래를 부르며 그 노래에 마음을 모아 가는 것이다. 사랑도 그렇게 배울 수 있으리라. 마음이 아직 따라오지 않아도 행동을 선하게, 마음이 아직 흐려도 노래는 맑게. 그리고 그 행동과 노래에 마음을 맞추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 것. 우리는 주님께서 먼저 건네주신 사랑을 행하며, 천천히 그 사랑에 어울리는 마음을 배워 가야한다.
마음이 풀린뒤 용서하고, 사랑이 가득찬 뒤에 사랑을 해야 한다면 우린 세상 끝날까지 용서도 사랑도 다 못한채로 끝장이 나는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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